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축구는 깊다. 격렬함 속에는 치열한 고뇌가 숨어 있다. 보이지 않는 축구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다리가 필요하다. ‘풋볼리스트’가 축구에 지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마련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축구를 둘러싼 깊고, 다양한 이야기를 준비한다. <편집자주>

 

축구도 마음에 달린 일이다.

 

“쟤는 끝났어”라고 평가 받던 선수가 유니폼을 바꿔 입은 시즌에 바로 득점왕을 차지할 수 있는 배경이다. 이런 선수는 하나가 아니다.

 

이동국은 2009시즌 전북현대 유니폼을 입자마자 21골을 넣으며 득점왕과 MVP를 함께 차지했다. 팀은 우승했다. 2008시즌 성남일화에서 10경기에 출전해 2골을 넣은 게 전부였다. 하태균은 2014년 말 제대한 후 수원삼성에서 주전에서 밀렸고, 2015시즌 개막이 임박한 시점에 중국 2부리그 연변으로 이적했다. 하태균은 바로 28경기에서 26골을 넣으며 득점왕과 MVP를 동시에 차지했다. 연변은 2014시즌 최하위 팀이었으나 하태균 활약에 힘입어 우승하며 슈퍼리그로 승격했다.

 

다른 포지션도 아니고 공격수가 이적과 동시에 득점왕에 오르기는 쉽지 않다. 흔히 이야기하는 팀과의 궁합이 중요하지만, 새로운 전술, 동료에 적응하는 일은 어려운 과제다. 이동국과 하태균은 어떻게 바닥에서 정상에 올랐을까? 두 선수는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자신을 신뢰하는 감독을 만났다. 이동국은 최강희 감독을 만났고, 하태균은 박태하 감독과 함께 뛰었다. 안정을 얻은 뒤 발끝이 날카로워졌다.

 

심리학자 윤영길 한국체육대학교 교수는 이 원리를 쉽게 설명했다. “연료와 탈 것은 있는데, 산소가 부족해 불이 시들시들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적절한 처치로 산소를 공급하면 불이 다시 활활 탄다. 기량이 떨어진다고 평가 받았던 선수가 갑자기 득점왕을 차지하는 원리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된다. 분명히 선수 안에 더 태울 게 있는데 어떠한 이유로 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감독이 적절한 방법으로 불타오르게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심리적으로 편안해지면서 몸이 가벼워졌다는 이야기다. 언뜻 비약이나 과장으로 보이는 이 과정은 생각보다 과학적이다. 윤 교수는 “축구선수, 그 중에서도 골잡이는 경기에 몰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면 경기에 몰입할 수 없다. 경기가 안되면 그라운드가 아닌 벤치를 더 신경 쓸 수도 있다. 불안하니 집중하지 못하고, 집중하지 못하니 실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생긴다. 반대로 안정적인 상황에서 경기하면 경기에만 몰입할 수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 경기할 수 있다. 이 상황에서 골을 넣으면 선순환이 생기고, 심리적인 모멘텀도 생긴다”라고 했다.

  

윤 교수는 “최강희 감독은 이동국이 입단 후 몇 경기에서 골을 넣지 못하고 불안해하자 ‘네가 빼달라고 하기 전까지 빼지 않을 테니 마음껏 하라’고 했다. 이동국이 그 이후에 골을 넣었다”라고 했다. 하태균이 부활한 장면도 이와 비슷하다. 2015시즌이 끝난 뒤 ‘풋볼리스트’는 하태균에 “박태하 감독이 어떤 주문을 하나?”라고 물었다. 하태균은 “사실 별말씀 하지 않는다. 믿어 준다. 처음에 왔을 때도 계속 선발로 뛰게 해줄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라고 답했다.

 

축구인들이 흔히 “감독 아들은 잘하게 돼 있다”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감독 아들’은 감독이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선수를 가리킨다. 이런 선수들은 어려운 시기가 와도 불안해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윤 교수는 “감각이 얼었다가 풀리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그 얼음을 녹일 수 있는 방아쇠가 있는데 그게 바로 믿음이다”라고 했다.

 

윤 교수는 감독이 심리적인 부분을 잘 제어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감독은 테크니컬 어드바이서(기술 고문)가 아니라 매니저다. 선수들 마음을 잘 당기거나 풀어야 한다. 감독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자원을 지닌 선수에게 불을 붙일 수도 있고, 그 불을 소화기로 꺼버릴 수도 있다. 심리적인 안정을 줘야 의사소통도 원활해진다. 선수와 소통을 잘 해야 감독이 하고 싶은 축구를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축구는 매 경기 10km 이상 뛰는 운동이다. 몸싸움도 격렬하다. 심폐지구력과 근력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마음에 불이 붙어야 신체적인 능력도 폭발한다. 선수 마음 속에 있는 불씨는 횃불이 될 수도 있고 재가 돼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 안정을 얻지 못했다면, 이동국과 하태균은 득점왕이 아니라 그저 그런 선수로 남았을 가능성도 있다. 

 

글= 류청 기자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풋볼리스트

관련기사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