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에.1st] 토티 은퇴 앞둔 로마, 여전히 ‘위닝 멘털리티’ 없다

2017-05-02     김정용 기자

[풋볼리스트] 스페인, 잉글랜드, 독일, 이탈리아 1부 리그를 ‘4대 빅리그’라고 부른다. 2018년부터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 4팀이 직행하는 4개 리그 중 이탈리아 세리에A만 국내 중계가 없다. 매력적인 이야기가 많지만, 주목도는 떨어진다. 세리에A와 칼초(Calcio)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김정용 기자가 경기와 이슈를 챙긴다. 가장 빠르고 가장 특별하게. <편집자주>

프란체스코 토티가 공식적으로 은퇴 의사를 밝힌 적은 없다. 그러나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오랜만에 후보로 밀린 토티는 이번 시즌까지만 활약한 뒤 로마 운영진에 합류할 거라는 전망이 여러 차례 보도됐다. 최근 토티의 후원사 나이키가 특별히 기념 축구화를 제작하는 등 은퇴를 목전에 둔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지난 4월 30일(한국시간) 열린 로마 더비는 큰 관심을 모았다. 관심만큼 로마의 무기력한 경기를 목격한 사람의 숫자도 많았다. 로마는 라치오에 1-3으로 패배했다. 경기 초반 나쁘지 않은 경기력을 보인 로마는 시간이 지날수록 전술적, 정신적으로 무기력했다.

로마는 이번 시즌 주력 전술이 아닌 4-3-3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임했다. 초반에는 에딘 제코, 모하메드 살라의 슛이 아슬아슬하게 무산되며 로마가 유리한 경기를 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전반 12분 라치오의 케이타 발데 디아오가 선제골을 넣으며 라치오 쪽으로 급격하게 흐름이 기울었다.

라치오는 주전 공격수 치로 임모빌레를 잃은 상황에서도 미드필드를 강화한 3-5-1-1 포메이션, 케이타의 공격수 기용을 통해 로마 후방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로마는 전반전이 끝나기 전 페널티킥으로 한 골을 만회했지만 전술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전반전 막판 두 팀 모두 선수를 교체하며 전술적으로 변화를 줬다. 이때도 앞서나간 쪽은 라치오였다. 라치오는 왼쪽 윙백 조르당 루카쿠를 빼고 돌파력이 좋은 펠리페 안데르손을 투입했다. 세나드 룰리치가 루카쿠의 자리로 이동하며 포메이션은 유지되고 선수 구성만 더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로마는 윙어 스테판 엘샤라위 대신 오른쪽 윙백 브루누 페레스를 넣어 이번 시즌 가장 효과적이었던 3-4-2-1 포메이션으로 전환해 봤지만 라치오 공격이 여전히 더 위력적이었다.

무엇보다 로마 선수들의 끈기가 라치오에 미치지 못했다는 문제가 컸다. 후반 5분 라치오의 결승골 상황이 단적인 예였다. 루즈볼을 잡은 라치오의 오른쪽 윙백 두산 바스타가 과감한 횡드리블에 이어 왼발슛을 날렸고, 로마 수비수를 맞고 굴절된 공이 골문 구석으로 날아갔다. 로마 입장에선 운이 나쁜 측면도 있지만 수비진 앞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것이 먼저 문제였다.

로마는 세 번째 교체 카드로 후반 28분 다니엘레 데로시를 빼고 토티를 투입했다. 토티의 마지막 로마 더비가 될 것이 유력한 경기였다. 그러나 지난 시즌 후반기에 화제를 모았던 ‘조커 토티’의 급격한 경기력 향상 효과도 없었다. 토티가 투입된 뒤에도 로마는 느슨한 경기를 했다.

토티는 조커로 투입될 때 비교적 후방에서 패스를 돌리고 동료들의 역습 속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제코, 살라, 디에고 페로티 등이 기대만큼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토티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직접 슛을 날려 봤지만 라치오 선수에게 맞기도 했다.

로마는 경기를 최악의 분위기로 마무리했다. 후반 40분 라치오의 번개같은 속공에 당했다. 케이타 발데가 쐐기골을 넣었다. 후반 막판, 안토니오 뤼디거가 발바닥으로 필리프 조르제비치의 정강이를 내리찍어 퇴장 당했다.

불명예스런 상황도 있었다. 전반전 막판에 다니엘레 데로시가 페널티킥 골을 넣었는데, 케빈 스트로트만이 확연한 시뮬레이션 행위로 얻어낸 페널티킥이었다. 루카스 빌리아의 발에 걸리지 않았지만 스트로트만이 연기력으로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이탈리아축구협회(FIGC)가 이 상황에 대해 사후 조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로마 수비수 안토니오 뤼디거가 경기장에서 당한 인종차별도 조사 대상이다.

토티의 마지막이 될 더비에서 남은 건 없었다. 토티는 로마 더비, 일명 ‘데르비 델라 카피탈레(Derby della Capitale)’에서도 역사적인 선수였다. 라치오를 상대로 역대 11골을 기록했다. 특히 2014/2015시즌 후반기 더비에서 0-2로 지고 있을 때 후반전에만 2골을 몰아쳐 무승부를 이끌었다. 동점골을 넣은 뒤 로마 서포터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은 골 세리머니는 토티의 명장면으로 남았다. 아울러 토티의 마지막 로마 더비 득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토티가 마지막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 시즌이었지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시즌 시작과 함께 탈락한 뒤 UEFA 유로파리그는 16강, 코파이탈리아는 4강에 그쳤다. ‘만년 2위’라는 것이 로마의 오랜 한계였고, 이번 시즌에는 2위도 위험하다. 34라운드 현재 3위 나폴리와 승점차가 1점에 불과하다.

로마는 ‘포스트 토티’ 시대에 대한 해답을 갖지 못했다. 지난 시즌 후반기에 로마로 복귀해 훌륭한 지도력을 보였던 스팔레티 감독은 이번 시즌 후반기에 무너지는 모습을 또다시 노출했다. 감독 교체설이 팽배한 가운데, 마르첼로 리피 중국 대표팀 감독이 에우세비오 디프란체스코 사수올로 감독의 로마 부임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정상에 근접한 전력을 갖추고 있지만 가장 뛰어난 선수는 없다는 것이 로마의 오랜 한계다. 유일하게 ‘가장 뛰어난 선수’였던 토티가 뒷전으로 물러난 뒤 결국 은퇴를 앞두고 있다. 우승에 필요한 ‘위닝 멘털리티’ 대신 중요한 순간마다 불거지는 거친 플레이도 로마의 고질병이다. 로마의 전체적인 징계는 적은 편이지만, 컵대회 단판 승부나 라이벌전 등 중요한 경기에서 끈끈하게 버티지 못하고 심리적으로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

다음 시즌을 앞두고 몬치 전 세비야 단장을 영입했다는 건 로마의 업그레이드를 기대할 수 있는 긍정적 요인이다. 성공 반, 실패 반이었던 로마 이적시장이 한층 효율적으로 작동할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한편 ‘황제’ 토티에 밀려 16시즌째 황태자 칭호에 머무르고 있는 데로시는 시즌 종료와 함께 계약이 끝나지만 아직 연장 계약에 합의하지 않았다. 현재 연봉 300만 유로(약 37억 원)를 받고 있는 로시에게 인테르밀란이 550만 유로(약 68억 원)를 제안하며 충격적인 이적을 노린다는 보도가 나온다. 이 소식을 보도한 ‘스카이스포츠 이탈리아’는 로마가 400만 유로(약 49억 원) 수준으로 연봉을 올려 급히 새 계약을 제안했다고 전했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