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이용 “은퇴 공포 줬던 부상, 털어내고 월드컵 꿈꾼다”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대표팀 경기는 매번 챙겨보고 있죠. 감독님 스타일이 어떤지 봐 둬야 하기 때문에. 제가 뽑힐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거든요.”
축구 대표팀이 일본에서 한창 E-1 챔피언십을 치르던 13일 오후, 국가대표 라이트백 이용은 서울의 한 재활운동 전문 스튜디오에서 기초 근력을 다지고 있었다. 트레이너의 지시에 따라 몸을 틀어가며 코어, 즉 몸통 근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자세를 반복했다. 어렵지 않아 보이는 맨몸 운동이지만 막상 해 보면 옆구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코어 트레이닝을 흐트러짐 없이 소화한 이용은 땀을 닦고 앉아 인터뷰에 응했다.
이용은 ‘2014 브라질월드컵’이 발굴한 선수다. 다른 선수들은 올림픽 대표 출신 등 어려서부터 특급 유망주였다. 엘리트 코스와 거리가 먼 이용은 프로 무대에서 차근차근 인정받은 끝에 28세 나이로 월드컵 데뷔라는 꿈을 이뤘다. 그러나 그 뒤로 부침이 심했다. 올해는 밑바닥까지 가라앉았다. 울산현대에서 전북현대로 이적했지만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스포츠탈장을 달고 사느라 제대로 된 기량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마침내 부상을 털어냈다고 단언한 이용은 약 반년 남은 ‘2018 러시아월드컵’을 꿈꾸고 있다. 대표팀은 이미 최철순과 고요한이 활약 중이지만 최선을 다해 복귀한다면 기회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용이 부상과 벌인 치열한 투쟁을 돌아봤다.
- 지금 대표팀 소집 기간이에요. 이용 선수는 올해 3월까지 소집됐지만, 신태용 감독 부임 이후엔 뽑힌 적이 없어요. 계속 부상이었죠.
많이 잊혀졌죠. K리그에서나 대표팀에서나. 올해 팀을 옮겼잖아요. 전북에 많이 공헌하고, 대표팀에서는 내년 월드컵이란 목표를 갖고 열심히 노력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스포츠탈장이 생겼어요. 수술하러 외국도 여러 번 나갔는데 통증이 안 없어지는 거예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팀 닥터와 상의한 끝에 이번에 독일에 가서 또 수술을 했는데, 다행히 잘 된 것 같아요.
- 스포츠탈장이 독자들에겐 생소한 부상일 수 있는데요. 진단을 처음 받은 건 언제였나요?
상주상무에서 전역하고 작년에 울산으로 복귀했을 때 느낌이 왔어요. 처음엔 알이 밴 줄 알았어요. 극심한 통증이 오는 급성은 아니었거든요. 참고 운동하다보니 점점 통증이 심해졌어요. 울산으로 복귀한 뒤 첫 경기 상대가 성남FC였는데, 이 경기 끝나고 대표팀 명단 발표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무조건 뛰어야 대표팀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풀타임을 소화했는데 그 뒤로 상태가 확 나빠졌죠. 시즌아웃이 됐어요.
- 처음엔 스포츠탈장인줄도 몰랐던 건가요?
원래 축구하면서 많이 아프거나 수술한 적이 없어요. 한국에선 병명을 못 찾았어요. 유명한 탈장 전문 병원을 갔는데 탈장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근육 문제라면서. 그런데 근육 부상치곤 너무 오래 갔어요. 나중에 일본에 갔는데 탈장이 맞다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죠. 뱃속 탈장 부위에 패드(인공복벽을 말한다. 약해진 복벽 부위를 얇은 그물막으로 강화할 때 쓴다)를 대는 수술이었죠. 그 뒤로 괜찮았어요. 전북으로 이적해서 동계훈련을 잘 받고, 초반엔 경기도 뛰었어요.
- 올해 초에는 괜찮았던 거군요. 다시 부상이 도진 건 언제였어요?
광주와 경기(4월 30일)하다가 의식을 한 번 잃었어요. 점프 뛴 상태에서 상대 선수와 머리를 부딪쳤을 때요. 그땐 별 것 아닌 줄 알았는데 다른 부위에서 문제가 생긴 거예요. 의식을 잃고 떨어지면서 발목이 돌아갔어요. 그 부상 때문에 2주 정도 쉬고, 복귀를 위해서 하드하게 몸을 올렸어요. 그때 다시 배가 아프더라고요. 참고 운동하다가 심해져서 쉬고, 다시 운동하다가 심해져서 쉬었어요. 처음 아팠던 부위에 더해 사타구니까지 통증이 생겼어요. 이제 수술을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마음을 먹고 독일에 갔죠.
- 통증이 심해졌다 약해졌다를 반복했나 보네요.
네. 전 참을 만한 통증이면 그냥 참는 성격인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왔어요. 일상생활엔 문제가 없기 때문에 선수가 아닌 분들은 잘 모르죠. 처음엔 땡기면서 아파요. 밥 먹고 바로 뛰면 옆구리가 아픈 느낌과 비슷해요. 운동을 하면 매번 그 통증이 나타나는 거예요. 그래서 9월에 독일행을 결심했죠. 독일 병원을 소개시켜 준 사람이 (차)두리 형이에요. 두리 형이 자기는 할머니에게 수술을 받았다고 했어요. 막상 독일 여기저기 알아본 뒤 소개시켜 준 사람은 요즘 각광 받는다는 다른 의사였지만.
- 독일에서 받은 수술 역시 패드를 대는 거였죠?
