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6번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한국이 거둔 성적은 3승 1무 2패다. 3번의 승리는 모두 홈에서 거뒀다. 모두 1점 차 신승이었다. 홈에서 치른 경기도 모두 실점했다. 유일한 무실점 경기는 중립지역에서 치른 시리아전이 유일하다. 원정에서 치른 3경기는 처참하다. 무승에 무득점이다. 

울리 슈틸리케 한국 대표팀 감독의 경기 계획에는 특별한 비밀이 없다. 포백 라인을 높이 전진시킨다. 기성용을 중심으로 중원에서 볼 소유를 추구한다. 최전방 공격수는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2선 공격수들을 위한 공간을 만든다. 2선 공격수들이 문전 지역으로 좁혀 들어와 슈팅 기회를 포착한다. 패스 플레이 중심의 공격적인 축구를 지향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공을 지배하는 게 경기를 지배하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그 믿음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 방법이 한국 대표팀에 효과적으로 적용되지는 못하고 있다. 

#점유와 지배에 집중하는 슈틸리케, 2년째 제자리 걸음

한국은 아시아에서 강호다. 기본적으로 한국을 상대하는 팀들은 우선 수비에 신경 쓴다. 패스 플레이로 밀집 수비를 무너트리기 위해선 고도로 정밀한 기술과 조직이 필요하다. 슈틸리케호는 준비된 패턴 플레이보다 선수 개개인의 부분 전술에 의존한다. 개인 능력도, 조직력도 슈틸리케 감독의 이상을 현실화할 정도로 충분하지 않다.

2차 예선에서는 슈틸리케의 방향성이 잘 적용되었다. 수비 조직과 역습 공격 수준이 더 높은 팀을 만나는 최종예선에서는 단점만 드러나고 있다. 다만 ‘프리미어리그 클래스’를 갖춘 두 선수의 역량으로 차이를 만들었다. 기성용은 안정적인 중원 조율과 손흥민의 파괴적인 개인 돌파와 슈팅이 상대 수비 조직에 균열을 만들었다. 

손흥민이 경고 누적으로 빠지고, 기성용이 한 달 간 무릎 부상으로 이탈했다 돌아온 중국 원정 경기는 슈틸리케 감독의 진정한 시험대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동원과 남태희에게 측면 공격을 맡겼고, 기성용의 파트너로 고명진을 세웠다. 지동원과 남태희 모두 분전했지만 중국 수비 조직을 무너트리기 역부족이었고, 기성용과 고명진도 중원을 장악하는 데 실패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플랜A는 먹통이었다. 수행하지 못한 선수들을 탓하기에 앞서, 선수들이 잘 할 수 있는 전략이었는지를 점검해봐야 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잘 진단해왔다. 그가 원하는 축구를 완벽하게 구사하기 위해선, 그가 말하는 것처럼 유소년 단계부터 뿌리를 단단히 다져야 한다. 그의 이상은 옳지만, 그는 지금 당장의 자원으로 최상의 성과를 내야하는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그 방법이 지금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슈틸리케 감독의 플랜A는 최종예선 들어 거듭 통하지 않고 있지만, 그는 일관된 방향으로 숙련도를 높이게다는 명분 속에 같은 방식을 밀어붙이고 있다. 뚝심의 근거는 3번의 승리였다. 슈틸리케 감독에겐 장신 공격수 김신욱을 활용하는 플랜B가 있다. 홈에서 거둔 3승 중, 카타르와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거둔 역전승 과정에 후반에 투입한 김신욱의 활약이 있었다. 

#김신욱 높이 활용한 플랜B도 읽혔다

상대 수비가 김신욱의 힘과 높이에 어려움을 겪으며 공간이 생겼고, 이를 통해 후반전에 경기를 뒤집을 수 있었다. 슈틸리케호는 중국 원정 6차전 경기까지 8골을 넣었다. 이중 3골은 중국과 최종예선 첫 경기에 넣었다. 우리 안방에서 경직된 중국 선수들을 상대로 만든 골이다. 나머지 4골은 김신욱의 높이를 활용해서 넣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속적으로 효과를 내지 못하는 플랜A에 대한 지적에 김신욱을 통한 플랜B가 잘 작동하고 있고, 플랜A가 바탕이 되었기에 플랜B가 작동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카타르와 우즈베키스탄보다 높은 수준을 갖춘 이란은 한국의 플랜A와 플랜B를 모두 무력화하는 데 성공했다.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감독은 한국의 전략을 완전히 간파하고, 그 공략법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중국 대표팀에 새로 부임한 마르첼로 리피 감독은 개인 역량 면에서 이란 보다 부족한 중국 선수들로 그와 같은 성과를 냈다. 

