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의 작전판] 인내한 아스널, 불운했던 맨유

2017-05-08     한준 기자

[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 훨씬 불리한 경기였고, 결과는 아스널의 2-0 완승이었다. 경기 내용은 결과가 보여주는 것 보다는 팽팽했다. 주제 무리뉴 맨유 감독은 “결과는 불만족하지만 선수들의 개별적인 활약과 팀 차원의 활약 모두 만족한다”고 평가했다. 패인을 “우리가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상대에 행운이 따랐다”고 정리했다.

#제한된 스쿼드, 무리뉴의 고민

아르센 벵거 감독과 프리미어리그 대결에서 13년 만에 처음 패배한 상황이지만, 무리뉴 감독의 발언을 몽니로만 볼 수는 없다. 맨유는 최고의 선수들을 가동할 수 없는 상황에 아스널 원정에서 선제 실점 전까지 꽤 비등한 경기를 했다.

현지 시간으로 4일 목요일 저녁에 스페인 갈리시아 지역으로 원정을 떠나 셀타비고와 ‘2016/2017 UEFA유로파리그’ 준결승 1차전 경기를 치르고 온 맨유 입장에선 스쿼드 운영의 폭이 크지 않았다. 

맨유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마르코스 로호가 부상으로 이탈한 가운데 셀타전 선발 명단에서 무려 8명이나 변화를 줬다. 미드필더 마루안 펠라이니는 맨체스터시티와 경기에서 퇴장 당해 아스널과 경기에 뛸 수 없었다. 

셀타와 경기에서 마커스 래시퍼드와 애슐리 영이 경미하지만 부상을 입었고, 셀타과 유로파리그 준결승 2차전 경기까지 앞둔 상황에 무리뉴 감독은 묘수를 짜내야 했다. 유망주 악셀 튀앙제브는 이날 라이트백 포지션에 선발로 나서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무리뉴 감독은 아스널전 선발 선수들을 ‘2진’으로 폄하하지 않았다. “우리도 이기기 위해 경기에 임했다. 현 시점에서 퍼스트 초이스에 해당하는 선수들이다.”

무리뉴 감독은 앙토니 마르시알을 원톱 자리에 배치했다. 좌우 측면에 헨리크 미키타리안과 후안 마타를 배치하고, 웨인 루니와 마이클 캐릭, 안데르 에레라를 세 명의 미드필더로 세웠다. 마르미안-존스-스몰링-튀앙제브가 포백을 형성했다. 다비드 데헤아가 골문을 지켰다. 

맨유는 실리를 추구했다. 루니는 정말 중앙 미드필더처럼 움직였고, 에레라도 모험보다 안정 지향적인 경기를 했다. 캐릭은 포백 앞에 자리했다. 전체적으로 라인을 내렸다. 미키타리안은 윙 보다 측면 미드필더에 가깝게 뛰며 스리백으로 나선 아스널의 윙백을 막는 데 집중했다. 마타에게도 공을 잡고 전진할 기회는 잘 오지 않았다. 그러나 아스널의 공격을 차분하게 제어했다.

#스리백 적응한 아스널, 주효했던 스리톱

아스널은 토트넘홋스퍼와 북런던 더비전을 제외하곤 재미를 본 스리백 전술을 이번에도 가동했다. 공격진의 운영 디테일은 조금 달랐다. 몬레알-코시엘니-홀딩이 스리백으로 위험 지역의 숫자를 충분히 확보한 가운데 깁스와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이 윙백 자리에서 측면 공격을 맡았다. 중원에선 그라니트 자카가 볼 배급, 에런 램지가 전방 침투 및 공격 지원 역할을 했다. 

인상적인 부분은 제로톱에 가까운 스리톱 구성이다. 알렉시스 산체스와 대니 웰벡, 메수트 외질이 공격진에 자리했는데, 산체스가 2선으로 자주 내려오고, 웰벡은 측면에 자리하다가 문전으로 습격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외질은 전방과 측면, 그리고 산체스가 내려온 2선 사이의 애매한 공간에 자리를 잡고 맨유 수비 견제에서 벗어났다. 루니에겐 최고의 활약을 펼칠 수 있는 위치와 역할이 아니었고, 에레라와 캐릭도 끈질긴 수비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산체스가 2선으로 자주 내려온 덕분에 램지와 자카는 평소보다 여유롭게 공과 공간을 점유할 수있었다.

