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평창] 한준 기자= 온라인은 화려했다. 오프라인은 현실이었다. 의욕은 충만한데 역량이 부족했다. 강원FC의 소문난 잔치는 기대를 채워주지 못했다.

11일 FC서울과 ‘KEB하나은행 K리그클래식 2017’ 2라운드 경기. 야심차게 준비한 강원의 2017시즌 첫 홈경기는 경기 결과는 물론, 팬 서비스에서도 실패였다. 경기에서 진 것보다 더 뼈아픈 것은 팬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기자 입장에서도 오랜만에 설레는 출장길이었다. 평창으로 가는 길은 도로 확장 공사 문제로 더뎠지만,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 많은 팬들이 입장을 위해 모여들고, 버스와 차량으로 도로까지 주차장이 된 모습은 반가웠다. 2008년 창단 이후 강원은 이만한 관심을 받지 못해왔다.

응원석 뒤에 설치된 간이 MD숍에서 오렌지색 후드티와 새 시즌 유니폼을 구입하고, 스키점프대를 배경으로, 혹은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들과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촬영하는 팬들의 표정은 밝았다. 다양한 연령층의 팬들이 보였다. 가족단위로 찾은 팬들, 남녀노소할 것 없이 구수한 강원도 방언으로 설레는 마음을 말하고 있었다.

강원도민들에겐 ‘A매치급’ 기대감이 있었다. 이 열망을 잘 살린다면 강원 지역의 축구 열기를 끌어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래 강원 지역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높은 수준의 축구(대전 상대가 지난시즌 리그 우승팀 FC서울이었고, 강원은 올 시즌 국가대표팀 선수들을 영입했다)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기대는 존재했다. 간과한 것은 기대가 크다면,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실망도 크다는 점이다.

#강원 잔치에 타격 입힌 ‘잔디 스캔들’

강원이 올 시즌 홈 경기장으로 사용하는 평창알펜시아스키점핑타워 스타디움의 잔디 사정은 이 보다 더 나쁠 수 없었다. 최근 평창동계올림픽을 대비한 이벤트 게임을 열기도 했고, 3월 들어서도 눈이 내려 잔디 사정이 좋지 않았다. 경기 전날까지 구단 직원들이 눈을 치우고 언 땅을 녹여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쌓인 눈이 얼고 녹는 과정이 반복되며 고인 물이 야기한 악취로 경기를 뛰는 선수들은 물론 관중들까지 경기 내내 코 끝이 시큼했다. 

황선홍 FC서울 감독은 “색깔을 보고 걱정했는데 걱정만큼 나쁘지는 않다. 정상적인 경기를 할수 있는 정도”라고 말했지만, "냄새도 그렇고 산만하다. 집중력이 중요할 것 같고 경기 나가기 전에 그 점을 한번 더 강조할 것"이라고 했다. 직접 경기를 뛴 서울 공격수 데얀은 “디스 이스 낫 풋볼 그라운드, 언빌리버블”이라고 말했다. 한국식 예의를 중시하는 서울 통역관은 이 말을 직설적으로 통역하지 않았지만, 데얀의 감정선은 물론, 그 정도 영어는 통역 없이도 기자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데얀은 그 뒤로 스키점프대 경기장의 장점도 이야기했다. 그의 말처럼 스키점프대가 경기장 한쪽 뒤편에 배치된 풍경과 푸른 하늘, 맑은 공기, 그라운드와 관중석의 접근성 등 경기장의 장점도 많았다. 결정적으로 좋은 경기를 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잔디 상태가 엉망이었다는 점은 치명적인 문제였다.

최고의 선수를 영입하고, 새로 만든 공식 응원가를 비롯한 음악 공역 등 화려한 식전 행사를 준비했지만, 정작 최고의 축구 경기를 보여주지 못했다. 강원 선수들의 역량은 뛰어났다. 이근호의 저돌적인 돌파와 황진성의 날카로운 패스, 후반전에 들어온 문창진의 센스.  브라질 공격수 디에고의 드리블, 김승용의 컨트롤은 ‘어벤저스’라 불린 강원 스쿼드가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클래스가 있었다.

기존 승격 공신인 미드필더 오승범의 중원 플레이와 백종환-정승용 등 좌우 풀백 선수들도 멋진 장면을 보였다. 강원은 원팀으로 잘 뭉쳐있다는 느낌을 줬다. 23세 이하 선수 의무 출전 규정으로 선발 출전한 신인 임찬울도 좋은 장면을 여러 차례 만들었다. 강원은 좋은 팀이었다.

