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치가 맨시티를 3-2로 꺾은 것은 센세이션이었다

[풋볼리스트] 루크 부처 컬럼니스트 = 지난 일요일 새벽(한국시간), ‘나의 팀’ 노리치 시티가 맨체스터 시티를 3-2로 물리쳤다. 나의 팀 사상 가장 빼어난 성과 중 하나이자, EPL 역사상 가장 큰 충격적인 결과 중 하나로 기록됐다. 이날 노리치는 부상자가 너무 많아 교체 선수 명단을 채우기 위해 골키퍼를 2명이나 벤치에 앉혀 둔 상태였다. 그러면서도 '챔피언' 클럽을 꺾었으니 홈 구장 캐로우 로드가 시끌벅쩍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펩 감독이 노리치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그는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을 것 같다. 이 경기의 여파는 90분보다 훨씬 더 길게 이어질 것 같다. 맨시티가 리그에서 패배한 것은 지난 1월 이후 처음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에는 크게 4가지가 있다. 

첫째, 통계는 이 시합이 얼마나 당황스러운 결과를 낳았는 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지난 시즌 맨시티는 리그 38경기를 통틀어 상대에게 리드를 허용한 시간이 132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노리치를 상대로 한 이 1경기에서만 무려 72분을 끌려갔다. 맨시티 감독에 부임한 이래로, 펩 감독은 승격팀을 상대로 단 한 번도 진 적 없이 14승 4무를 기록하고 있었다. 맨시티는 2013년 이후 승격팀을 상대로 멀티골(2골 이상)을 허용한 적이 없는 팀이기도 했다. 노리치 팬들을 비롯한 거의 모든 축구팬들은 이 시합에서 누가 승자가 될 지를 궁금해하기 보단 맨시티가 몇 골을 넣을 지 궁금해했던게 사실이다. 

둘째, 이 경기는 펩 감독의 맨시티가 분명 약점을 가진 팀이라는 것, 현재 쇠약해진 상태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수비수 라포르트가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 펩 감독은 스톤스와 오타멘디 조합에 센터백을 맡겼지만, 중요한 순간 노리치가 압박을 가하자 이들은 중대한 실수를 범했다. 노리치 공격수 푸키는 두번째 골 상황에서 영리한 움직임으로 스톤스를 제쳤고, 오타멘디는 너무 오래 망설이다 뷰엔디아에게 세 번째 골을 헌납한 꼴이 됐다. 

승자인 노리치의 팬들을 제외하면 가장 행복한 이들은 단연 리버풀 팬들이 아닐까. 시즌 초반이지만 우승 경쟁에서 맨시티를 상대로 벌써 승점 5점을 앞서게 됐기 때문이다. 아직 많은 경기가 남아있긴 하지만, 펩과 클롭의 팀은 격차가 크지 않기에 어떤 패배는 큰 재앙이 될 수 밖에 없다. 첼시, 맨유, 토트넘은 올 시즌에도 우승을 노리기엔 약점이 너무 많아 보이고, 아스널은 여전히 '아스널하는' 중이다. 그러니 리버풀은 이제 우승의 주도권을 쥐게 된 것으로 보인다. 

셋째, 노리치는 다른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에게 빅 클럽을 깨는 방법을 알려줬다. 노리치는 대부분의 경기 내내 라인을 낮게 내려 수비했지만, 공을 탈취한 뒤에는 용감하게 플레이했고, 공격할 기회가 생겼을 땐 실수 없이 마무리를 지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노리치는 맨시티가 전방 압박을 시도할 때조차 짧은 패스로 경기하는걸 멈추지 않았다. 노리치 구단 공식 트위터에 게재되어 거의 600만 뷰를 기록한 영상을 보면 노리치가 수비 지역에서조차 짧고 날카로운 패스로 공을 돌리며 맨시티 미드필더와 공격수들이 꽁무니만 쫓아다니게 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맨시티가 노리치의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 여유를 갖지 못하도록 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작업이었다. (https://twitter.com/NorwichCityFC/status/1173557737848025094)

게다가 노리치는 맨시티에게 측면 공간을 열어주고 풀백과 윙포워드에게 크로스 기회를 허용하는 대신, 이들이 중앙으로 들어오면 강한 압박을 가했다. 이날 맨시티는 펩이 맨시티 감독에 부임한 이래 1경기에서 가장 많은 크로스(47)를 시도했지만, 골로 연결된 크로스는 단 1개 뿐이었다. 다니엘 파크 감독은 만약 맨시티가 위험이 덜한 위치에서 크로스 위험도가 낮은 위치에서 크로스를 내준다면 노리치 수비수들이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도박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대신, 중원에서 다비드 실바와 일카이 귄도간에게 공간을 내주지 않는 쪽에 집중한 셈이다. 결국 실바와 귄도간은 교체됐고, 윙포워드인 스털링과 베르나르도 실바는 위협적인 기회를 별로 만들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이 시합은 축구팬들에게 몸값의 액수로 선수들을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노리치 선발 멤버들의 이적료를 합하면 700만 파운드(약 105억원)이지만, 맨시티 선발 선수들의 이적료 합산액은 무려 4억 파운드(약 60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경기장에서 둘은 엇비슷해 보였다. 노리치는 뛰어난 스카우팅 시스템을 통해 좋은 선수들을 저렴하게 영입할 수 있었고 좋은 지도 방식과 인내심을 통해 프리미어리그에서 경쟁하기 위해 거액이 필요한 것만은 아니라는걸 보여줬다. 참고로 노리치 시티는 올 시즌 이미 챔피언스리그 우승팀(리버풀), 유로파리그 우승팀(첼시), 프리미어리그 우승팀(맨시티)을 모두 상대하고서도 5경기에서 승점 6점을 거머쥐었다. 

설령 내년 여름 2부로 곧장 강등된다해도, 노리치는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이미 강한 인상을 남겼다. 맨시티를 상대로 거둔 역사적인 승리는 노리치 서포터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노리치가 프리미어리그와 맨시티에 만연한 일종의 신화를 깨뜨렸다는 것이다. 모두가 승격팀은 맨시티를 이길 수는 없다고 말했지만 노리치는 해냈다. 모두가 EPL의 작은 클럽들은 화려한 패스 축구를 구사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노리치는 하고 있다. 모두가 돈 없는 팀은 EPL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어쩌면) 노리치는 해낼 수도 있을지 모른다. 

* 컬럼니스트 루크 부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근무하는 영국인이다. 2009년 한국에 처음 도착해 지금은 8년차 서울시민으로 살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30년 넘게 노리치 시티 팬이며, 현재 노리치 팬진에도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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