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에.1st] ‘윙어의 나라’ 된 이탈리아, 이승우에겐 호재

2017-08-30     김정용 기자

[풋볼리스트] 스페인, 잉글랜드, 독일, 이탈리아 1부 리그를 '4대 빅리그'라고 부른다. 2018년부터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 4팀이 직행하는 4개 리그 중 이탈리아 세리에A만 국내 중계가 없다. 매력적인 이야기가 많지만, 주목도는 떨어진다. 세리에A와 칼초(Calcio)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김정용 기자가 경기와 이슈를 챙긴다. 가장 빠르고 가장 특별하게. <편집자주>

이탈리아세리에A는 최근 윙어를 적극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축구에 적응해야 하는 이승우에겐 공격적으로 변하는 리그 분위기가 긍정적이다.

이승우는 이번 시즌 세리에A로 승격한 엘라스베로나 이적이 확정적이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완전 이적 형식으로 4년 계약을 맺었다. 이승우 측이 이적 후 각오를 밝히는 인터뷰도 했다. 신체검사 등 제반 절차만 끝나면 세리에A에서 활약하게 된다.

이탈리아 축구는 수비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과거 이미지만 본다면 이승우와 어울리지 않는다. 수비 조직력이 좋기 때문에 공격수 입장에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고, 공격수들에 대한 견제도 심하다. 상대가 전방 압박을 해 온다면, 가로채기 당할 위험을 감수하고 빌드업을 하느니 한 번에 전방으로 차내는 편을 택한다. 이승우가 성장해 온 스페인 축구보다 안정감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는 달라졌다. 세리에A는 공격적인 리그로 변해가고 있다. 유럽 4대 빅리그로 분류되는 스페인, 잉글랜드, 독일, 이탈리아 1부 리그 중 평균 골이 가장 많은 리그가 세리에A였다. 이번 시즌에도 경기당 2.8골이 나와 다른 세 빅리그보다 평균 골 숫자가 많았다. 많이 넣고 많이 내주는 리그로 변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공격수들의 득점력 상승으로 이어진다. 지난 시즌 세리에A에서 10골 이상 득점한 선수는 33명이었다. 스페인라리가의 26명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공격 자원인 이승우에겐 긍정적인 현상이다.

특히 하위권 팀 공격수들에게 기회가 열려 있다. 지난 시즌 세리에A에서 간신히 강등을 면한 16위 제노아(지오바니 시메오네), 크로토네(디에고 팔치넬리)에서도 10골 이상 득점한 선수가 한 명씩 나왔다. 라리가의 16위 이하 팀에선 한 명도 10골을 넘기지 못한 것과 대조적이다. 시메오네는 처음 이탈리아로 온 외국인이었고, 팔치넬리는 실패한 유망주 취급 받으며 20대 중반으로 접어든 임대생이었다. 재능 있는 공격수라면 실력을 발휘할 여지가 더 큰 리그다.

특히 이승우에게 긍정적인 건 리그 분위기가 윙어를 쓰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승우는 바르셀로나 유소년 팀에서 ‘가짜 9번’을 맡는 경우가 많았지만, 가장 주목 받은 U-20 월드컵에서는 왼쪽 윙어로 주로 뛰었다. 윙어는 가장 압박이 덜한 위치다. 이탈리아에서도 왼쪽에 배치돼 중앙으로 파고드는 역할을 맡을 것이 일단 유력하다.

과거 세리에A는 윙어를 쓰는 4-3-3이나 4-2-3-1 포메이션을 다른 리그보다 덜 쓰는 편이었다. 측면 자원은 공격에 전념하는 윙어가 아니라 수비 가담에도 능한 미드필더 성향의 선수인 경우가 많았다. 1990년대부터 주로 4-4-2 포메이션에서 활약한 선수들이다. 알베르토 도나도니, 잔루카 참브로타, 마우로 카모라네시 등 이 분야의 스페셜리스트인 선수들도 여럿 배출됐다. 혹은 측면 자원을 쓰지 않는 4-3-2-1, 4-3-1-2 등의 포메이션도 다른 리그보다 많이 구사했다.

지난 시즌부터 세리에A는 4-3-3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윙어 없는 기존 문화에 대한 반격의 성격이 강했다. AS로마, 나폴리 등 상위권 팀들이 스리톱으로 재미를 보며 트리덴테(tridente, 삼지창이라는 뜻)라는 표현이 어느 해보다 자주 쓰였다. 하위권 팀들도 곧 스리톱 중심의 축구를 받아들였다. 열심히 뛰는 미드필더 세 명으로 중앙을 틀어막고 돌파력, 킥력 등 뚜렷한 장점을 지닌 선수들을 측면에 배치하면 상대를 흔들기 쉬웠다. 기존 방식대로 날개 없는 축구를 하려면 더 창의적인 플레이메이커나 섀도 스트라이커가 필요하다. 가난한 자들의 축구가 되기에도 4-3-3은 꽤 적절했다.

지난 시즌 10골 이상을 득점한 33명 중 18골을 넣은 로렌초 인시녜(나폴리)를 비롯해 모하메드 살라(로마), 호세 카예혼(나폴리) 등 7명 정도가 주로 윙어에서 뛰었다고 할 수 있다. 상당히 높은 비중이다. 강등된 팀에 소속된 윙어 중에서도 페스카라의 아메드 베날리가 6골 2도움을 올리며 어느 정도 활약할 수 있었다. 이승우에겐 유리한 환경이다.

이승우는 꾸준함보다 번뜩이는 몇몇 순간으로 기억되는 선수다. 유소년 레벨에서 보인 플레이스타일을 세리에A에서도 유지할 수 있다면, 짧은 출장 시간을 잡더라도 득점 기회를 한두 번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다. 세리에A는 공격 자원에게 지속적인 팀 기여도보다 해결사 기질을 요구하는 문화가 있다. 이런 기대에 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수비적인 축구를 한다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모든 선수가 90분 내내 수비를 신경 써야 하는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 이탈리아 축구는 공격수들에게 자유를 많이 주는 편이다. ‘전원공격 전원수비’의 토털풋볼 이후 흐름에서 영향을 비교적 덜 받았다. 수비수들의 뛰어난 역량을 중시하는 만큼, 이들을 믿고 공격수들이 공격에만 전념하게 해주는 문화다. '수비수는 수비를, 공격수는 공격을 잘해야 한다'는 가치관이다. 약팀이라도 두어 명 정도는 수비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경우가 많다. 이승우로선 ‘수비 열외’ 인원에 들어야 자기 스타일대로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

이탈리아는 독일이나 잉글랜드에 비해 동아시아 선수가 뛰기 어려운 무대로 인식돼 왔다. 최근 세리에A서 활약한 유토 나가토모(인테르밀란)와 혼다 게이스케(전 AC밀란)의 경우를 보면, 유럽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성실하고 긍정적인 자세를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나가토모는 한때 라커룸 전체 분위기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밝은 성격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혼다는 직설적인 구단 비판으로 파문을 일으키긴 했지만 그럴 때도 프로다운 경기 태도로 존중을 받았다. ‘아시아 선수는 성실하고 모범적이다’라는 이미지는 이탈리아에서도 유효하다. 이승우 역시 성실하고 스스럼 없는 태도로 다가간다면 동료들과 홈 팬들에게 빠르게 인정받기 쉽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