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경기장은 그저 배경이 아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이자 역사다. ‘풋볼리스트’는 전세계 의미 있는 스타디움을 직접 답사한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학부)와 글로벌스포츠산업학과(대학원) 학생과 연구원들의 칼럼을 게재한다. <편집자주>

 

축구 그리고 축구장이 지녀야 할 가장 큰 덕목은 무엇일까?

 

축구 경기장에 도착해 자신의 좌석을 찾고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고 축구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에 감탄하고 화장실을 이용하고 가족 또는 친구와 매점에서 음식을 사먹고 경기가 끝난 후 집에 돌아가는 것. 이렇듯 경기장을 찾은 관중이 경험하고 느낀 모든 것을 ‘팬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팬 경험’은 경기장 재방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구단은 이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왔고 현재도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좋은 팬 경험은 결과적으로 구단의 수익을 증가시켜준다고 할 수 있다.

 

팬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다양하지만 필자는 호주의 여러 스포츠경기장을 다니며 ‘시설이 주는 ‘팬 경험’에 대해 집중하고 기록했다. 본 글에서 주로 다룰 내용은 경기장 좌석이 주는 분위기, 안내판 및 표지판의 친절하고 명확한 디자인 그리고 역사 및 기록의 요소이다. 이 세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한국 경기장 시설과 호주 스포츠경기장 시설을 비교하고 분석해 앞으로 한국 축구장이 나아가야 하는 바를 제시하고자 한다.

 

K리그 구단 중 관중 수와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전북현대, FC서울, 수원삼성의 홈구장인 전주월드컵경기장, 서울월드컵경기장, 수원월드컵경기장 이 세 경기장의 시설에 대해 알아보자.

누구의 경기장인가?

먼저 전주월드컵경기장은 위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3가지 파스텔 톤의 좌석을 사용하고 있다. 이 파스텔 색상이 전주 특산품인 한지를 상징한다고 한다. 하지만 전주월드컵경기장은 2002년부터 전북의 홈구장으로 사용되었고 ‘전북의 홈 경기장’으로 강하게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경기장 내부로 들어온 순간 전북의 홈구장이라는 느낌은 별로 강렬하지 않다. 전주시설관리공단은 2012년 전북을 상징하기 위해 좌석 아래 회색 바닥을 녹색으로 칠하는 시도를 했지만 아직도 전북을 상징한다는 느낌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서울월드컵경기장 역시 전주와 마찬가지다. 서울의 대표 색상이 아닌 회색 좌석을 사용하고 있다. 위층에 서울 대표 색상을 가진 천을 사용하여 홈구장의 느낌을 살린 상태이긴 하나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수원월드컵경기장은 위 두 경기장과 달리 좌석이 알록달록하다. 수원과 월드컵을 상징하는 그림을 표현하기 위해 좌석의 색상이 다르다. 또한 서울과 마찬가지로 위층에 수원을 상징하는 파란색 천을 사용하고 있다. 수원월드컵경기장을 방문했을 때 타 구장에서 느끼지 분위기를 느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느낌은 수원월드컵경기장의 좌석이 뿜어내는 특유의 분위기였던 것 같다.

 

또한 수원월드컵경기장이 건축될 당시 예산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은 수원시는 시민 1인당 10만원의 성금으로 경기장 건립에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시민 1인 1의자 갖기 운동’을 펼쳤고 좌석 뒷면에 기부자들의 이름을 새긴 명판을 부착했다. 최근 명판 관리가 소홀하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시민들이 직접 경기장 건설을 도왔다는 뜻 깊은 역사가 존재하기 때문에 앞으로 잘 관리를 한다면 그 의미와 역사를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경기장 안내판과 표지판에 대해 살펴보자. 안내판과 표지판은 경기장에서 길을 찾을 때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기본적으로 안내판과 표지판의 목적은 안내 및 정보 제공이므로 명확하고 가시성이 좋아야 한다. 여기에 구단을 상징하는 색이나 그림을 사용한다면 구단의 정체성이 더욱 잘 드러난 안내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한국 축구 경기장에 설치된 안내판의 명확성과 가시성은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또한 안내판과 표지판이 설치된 지 15-20년이 지나 노후화되었기 때문에 누구라도 알기 쉽게 좀 더 직관적이고 친절한 디자인으로 제작될 필요성이 있다. 여기에는 방향,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판뿐만 아니라 화장실, 수유실 등을 나타내는 표지판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역사와 기록

역사와 기록의 요소에는 구단의 전설적인 선수 사진, 선수 동상, 역대 유니폼 전시, 구단 연대표 등이 포함될 수 있다. 미국, 호주 그리고 유럽의 경우, 경기장 내부의 벽이나 천장 등 곳곳에서 구단 역사와 기록에 관련된 전시물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구단의 역사가 담겨있는 전시물은 구단 특유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팀에 대한 애착심, 자긍심 고취시키며 팬경험 또한 향상시킬 수 있다.

