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이름을 가리고 본다면 리오넬 메시의 기록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초라하다. 바르셀로나 선발 선수 중 패스 성공률 최저, 볼 터치 8위, 키 패스 0회. 드리블 성공 2회, 공 소유권 상실 2회, 볼 터치 실수 2회, 각종 수비 기록 전무, 롱 패스 4회 중 1회 성공, 슛 1회가 풀타임을 소화한 메시의 기록이었다.

15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열린 ‘2016/2017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16강 1차전에서 바르셀로나가 파리생제르맹에 0-4로 대패했다. 홈에서 강한 바르셀로나라지만 원정 득점을 하나도 하지 못하며 8강 진출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조별리그에서 5경기만 뛰고 10골을 몰아친 메시의 초인적인 득점력은 토너먼트 첫 경기에서 사라졌다.

PSG는 바르셀로나보다 팀으로서 더 우세했다. PSG의 우나이 에메리 감독은 시즌 초 다양한 전술 실험으로 긴 과도기를 겪으며 비판 받았지만 2017년 들어 10승 1무를 거두며 팀을 정상화시키고 있었다. 여기에 상대적 강팀을 만났을 때 오히려 지략이 발휘되는 에메리 감독의 ‘중위권 명장’ 기질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다.

PSG는 강한 압박으로 바르셀로나를 굴복시켰다. PSG가 성공시킨 태클은 31회로 바르셀로나의 18회를 크게 상회했다. 과감하게 공을 빼앗은 뒤 전방으로 돌진했다. 전반 18분 앙헬 디마리아의 프리킥 득점을 통해 리드를 잡기 시작한 PSG는 경기 내내 용감하게 달려들며 바르셀로나 공격을 저지했다. 바르셀로나는 PSG의 일차 압박에서 빠져나온 뒤에도 하프라인 부근에서 다시 압박을 받으며 공격이 지체됐고, 심지어 재차 공을 빼앗기기도 했다. PSG의 압박에 밀려 마르크안드레 테어슈테겐 골키퍼에게 공이 후퇴했다가 느릿느릿 다시 전진하는 과정을 반복할수록 바르셀로나 공격의 위력은 떨어졌다.

후방에서 만들어나가는 빌드업조차 PSG가 더 위력적이었다. 바르셀로나의 수비 조직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바르셀로나는 수비할 때 공격수들을 좀처럼 가담시키기 않았다. 바르셀로나 수비 조직은 단 7~8명으로 형성됐다. PSG가 좌우 공격을 빠르게 전환하면, 숫자가 부족한 바르셀로나 수비는 공의 위치에 맞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메시, 메시아가 되지 못했다

바르셀로나의 전체적인 경기력이 떨어진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시즌부터 줄곧 제기돼 온 문제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르셀로나가 여전히 왕좌를 다툴 수 있는 건 스타 선수들의 개인 능력과 놀라운 호흡이 비결이었다. 특히 리오넬 메시의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정적이다’는 비판 속에서도 어떻게든 유지돼 왔다.

PSG 수비를 상대한 메시는 역대 손꼽을 정도로 부진했다. 메시는 최근 선호하는 동선대로 중앙으로 자주 이동하며 공을 잡았다. 이때 PSG 수비가 완강하게 저항하자, 메시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골대 쪽을 등지고 ‘역주행’ 드리블로 볼 키핑에 전념하다가 그마저 실패해 공을 수차례 빼앗겼다. 상대 골대를 바라보며 퍼스트 터치를 한 뒤 공격적인 돌파를 하는 원래 모습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전반 40분 율리안 드락슬러가 넣은 PSG의 두 번째 골은 미드필드까지 내려간 메시가 공을 빼앗겼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메시는 아크 서클까지 내려가 직접 빌드업을 하려 했지만, 압박이 적다고 생각하고 잠깐 머뭇거리는 사이 아드리안 라비오, 마르코 베라티, 드락슬러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공을 빼앗은 베라티가 곧장 전진했고, 드락슬러는 문전으로 뛰어올라갔다. 바르셀로나 수비 숫자는 많았지만 순식간에 속도를 붙여 달려드는 드락슬러를 막지 못하고 슈팅을 허용했다.

메시는 드리블이 통하지 않을 때도 다양한 무기로 경기에 기여할 수 있는 선수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벌려주는 패스 역시 메시의 무기 중 하나다. 그러나 이날은 조르디 알바의 문전 침투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메시의 패스 코스가 제한됐다. 최근 메시의 ‘필살기’로 떠오른 프리킥조차 위협적이지 못했다.

이날 메시는 바르셀로나 공격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교체까지 고려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중요한 경기에서 모두 뛰고 싶어 하는 메시를 뺀다는 건 메시의 성격과 팀내 비중을 고려할 때 불가능한 선택이었다. 결국 바르셀로나는 메시, 루이스 수아레스, 네이마르의 공격진을 유지한 채 미드필더들만 갈아 끼우며 큰 의미 없는 교체를 했다. 메시는 풀타임에 집착하는 선수로 알려져 있고, 실제 기록을 봐도 바르셀로나의 중심으로 올라선 2008/2009시즌부터 UCL에서 단 4번 교체 아웃됐다.

