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천안] 한준 기자= 온두라스에 3골, 잠비아에 4골을 넣었다. 온두라스와 경기에서 이승우의 득점이 오심으로 무산된 것을 포함하면 실질적으로 두 경기 연속 4득점. 특히 아프리카 U-20 네이션스컵 우승을 차지한 잠비아를 상대로 거둔 승리는 경기 내용 측면에서 완성도가 더 높았다. 

지난해 11월 선임되어 12월에 처음 선수들을 지휘한 신태용 감독의 성취는 놀라운 수준이다. 지난 1월 포르투갈 전훈에서 포르투갈 U-20 대표팀과 친선 경기를 치른 이후, 이번 아디다스컵은 공식경기 성격으로는 겨우 두 세 번째 일정이었다. 온두라스와 잠비아는 북중미와 아프리카 예선을 돌파한 팀이다. 아디다스컵이 한국에서 열렸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공격적인 경기 운영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고무적이다.

#만만치 않았던 잠비아, 초반 주도권 내준 이유

특히 에콰도르와 첫 경기에서 신체적, 전술적 특색을 살리며 2-0 압승을 거둔 잠비아를 상대로 한 대승은 의미가 작지 않다. 잠비아는 이날 경기 초반 30여 분간 공격을 주도했다. 장신 공격수 음베푸의 뒤를 지원한 칠루피야, 칼룽카, 사쿨란다 등은 탁월한 돌파력으로 한국 수비를 위협했다. 미드필더 치살라의 패싱력도 수준급이었다.

잠비아의 4-4-2 포메이션은 강력한 전방 압박과 경기장을 넓게 커버하는 수비 대형으로 초반 한국의 빌드업을 괴롭혔다. 경기 초반 관중의 호응을 유도한 것은 오히려 원정팀 잠비아였다. 흐름이 한국 쪽으로 넘어온 것은 전반 24분 레프트백 신찬우가 조기 교체되고 센터백 정태욱이 투입되면서부터다. 정태욱이 중앙으로 배치되고, 센터백 자리에서 출전한 우찬양이 온두라스전에 맡아본 레프트백 자리로 이동했다. 이미 선수들에게 익숙한 대형이 갖춰졌다.

경기 사이 휴식일이 하루 밖에 되지 않지만, 신태용 감독은 주전조로 분류된 선수들을 온두라스전에 이어 다시금 투입했다. 지난 경기와 비교하면 레프트백 자리에 신찬우를 새로 점검하고, 김승우와 이진현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온두라스전에 교체로 들어왔던 이상헌이 선발로 나선 것 정도가 라인업상의 변화였다. 

신찬우를 일찍 교체한 이유는 근육 경련 때문이었다. “신찬우 선수는 자기도 모르게 전반 10분 즈음을 지나며 근육 올라왔다. 뛰고 싶어도 뛸 수없는 상황이었다. 너무 많이 긴장했다. 10분, 15분만에 근육이 올라 오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긴장하면 올라올 수 있다. 찬우가 나름 마지막이란 부담감 때문에 긴장한 것 같다. 그래서 혈액순환이 안 되고 근육이 경직되다 보니 그런 일이 생겼다.”

오랜만에 대표팀의 부름을 맡아 U-20 월드컵에 갈 수 있는 마지막 시험대에 오른 신찬우는 긴장감을 이기지 못했다. 교체가 이뤄진 시점에 맞춰 선수들의 몸도 풀리고, 잔디 상황에 대한 적응도 끝났다. 미드필더 이진현은 초반에 잠비아에 주도권을 내줬던 것에 대해 “수원에서는 잔디에 물을 뿌리지 않아 뻑뻑했다. 천안은 물을 뿌려서 환경이 달랐다. 적응이 되면서 우리가 하던 패스 플레이가 잘 됐다”고 설명했다. 

#철학은 같아도 디테일은 다르다...포메이션 변화 준 신태용

온두라스전을 통해 합을 맞춘 선수들이, 그라운드 사정에 적응하면서 경기가 잘 풀렸다. 또 하나는 전술적 대응이다. 신 감독은 사전 정보가 없었던 첫 경기와 달리, 이미 상대가 치른 첫 경기를 분석한 전형으로 잠비아전에 임했다. 평가전 성격의 대회지만, ‘우리가 준비한 것만 하면 된다’는 식의 대응이 아니었다. 신 감독은 승리가 주는 정신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잠비아가 에콰도르와 치른 첫 경기를 분석해 맞춤 전술을 준비했다.