하지만, 이런 뛰어난 개인 역량이 골이라는 결실로 이어지기 위한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 잔디 상태가 좋지 않아 선수들이 공을 통제하는 데 애를 먹었고, 공이 예측하기 어려운 곳으로 튀고 흐르면서 경기의 맥이 자주 끊겼다. 이는 섬세한 패스 플레이를 추구하는 서울이 전반전에 무딘 경기를 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두 팀 모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후반전에 개선된 경기력을 보였다. 전반전은 지루했고, 답답했다. 선수들의 컨디션이나 준비 상태보다 잔디 사정이 영향을 미쳤다. 경기력에 지장을 준 것 뿐 아니라 선수들의 부상 위험도 높였다. 본부석 기준으로 하프라인 우측면 부근만 가면 선수들이 자주 미끄러졌다. 

도약하기 힘든 시점에도 한 번 더 추진력을 발휘하며 탁월한 플레이를 펼친 이근호는 이 부근에서 템포를 살려 돌파를 시도하려다 공을 밟고 미끄러졌다. 자칫 잘못하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장면이다. 부실한 잔디 관리는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팬들은 수준 높은 경기를 열망한다. 선수들의 기술, 감독들의 전술에 대한 지적은 많지만, 경기장 잔디 관리에 대한 문제는 제자리걸음이다. 정밀한 패스와 한계를 뛰어 넘은 기술을 마음꺼 펼치기 위해선 매끈한 잔디가 필요하다. 비단 강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K리그 경기장의 잔디 관리가 좋지 않은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한 두 경기장의 문제도 아니다. 그런 점을 감안해도 이날 평창의 잔디 상태는 좋지 않았다. 최윤겸 강원 감독은 경기 후 회견에서 정상적인 경기 진행을 위해 수일간 구단 직원들이 밤낮으로 고생한 사실을 말했다. 팬들에게 사과를 전하고, 그 이면에서 노력한 구단 직원들의 이야기를 설명하며 양해를 구한 것이다.  

#잔디 밖의 더 큰 문제, 팬들이 겪은 '불편'

강원에게도 사정은 있다. 본래 홈경기장으로 사용해온 강릉종합운동장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 보안시설로 지정됐다. 시설 공사 등으로 올 시즌 사용할 수 없다. 도내 다른 경기장은 야간 조명 시설이 없거나, 시설이 낙후됐고, 접근성이 더 좋지 않다. 혹은 해당 지역의 열기가 부족하다. 지난 시즌 도중 사용하게 된 스키점프대 경기장은 호평을 받았고, 접근성 등의 문제가 지적되었지만 시즌권의 가치를 높이고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2017시즌 메인 경기장으로 결정됐다.

지난해 사용한 시기에는 잔디 사정이 지금보다 훨씬 좋았다. 폭포수가 나오는 풍경은 더 아름다웠다. 새로 축구전용경기장을 갖게 된 효과를 냈다. 그러나 지난해보다 5배가량 늘어난 관중, 당시와 다른 기후 사정 등은 스키점프대 경기장의 단점을 부각시켰다. 이날 관중들이 겪은 불편은 잔디 사정으로 인한 경기력 문제만이 아니다. 어쩌면 더 본질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이날 표를 구매하고 먼 길을 달려온 팬들이 경기장에서 경험한 일들이다. 

경기장에 많은 차량이 몰리면서 상당수 차량의 진입이 어려웠다. 도로상에 주차하고 길게는 2km 가까이 걸어아야 했다. 운동장 인근은 여전히 정비되지 않아 흙 밭이었다. 걷기도 불편하고, 신발도 더러워 졌다. 경기장 입장 동선이 불확실해서 우왕좌왕했다. 입장권 발권 과정에서도 불편을 겪었다는 불만이 인터넷 상에도 속속 올라왔다. 더구나 입장권을 사고 들어오지 않아도 경기장 뒤편 산책로에 걸터앉아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안전요원이 제지했지만 100여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경기장 밖에서 경기를 봤다. 비싼 표값을 지불하고 들어온 관중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화장실도 충분하지 않았다. 간이화장실이 준비되어 있었으나 규모도 부족하고 위생상 불편이 컸다. 구단이 준비한 간이매점은 5,000여 관중의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웠다. 고가의 티켓정책에 걸맞지 않은 서비스였다. 간이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좌석도 불편했다. 유모차나 휠체어를 사용하는 팬들의 경우 불편은 더 컸다. 파급력이 가장 큰 홈 개막전임에도 MD숍의 상품은 기대만큼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2017시즌 새로 구성된 구단 사무국은 젊고 열정적이었지만 경험이 적다는 문제에 직면했다. 인력도 부족했고, 현장에서의 돌발 상황에 대한 대응이 어려웠다.  벌려놓은 일은 많은데 홈 개막전까지 완수하지 못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있겠냐만은, 첫 경기를 찾은 관중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한 것은 뼈아프다. 만족은커녕 불만을 갖고 돌아간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을 다음 경기에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선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날 겪은 불편함 혹은 불쾌함에 상당수 팬들이 다시 경기장을 찾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만석을 채우지 못한 것이 다행이었다. 1만여 관중이 몰렸다면 문제는 더 커졌을 것이다. 