중국도 전략과 조직으로 한국의 강점을 무력화하고, 자신들이 골을 만들 수 있는 효율적인 길을 찾는 데 성공했다. 3명의 중앙 미드필더와 포백으로 중앙 지역을 통제했다. 라인을 뒤로 물리지 않고 김신욱을 밖으로 밀어냈다. 김신욱과 공중볼 경쟁에서 밀려도 세컨드볼 싸움에서 뒤지지 않았다.

한국의 플랜A와 플랜B 공격을 모두 틀어막은 중국은 삼자 패스를 통한 역습과 세트피스 공격을 통해 라인이 높고 풀백의 공격 가담이 높은 한국 수비의 허점을 잘 공략했다. 이제 김신욱을 통한 플랜B마저 한계를 노출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제 플랜C를 찾아야 한다. 

#철학에 대한 고집보다 한국축구에 맞는 옷 찾아야 한다

현대 축구에 비밀은 없다. 모든 팀의 강약점이 분석 가능하다. 강팀은 알고도 막을 수 없는 전략을 만든다. 그 전략이 한계에 다다르는 시점에는 허를 찌르는 묘수를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맞는 옷을 입는 것이다. 혁신적인 전술을 발명할 수는 없지만, 선수단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술은 찾을 수 있다. 

공을 지배하며 승리하길 원하는 일본마저 더 간결하고 효율적인 축구를 구사하고 있다.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은 바이에른뮌헨에서 선 굵은 공격 방식을 접목했고, 맨체스터시티에 부임하고는 속공을 적절히 혼용하고 있다. 기조는 비슷하지만, FC바르셀로나에서와 같은 방법론을 적용하지 않았다. 

감독을 선임했다면, 그의 철학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감독 역시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강요해선 안 된다. 적절한 융합과 조화가 필요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나치게 자신의 이상에만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다.

슈틸리케 감독의 플랜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지적은 최종예선 절반의 일정이 지난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자신의 이상에 부합하는 전략과 선수만 고집하기보다, 한국 축구가 가진 특성과 그에 따른 자원을 폭 넓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시점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자신의 취향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난 몇 년간 리그에서 최고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선수도 외면하고, 탁월한 마무리 기술을 갖춘 리그 최고의 공격수를 모두 배제하고 있다. 2017시즌 개막 후 첫 3라운드 동안 최고의 경기력을 보인 국가대표급 선수들도 소집하지 않았다. 슈틸리케의 놀라운 선택, 경기 중에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선수 선발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다. 다만, 그에 따른 책임은 온전히 감독의 몫이다. 현 상황은 감독에게 책임을 묻고, 변화를 촉구할 만한 위기다. 경기 감각 측면에서나, 실적 측면에서 충분히 고려 대상, 점검 대상이 될 수 있는 자원이 있다. 혹은, 지금 가진 자원으로도 다른 방식의 경기 접근법을 적용해 볼 수도 있다. 슈틸리케는 경기 플랜을 원점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중국전에 드러난 문제가, 전혀 새로운 숙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슈틸리케 감독이 새로운 플랜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기술위원회는 더 늦기 전에 새로운 플랜을 제시할 수 있는 감독을 찾아야 한다. 당장 28일에 시리아와 홈경기로 예선 7차전 경기가 예정되어 있다. 이 경기마저 승리하지 못하면 플레이오프 진출권이 주어지는 3위 자리도 보장 받기 어렵다. 6월 13일에 카타르 원정, 8월 31일에 이란과 홈경기, 9월 5일에 우즈베키스탄 원정 모두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일정이다. 

시리아가 우즈베키스탄을 꺾었고 마르첼로 리피 감독 부임으로 중국도 희망의 불씨를 되살렸다. 예선 A조는 혼돈에 빠졌고, 한국축구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다. 아시아 무대에서도 통하기 어려운 플랜이라면, 이제 1년 여 앞으로 다가온 러시아월드컵 본선에서 더 강한 팀들을 상대로 통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는 심지어 러시아에 갈 수 있을지 여부조차 불투명해지는 상황이다. 철학에 대한 고집보다 승리를 위한 실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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