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원정 경기에서 무력하게 지고, 홈경기에서 간신히 이기는 패턴이 반복됐다.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7차전 시리아와 경기를 마치고 이틀의 시간이 지났다. 여론과 언론, 현장의 전문가들 사이에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경질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의 리더십과 능력에 대해 의문을 가진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실제로 지난 해 11월 이란 원정 패배 이후에도 경질 여론이 들끓었다. 대한축구협회가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질 경우 경질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기도 했다. 우즈베키스탄전 승리로 논의 자체가 백지화됐다.

현 상황은 당시와 다르지 않다. 이번에도 시리아전 승리로 명분을 잃게 됐다. 한국은 여전히 자력으로 본선에 갈 수 있는 A조 2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고, 홈에서 치른 모든 경기에서 승리했다. 문제는 당시보다 퇴보했다는 평가 받는 경기력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카타르 원정에 앞서 유럽축구 시즌이 끝나 해외파를 포함한 조기 소집 훈련을 계획하고 있지만, 지난해 11월 경기력 개선을 위해 밝혔던 ‘외국인 수석 코치 영입’과 ‘스포츠 과학자 충원’이라는 솔루션을 이행하지 못해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대표 선수들 내부에서도 경기력에 대한 자성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3월 A매치 일정은 A조에서 본선 가능성이 낮게 평가되는 중국-시리아와 연속 경기였다. 6월 A매치는 실상 본선 진출이 어려워진 카타르를 만나지만, 한국이 고전해온 중동 원정이다. 8월과 9월에는 전력상 열세가 예상되는 이란전, 2위 자리를 직접 다투는 경쟁팀 우즈베키스탄과 원정 경기다. 가장 어려운 세 경기가 남은 것이다.

한국은 카타르와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한 두 번의 홈경기 모두 상대의 전략에 밀려 전반전에 리드를 내줬다. 상대 체력 저하를 틈타 후반전에 간신히 경기를 뒤집었다. 시리아와 경기에서는 이른 시간 터진 선제골 덕분에 실점 위기를 여러 번 허용하고도 골대의 도움으로 이길 수 있었다. 

우즈베키스탄과 경기에서 이겼다고 하더라도 3개월여의 시간 이후 치러지는 A매치 데이에 개선된 모습이 없다면 감독을 교체할 수 있는 플랜을 준비했어야 했다. 미리 선임 가능한 감독 리스트를 구축하고, 교감을 가져야 했다. 당장 슈틸리케 감독을 경질할 일이 생기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한국 축구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협회의 대응은 안일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움진인다. 그러니 시간에 쫓기다 최선아 아닌, 차선 혹은 차악을 택하는 악수를 둔다. 협회는 외국인 수석 코치를 영입하지 못한 배경으로 계약 기간 문제를 꼽았으나, 실제로는 필요한 이력의 코치들에게 만족할 만한 연봉 조건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 문제로 알려졌다. 

슈틸리케 감독 선임 당시에도 더 좋은 이력을 갖춘 후보자들이 있었으나 협회가 설정한 예산 범위 내에 든 감독이 슈틸리케 감독뿐이었다. 러시아로 가는 것, 러시아에 가서도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한국축구에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현재 대표팀이 직면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에 대한 현실인식이 부족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결과다.

한국축구는 이미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큰 실망을 겪었다. 예선전을 과정에 두 명의 감독이 바뀌었고, 본선을 치른 뒤 또 한 번 감독을 바꿔야 했다. 협회는 빈번한 감독 교체가 득이 될 것이 없다는 것을 느꼈지만, 두 번의 월드컵 본선에서 연이어 실패한다면, 혹은 30여 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오르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한국축구가 입게 될 타격, 당장 협회가 입게 될 타격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협회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고민의 시간이 지체되어선 안된다. ‘한 번 더’ 지켜볼 시간은 없다. 카타르 원정을 치르고 나면, 월드컵 예선은 플레이오프 일정을 포함해 매달 쉼 없이 이어진다. 팀 정비를 위해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4,5월을 통으로 비우는 지금이 유일한,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유럽 축구 감독들과 교류가 잦은 한 에이전트는 “월드컵 본선까지 1년 짜리 미션이라면 유럽에서 쉬고 있는 감독들에겐 매력적인 조건”이라고 했다. 자력으로 본선행이 가능한 시점에, 단 3경기가 남은 상황, 월드컵 본선을 감독으로 지휘해볼 수 있는 기회는 고려해볼 만한 제안이다. 

지난해 3월 해리 레드냅 감독이 월드컵 최종예선 탈락 위기에 있던 요르단 대표팀 감독으로 단기 부임하기도 했었다. 한국 역시 '2006 독일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최종예선 종료 직후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을 경질하고 딕 아드보카트 감독 선임에 성공한 바 있다. 지금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평가와 여론은 본프레레 감독 보다 좋지 않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예선 일정이 모두 끝난 이후 대표팀을 맡아 팀을 파악하고, 운영하고, 실전형 경기를 치르지 못한 채 본선에 임했다. 이는 '2014 브라질월드컵'의 홍명보 감독도 마찬가지다. 최종예선 일정이 끝난 이후 부임해 현실적인 준비 시간이 부족했다. 

최종예선 마지막 일정을 앞두고 대표팀을 지휘할 수 있는 지금 타이밍이 과거의 시행학오를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브라질 대표팀은 카를루스 둥가 감독을 경질하고 치치 감독 체제에서 환골탈태했다. 네덜란드도 위기에 몰리자 이달 감독 경질을 단행했다.

고민하고 있다면 결정과 대비는 신속해야 한다. 협회는 여론의 불안과 의심이 확산되기 전에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고, 밝혀야 한다. 남은 기간 대표팀의 문제가 지속된다면 더 이상 감독의 문제로 몰고 갈 수 없다. 위기 상황에 솔루션을 제시하지 못한 협회와 기술위원회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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