“첫날 경기에는 4-1-2-3 포메이션으로 들어갔다. 잠비아의 경기를 보니 11번과 14번, 17번 선수가 빠르면서 슈팅력이 좋더라. 그래서 오늘은 4-2-3-1 포메이션을 들고 나온 것이 적중했다.” 신 감독은 온두라스와 경기와 달리 한찬희를 포백 앞 자리에 배치하고, 이진현을 이승우-조영욱-백승호의 바로 뒷자리에 더 공격적으로 뒀다. 그 사이에서 도전적인 중원 전개 능력을 갖춘 이상헌을 투입했다.

주장 한찬희는 긴 패스 배급과 기점 패스 조율에 능하다. 중앙 지역에서 역동적으로 공을 주고 받으면서 전개하기 보다 뿌리는 능력이 좋다. 한찬희가 뒤로 내려가고 이상헌이 그 옆에서 공수 연결 고리를 맡자 수비 상황에서는 숫자가 확보되고, 공격 전개시에도 수적 우위를 점하기 용이했다. 이진현은 수비 부담을 완전히 벗고 이승우 백승호와 좋은 호흡을 보이며 2선 공격의 윤활류 역할을 했다.

온두라스전 이후 휴식 시간이 하루뿐이었지만, 선수들의 몸은 더 좋아보였다. 신 감독은 “선수들이 하루 밖에 쉬지 못하고 이동했지만, 모든 팀이 마찬가지다.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했다. 선수들이 자유롭고 좋은 분위기 속에 이동할 수 있게 했다”고 했다. 선수들은 온두라스전을 통해 자신감이 높아졌고, 자유롭게 뛸 수 있는 전술 속에서 즐기며 경기했다. 즐기며 경기를 하니 피로가 적었고, 공을 소유한 시간이 많았던 것도 체력 소모를 줄였다.

전반 32분 나온 백승호의 선제골은 한찬희가 후방에서 왼쪽 전방으로 깊숙이 찔러준 볼을 레프트백 우찬양이 크로스로 연결하며 발생한 문전 혼전 상황에서 흐른 볼을 백승호가 마무리했다. 신 감독이 원하는 주고 받고, 움직이며 상대의 시선 밖에서 슈팅 기회를 포착하는 플레이가 맞아 떨어졌다. 전반 40분 백승호가 문전 우측을 파고든 이후 이승우에게 내준 프리 찬스 역시 두 선수 뿐 아니라 팀원 전체의 유기적 움직임을 통해 나온 골이다.

후반 24분 이승우가 경이로운 칩샷으로 완성한 세 번째 골 역시 이진현이 기점 패스를 보낸 이후 우측면에서 하승운이 중앙으로 주고, 이를 임민혁이 받아 이진현에게 넘겨준 뒤 이진현이 최종 수비 사이로 빠져드는 이승우에게 침투 패스를 보낸 ‘티키타카’ 플레이를 통해 전개됐다. 신 감독은 아디다스컵 소집 훈련 기간 동안 3일은 이런 패스 중심의 공격 전술 훈련에 집중했고, 마지막 이틀은 수비 조직 훈련에 중점을 뒀다. 

좌측면의 이승우, 우측면의 백승호의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이진현의 발견은 이번 아디다스컵 최고의 수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두라스전에서 세트피스로 두 개 도움을 올린 이진현의 진가는 오픈 플레이 과정에서의 패스 플레이에 있다. 성균관대에서 주로 왼쪽 윙으로 뛰었던 이진현을 보고 신 감독은 “미드필더가 더 어울릴 것 같다”며 이번 소집에 가운데에 배치했고, 최고의 기량을 보이며 중원 지역의 새로운 주전 경쟁자로 떠올랐다.

“이진현 선수는 사실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잘해주고 있다. 이진현 선수 역시 첫 경기에서 신찬우 선수가 그랬던 것처럼 경직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첫 경기에 잘해줬고, 두 번째 경기도 잘해줬다.” 신 감독의 평가처럼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이진현은 “첫 경기를 하고 나서 자신감이 생겼고, 오늘 경기를 하고 나서 더 자신이 생겼다. 아직 배고프다. 더 보여주고 싶다. 득점에 직접 관여하고 싶다”며 당찬 경기 소감을 말했다.