강원은 구단 SNS를 통해 사과문을 게재했다. 모든 실패엔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를 이해한다고 해서 돌아선 마음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강원은 서울전에서 0-1로 진 것보다 더 뼈아픈 타격을 입었다. 

#이근호가 희망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강원 선수들이 그라운드 안에서 보여준 열정이다. 0-1로 졌지만 강원 선수들의 투지는 강했고, 선수들의 개별 기량은 기대감을 갖기 충분했다. 데얀도 “강원은 아주 좋은 팀이었고, 선수들의 열정이 대단했다”고 했다. 최윤겸 강원 감독은 경기 중 세네 가지 전술을 시도하며 승리의 길을 모색했다. 높은 수준의 축구를 보여주기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무엇보다 이근호의 기량은 압도적이었다. 볼을 컨트롤하고, 상대의 타이밍을 빼앗고, 공과 함께 거침없이 달리고, 공을 빼앗기 위해 달려드는 이근호의 플레이는 확실히 ‘국가대표급’이었다. 이근호가 공을 잡으면 관중석이 술렁였고, 그를 응원하는 관중들의 개별적 외침에 희망이 실려 있었다. 이근호는 표값이 아깝지 않은 플레이를 보였다. 이근호는 ‘스타 마케팅’의 유효성을 입증했다. 

상주상무와 개막전에서도 홀로 두 골을 넣은 이근호는 강원의 희망이다. 이근호는 이날 경기의 몇몇 실망스러웠던 부분으로 마음을 돌릴 뻔한 강원 팬들의 바짓가랑이를 잡을 수 있는 존재다. 결국 축구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마케팅 수단은 축구 그 자체다. 강원이 손상된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승리와 경기력이다. 긍정적인 부분이라면 잔디 사정도, 경기력도 시간이 갈수록 좋아질 수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편의시설과 관련한 부분은 두고 두고 고민이 될 것이다. 

시장이 위축되고 투자가 줄어드는 가운데 '효율'이 유일한 가치로 여겨지고 있는 게 요즘 K리그의 현실이다. 투자로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강원의 등장은 희망이었다. 축구 관계자들은 물론, 강원을 상대하는 팀의 감독까지도 강원이 잘 되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한다. 미디어데이에서 "강원이 우승했으면 좋겠다"고 한 전북현대의 최강희 감독은 가장 적극적인 강원 지지자 중 한 명이다. 강원의 도전이 성공해서 좋은 선례를 남겨야 한다. 그러나 경기만 잘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잘 되어야 한다고 해서 문제를 모른 척하거나 덮어둘 수는 없다. 정면으로 마주하고, 해결하기 위해 온 힘을 모아야 한다. 이날 강원의 홈 경기 운영을 돕기 위해 연맹 직원들도 평소보다 많은 부분을 지원하며 바삐 움직였다. "K리그가 다 잘되야죠"라며 웃으며 뛰어 다녔다. 그러나 관리 감독이 주목적인 연맹의 인력 자체도 충분치 않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길을 배웅한 강원 직원은 풀이 죽어 있었다. 

경기 개최 환경에 대한 사전 점검이 없었던 프로축구연맹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없다. 예견할 수있었던 문제에 대처하지 못한 강원은 그간의 큰 기대에 준하는 실망으로 신뢰가 손상됐다. 평창을 빠져나오는 마음이 무거웠다.

누구나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러나 당장 불편을 겪고 돌아간 팬들이 납득하기는 어렵다. 강원은 다음 홈경기까지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은 우려되는 부분이다. 당장 18일 포항스틸러스와 리그 3라운드 경기가 다시 평창에서 열린다.

일주일의 시간 안에 승리와 팬 서비스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진짜 문제는 승리 보다 팬 서비스다. 전자 보다 후자가 훨씬 어려운 미션이다. 팬들은 홈경기장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기 전에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사진=풋볼리스트,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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