[폿불리스트] 허인회 기자= 성남FC는 빌드업 패턴만으로도 보는 재미를 제공하는 팀이다. 화려하고 다양한 전술의 배경에는 김남일 감독이 ‘전술 코치’로 인정한 정경호 수석코치의 보이지 않는 활약이 있다.

올시즌 성남은 ‘하나원큐 K리그1 2020’ 9라운드까지 포백과 파이브백을 번갈아 쓰다가 10라운드부터 스리백을 도입했다. 3-2-4-1 포메이션을 주로 쓰면서 복잡하고 다양한 후방 빌드업 패턴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모든 선수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시즌 초반보다 훨씬 다양한 형태로 공격을 풀어 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3-2-4-1에서 오른쪽 윙백 이태희가 전방으로 올라갈 경우, 스리백을 쓰는 다른 팀과 다른 운영이 이뤄진다. 스토퍼 이창용이 윙백 자리로 올라간다. 김동현, 박태준, 이스칸데로프, 이재원  등 미드필더 중 한 명이 내려가 스리백을 구상한 뒤, 이들 중 누구든 압박에서 벗어난 선수가 빌드업의 기점이 된다. 오른쪽을 활용하기도 하고 노마크 상태가 된 왼쪽 윙백 유인수에게 공을 보내기도 한다. 이때 성남 포메이션은 3-1-2-4처럼 변한다.

스리백 중 한 명이 전진하면 김동현 등 미드필더가 후퇴, 다시 스리백 형태를 만든 다음 공을 뿌리는 것도 특이한 패턴이다. 오른쪽 스토퍼 이창용도 기대 이상의 롱 패스 정확도로 배급에 일조한다.

빌드업이 효과를 내면, 상대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빠른 공격 전개가 이뤄진다. 빌드업 시발점과 받는 선수를 매번 바꿔가며 상대 수비진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공격수 나상호는 "나만 프리롤인 게 아니다. 어느 선수든 프리로 공을 받을 수 있는 위치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성남 선수 전원이 상대 마크를 피해 움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대형을 유지한다. 그러다가 프리인 선수가 생기면 그리로 공을 보내기 때문에 더 유리하게 경기를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남이 다양한 패턴의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배경에는 정 수석코치가 있다. 김남일 감독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정 코치가 전술 구상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고 공개한 바 있다. 정 코치는 선진 전술을 배우기 위해 유럽을 직접 방문하는 등 전술연구에 상당한 노력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코치의 빌드업 방식은 ‘전술의 대가’로 유명한 율리안 나겔스만 RB라이프치히 감독이 호펜하임 감독 시절 구사하던 것과 비슷하다. 나겔스만 감독은 호펜하임에서 3-5-2, 3-4-2-1, 3-4-3 등 스리백을 바탕으로 다양한 포진을 구사했고, 빌드업 패턴도 다양했다. 현재 성남이 구사하는 방식과 유사한 점이 많다.

지난 시즌 정 코치가 몸담았던 상주도 비슷한 빌드업 전략을 썼다는 점에서 그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정 코치에게 변칙 스리백을 조련받았던 이태희가 성남에서 재회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성남의 '영업비밀'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김태완 상주 감독애게 물어보니 "호펜하임의 스리백을 보고 참고했다. 정 코치를 '정겔스만'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라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지난 시즌까지 정 코치가 전술적으로 디테일한 부분을 책임졌다. 선수들을 가르치고 이해시켰다. 호펜하임이 압박하는 법, 빌드업 등을 응용해서 많은 효과를 봤다. 지난해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 이유였다. 휴가 때는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보기 위해 영국을 가더라. 유럽의 선진 전술 연구에 몰두했다."

이번 시즌 성남은 오른쪽에서 공을 돌리다 왼쪽으로 한 번에 전개하는 패턴을 자주 구사한다. 작년과 반대다. 김 감독에 따르면 “상주에서는 김민우와 윤빛가람이 경기장 왼쪽에서 경기를 풀다가 결국 이태희가 있는 오른쪽 측면으로 전환하는 식의 공격 패턴을 많이 썼다. 정 코치는 이태희가 공격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아채고 영리한 선수를 잘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이태희는 이제 상주 시절 김민우처럼 상대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공격수 출신 윙백인 유인수에게 공을 내준다.

성남 경기력은 호평을 받지만, 골 결정력 부재는 아쉬운 부분이다. 성남은 시즌 초반 양동현이 주로 선발로 나서다가 포메이션을 바꾸면서 김현성이 중용되기 시작했다. 롱 패스를 받는 역할을 비롯해 김현성의 기여도는 높지만, 문제는 무득점이다. ‘국가대표급’ 나상호도 14라운드까지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다양한 패턴으로 빌드업을 진행해도 해결 지을 수 있는 선수가 없다.

성남은 최근 공격력 개선의 실마리를 찾아나가고 있다. 양동현과 김현성에 비해 피지컬이 부족한 토미를 최전방에 놓는 실험을 했는데, FA컵을 비롯해 2경기 연속골을 넣었다. 나상호는 15라운드에서 인천유나이티드를 상대로 2골을 넣는 맹활약을 펼쳤다. 선수들 결정력 향상이 시급한 성남 입장에선 긍정적인 상황이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비프로일레븐' 경기분석 캡처(14R 성남 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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