 

이니에스타도 부진, 네이마르만 생고생

메시만 문제였던 건 아니었다. 이날 바르셀로나는 전반적인 팀 플레이가 붕괴됐다. 네이마르만 직접 드리블로 공격을 전개하느라 생고생을 했다. 이 경기에서 바르셀로나의 전체 돌파 횟수는 12회로, PSG의 13회보다 낮은 기록에 그쳤다. 그 중 8회를 네이마르 혼자 책임졌다. 대부분이 바르셀로나 진영부터 PSG 진영까지 동료의 도움 없이 혼자 공을 운반하느라 감행한 장거리 돌파였다.

네이마르는 기껏 공을 몰고 올라간 뒤 동료의 지원을 받지 못해 고립되다가 결국 빼앗기는 경우가 많았다. 레프트백 알바, 왼쪽에 치우친 미드필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네이마르를 도와주지 못했다. 세 선수는 네이마르가 영입된 2013년 이후 꾸준히 호흡을 갈고닦아 온 사이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위협적인 공격 루트가 붕괴했다.

특히 이니에스타의 경기 기여도는 기대에 비해 처참한 수준이었다. 이니에스타는 72분만 뛰고도 74회 패스(제라르 피케에 이어 팀내 2위)를 하며 수치상 좋은 경기를 한 듯 보이지만, 대부분 한 템포 느린 횡 패스이거나 동료 선수가 받기 불편한 자세에서 주는 전진 패스였다. 네이마르가 빠르게 드리블해 올라갈 때 적절한 타이밍에 접근해 패스 코스를 열어주던 이니에스타는 없었다.

왼쪽 윙어를 능숙하게 소화할 수 있는 이니에스타는 네이마르와 호흡을 맞추며 측면과 중앙을 넘나드는 플레이를 해 왔다. 팀 공격이 잘 되지 않을 때는 메시와 함께 미드필드 중앙에서 상대 수비를 붕괴시키는 역할도 맡는다. 이날 이니에스타는 공수 양면에서 기여도가 떨어졌다.

후반 10분, 디마리아가 중거리슛을 넣기 전 이니에스타에게 방어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디마리아 뒤에서 한 발 늦게 달려든 이니에스타는 막는 둥 마는 둥 했고, 디마리아는 이니에스타를 가볍게 튕겨낸 뒤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왼발 중거리슛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골이 들어가자마자 중계 카메라가 디마리아 다음으로 잡은 건 이니에스타의 피곤한 얼굴이었다.

이니에스타와 세르히오 부스케츠를 제외한 미드필드의 한 자리는 여전히 주전이 정해지지 않았다. 이날 선발 출장한 고메스, 교체 투입된 이반 라키티치와 하피냐 알칸타라, 그 외에도 데니스 수아레스, 아르다 투란 등이 있지만 아무도 확신을 주지 못하는 상태다. 이니에스타에게 지워진 짐이 무겁다. 이니에스타의 부진은 곧 미드필드 전체의 붕괴로 이어졌다.

 

잘 준비된 PSG, 바르셀로나를 굴복시킨 압박

바르셀로나의 전체적인 컨디션 관리가 완전히 실패했다고 볼 수 있는 경기 내용이었다. PSG 선수들이 훨씬 상쾌하게 90분 내내 질주했다. PSG 센터백 프레스넬 킴펨베가 바르셀로나 미드필더 안드레 고메스를 경쾌한 드리블로 돌파한 뒤 크로스를 올릴 정도로 리듬 차이가 명백했다.

지난 수년에 걸쳐 ‘MSN’의 개인 기량을 활용하는 쪽으로 축구 방식을 서서히 바꿨지만, 바르셀로나의 전통적인 운영 방침은 여전히 토털풋볼이다. 선수 전원이 공수에 가담하며 조직적으로 움직이려면 컨디션 관리가 중요하다. 1980년대 압박축구를 연구한 감독들이 가장 골몰했던 부분도 운동생리학과 영양 관리를 통해 선수가 90분 내내 집중할 수 있는 컨디션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주젭 과르디올라 감독(현 맨체스터시티 감독)이 바르셀로나에서 성공한 비결로 1~2월의 성공적인 체력 관리가 꼽히기도 한다.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조직을 갖추지 못하고 분열돼 있는 가운데, PSG 선수들은 확연히 나은 집중력으로 강한 압박을 단행했다. PSG 공격진은 다 같이 압박에 가담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역할을 맡았다. 드락슬러는 왼쪽 측면을 직접 돌파해 기회를 만드는 플레이에 중점을 뒀고, 디마리아는 오른쪽에서 중앙을 바라보고 좋은 패스를 공급하는 한편 위협적인 왼발 슛을 날렸다.

바르셀로나 출신 베테랑 수비형 미드필더 티아구 모타의 부재가 PSG의 약점으로 꼽혔지만, 이날은 오히려 장점이 됐다. 라비오, 베라티, 블래즈 마튀디는 엄격하게 위치를 정하지 않고 돌아가며 과감한 압박을 했다. 특히 모타의 자리를 대체한 라비오의 경우 안정적인 패스 전개보다 자유분방한 플레이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날 바르셀로나의 압박이 약했기 때문에 라비오의 과감한 드리블 전진은 PSG의 좋은 옵션이었다. 라비오는 태클 3회, 가로채기 4회(팀내 최다), 파울 3회(팀내 최다) 등 전진 수비에 강점을 보이며 이날 PSG의 콘셉트였던 압박 축구를 주도했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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