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리버풀전에서 노리치를 응원해야 하는 이유

[풋볼리스트] 마침내 2019/20 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가 개막된다. 개막전을 기다리는 심정이 평소보다 더 흥분되는 이유는 내 고향팀 노리치 시티가 유럽 챔피언이자 지난 시즌 리그에서 단 1패만을 기록했던 강호 리버풀을 만나기 때문이다. 이 시합은 단순히 두 팀의 맞대결로만 볼 수 없다. 진정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몸값 높은 스타급 선수들로만 구성된 유럽 챔피언이자 잉글랜드 축구의 빅 클럽인 리버풀과, 거의 아무 선수도 영입하지 않은 채로 현대 축구의 공식을 깨부수고자 하는 언더독 노리치 시티의 개막전! 나는 이번주 토요일 새벽 여러분을 리버풀 대신 노리치의 팬으로 만들 것이다!

나는 한국인들이 정의로운 약자가 강자에 맞서 싸워 승리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는걸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에는 수나라를 물리친 을지문덕 장군이나 임진왜란 때 승리를 거둔 이순신 장군과 같은 영웅담이 많다. 사람들은 예상과 다른 반전이 이뤄진 결말을 잘 기억한다.

만약 노리치가 안필드에서 승리한다면 다른 이변들처럼 축구사에 엄청난 충격으로 기억될 것이다. 연봉 차이만 비교해 봐도 알 수 있다. 리버풀은 세계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인 버질 반 다이크를 지난 시즌 7,500만 파운드(약 1,109 억원)에 영입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노리치는 티무 푸키(Teemu Pukki)를 자유계약(FA)으로 영입했다. 푸키는 2018/19시즌 2부리그 득점왕으로 엄청난 활약을 펼친 선수다. 이번 여름, 노리치는 반 다이크 몸값의 고작 1%인 75만 파운드(약 11억원)를 들여 4명의 선수를 영입했다. 두 팀은 같은 리그에 속했지만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1억 파운드 선수’ 시대에 노리치는 과도한 지출 없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호날도 노쇼’ 논란 이후, 한국 축구팬들은 많은 유럽팀 서포터들이 느끼는 것과 비슷한 좌절감을 경험한 바 있다. 현대 축구에서 유럽의 빅클럽들은 점점 더 기업화되고 있고 팬들을 ATM 기계처럼 취급한다. (영어식 표현으로 말하자면, '젖소에서 우유를 짜내듯이’ 말이다!) 일례로 지난주 리버풀을 소유하고 있는 미국 기업인 펜웨이 스포츠 그룹은 ‘리버풀'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저작권 등록 절차에 돌입했다. 리버풀이 (축구팀 이름만이 아닌) 영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고 역사적인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펜웨이 그룹의 이러한 조치는 리버풀 서포터 그룹인 ‘섕클리의 정신(Spirit of Shankly)’으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이들은 공식 성명을 통해 “리버풀 축구 유산의 노골적 자본화에 강하게 반대한다”면서 “리버풀은 펜웨이 스포츠 그룹이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도시 전체의 이름이며, 리버풀 시민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반드시 중단되어야 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EPL 서포터들은 ‘Twenty is Plenty' 운동(티켓 가격은 20파운드면 충분하다)을 통해, 경기당 100파운드(약 15만원)에 육박하는 높은 티켓값에 강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유럽의 빅클럽들이 팬들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

노리치는 EPL의 돈 잔치에 맞서 싸우는 클럽의 훌륭한 사례가 될 것이다. 노리치 시티는 중동이나 중국, 미국의 억만장자에 의해 일종의 장난감처럼 소유되는 클럽이 아니다. 평생 노리치의 팬이었던 영국 유명 셰프 델리아 스미스가 소유한 공동체에 의해 운영되는 축구클럽이다. 스미스는 1996년에 노리치를 인수했고, 이후 회사가 아닌 클럽 체제로 지금까지 운영되어 오고 있다. 좋은 시절과 나쁜 시절이 있었고 많은 실수가 있었으나, 노리치 클럽은 여전히 그 도시와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영국 속담인‘패배한 시절은 승리한 시간을 더 좋게 만든다’처럼 말이다.

여기에, 노리치에는 영국에서 가장 재능 있는 스포팅 디렉터로 손꼽히는  스튜어트 웨버도 있다. 웨버는 대니얼 파케 감독 선임에 기여했으며, 부상이나 개인적인 문제가 있지만 재능있는 무명의 선수들을 영입해 이들을 노리치의 발전적인 유스 시스템 출신 선수들과 뒤섞었다. 덕분에 노리치는 거만한 호날두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서로를 위해 열심히 뛰는 젊은 선수들의 팀이다.

현대 축구에 반기를 드는 것 말고도 노리치를 응원해야 할 이유는 있다. 노리치 경기는 대부분 많은 골과 후반 드라마가 펼쳐진다. 노리치는 지난 시즌 2부리그 46경기 중 정확히 절반인 23경기에서 3골 이상을 터뜨렸고, 리그 골 중 25%에 해당하는 득점을 매 경기 80분이 지난 뒤에 넣는 팀이다. 노리치는 화려한 패싱 축구를 구사하는 팀인데, 특히 공격수 에미 뷰엔디아의 기량이 뛰어나다. 축구에서 무언가를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이번 시즌이 끝날 때 EPL 팬들은 왜 다른 빅클럽들이 이 아르헨티나 선수를 노리치보다 먼저 발견하지 못했는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다이아몬드가 되기 전의 원석과 같은 뷰엔디아가 소규모 클럽에서 성장해가는 플레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노리치를 주목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노리치 시티의 아르헨티나 선수 에미 뷰엔디아가 지난 시즌 챔피언십 우승을 자축하고 있다.

자, 이제 결론을 얘기할 시간이다. 나는 여러분이 이번 시즌 축구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의 틀을 깨고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팀을 응원하길 권하고 싶다. 리버풀과 맨시티, 두 강팀의 치열한 경쟁 구도가 예상되는 게 엄연한 현실이기에, 사실 노리치는 토요일 경기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축구를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서는 노리치와 같은 언더독이 대이변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하!

* 컬럼니스트 루크 부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근무하는 영국인이다. 2009년 한국에 처음 도착해 지금은 8년차 서울시민으로 살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30년 넘게 노리치 시티 팬이며, 현재 노리치 팬진에도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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