 

역사와 기록의 정점은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서울과 수원 월드장경기장에도 각각 월드컵 기념관, 축구 박물관이 존재한다. 두 곳 모두 2002 한일 월드컵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마스코트, 축구공, 축구화, 유니폼 등 당시 월드컵과 관련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한일 월드컵 관련 전시 외에도 K리그 연대표, 한국 축구 역사와 관련된 물품 그리고 세계 각국의 깃발 등을 보관하고 있다. 한국 축구 역사를 기념하고 보존하고자 하는 취지는 좋지만 실제로 방문을 하게 된다면 조금 어지럽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전체적으로 전시물이 빈약하고 잘 정돈되어지지 않은 느낌이다. 또한 2002년 당시의 그 흥겨웠던 분위기가 제대로 재현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당시 거리나 전철 등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축제 같은 분위기를 담은 사진이나 모형 또는 디스플레이를 활용해 당시의 길거리 응원 문화와 극적인 경기, 골, 인터뷰 등을 담았으면 만족도가 더 높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월드컵 기념관은 현재 대한축구협회에서 한국 축구 박물관으로 리모델링을 진행하고 있다고 하니 좀 더 정리되고 만족도가 높은 박물관이 되기를 희망한다.

 

호주. 지역, 팬 친화적 경기장

지금까지 한국 축구 경기장의 밋밋한 좌석 디자인, 명확하지 않은 표지판/안내판 디자인, 미흡한 역사 박물관 등 시설의 문제점을 확인했다. 호주 사례를 통해 한국의 경기장 시설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미래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다.

 

사례에 앞서 호주의 스포츠에 대해 간단하게 이해하고 넘어가자. 호주는 스포츠에 굉장히 열정적인 국가다. 한국에서는 비교적 생소한 크리켓, 럭비를 비롯하여 골프, 카 레이싱, 경마 등 다양한 스포츠들이 활성화되어 있다. 또한 호주오픈, 멜버른컵, 포뮬러 원 등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스포츠 사랑이 특별한 호주 국민들은 경기장을 단순히 경기가 펼쳐지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기능과 여가 시설을 갖춘 장소로 인식하고 있고 호주의 스포츠 경기장 또한 팬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러한 호주의 스포츠 사랑에 걸맞게 스포츠 경기장 디자인 수준 또한 높은 편이다.

“Suncorp Stadium” - 좌석을 활용한 경기장 분위기

 

호주 브리즈번에서 방문한 Suncorp Stadium(이하 Suncorp)은 도시 외곽에 주로 건설되는 일반 스타디움들과 다르게 주거시설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Suncorp의 옥상 라운지에서 주변을 살펴보면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주거시설과 밀접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Suncorp은 팬들이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경기장 주변을 고려하고 분위기를 잘 살린 Suncorp의 매력적인 요소들을 살펴보자. 팬들이 Suncorp에 입장하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빨강과 주황색으로 물결치는 좌석 디자인일 것이다. 이 좌석 디자인은 호주에 넓게 분포하고 있는 사막의 모래 바람 등을 표현한 것이다. 부드럽게 물결치는 좌석 디자인은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례인데 이 디자인의 장점은 바로 관중이 많아 보이는 효과를 준다는 것이다. 관중들은 이러한 역동적인 디자인 속에서 경기에 집중하며 즐길 수 있다. 또한 Suncorp Stadium을 홈구장으로 쓰고 있는 Brisbane Roar FC와 Queensland Reds 팀의 색깔도 각각 주황색과 빨강색이어서 팀의 정체성도 살릴 수 있는 좋은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Suncorp의 지붕은 낮게 디자인 되어있는데 이는 경기장 주변을 고려한 디자인이다. Suncorp은 주택가와 인접한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경기가 펼쳐지는 동안 주민들에게 악형향을 끼칠 소음과 빛 공해를 고려해야 했고 그 해결책으로 낮은 지붕을 설치하게 되었다. 이 지붕은 상단 관중석과 거의 맞닿을 듯이 설계되어 있는데 이러한 지붕을 통해서 외부로 나가는 소리와 빛을 최소화하고 경기장 안으로 소리를 응축시켜 분위기를 더욱 달아오르게 한다. 

“AAMI Park” – 명확한 디자인

호주에서 방문했던 모든 구장들이 전반적으로 안내판과 표지판이 직관적이고 눈에 잘 들어올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사례로 AAMI Park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호주 멜버른에 위치한 AAMI Park는 다른 경기장과 달리 직접 축구 경기를 관람했고 이 곳을 방문한 관중의 입장에서 경기장을 이용할 수 있었다. 축구 경기가 시작되고 나서 수많은 인파로 인해 정신이 없었지만 AAMI Park의 표지판들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눈에 잘 들어올 만큼 심플하고 굉장히 명확했다.