이진현은 특히 백승호와 이승우 사이에서 삼각 플레이가 원활하게 이뤄지는 것에 대해 “승우나 승호와 같이 경기하다보면 맞는 코드가 있다. 경기를 하다보면 눈빛만 봐도 이제 알거 같다”며 짧은 시간 훈련했음에도 찰떡궁합을 이룰 수 있는 비결을 설명했다. “승우랑은 경기장에서 말도 많이 하고, 경기장에서 어떻게 하자고 말을 많이 하니까 호흡 나날이 좋아지는 것 같다.” 

신 감독은 공격 패턴의 디테일을 직접 가르쳤지만, 이 과정에서 선수들이 스스로 사고하고 창의성을 갖춘 축구를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진현과 바르사 듀오의 플레이를 그 결실이다. 신 감독이 포르투갈 전훈부터 가장 많이 강조한 것은 “상대 압박이 들어올 때 돌려치기로 볼을 빼고 전개하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잘 와닿지 않는 이 플레이를 신 감독은 훈련 중 직접 시범을 통해 알려주고, 유럽 빅클럽이 실제 경기에서 구현한 영상 자료를 통한 미팅으로 디테일하게 전달했다. 

신 감독은 잠비아전을 마친 후 아주 밝은 표정으로 선수들을 칭찬했다. 포르투갈 전훈 당시에는 기대에 못 미쳤다며 솔직한 심정을 말했던 신 감독의 이날 발언이 진심이라는 것은 그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직접 보셨겠지만, 우리 선수들이 너무 잘해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감독이 주문한 것은 물론, 자기가 가진 기량을 전부 보여줬다.오늘 경기와 그저께 경기, 두 경기로 본다면 (내 기대에) 상당히 잘 따라오고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만족하고 있다. 선수들이 이렇게 까지 잘 따라올거이라고 생각하지 못햇다. 포르투갈 전훈을 다녀와서 새로운 선수도 많이 합류했다. 손발을 맞출 시간이 별로 없었고, 짧은 시간동안 영상을 보고 준비했다. 100프로 이상 따라 와주고 있다.”

빠른 패스 연결과 침투는 잠비아의 포백 라인 배후 허점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견고해 보이던 잠비아의 포백라인은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와 포백 사이 공간을 타고 움직이는 3명의 2선 공격수들과 풀백 전진을 통한 패스 코스 변화, 이상헌의 라인 사이 움직임이 가미되면서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포백 라인이 흔들리자 개인 능력이 출중하던 잠비아 공격도 따로 놀기 시작했다. 개개인은 강했지만 몰아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지 못했다. 

#조직-전략 점검 마친 신태용호, 에콰도르전은 실험

신 감독은 공을 지배하고, 공격 기회를 주도하는 것이 곧 승리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축구철학을 갖고 있다. 무실점 경기는 못하고 있지만, 다득점을 통해 승리를 거두고 있다. 신 감독은 수비 문제에 대해서도 “세트피스로 1실점을 했지만, 개인적으로 선수들을 칭찬해주고 싶다. 잘했다고 해주고 싶다”고 했다. 2실점한 온두라스전 역시 개별 실수로 나온 장면이라는 점에서 수비 조직력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줬다. 

U-20 대표팀은 제주로 이동해 30일 에콰도르와 아디다스컵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데다, 휴식일이 하루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대적인 선발 명단 변화가 예상된다. 신 감독도 잠비아전을 마치고 미리 밝혔다. 

“다음 경기는 거의 새롭게 조합을 이룰 것이다. 첫 두 경기는 생각한 선수들로 조합을 만들어 나갔다. 두 번째도 경기에서 교체할 수도 있었지만 아프리카 팀과 경험을 쌓기 위해서 같이 나갔다. 세 번째 경기에서는 실험 못한 선수들을 꼭 봐야하고, 기회를 줘야 한다. 세 번째 경기는 새로운 선수를 구성해서 나갈 것이다.”
 
 온두라스-잠비아전에서 신태용 감독은 자신의 철학과, 그 철학을 구현할 수 있는 디테일, 상대에 따라 다른 전략적 대응 등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입증했다. 조직력과 전략 점검은 온두라스-잠비아전으로 충분했다. 에콰도르전은 21명의 최종 엔트리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선수를 테스트하는 의미의 경기가 될 것이다. 이미 거둔 2승으로 전초전 성적의 부담은 떨쳤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그래픽=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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