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현역 시절 ‘비운의 천재’로 불렸고, 프로 감독으로 자리잡는데 오래 걸린 두 사람이 만났다. 승자는 더 일찍 아픔을 겪고 일찍 프로 세계에 뛰어든 김종부 경남FC 감독이었다. 김종부 감독은 김병수 서울이랜드FC 감독보다 노련했다.

12일 서울 잠실에 위치한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KEB하나은행 K리그 챌린지 2017’ 2라운드를 가진 경남이 서울이랜드를 1-0으로 꺾고 2연승을 달렸다. 2전 전승을 거둔 팀은 경남과 부산아이파크뿐이다.

두 감독은 한국 축구사에 가장 아쉬운 인재로 남아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별명이 ‘비운의 천재’다. 고려대 5년 터울 선후배인 두 감독은 드래프트 제도를 거부하며 프로행에 우여곡절이 많았고, 부상에 발목 잡혀 제대로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선수 생활을 했다. 김종부는 18세에 국가대표로 데뷔하며 일찍 인정받았으나 25세에 마지막 경기를 뛴 뒤 복귀하지 못했다. 김병수의 국가대표 경력은 19세부터 22세로 더 짧았다. 둘 다 프로에서 전성기를 맞지 못하고 일찍 경력이 끝났다.

은퇴 후의 삶도 마냥 순탄한 건 아니었다. 아마추어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지도력을 닦았다. 김종부 감독은 K3리그에서 양주시민축구단, 화성FC를 거치며 한 차례 우승을 차지한 뒤 지난해 경남에 부임했다. 김병수 감독은 영남대학교에서 학원 축구계 최고 명장으로 인정받고도 프로 진출이 미뤄지다 올해 비로소 서울이랜드에서 데뷔했다.

김종부, 김병수 보며 "마음이 많이 쓰이는 후배"

“많이 친하진 않지만 대학 후배기도 하고, 저와 비슷한 사연도 있어서 마음이 많이 쓰이죠. 축구를 유심히 봐 왔고.”

경기 전 만난 김종부 감독은 김병수 감독에 대한 호감을 나타냈다. 김종부 감독은 추구하는 축구도 비슷하다고 했다. “축구 철학이 비슷하다. 뒤에서부터 빌드업하며 만들어간다. 그래서 분석하기 쉬운 면도 있었고, 서로 잘 아니까 그만큼 어려운 면도 있다.”

김종부 감독은 서울이랜드가 아직 과도기 중일 거라고 예상했다. 자신이 프로에 1년 먼저 온 만큼, 경남이 서울이랜드보다 완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마추어 선수들과 프로 선수들은 팀 만들어가는 게 약간 다르다. 김병수 감독이 너무 늦게 부임(올해 1월)했다. 아무리 아무리 뛰어난 감독이라도 그때 와서 자기 철학과 전술을 입히는 건 어렵다. 선수단도 원하는대로 구성하지 못한 것 같다. 나도 작년에 경남 고액연봉자 다 내보내고 외국인 선수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다. 김병수 감독에겐 시간이 필요할 거다.”

김종부 감독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서울이랜드가 추구하는 축구는 높은 점유율, 패스를 통한 상대 수비 교란이 기본이다. 그러나 때론 호흡이 맞지 않아서, 때론 패스가 부정확해서 실수가 생겼다. 측면과 중앙으로 공격 방향을 전환하는 속도가 느려 상대를 거의 흔들지 못했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서울이랜드의 슛은 단 2회에 불과했고 모두 골대까지 가지 않았다. 서울이랜드 창단 멤버 출신인 경남의 이범수 골키퍼는 공중볼을 잡을 때 외엔 공을 손으로 만질 일이 없었다.

반면 경남은 실리를 챙겼다. 경남의 공격은 196cm 장신에 유연성을 겸비한 말컹, 그 뒤에서 부지런히 뛰어다니는 브루노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브루노의 인터셉트, 말컹의 돌진, 브루노의 드리블 돌파가 이어졌다. 말컹은 전반 11분 기습적인 드리블 돌파 후 날린 중거리슛으로 크로스바를 맞혔고, 총 5차례 슛을 날릴 정도로 존재감이 컸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경남이 좌우 윙어를 모두 바꿨고, 잠시 후 서울이랜드가 원톱과 미드필더를 교체했다는 건 두 팀의 대조적인 경기 방식을 잘 보여줬다. 경남은 측면을 중심으로 속공을 노렸다. 서울이랜드는 미드필더로 김병석 대신 테크니션 최치원을 투입하며 중앙에서 더 공을 잘 돌리려 했고, 어느 정도 패스의 질이 높아지는 효과를 봤다.

승부를 가른 건 서울이랜드의 실수였다. 지난 개막전에서도 실수로 두 골을 내줬던 서울이랜드느 후반 32분 페널티 지역 바로 앞에서 패스미스를 범했다. 정현철이 공을 가로채자마자 말컹과 2대 1 패스를 주고받은 뒤 문전에서 오른발 슛을 가볍게 밀어 넣었다. 치열한 경기가 허무하게 끝나는 순간이었다.

김종부의 경남이 더 노련했다

경기 후 김종부 감독은 서울이랜드의 낮은 완성도를 염두에 두고 일부러 실리적인 경기를 했다고 밝혔다. “오늘은 빌드업 과정을 축소하고 큰 오픈 패스, 말컹의 높이를 활용한 패스, 대각선 공략을 선수들에게 많이 주문했다. 다른 팀을 상대할 때보단 그런 실리적, 핵심적인 부분을 선수들에게 강조한 편이다.”

프로에 1년 먼저 온 김종부 감독에겐 김병수 감독보다 많은 전술적 카드가 있었고, ‘플랜 A'도 아직 완성하지 못한 김병수 감독으로선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었다. 김병수 감독은 대체로 경기가 풀리지 않았다는 걸 인정하면서 “그래도 찬스를 엿보려는 노력은 첫 경기보다 조금 좋아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의미한 패스가 아니라 상대를 위협할 수 있는 패스를 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경남은 2연승 중이다. ‘잠룡’으로 거론됐던 경남은 두 경기 동안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19일에 열릴 3라운드에서 마찬가지로 2연승 중인 우승후보 부산아이파크를 만나게 된다. 김종부 감독은 심판매수에 대한 징계로 승점이 10점 깎이고 시작했던 지난해에 비해 한결 마음이 가볍다고 이야기했다. “올해는 마이너스 없이 편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2연승을 하며 부담감을 줄였다.”

연패에 빠진 서울이랜드는 김병수식 축구가 어느 정도 자리잡은 뒤에야 진짜 경쟁력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때까지 승점을 잘 관리하는 것이 숙제다. 이날 한만진 대표이사는 '풋볼리스트'와 만나 “전반기는 승패에 연연하지 말고 축구 스타일을 만드는 기간으로 삼을 것”이라고 했지만, 김병수 감독은 “그때까지 좀 이기면서 가면 좋을텐데”라며 쓰게 웃었다. 서울이랜드가 지역 밀착 사업의 일환으로 불러모은 4,531명 관중 앞에서 그나마 내세울 수 있었던 건 점유율 60% 뿐이었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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