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이 전북에 남긴 것, 그리고 은퇴가 의미하는 것
[풋볼리스트=전주] 유현태 기자= 이동국이 축구화를 벗었다. 그가 12년을 지킨 전북 현대에서도 은퇴한다. 존재감이 컸던 만큼 전북도 그의 부재를 크게 느낄 것 같다.
전북 현대는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0 27라운드에서 대구FC를 2-0으로 이겼다. 전북은 승점 60점으로 울산 현대(57점)를 따돌리고 우승을 확정했다. K리그 역사상 최초의 4년 연속 우승이다.
이동국은 이 경기에 선발로 출전해 종료 휘슬 때까지 뛰었다. 부상으로 고전한 시즌이지만 결국 전북의 통산 8번째 우승을 피치에서 함께했다. 선수 개인으로서도 K리그 8번째 우승. 정리하자면 이동국은 전북과 8번의 우승을 합작했다는 뜻이고, 이동국 없는 전북도, 전북에서 뛰지 않은 이동국도 K리그 정상에 서본 적은 없다는 의미다.
"2008년까지 전북은 우승을 바라보지 못할 팀이었다. 연패를 하더라도 그렇게 의미를 두진 않았다. 2009년부터 좋은 선수들과 우승 컵을 들고 난 뒤 항상 우승을 바라보는 팀으로, 연패를 당하지 않는 팀으로, 홈에선 어떤 팀도 그냥 보내지 않는 팀이 됐다고 생각한다. 저력이 있는 팀, 우승을 해본 선수들만 가지고 있는 DNA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 이동국(은퇴 경기 뒤 기자회견에서)
전북은 2000년대 최강희 감독과 함께 빅클럽으로 도약할 기틀을 만들었다. 2005년 시즌 중반 부임한 최 감독은 2005년 FA컵 우승과 2006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서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리그에선 2008년까지 최고 성적이 4위였다. '빅클럽'의 이미지를 주기엔 여러모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 시선을 바꾼 것이 바로 이동국이다. 2009년 이동국은 김상식(현 전북 코치)과 함께 전북 유니폼을 입었다. 그때도 노장이란 평가를 받던 두 선수는 단숨에 전북을 K리그 정상에 올려놨다. 전북은 2009년 첫 우승 이후 2020시즌까지 8번의 우승을 차지했고, 2위와 3위를 각각 2번씩 기록했다. 이동국과 함께한 12년 동안 리그에서 3위 밖으로 밀려난 적은 없었다. 이동국의 자부심엔 분명 이유가 있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뒤 '은퇴 시기'를 늘 질문받았지만, 이동국은 "수비에 밀려 그만두는 것은 괜찮지만,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은퇴할 순 없다"고 말하며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했다. 축구 선수로서 '환갑'이라고 해도 좋을 35세 이후에만 7시즌 동안에만 74골을 터뜨렸으니 허튼소리도 아니었다.
K리그에 남긴 족적도 대단하다. 578경기에 출전해 역대 필드플레이어 출장 1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실력과 성실성이 모두 갖춰져야 가능한 기록이다. 228골을 터뜨려 통산 득점 1위에 오른 골잡이이자, 77도움을 올린 통산 도움 2위에 오른 '특급 도우미'다. AFC 챔피언스리그 최다 골 기록의 보유자이기도 하며, K리그의 각종 최고령 기록 역시 이동국의 몫이 대부분이다.
"(전북에 합류한 뒤) 기존에 있던 선수들을 보면서 놀랐다. 강팀한테는 하던 대로 준비한다. 그걸 많이 배웠다. (이)동국이 형부터 선배 선수들이 잘 이끌어낸다. 아래까지 연결되면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 - 홍정호(2020시즌 26라운드 울산 현대전을 승리한 뒤)
이동국은 이른바 '전북다움'을 팀에 심은 인물이다. 중요한 경기에선 유난히 높은 집중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바로 그 요체다. 그 중심엔 수많은 우승 그리고 패배와 좌절의 경험도 했던 이동국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동국은 팀에 헌신할 줄 아는 선수였다. 지난 2018년 1월 전지훈련지에서 만났던 최강희 감독은 "신형민, 최철순, 이동국 같은 선수들이 있어서, 경기에 못 나간다고 뒤에서 불평불만을 한다든지 그런 일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전북에 K리그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모이는 만큼, 개성과 자존심, 욕심도 많은 선수들도 많다. 하지만 최선참 이동국을 중심으로 팀이 먼저라는 걸 일깨운다. 이동국은 점차 나이를 들어가면서 벤치에서 출격했을 때조차도 불평 없이 팀을 위해 골을 터뜨렸다.
이번 시즌 초반 출전 기회가 없었던 최철순 역시 묵묵히 뒤를 지켰고, 김진수의 사우디아라비아 진출 뒤 빠르게 경기력을 높이며 우승에 한몫했다. 전북 내부에서 출전 기회 등을 이유로 잡음이 발생하지 않은 것은, 팀이 우승을 향해 뚜렷한 목표 의식을 세울 수 있는 배경이 된다. 이동국을 비롯한 전북의 '베테랑'들이 갖는 무형의 가치다.
전북에서 이동국의 위상과 의미는 절대적이다. 선수단의 실질적 리더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강한 성격으로 선수단을 휘어잡는 스타일은 아닐지 몰라도, 자연스레 선수단에 헌신의 가치를 알려주는 '군기반장'이기도 했다.
"전북 현대에 와서 얻은 게 많았다. 팬 여러분들을 만났고, 잘할 때나 못할 때나 '내 편'이 되어주셔서 감사한다. 저는 이제 없지만 선수단을 위해 힘을 넣어주시기 바란다." - 이동국(은퇴식에서 팬들에게)
전북은 이제 '포스트 이동국 시대'를 맞는다. 전북이 간절히 바랐던 우승은 이젠 당연한 우승처럼 느껴지는 때가 됐다. 어려운 시절부터 팀을 정상까지 끌어올려 온 역사를 기억하는 선수는 이제 최철순 정도다.
전북은 여전히 K리그 우승에 가까운 클럽이겠지만, 지금처럼 정신적으로 강한 팀이 될 수 있을지는 지켜볼 문제다. 이동국을 시작으로 만들어낸 이른바 '전북다움'을 계승하는 것이 전북 선수들에게 남겨진 과제일 것이다. 이동국이 마지막 인사로 팬들에게 '변함없는 응원'을 부탁한 것은 자신의 부재가 줄 영향을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피치 위에서도, 경기장 밖에서도 거대한 존재감을 지닌 선수가 전북을, 그리고 K리그를 떠난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풋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