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축구는 깊다. 격렬함 속에는 치열한 고뇌가 숨어 있다. 보이지 않는 축구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다리가 필요하다. ‘풋볼리스트’가 축구에 지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마련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축구를 둘러싼 깊고, 다양한 이야기를 준비한다. <편집자주>

지난주말 개막한 2017시즌 K리그에서 페널티킥 성공률은 0%였다. K리그클래식 상주상무와 강원FC의 경기에서 강원 공격수 정조국의 슈팅은 크로스바를 넘겼고, K리그챌린지 FC안양과 수원FC의 경기에서는 안양 공격수 김효기의 슈팅을 수원FC 골키퍼 이상욱이 선방했다.

일반적으로 페널티킥은 키커에게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골대에서 11미터 거리에서 진행되는 키커의 슈팅은 위치와 세기만 확실하면 물리적으로 골키퍼가 대응하기 어렵다. 문제는 키커가 늘 완벽하게 킥을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페널티킥은 기술 보다 심리의 영역으로 여겨진다.

지난 해 K리그클래식에서 20골을 기록해 득점왕에 오른 정조국은 20골 중 7골을 페널티킥으로 성공시켰다. 성공률은 100%였다. 정조국은 강원 이적 후 프리시즌 기간 기록한 8골 중 4골도 페널티킥으로 넣었고, 100%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정조국은 ‘풋볼리스트’와 인터뷰에서 “페널티킥을 잘 넣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차기 전에 미리 정하고 단호하게 마무리한다”며 비결을 밝힌 바 있다.

정조국은 올 시즌 개막전에서 나온 실축의 이유로 ‘부담감’을 꼽았다. 만 33세의 베테랑 공격수에게도 강원FC를 향해 쏟아진 거대한 기대감에 부응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은 작지 않았다. 

“그날은 고민을 한게 사실이다. 첫 경기이고, 팀으로서 중요한 경기여서, 꼭 성공시켜야겠다는 게 너무 강했다. 다른 것 보다, 힘이 많이 들어갔던 것 같다. 부담이 된 것도 있고. 단순하게 가져갔어야 하는데, 생각이 많아졌다.” 강원FC 선수단은 시즌을 준비하는 내내 모두 큰 주목과 기대와 싸워왔고, 예기치 못한 실축의 배경이 됐다.

세계 최고의 선수로 불리는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역사상 최고의 오른발 킥 능력을 갖췄다는 데이비드 베컴도 어처구니 없는 페널티킥 실축의 경험을 갖고 있다. 축구계에는 경기 중 최고의 플레이를 한 선수가 승부차기를 놓친다는 속설도 있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스포츠심리학의 권위자로 유명한 윤영길 한국체육대학교 교수는 “페널티킥은 인플레이 중에 차는 킥과는 다르다. 경기 중에 진행되는 인플레이 상황은 동작이 연속이다. 앞뒤 동작와 이어지며 찬다. 페널티킥은 공이 정지된 상황에서 차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는 더 복잡한 상황이 된다”고 설명했다.

인플레이 상황의 득점력과 킥 능력과 정지 상황에서의 킥 능력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기술적으로도 다르다. 익히 알려져 있듯, 심리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아주 크다. 그래서 일부 감독들은 "연습을 많이 한다고 잘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토너먼트 경기를 준비하며 준비는 하지만, 그 준비가 결과로 직결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11미터 거리에서 차는 건 심리적으로 부담이 된다. 키커 입장에서 넣으면 기본이고, 못 넣으면 잘못한 것이다. 넣었을 때 오는 이득 보다 못 넣었을 때 오는 손실이 너무 크다. 그래서 위험부담이 다른 상황의 슈팅 보다 압박감이 커서 차기가 어려워 진다. 골키퍼 입장에선 막으면 정말 잘한것이고, 먹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니 반대의 입장이다.”

정조국도 “페널티킥은 차는 사람이 더 유리한게 사실”이라며 자신이 잘못한 것이라고 인정했지만, 심리 게임의 측면으로 보면 골키퍼가 훨씬 유리하다. “공이 날아가는 거리, 움직이는 공보다 차기 쉽고 장애물도 없는 경우이니 차기가 편하다. 다만 그런 장애가 제거된 상태가 심리적으로는 장애일 수 있다. 너무 편한 상태에서 성공 못 했을 때의 부담감이 좀 더 커지는 것이다.” 윤 교수의 설명이다. 

프리킥을 잘 넣는 ‘킥 전문가’가 페널티킥을 실축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프리킥은 넣으면 잘한 것이고 못 넣어도 기본이라는 점에서 훨씬 더 편하게 할 수 있다. 페널티킥은 압박감이 크다. 너무 편한 상황이 역으로 압박감으로 작용한다.”

올 시즌 K리그는 페널티킥 상황에서 키커의 부담이 더 커졌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017시즌 새로 적용하는 규정을 소개했다. 사전 동작으로 인해 페널티킥 키커가 파울을 선언 받으면 다시 차게 하던 종전 방식에서, 아예 기회를 박탈당하는 방식으로 개정했다. 윤 박사는 “사전동작을 하는 것 자체가 자기 확신이 없다는 것”이라며 키커를 선정할 때 기준을 달리해야 한다고 했다.

“기술적으로도 공을 안정적으로 차고 싶은 곳에 찰 수 있어야 하지만, 심리적으로도 안정된 선수들, 흔들리지 않는 선수들이 잘 찬다”

윤 교수는 경기를 잘한 선수가 막상 승부차기에서 실축한다는 점에 대해 “메시가 가끔 실축을 하면 최고의 선수가 왜 놓치는 데 의아해 한다. 메시처럼 축구를 잘하는 선수들은 인플레이 상황에서 다음 동작과 다음 동작으로 이어지는 협음이 좋은 선수들이다. 정지 상황에서 공을 차는 것은 전혀 다른 상황이다.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차기 때문에 메시 역시 평균적인 성공률을 기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페널티킥을 차는 선수는 축구 경기에서 빛나는 선수보다 정지 상황에서 강한 선수, 그리고 심리적으로 강한 선수가 맡아야 한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수비수이거나, 주장인 경우, 심리적으로 강하고 단호한 선수가 팀의 전담 키커를 맡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페널티킥은 득점왕을 노리는 동료가 있을 경우 양보해주는 경우가 많지만, 정작 이런 선수들에 가해지는 부담이 더 커서 실패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 페널티킥, 그리고 승부치기는 인플레이 상황의 축구와는 다른 질서가 지배한다. 

글=한준 기자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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