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단시간 해트트릭 이승기 ‘겁없던 6년 전 스타일로’

2017-09-12     김정용 기자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전북현대 이승기는 차분한 느낌의 선수다. 7분 만에 세 골을 몰아치는 폭발적인 플레이와는 동떨어진 이미지였다. 그러나 이승기는 10일 강원FC를 상대로 K리그 최단시간 해트트릭 기록을 세웠다.

12일 전화 인터뷰에 응한 이승기는 “경기 중에는 그렇게 짧은 간격으로 골을 넣은 줄 몰랐다. 최단 시간 기록인줄은 더 몰랐다”라고 말했다. 이승기는 해트트릭을 통해 6골 2도움이 됐다. 프로 데뷔 시즌이었던 2011년 8골 2도움을 기록한 뒤 시즌 최다골이다. 그 뒤로 5년 동안 시즌 5골을 넘긴 적이 없다.

2011년의 이승기는 수비가 몇 명이든 뚫고 들어가 골을 넣는, 겁 없는 신인이었다. 약체 광주의 공격을 이승기가 이끌어야 했다. 특히 강원FC, 제주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득점했을 땐 상대 문전의 좁은 공간에서도 드리블 돌파를 성공시키는 섬세한 기술을 발휘했다. 지금은 동료가 된 전북의 최철순을 순간 스피드로 따돌리고 넣은 골도 있었다. 그해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승기의 이번 해트트릭 중 첫 골이 광주 시절 플레이를 닮아 있었다. 상대 수비 두 명 사이의 틈을 기습적으로 뚫고 들어간 뒤 오른발로 절묘하게 감아 찬 예술적 득점이었다. 이승기 자신도 6년 전엔 더 저돌적이었다고 기억한다.

“광주는 약체였다. 섬세하게 공격을 만들기보다 개인 플레이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많았고, 그래서 빼앗길 위험을 감수하고 저돌적으로 플레이했다. 전북으로 이적(2013)한 뒤엔 원체 강팀이다보니 거꾸로 상대가 수비적으로 나오는 경기가 많았다. 공간이 촘촘해졌다. 섬세한 플레이를 해야 했다. 훌륭한 동료가 많으니까 굳이 무리한 플레이를 하기보다 어시스트를 하기 시작했고, 플레이메이커에 가깝게 변해 갔다.”

전북에서 작년까지 10골 14도움으로 도움에 더 치중한 플레이를 했다. 이승기가 타고난 플레이는 아니었다. 이승기는 “학창 시절에도 팀에 어우러져서 플레이하는 미드필더이긴 했다. 그런데 욕심이 더 있었다. 골을 못 넣는 선수는 아니었다. 프로에서 오래 뛰다보니 내가 원래 잘 했던 득점의 감이 떨어졌고, 욕심도 줄어들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번 시즌 이승기의 변화는 포지션에서 먼저 시작됐다. 이승기는 전북에서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를 주로 소화했다. 반면 이번 시즌엔 왼쪽 윙어 자리에서 주로 뛴다. 강원전 해트트릭 중 첫 골처럼 상대 수비를 직접 돌파해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 포지션이다.

“지금처럼 저돌적, 주도적으로 하는 플레이가 더 자신감도 생기고 편하다. 해트트릭 한 번 했다고 골 욕심을 너무 부리면 안 되겠지만, 내가 결정을 짓기만 하면 패스를 안 줬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실 그동안 윙어로 뛰면서도 공을 잘 연결해서 동료가 골을 넣게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이번 해트트릭을 계기로 조금 더 욕심을 내려 한다. 팀에 도움이 될 만큼만.”

전북 특유의 윙어 운용은 이승기가 공수를 모두 신경 쓰게 만든다. 최강희 감독은 윙어들의 수비 가담을 중시한다. 이승기는 원래 미드필더인 선수답게 경기 중 중앙으로 이동해 미드필드 장악력을 높여주는 역할도 한다. 전북의 수비를 안정화시켜주는 숨은 공로자다. “상대팀이 스리백을 놓고 역습 위주로 나올 경우, 우리 윙어가 측면에서 일대일 공격에 집착하면 중앙이 텅 비게 된다. 내가 안쪽으로 들어가서 그런 면을 보완하기 때문에 경기력이 좀 더 좋아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승기가 언제나 품고 있는 목표는 물론 국가대표 복귀다. A매치 12경기 경력이 있지만 2014년 2월 이후 출장이 끊겼다. 점점 더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복귀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다. 개인상에 대한 욕심도 생겼다. 다만 왼쪽 윙어 자리에서 시즌 베스트일레븐에 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염기훈, 자일 같은 선수가 있는 포지션인데 내가 윙어로 상을 타긴 힘들 것 같다. 새로운 포지션 부문을 하나 만들어주시면 안 되나? 측면에서 인사이드로 들어가면서 플레이하는 선수 부문을 신설해 주시면….”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