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램지와 다닐루를 살려낸 ‘감독 데뷔전’ 피를로의 전술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애런 램지, 다닐루 등 애매한 기량으로 비판 받던 유벤투스 선수들이 2020-2021 이탈리아 세리에A 개막전에서 좋은 활약을 했다. 각 선수에게 맞는 역할을 찾아주는 데 집중한 안드레아 피를로 신임 감독의 절묘한 퍼즐이 돋보였다.
유벤투스는 21일(한국시간) 이탈리아의 토리노에 위치한 알리안츠 스타디움에서 세리에A 1라운드를 갖고 삼프도리아에 3-0으로 승리했다. 1라운드에서 크로토네에 4-1 대승을 거둔 제노아와 더불어 유벤투스가 선두 그룹으로 올라섰다.
유벤투스 선발 라인업은 독특했다. 3-4-1-2 포메이션에 가까웠는데, 프리 시즌에도 꾸준히 실험했던 다닐루의 오른쪽 스토퍼 배치를 실전에서 활용했다. 유벤투스 벤치에는 전문 센터백 메리흐 데미랄, 다니엘레 루가니도 있었지만 피를로 감독은 원래 윙백으로 알려진 다닐루를 스리백에 포함시켰다. 조르조 키엘리니, 레오나르도 보누치와 함께 다닐루가 후방에 포진했다.
다닐루의 스토퍼 기용이 더 돋보인 건 왼쪽 윙백에 1군 적임자가 없어 유망주를 끌어올렸기 때문이었다. 지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세리에A 데뷔전을 치른 21세 잔루카 프라보타가 왼쪽 윙백으로 배치됐다. 일반적인 감독이라면 스리백에 데미랄이나 루가니를 기용하고, 다닐루를 왼쪽 윙백으로 썼을 경기였다.
나머지 포지션은 평범했다. 오른쪽 윙백은 후안 콰드라도가 맡았다. 중앙 미드필더는 아드리안 라비오와 함께 새로 합류한 웨스턴 맥케니가 책임졌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램지가 배치됐다. 파울로 디발라가 빠진 공격진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신입 유망주 데얀 쿨루셉스키가 맡았다.
유벤투스 공격 전개는 매우 매끄러웠다. 전반 13분 선제골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후방에서 찍어 차 준 공을 램지가 헤딩으로 떨어뜨리고, 호날두가 받아 돌파하다 수비에게 막혀 공을 흘렸다. 흘러나오는 공을 데얀 쿨루셉스키가 골문 구석으로 감아 차 넣었다.
후반 43분 나온 호날두의 시즌 첫 골도 유벤투스의 매끄러운 공격에서 비롯됐다. 삼프도리아가 걷어낸 공을 수비수 레오나르도 보누치가 따냈다. 이를 받아 로드리고 벤탄쿠르가 전진 패스를 했고, 애런 램지가 잠깐 공을 키핑하며 침투하는 호날두에게 스루 패스를 제공했다. 호날두가 그대로 골을 성공시켰다.
피를로 감독은 독특한 선수 기용의 이유를 설명하며 “우리 팀에 맞추고, 우리 팀 선수들에게서 영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다른 감독의 방식을 따라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팀을 이끌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고집스런 자신만의 전술이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선수의 기량을 극대화할 조합을 고민하겠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인 설명도 이어졌다. “우리 팀에는 중앙 미드필더가 4명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2인 체제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이는 선수들이다. 그래서 오늘 같은 시스템을 썼다. 수비할 때는 포백이고, 공격할 때는 3 더하기 2가 된다.”
피를로 감독의 말대로 유벤투스의 가장 선수층이 풍부한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다. 이날 뛴 맥케니와 라비오,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램지, 교체 투입돼 쐐기골에 기여한 벤탄쿠르, 여기에 데뷔전을 치르지 않은 아르투르 멜루까지 있다. 이들을 훈련에서 조합해 본 결과 동시에 3~4명을 기용하기보다는 한번에 2명씩 기용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그래서 2인 중원을 쓰면서도 각 선수의 기량을 극대화하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스리백의 한 자리에 다닐루를 기용한 이유도 설명된다. 다닐루는 원래 윙백이다. 수비할 때는 레프트백 프라보타가 스리백에 합류, 포백을 이룬다. 공격할 때는 프라보타와 오른쪽 미드필더 콰드라도가 모두 자유롭게 전진한다. 이때 다닐루는 오른쪽에 생기는 넓은 공간을 커버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다닐루는 기동성이 좋고, 풀백치고 큰 184cm 신장을 가진 선수다. 피를로 감독은 윙백일 때도 수비력 문제를 지적받았던 다닐루를 오히려 스토퍼로 기용해 잠재력을 끌어내려는 시도 중이다. 삼프도리아전에서 다닐루는 ‘후스코어드닷컴’ 평점 7.5점을 받으며 준수한 활약을 했다.
램지는 왼쪽과 중앙을 오가는 프리롤이었고, 공격수 두 명은 경기 내내 프리롤이었다. 공 없을 때 움직임이 좋고 결정력은 떨어지는 램지 역시 이 전술에 잘 맞았다. 램지는 패스 연결의 중요한 축으로 활약했고, 슛은 단 하나도 날리지 않았다. 후반에 벤탄쿠르가 교체 투입되자 콰드라도가 빠지고 맥케니가 오른쪽 윙백으로 이동해 포메이션을 유지했다. 각 선수들이 유연하게 위치를 바꿔가며 삼프도리아 수비를 교란하는 공격이 잘 이뤄졌다.
경기 후 보누치는 “피를로 감독은 사리 감독과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사리 감독 때는 수비할 때 한 덩어리로 움직였다. 피를로 감독 아래서는 더 많은 일대일 상황이 벌어진다. 더 자유롭게 뒬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고, 공을 더 자주 따낼 수 있게 된다.” 이는 조직력이 무너졌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각 선수가 높은 자유도를 갖고 뛸 수 있다는 긍정적인 발언이었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실수를 자연스럽게 커버하도록 퍼즐을 맞춘 것이 피를로의 일이었다.
이처럼 각 선수의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선수들과 대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피를로 감독의 설명이다. 피를로 역시 선수 시절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자기 포지션을 찾고 맹활약한 기억이 있다. AC밀란에서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과 면담하며 ‘수비형 미드필더를 소화할 수 있다’고 자청했고, 안첼로티 감독이 피를로의 뜻을 받아들여 축구 역사에 남을 후방 플레이메이커 피를로가 탄생한 바 있다. 감독이 된 지금, 각 선수들이 원하는 플레이를 파악하고 팀 전술에 최대한 녹이겠다는 것이 피를로의 방침이다.
피를로 감독은 지도자 경험이 아예 없다. 유벤투스 유소년 지도자로 경력을 시작하자마자 사리 감독이 경질되면서 1군 감독으로 승격됐다. 지나치게 위험한 선택이라는 우려가 따랐지만, 첫 경기에서 보여준 지도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