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S] 트랜스포머! | ② 평범한 윙어가 최상급 윙백으로 '변신'
[풋볼리스트] 축구는 365일, 1주일 내내, 24시간 돌아간다. 축구공이 구르는데 요일이며 계절이 무슨 상관이랴. 그리하여 풋볼리스트는 주말에도 독자들에게 기획기사를 보내기로 했다. Saturday와 Sunday에도 축구로 거듭나시기를. 그게 바로 '풋볼리스트S'의 모토다. <편집자 주>
포지션을 바꿔 성공한 선수들의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만화 주인공이 필살기를 장착한 뒤 더 강력한 캐릭터로 거듭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안드레아 피를로가 오히려 후방으로 내려간 뒤에 공격력을 더 발휘했다는 역설을 보면 축구가 어떤 종목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준비했다. 이번 시즌 화제를 모으고 있는 막스 마이어, 파비오 보리니, 파비안 델프를 통해 최근 유행하는 포지션 변환의 양상을 정리했다.
측면 공격수, 윙어로 성공하지 못해도 윙백으로 정상급 선수가 될 수 있다.
과거에는 윙어가 윙백으로 뛰면 ‘실패했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조광래 대구FC 사장이 FC서울에서 지휘봉을 잡았을 때 공격수를 윙백으로 쓰면서 ‘윙백 제조기’라는 별명을 얻었던 이유도 여기 있다. 최근에는 이런 변화가 더 이상 실패로 여겨지지 않는다. 스리백이 유행하면서 윙백이 매우 중요한 포지션이 됐기 때문이다.
윙어가 좋은 윙백으로 자리잡으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윙백은 윙어보다 상대적으로 투박해도 괜찮지만 좀 더 왕성한 체력과 힘이 필요하다. 공격할 때는 윙어처럼 전진하고, 수비할 때는 풀백처럼 뛰어야 한다. 스리백 카드를 쓰는 감독은 세밀함이 조금 떨어지지만 속도와 지구력을 겸비한 윙어들을 윙백으로 돌려써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2017/2018시즌 이런 변화를 준 선수는 파비오 보리니다. AC밀란은 보리니를 후보 공격수로 영입했었다. 그때만해도 4-3-3 포메이션을 사용하려 했기에 보리니를 교체 요원으로 뽑았다. 밀란은 시즌을 소화하며 스리백으로 전환했다. 오른쪽 윙백 안드레아 콘티가 부상당하면서 보리니를 임시로 그 포지션에 기용했다. 보리니는 오른쪽 윙백에 안정적으로 적응했다.
보리니는 속도와 힘을 겸비했으나 좁은 공간에서 살아남을 정도로 기술이 좋은 선수는 아니다. 공격수로 대성하지 못했다. 측면 윙백에서는 자신이 가진 장점을 모두 보여줬다. 보리니는 자리를 잘 잡는데다가 활동력까지 좋았다. 수비도 우려한 것보다 좋았고, 공격할 때는 장점을 십분 활용했다. 보리니는 올 시즌 11경기에 출전해 847분을 소화했다.
빅터 모제스는 ‘2016/2017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 최고 윙백이었다. 모제스는 안토니오 콘테를 만나 오른쪽 윙백으로 포지션을 바꿨다. 콘테는 시즌 중 3-4-3 포메이션으로 변화를 줬고, 모제스를 오른쪽 윙백으로 쓰기 시작했다. 모제스는 강한 힘과 왕성한 활동량으로 오른쪽 측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공격뿐 아니라 수비에도 재능을 보였다. 그는 윙백으로 뛴 첫 경기였던 헐시티 경기에서 경기 MVP로 꼽히기도 했다.
모제스는 2016/2017시즌 34경기에 출전해 3골을 넣었다. 2011/2012시즌 위건애슬래틱에서 뛸 때 6골을 넣은 뒤 가장 많은 골을 터뜨렸다. 모제스는 빠르지만 정교하지 못한 공격수에서 힘 있고 지치지 않는 윙백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했다. 그는 EPL 우승 팀에서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한 나이지리아 선수로 남게 됐다.
최근에는 윙백을 아예 윙어처럼 쓰는 감독도 있다. 주제프 과르디올라 맨체스터시티 감독은 스리백을 쓸 때 르로이 자네와 라힘 스털링을 윙백으로 기용해 공격력을 극대화 하기도 했다. 요아힘 뢰브 독일 대표팀 감독도 이런 전술을 쓰기도 한다. 자네와 율리안 브란트를 윙백으로 쓰며 공격수를 늘려 상대를 괴롭힌다.
윙어와 윙백 사이는 축구가 지닌 오묘한 면을 보여준다. 많은 팀이 스리백을 공격적으로 사용하면서 윙어를 윙백으로 쓰고 있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윙백을 설계하는 감독이 있고, 윙백으로 뛰며 윙어 때는 보여주지 못한 장점을 더 보여주는 선수가 나오면서 축구는 좀 더 재미있고 복잡해 진다.
글= 류청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