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축구는 365일, 1주일 내내, 24시간 돌아간다. 축구공이 구르는데 요일이며 계절이 무슨 상관이랴. 그리하여 풋볼리스트는 주말에도 독자들에게 기획기사를 보내기로 했다. Saturday와 Sunday에도 축구로 거듭나시기를. 그게 바로 '풋볼리스트S'의 모토다. <편집자 주>

축구를 잘하는 이름이 따로 있는 것일까? 축구 선수로 성공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하는데, 유독 자주 보이는 이름이 있다. 그 배경에는 이미 성공한 스타의 이름을 따오는 경우도 있고, 해당 지역에 유독 인기 있는 이름인 경우도 있다. 눈에 띄는 동성이인, 세계 축구의 정점에서 대물림되는 이름, 그리고 대스타의 이름을 이어 받은 경우까지. ‘풋볼리스트’가 축구 선수의 이름에 얽힌 사연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봤다.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 리오넬 메시는 그의 고향 아르헨티나 로사리오를 혼란에 빠트렸다. 스페인 ‘문도 데포르티보’는 2014년 9월 “로사리오 시가 출생한 아기에게 ‘메시’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내용의 새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보도했다. 로사리오에 거주하는 부모들이 자신의 아기가 리오넬 메시처럼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작명하자, 해당 지역에 너무 많은 메시가 생기면서 이 같은 황당한 법안이 생겼다.     

아들을 존경하는 축구 선수처럼 키우기 위한 아버지의 작명 일화도 있다. 지난해 3월의 일이다. 골키퍼 송범근이 한국 U-19대표팀에 차출돼 독일 원정 경기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독일 현지에는 U-19대표팀 외에도 또 다른 한국인이 있었다. 지금은 한국 A대표팀에서 전력분석관으로 일하는 차두리였다. 차두리는 2015년에 은퇴한 뒤 독일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었다. 차두리와 송범근의 만남은 차두리가 어린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U-19대표팀 훈련장을 찾으면서 이뤄졌다.

차두리는 1980년생이다. 송범근은 1997년생이다. 둘의 나이 차이는 17년이나 난다. 송범근에게 차두리는 대선배다. ‘형’보다는 ‘삼촌’이란 호칭이 어울린다. 서로 친해지기엔 너무 큰 간격이다.

둘의 ‘밀접한 관계’는 이름을 통해 이어졌다. 차두리는 ‘범근’이 익숙하다. 차두리의 아버지이자, 한국이 자랑하는 선수의 이름이다. 차두리는 아버지 차범근과 같은 이름의 송범근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차두리는 독일 훈련장에서 만난 송범근과 사진을 찍고 개인 SNS에 올렸다. “U-19대표팀 골키퍼 범근이. 맞다. 이름이 범근이. 범근아 다치지 말고 잘해. 이름 부를 때마다 움찔하게 된다. 범근아 파이팅. 차범근. 아니다 송범근 파이팅.”

송범근의 이름은 철저히 계획된 작명이었다. 송범근의 부친은 차범근의 열혈 팬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차범근과 같은 선수가 되길 바랐다. 비록 포지션은 다르지만, 그 정도로 자랑스러운 한국의 대표 선수를 원했다. 송범근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축구를 시작한 것도 차범근 축구교실에서였다. 송범근이 차범근 축구교실에서 훈련할 당시 부친이 “범근아~”라며 아들의 이름을 크게 외칠 때면 현장에 있는 코치들의 눈이 휘둥그레지곤 했다.

1994 월드컵 우승 멤버인 브라질의 베베투는 아들의 이름을 마테우스라고 지었다. 독일의 로타어 마테우스를 떠올릴 수 있다. 베베투는 “현역 시절 내가 만난 최고의 선수를 기리기 위해서다”라고 설명했다. 로타어 마테우스는 미드필더와 수비수로 활약하며 위르겐 클린스만, 안드레아스 브레메 등과 함께 인테르밀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로타어 마테우스와 동시대에 활약했던 디에고 마라도나는 독일의 디에고 콘텐토에게 영향을 미쳤다. 콘텐토의 부모는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이다. 디에고 콘텐토는 나폴리의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의 이름을 딴 것이다.

축구 실력으로 별명이 본명화 된 선수도 있다. 가나의 국민 영웅 아베디 펠레. 그의 본명은 아베디 아예우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실력을 보였고, 플레이 스타일과 활약 정도가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 펠레와 견줄 만하다는 이유로 아베디 펠레라는 별명을 들었다.

주변에서 지어준 별명은 어느덧 본명처럼 돼 버렸다. 아베디 펠레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를 거치며 아프리카 축구의 상징이 됐다. 1981년부터 1998년까지 가나 대표팀에서 뛰며 73경기 출전, 33골을 기록했다. 1982년엔 가나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에 공험했다. 개인적으로는 1991년부터 3년 연속 아프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로 선정됐다. 그의 실력은 진짜 펠레도 인정하는 수준이 됐다. 아베디 펠레는 2004년 3월 펠레가 선정한 최고의 축구 선수 FIFA 100으로 뽑혔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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