네. 훌륭한 의사였는데 운동 선수 전문이 아니었던 거예요. 패드를 대는 건 정상적인 수술 방식인데 제 상황에 맞지 않았던 거죠. 일본에서 처음에 패드 2개를 댔고, 독일에서 패드 하나를 더 댔어요. 독일 수술을 받고 나서 사타구니 통증은 없어졌는데 원래 부위는 없어지지 않았어요. 그렇게 후반기를 그냥 보냈죠.
- 그러고도 몸 상태가 나아지지 않아서 올해 하반기는 전혀 뛰지 못했어요. 결국 수술을 다시 받았는데, 이번엔 통증 원인을 제거했다면서요?
전북 팀 닥터인 지오바니, 절 잘 챙겨주는 장형철 디자이너(오디너리피플 대표)와 함께 갔어요. 이번에 수술해 주신 분은 할머니(스포츠탈장 전문의 울리케 무샤베크)였는데, 아마 두리 형을 수술해주셨다는 분이 이 분인 것 같아요. 이제야 만난 거죠. 축구 선수를 치료하신 경험이 정말 많은 분이예요. 제 상태를 보더니 패드를 대는 건 상식적인 수술이지만 운동선수의 경우 재발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고요. 이 분은 패드를 안 쓰시거든요. 그래서 재발 부위의 패드를 제거하고, 가까운 신경 하나를 제거하고, 그 부위를 봉합했어요. 수술하기 전에는 ‘배를 열어봐야 수술이 가능한지 알 수 있다’고 했어요. 반수면 마취 상태에서 수술했기 때문에 약간 의식이 이었는데, 마치자마자 수술실 안에서 절 안아주면서 ‘축하한다, 정말 잘 됐다’고 하더라고요. 의사로서도 만족한다고 했어요.
- 그 동안 인스타그램에 복귀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여러 번 올렸죠. 대부분 간단한 문구였는데 “축구하고 싶다”, “그라운드에 있을 때가 행복하지”, “또 해보자”와 같은 문장이었어요. 특히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사진과 함께 “참 좋았었는데, 그만 아프고 싶다”, “그날이 얼른 오길”이라는 말도 했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수술을 하고 나왔는데도 아프니까. 이대로 선수 생명이 끝나는게 아닐까, 다시는 축구를 못하는게 아닐까 싶었죠. 차라리 뼈가 부러졌다면 어떤 과정을 통해 복귀하면 되는지 다 아는데, 제 경우는 원인을 모르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한국에서 엄청 많은 병원을 돌아다녔어요. 어느 병원은 치골염이라고 하고, 어느 의사는 근육 문제라고 하고. 나중엔 기 치료도 받고, 침도 맞아봤어요. 9월에 ‘한국에는 패드를 제거해줄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들으며 퇴짜도 많이 맞았죠. 사주도 보고 타로점도 봤어요. 올해가 범띠에게 나쁜 시기래요. 웃기지 않나요. 내년부터는 잘 될 거라고 하더라고요.
- 그동안 스트레스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 건 뭔가요?
사람들. 제 에이전트 (최)동현이와 제일 많이 고민을 나눴죠. 전북 (최강희) 감독님, 코치님, 닥터들도 항상 격려해 줬고요. 감독님께 제일 죄송스럽죠. 처음 절 영입했을 때 “내가 짝사랑하는 용이가 와서 너무 좋다”고 해 주셨거든요. 그런데 “치료실에만 누워 있네. 울산으로 반품 안 되냐”고 농담을 하시더라고요? 우울한 절 보고 말장난까지 해 주시는 게 고맙고, 죄송스러웠죠. 감독님은 낫는 게 우선이니까 뛰는 건 생각하지 말고 치료부터 잘 받으라고 하셨어요. 내년에는 몸을 잘 만들어서 보답을 하고 싶어요.
- 2014년 월드컵을 마치고 나서 늘 내년 대회를 목표로 했을 텐데.
월드컵에 나간다는 꿈을 이루면 그 무대에서도 목표가 생기는데, 솔직히 결과가 나빴잖아요. 팀이나 저 자신이나 준비한 걸 전혀 못 보여줬고요. 브라질에서 돌아오자마자 러시아에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대표팀에서 제 장점을 보여드린 적이 별로 없어요. K리그에서 자신감 있게 했던 플레이를 대표팀에선 소극적으로 했어요. 그런데 코뼈 다쳐서 2015년 아시안컵에 못 갔고, 군대를 다녀왔고, 군사훈련 이후 컨디션을 회복하느라 1년 동안 대표팀에 못 갔고, 그 뒤로는 계속 부상이었죠. 너무 아쉬워요.
- 내년에 열리는 월드컵까지 시간이 촉박해요. 여전히 현실적인 목표라고 생각하나요?
대표팀 경기는 매번 챙겨보고 있죠. (신태용) 감독님 스타일을 봐 둬야 하기 때문에. 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항상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3월 평가전이 있으니 그때까지 몸을 만들어두려고 해요. 그런데 감독님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죠. 저는 그저 목표가 있으니 어떻게든 빨리 치료하고 몸을 만들고 싶어요. 몸을 빨리 올릴 자신은 있어요. 뭐, 힘들게 운동하는 거 좋아하니까. 예전에도 힘든 운동을 좋아했어요. 자전거 타이어 튜브 같은 걸 다리에 차고 근력 운동을 했었고.
- 문신이 몇 개 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좌우명이에요. ‘좌절은 할 수 있지만 포기는 하지 않는다’라고 써 있어요. 제가 축구를 해 온 방식이죠. 전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도 아니고, 축구를 늦게 시작해서 남들보다 늘 뒤쳐져 있었어요. 그러나 좌절이 왔을 땐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기회가 주어지면 잡을 수 있었죠. 지금이 축구 인생에서 가장 큰 좌절인데 포기하지 않으면 다시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진= 풋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