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과 조롱, 분노'의 스틸야드…우리가 동해안더비를 사랑하는 이유

2020-10-19     유현태 기자

[풋볼리스트=포항] 유현태 기자= 프로 스포츠는 '경쟁'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 그 경쟁이 유난히 치열한 두 팀을 라이벌이라고 부르고, 이들간 경기를 '더비'라고 한다.

K리그의 대표적인 예로 포항 스틸러스와 울산 현대가 만나는 '동해안 더비'가 있다. 2020년에도 그 라이벌 관계는 더 치열해지기만 한다. 지켜보는 이들에겐 더 없이 흥미로운 한판이다. 더비에서 패배한 그 한 팀을 제외하면.

포항스틸러스는 18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하나원큐 K리그1 2020 25라운드에서 울산현대를 4-0으로 완파했다. 포항은 승점 47점으로 4위 상주 상무와 차이를 6점으로 벌렸다. 다득점에서 크게 앞서 3위를 사실상 확정했다. 울산은 승점 54점에서 제자리걸음해 전북 현대(54점)에 다득점에서 앞서며 겨우 선두를 지켰다.

동해안에 위치했고 지리적으로 멀지 않은 데다가, 1990년대부터 아웅다웅거리며 라이벌 의식이 싹텄지만, 이 관계가 더욱 깊어진 것은 2013년이 아닐까. 2013시즌 마지막 라운드에서 승리한 팀이 우승을 차지하는 상황. 후반 추가 시간 5분 김원일이 극적인 버저비터 골로 포항이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에도 또 다른 의미로 두 팀은 악연을 쌓았다. 2019시즌 최종전에서 동해안 더비가 벌어졌는데 포항이 울산을 4-1로 크게 이겼다. 울산은 자력으로 우승 확정이 가능했지만, 결국 승점 확보에 실패하면서 다득점에 밀려 전북 현대에 우승 컵을 내줬다.

올 시즌 말미 포항에 '킹 메이커'라는 별명을 붙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포항은 1차 목표였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은 이미 확보했다. 승패에 동기부여가 크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 울산을 3번 만나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것은 자존심이 상했다. 또한 라이벌의 우승을 넋놓고 볼 순 없었을 터.

경기 전 만난 포항 팬 손주영 씨는 "중요할 때마다 울산을 잡지 않았나. 오늘도 울산을 꺾고 고춧가루를 뿌릴 것이다. 일단 포항이 울산을 잡은 뒤에, 전북이 역전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보겠다"며 반드시 승리를 원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 전부터 포항의 자세가 엿보였다. 킥오프 때 북쪽 좌석 2층에 팬들이 손으로 제작한 걸개가 걸렸다. "울산은 2위 주의야"라며 지난해 최종전 포항의 승리로 2위를 차지한 울산을 향한 도발 메시지가 담겼다.

경기 내용도 '더비'의 역사에 남을 만했다. 지난 6월 같은 장소에서 0-4로 완패했던 포항이 반대로 울산에 4-0 승리를 거둔 것. 포항은 강하게 울산을 압박하면서 경기를 주도했다.

전반 3분 만에 일류첸코의 골이 터질 때부터 심상치 않았던 경기는, 후반전 불투이스와 비욘존슨의 연속 퇴장으로 급격히 포항 쪽으로 흘렀다. 일류첸코가 1골을 추가했고, 포항 김기동 감독은 9명이 싸우는 울산을 상대로 오범석을 빼고 팔로세비치를까지 투입했다. 승리가 확정적인 상황에서도 공격을 강화하면서 기어이 2골을 더 뽑았다.

울산 팬들의 속은 타들어갔을 터. 후반 35분께 남측 좌석에서 한 무리의 팬들이 일찌감치 경기장을 떠났다. 원정 팀 울산의 대패를 지켜보기 어려웠던 울산 팬들임을 추측할 수 있었다.

후반 38분쯤 스틸야드엔 녹음된 노래가 하나 흘러나왔다. 울산이 자랑하는 이른바 '잘가세요' 응원가였다. 이 노래는 울산이 홈 경기에서 승리가 유력할 때 원정 팀을 향해 부른다. 반대로 홈에서 울산을 꺾는 팀들이 울산을 향해 부를 때도 있다. 라이벌 포항이 부르는 '잘가세요'라는 노랫말은, 울산에 상처에 뿌리는 소금과 같았을 것이다.

포항은 이번 시즌 공식 전적으로 1승 1무 2패로 열세다. 하지만 가장 중요했던 한판에서 웃었다.

울산은 단 1번의 패배가 너무 크게 다가온다. 울산이 그토록 바라는 우승 고비에서 또 라이벌 포항에 덜미를 잡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아픔이 있기에 복수의 맛이 더 달콤한 것이 아닐까. 울산 팬들에게 포항은 보기만 해도 치가 떨리는 상대가 아닐까.

그렇게 더비의 열기는 뜨거워져 갈 것이다. 그리고 동해안 더비 역사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더해졌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