외질, 램지, 체임벌린이 근거리에서 삼각형을 이루면서 미키타리안이 밀려 내려왔고, 맨유 공격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못하면서 아스널 스리백이 여유롭게 라인을 높이며 중원을 지원할 수 있었다. 센터백으로 나선 몬레알이 종종 풀백처럼 뛸 수도 있었다.

맨유가 골키퍼 데헤아의 선방을 포함해 전반전에는 수비 집중력을 잘 유지하며 팽팽한 경기를 했으나 구조적으로는 아스널의 균형이 더 좋았다. 

#불운과 인내 사이

경기에 차이를 만든 것은 무리뉴 감독의 말처럼 '운'의 요소가 작용했다. 아스널은 후반 9분에 행운이 따른 선제골을 얻었다. 자카가 시도한 중거리 슈팅은 에레라를 맞고 굴절되며 데헤아의 선방 범위를 벗어났다. 이 골 이후 아스널은 자신감이 붙었고, 맨유는 심리적으로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런 행운이 맨유에 따라왔거나, 아스널의 득점이 후반 중반까지 나오지 않았다면 다른 양상으로 경기가 전개될 수도 있었다. 

팽팽한 경기는 늘 사소한 차이에서 결정된다. 아스널은 선제 득점 이후 3분 만에 추가골을 기록하며 행운을 승리로 만들 수 있는 쐐기를 박았다. 체임벌린의 크로스 패스가 워낙 정확했고, 센터백 사이 공간에서 웰벡이 시도한 깔끔한 헤더도 군더더기 없었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작품이었다. 이 골을 통해 아스널은 승리할 자격을 보여줬다. 

벵거 감독은 이 연속된 득점에 대해 선수단이 ‘인내’한 결과라고 했다. 전반전에 득점하지 못했지만, 후반 초반에 기세를 유지하고, 밀어붙인 결실을 맺은 것이다. 두 골 득점 이후 아스널은 아름다운 플레이나, 추가골을 노리기 보다 실리적으로 리드를 지키는 자세를 취했다. 스리백 전환과 더불어 굳히기 전략을 펴는 것은 벵거 감독의 축구가 점점 더 실리주의가 가까워지고 있는 증거다.

맨유는 0-2가 되자 셀타비고전에 선발로 나섰던 제시 린가드와 래시퍼드를 연이어 투입하며 투톱으로 전환했다. 아스널은 자카를 빼고 코클랭을 투입해 중원을 강화했고, 경기 말미는 웰벡을 빼고 올리비에 지루를 투입해 전방의 높이를 보강했으며, 체임벌린 대신 베예린을 투입하며 측면 지역의 수비를 강화했다.

적지에서 두 골을 뒤진 가운데 무리뉴 감독의 교체 카드는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전세를 뒤집기 어렵다고 판단한 무리뉴 감독은 마지막 교체 카드로 스콧 맥토미네이를 택했다. 튀앙제브에 이어 맥토미네이에게도 리그 데뷔전의 기회를 준 것이다. 

아스널은 맨유전 승리로 리그 4위로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확보할 수 있는 희망을 살렸다. 아스널은 승점 63점으로 6위지만, 4위 맨체스터시티(69점), 5위 맨유(65점) 보다 한 경기를 덜 치렀다. 남은 4경기에서 모두 이기면 승점 12점을 더 보탤 수 있다. 최대 도달 가능 승점이 75점으로, 맨시티와 맨유가 한 경기씩만 미끄러진다면 극적인 뒤집기도 가능하다. 

무리뉴 감독은 “유로파리그에 집중해야 한다”며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확보를 위해 리그 4위에 도전하기보다 유로파리그 우승을 이루겠다고 했다. 아스널전 패배로 맨시티와 승점 차이가 4점으로 벌어져 뒤집기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래픽=한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