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동환 기자= 봄과 함께 찾아온 K리그의 그라운드에서 선수가 쓰러졌다. 의식을 잃었다. 모두가 가슴을 졸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선수들과 의료진 경기 당사자인 양팀 그리고 주최즉의 대처는 완벽에 가까웠다. K리그는 ‘골든타임’에 할 수 있는 모든 대처를 했다.

11일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에서 ‘KEB하나은행 K리그 챌린지 2017’ 2라운드 경기가 펼쳐졌다. 창단 첫 홈경기를 가지는 안산무궁화와 원정 경기를 떠나온 FC안양은 나란히 첫 라운드에서 패배했기에 승리에 대한 의지가 불탔다. 선수들의 플레이 장면에 경기장을 찾은 7,933명의 관중은 환호했다.

0-0으로 팽팽하게 이어지던 전반 24분, 아찔한 순간이 펼쳐졌다. 아산 진영 페널티 박스 안에서 공중볼을 경합하는 과정에서 아산의 정다훤과 안양의 쿠아쿠가 충돌했다. 정다훤은 헤딩으로 공을 걷어냈고, 한 박자 늦었던 쿠아쿠의 머리와 정다훤의 머리가 충돌하며 1차 충격이 발생했다. 높이 뛰어 올랐던 정다훤은 그대로 추락했다. 이 과정에서 정다훤의 머리는 다시 한 번 강하게 그라운드와 충돌하며 2차 충돌이 발생했다. 

쓰러진 정다훤, GK 박형순의 적절한 대처 
두 차례의 충돌은 이순신종합운동장에 적막을 불러왔다. 의식을 잃었다. 공은 아직 그라운드에 있었지만 아무도 공을 보지 않았다. 정다훤이 쓰러진 순간 아산의 골문을 지키던 박형순이 뛰어왔다. 가장 먼저 기도를 확인했다.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충돌한 쿠아쿠 역시 즉각 정다훤의 상태를 살폈다.

가장 정다훤에게 닿았던 박형순은 손으로 턱을 조절했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인 정태석 박사(스피크 재활의학과/퍼포먼스센터 원장)는 박형순의 제한적 응급조치가 적절했다고 평가했다. 정 박사는 “충돌 과정에서 경추 골절 등의 손상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 기도를 확보하겠다는 목적으로 목이나 몸을 잡고 흔드는 등의 행동은 조심해야 한다. 턱을 움직여주면 코로 호흡이 가능하다”며 “만약 경추에 손상이 있는 상황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은 2차 손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최근 라리가에서 펼쳐진 페르난도 토레스의 사례에서 주변 선수들이 빠르게 달려가 토레스의 목을 포함한 몸을 움직였던 일은 자칫 위험할 수도 있었던 장면인 것이다.

주심, 경기감독관, 의료진, 코칭스태프의 빠른 판단 
상황을 인지한 김동인 주심은 요란하게 휘슬을 불며 지체 없이 의료진을 불렀다. 아산의 팀닥터가 전력질주를 했다. 경기장 한켠에 대기하던 의료진도 달려갔다. 10여 초 만에 적절하고 전문적인 응급처치가 시작됐다. 상대 팀인 안양의 팀닥터 역시 함께 처치를 도왔다. 호흡 여부와 의식이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지속적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그라운드 밖에서 지켜보던 김진의 경기감독관 역시 빠르게 판단했다. 의료진이 요청하기 전에 엠뷸런스의 투입을 지시했다. 경기감독관석과 정다훤이 쓰러진 장소간의 거리가 있었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쓰러졌던 정다훤이 빠르게 의식을 회복했지만 현장의 의료진들은 정다훤을 함부로 움직이게 하지 않았다. 코칭스태프 역시 정다훤의 의식이 돌아온 것을 인지했지만 망설이지 않고 교체를 지시했다. 정다훤은 단단히 들것에 고정되어 앰뷸런스를 통해 병원으로 후송됐다. 정태석 박사는 코칭스태프의 판단 역시 적절했다고 평가했다. 

지난 2013년 FC서울의 몰리나가 부산아이파크와의 경기에서 충돌 후 쓰러져 3분 만에 정신을 차렸는데, 당시 몰리나는 그라운드에서 걸어 나와 벤치에 앉아 경기를 지켜봤다. 정 박사는 “뇌진탕으로 쓰러진 후에는 바로 의식을 찾더라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라운드에서 내려와 면밀히 상태를 보는 것이 옳다”며 “정밀한 검사가 필요하다. 뇌진탕 후유증도 확인해야 하며, 기타 신체의 손상도 확인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간혹 선수들이 혼절을 경험한 후에도 다시 경기 투입을 주장할 때도 있지만, 팀 닥터를 포함한 코칭스태프는 무조건 말려야 한다는 것이 정 박사의 의견이다. 정 박사는 “충돌 직후에는 후유증이 생긴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1%의 아쉬움’과 더 중요한 후유증 관찰
정다훤이 앰뷸런스를 타고 그라운드를 떠나자 관중들은 하나의 마음으로 쾌유를 기원하는 박수를 보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상황에서 주위에 있던 선수들과 의료진, 팀 관계자와 감독관 모두가 완벽에 가까운 팀플레이를 보여줬다. 자칫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었던 사건을 잘 마무리했다. 

응급 처치와 후송까지 완벽했지만 1%의 아쉬움이 남는다. 정태석 박사는 “선수가 의식을 찾았다고 해도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바로 후송한 것은 적절한 대처였다”고 했다. 하지만 “앰뷸런스로 옮기는 시점에서 목 브레이스(경추보호대)를 이용해 고정했다면 더욱 완벽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정다훤은 경추보호대를 착용하지 않고 앰뷸런스로 옮겨겨졌다. 프로팀의 팀 닥터들은 응급처치가방에 브레이스를 휴대하지 않지만, 통상적으로 앰뷸런스에는 항시 구비되어 있다. 아쉬움은 남지만, 완벽에 가까웠던 대처 덕분에 정다훤은 자칫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었던 불상사를 면했다. CT와 MRI 촬영 결과 다행히 큰 이상은 없어 퇴원했다. 

하지만 바로 격렬한 훈련은 피해야 한다. 정태석 박사는 “후유증 여부를 잘 살펴야 한다. 어지러움, 두통, 무기력감, 인지기능 저하 등으로 후유증이 올 수도 있다. 사람, 장소, 시간 등에 대한 인식이 정상적으로 이루어 지는지 본인과 주변인들의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며 “후유증은 아직 뇌에 생긴 조그만 손상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조금이라도 후유증이 남아 있다면 계속 추후 뇌손상에 의한 치매 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24시간 이상의 경과 및 후유증 여부 후 실전에 가까운 격렬한 훈련 보다는 가벼운 러닝으로 서서히 복귀를 준비하는 것이 옳다고 덧붙였다. 한편, 아산은 이날 경기에서 주현재, 공민현, 한지호, 임선영의 득점에 힘입어 4-0 승리를 거뒀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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