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축구는 365일, 1주일 내내, 24시간 돌아간다. 축구공이 구르는데 요일이며 계절이 무슨 상관이랴. 그리하여 풋볼리스트는 주말에도 독자들에게 기획기사를 보내기로 했다. Saturday와 Sunday에도 축구로 거듭나시기를. 그게 바로 '풋볼리스트S'의 모토다. <편집자 주>
프로의 세계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출전 기회는 오직 실력으로 결정된다. 국가대표도 마찬가지다. 잠재성을 기대하는 측면도 있지만, 연령별 대표를 뛰어넘어 10대의 나이로 A매치에 나서는 선수들이 있다. 펠레, 마라도나, 호나우두, 호날두, 메시 등 역대급 스타들은 10대에 국가대표가 됐다. 모두 떡잎부터 달랐다. 러시아 월드컵에 나설 수 있는 10대 스타는 누가 될까? 유독 10대 스타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는 나라는 어디일까? ‘풋볼리스트’가 세계를 흔든 ‘10대 국대’를 소개한다.
재능 좋은 선수 못 쫓아간다. 월드컵 10대 선수 활약의 역사를 보면 결국 일찍 데뷔해야 레전드가 된다. 가장 좋은 예가 있다. 역대 최연소 기록 중 여러 개를 펠레가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펠레는 만 17세였던 1958년 스웨덴 대회에서 브라질의 우승을 이끌었다. 생애 처음으로 나간 국제대회에서 조별리그를 잠잠하게 보낸 뒤 토너먼트 세 경기만에 6골을 몰아쳤다. 8강전에서 최연속 득점, 프랑스를 상대한 준결승에서 최연소 해트트릭 기록을 남겼다. 결승전에서 스웨덴을 상대로 출장해 최연소 결승전 출장과 최연소 결승전 득점 기록을 모두 세웠다. 이 기록들 모두 59년이 지난 지금까지 깨지지 않았다.
이 정도 천재니까 월드컵을 12년에 걸쳐 참가하며 3번이나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이다. 펠레는 만 21세에 나간 1962년 대회에서도 초반에 부상을 당해 이탈하긴 했지만 어쨌든 우승팀의 멤버로 활약했다. 1966년엔 부상을 안고 출장을 강행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우승을 놓쳤지만 1970년 대회에서 ‘축구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팀’을 이끌고 다시 정상에 올랐다. 3회 우승은 펠레만 갖고 있는 기록이다.
펠레로 재미를 본 브라질은 1966년 대회에 펠레보다 더 어린 만 16세 선수를 내보내기에 이른다. 조나스 에두아르두 아메리코, 줄여서 에두라고 불리는 전설적 공격수다. 그러나 에두는 1966년 대회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대부분 브라질에서만 활약해 큰 명성을 남기진 못했지만 1970, 1974년 대회까지 세 차례 월드컵에 참가한 당대 최고 공격수 중 한 명이었다.
펠레의 별명 ‘축구 황제’를 물려받은 호나우두 역시 만 17세 때 1994년 대회에 참가하며 비슷한 길을 걷는 듯 보였다. 그러나 호나우두는 호마리우와 베베토 투톱이 우승을 이끄는 모습을 벤치에서 지켜봤다. 1998년 대회에선 컨디션 난조를 안고 결승전 출장을 강행했다가 일종의 라이벌이었던 지네딘 지단의 프랑스에 우승을 내줬다. 아직 25세에 불과한 나이에 이미 부상 등 산전수전을 다 겪은 호나우두는 2002년 대회에서 결국 자기 힘으로 우승을 달성하며 월드컵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분명히 새길 수 있었다.
월드컵 데뷔 당시의 엄청난 기대에 비하면 전성기가 너무 약했던 선수들도 있다. 마이클 오언은 1998년 대회에서 18세 나이로 엄청난 충격을 안기며 등장했다. 잉글랜드의 월드컵 참가 사상 최연소 선수였던 오언은 대회 초반만 해도 교체로 나오며 최연소 골 기록을 기록하는 유망주 정도였지만 점점 주전 자리를 차지하더니 아르헨티나와 가진 8강전에서 일을 냈다. 먼저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이어서 데이비드 베컴의 스루패스를 받아 그 유명한 단독 돌파로 로베르토 아얄라를 굴복시키며 멋진 골을 득점했다.
그러나 이때가 이미 전성기였다. 2001년, 소속팀 리버풀의 ‘미니 트레블’을 이끈 오언은 발롱도르를 수상할 정도로 거대한 스타였다. 그러나 2004년 리버풀을 떠난 이후 부상과 관리 실패로 경력이 한풀 꺾였다. 말년에 리버풀의 최대 라이벌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 입단하며 큰 논란을 남겼다.
카메룬은 스타 선수들의 월드컵 데뷔가 빠른 편이다. 카메룬 역사상 최고 수비수 리고베르 송이 1994년 대회에 만 17세 나이로 참가했다. 송은 주장으로 활약했지만 조별리그 2차전에서 퇴장당했고, 카메룬이 조 최하위로 탈락하는 걸 막지 못했다. 1998년 대회에서는 장차 카메룬 사상 최고 공격수가 될 사뮈엘 에토오가 17세 나이로 데뷔했다. 다만 에토오는 후보 선수였고, 당대 스타 공격수였던 파트리크 음보마와 조셉 데자레좁 투톱을 넘지 못했다. 이때도 카메룬은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카메룬은 1990년 대회에서 8강 돌풍을 일으킨 뒤 한 번도 16강에 오른 적이 없긴 하다.
10대 선수의 선발은 필연적인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2006년 대회를 앞두고 잉글랜드의 스벤외란 에릭손 감독은 17세에 불과한 시오 월컷을 선발했다. 아직 프로 선수로서 제대로 자리잡지도 못했고, 아스널 이적이 일찌감치 확정돼 화제를 모으긴 했지만 그때까지 챔피언십(2부)의 사우샘프턴에서만 뛰어 본 선수였다. 아마 아르센 벵거 아스널 감독과 마찬가지로 에릭손 감독도 월컷이 ‘잉글랜드의 앙리’로 성장할 거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