 

식음료 판매대, 수유실, 머천다이징샵 등을 나타내는 표지판들이 글자와 픽토그램으로 구성되어 알기 쉽게 정보를 전달해주었다. 또한 좌석을 찾아가는 길목마다 안내판 뿐만 아니라 눈에 띄는 연두색 벽화가 있어 현재 위치를 쉽게 알 수 있었다. AAMI Park를 처음 방문했고 심지어 외국인의 입장이었지만 심플하고 직관적인 AAMI의 안내판 및 표지판 디자인들은 오히려 ‘친절하다’라는 인상까지 줄 정도였다.

“Melbourne Cricket Ground” – 역사와 전통

1853년 호주 멜버른에 설립된 Melbourne Cricket Ground(이하 MCG)는 2005년 12월 국가적 유산 목록에 포함되어 호주 스포츠 역사를 대표하는 구장으로 거듭났다. <Since 1853>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MCG는 재건축을 통해 역사와 전통을 현대와 조화시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멜버른의 랜드마크가 되었고, 이러한 MCG의 역사 보존 활동의 일환으로 National Sports Museum (이하 NSM)이 탄생하게 되었다. 현재 NSM은 MCG의 경기 외적 방문 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MCG와 호주 스포츠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NSM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NSM에는 다양한 컨텐츠가 존재한다. 호주 스포츠 갤러리, 올림픽 박물관, 호주 스포츠 명예의 전당, 호주 크리켓 명예의 전당, 호주 축구 전시, 경마 챔피언 전시를 포함하여 그 날의 경기나 스포츠 이슈를 다룬 일시적인 전시를 한다. 이렇게 다양한 역사들이 테마별로 잘 정리되어 있어 관람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디자인 되어있다.

그러나 역사 박물관이라 해서 NSM이 지루하고 고전적일 것이라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NSM에는 다양한 디스플레이와 흥미로운 게임존이라는 두 가지 큰 장점이 존재한다. NSM은 다양한 디스플레이를 통해 전통과 역사를 현대의 디지털 기술과 적절히 결합하여 상당히 흥미롭게 전시를 구성하고 있다. 디스플레이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시각적인 자료를 제공하여 역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전시관에 설치된 터치 스크린 디스플레이 (쌍방향 디스플레이)를 통해 관람객이 능동적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게 구성하였다. ‘게임존’은 관람객들이 직접 스포츠를 참여할 수 있는 게임 형태의 공간이다. 축구부터 시작해서 핸드볼, 사이클링, 호주식 풋볼, 넷볼, 양궁, 크리켓 등 총 10가지의 게임이 마련되어 있다. 짧지만 강렬한 경험을 선사하는 NSM의 게임존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스포츠가 친숙해 졌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설명한 디스플레이와 게임존 이외에도 관람객들의 이동 동선을 고려한 인테리어와 언제든 편하게 쉬면서 관람할 수 있는 다수의 소파 설치 등 관람객친화적인 요소가 굉장히 많았다. 이러한 특징을 보유한 NSM은 단순히 역사 보존의 기능뿐만 아니라 팬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는 매력적인 박물관이다.

 

한국 K리그

지금까지 스포츠 경기장에서 느낄 수 있는 팬 경험 중 ‘시설’과 관련된 팬 경험을 한국과 호주 사례를 통해 알아봤다. 한국과 호주 경기장의 좌석, 안내판 및 표지판, 역사와 기록이 어떤 차이를 보이고, 이러한 요소들이 팬 경험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한국 축구 경기장도 필수적인 시설은 모두 갖춰져 있다. 하지만 2~30년이 흐르면서 경기장이 노후화 되었고 내부 시설 디자인과 역사 및 기록 보존이 미흡하다. 또한 K리그 구단들이 경기장을 사용한 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장 자체에 구단만의 분위기가 녹아 있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는 프로구단이 지자체 소유의 경기장을 최대 5년까지밖에 임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스포츠산업진흥법이 개정되며 최대 25년까지 임대 가능하게 됐다. 이를 통해 프로구단이 지자체와 적절한 합의를 통해 경기장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실제로 스포츠산업진흥법 개정에 참여한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스포츠개발원 정책개발실 소속의 김대희 박사는 이러한 진흥법에 대해 “관중이 늘고 구단은 자생력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더 나아가 프로 구단들의 시설 투자를 이끌어내면 한국도 스포츠 선진국처럼 좋은 구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현재 한국은 구단의 자생력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구단의 수익이 증대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팬들 즉, 소비자가 지속적으로 경기장에 방문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경기장에 방문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팬 경험’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앞서 소개한 호주 사례처럼 경기장 분위기 조성, 구단의 역사 활용과 더불어 팬들을 고려한 디자인을 도입한다면 팬들은 좀 더 만족스러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고 팀에 대한 애정 또한 깊어질 것이다. 이렇듯 팬들을 만족시킨다면 관중 수는 증가할 것이고 관중 수의 증가는 곧 자연스레 프로축구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글= 노웅기, 임수지(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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