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류청 기자= “멀리까지 오셨네요?”

 

베테랑은 다르다.

 

기자는 환영 받는 직업이 아니다. 더군다나 팀을 만들어가는 전지훈련지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기자는 팀 속살을 볼 수 있어서 좋지만, 감독이나 구단에서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팀을 보여주는 게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이가 베테랑이다. 분위기를 녹이는 한 마디를 알고 있다. ‘풋볼리스트’가 대전시티즌 유니폼 입은 김진규를 봤을 때 안도했던 이유다.

 

“사람 정말 좋다.” 김진규와 함께 생활한 선수들, 특히 후배들은 김진규 이야기에 엄지 손가락을 들어올린다. “감독과 선수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는다”, “남자답다”는 평가가 주류다. 김진규 주위는 어디나 시끌벅적하다. 대전 유니폼을 입은 뒤에는 좀 더 소리가 커졌다. 이적하자마자 주장 완장을 찾기 때문이다. 김진규는 이름도 몰랐던 후배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얼굴에 철판 깔았다(웃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김진규는 지난 2년 동안 많은 일을 겪었다. 2016시즌을 앞두고 FC서울과 이별했을 때는 은퇴를 고려하기도 했다. 다른 팀에서 온 좋은 제안도 거절했을 정도 마음이 허했다. 그때 김진규를 잡아준 이가 바로 아내 김효희 씨(당시 여자친구)다. 아내는 “얼마를 받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낫지 않냐”며 김진규를 다시 일으켰다.

 

파타야(태국)와 파지아노오카야마(일본)에서 극과 극 생활을 한 김진규는 2017시즌을 앞두고 고심 끝에 대전 유니폼을 입었다. 김진규는 이영익 대전 감독과 약속을 져버릴 수 없었다. “의리 같은 거 지키고 살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라며 웃었다. 그는 “프로 15년차인데 이런 감독은 처음이다. 모든 게 재미있다”라며 이 감독에 믿음을 보였다. 물론 이 감독 믿음이 바라는 것도 잘 안다.

 

“무조건 승격해야 한다. 서울에서 어떻게 승점관리로 우승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황)인범이가 있지 않나(웃음)”

다음은 김진규 인터뷰 전문.

-지난해 12월에 결혼했다. 유부남이 돼서 전지훈련 오니까

그렇다. 와이프를 집에 두고 와야 하니까. 그게 참 그렇더라. 애를 빨리 낳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하나보다는 둘이 낫지 않을까? 와이프가 외로움이 많다.

 

-대전 이적은 의외였다. 오카야마에서 잘 지내고 있지 않았나?

사실 일본에 다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영익 감독님이 전화해서 ‘해보자’라고 하더라. 그래서 ‘예’했다. 살면서 의리 같은 거 안 지키려고 했는데,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면 감독님과 함께 하기로 약속했었다. 한국에서도 나를 원한 팀이 있었다. 하지만 대전보다는 나중에 온 제안이었다. (제안한 팀이) 클래식이라고 해서 가기도 그렇고…

 

-팀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아는 선수도 없었을 것 같은데

막막했다. (팀에) 어떻게 적응할까 했다. 그냥 맨 바닥에 헤딩하는 느낌이었다. 팀에 어린 선수가 많다고 이야기 들었다. 내가 컨트롤해줄 부분도 있다. 오자마자 ‘철판’ 깔았다(웃음). 먼저 다가가고 소리지르고 그랬다. 선수 많이 바뀌니까 분위기가 쳐져 있었다. 나는 그냥 왔다가는 선수가 아니다. 그래서 얼굴에 ‘철판’ 깔고 했다. 이제는 선수들과 친해졌다.

 

-몇 번째 전지훈련인가?

이제 전지훈련도 15년차다. 그만둘 때도 됐고(웃음). 요즘은 언제 은퇴해야 하나도 생각하고 있다. 작년에 그만두려 하다가 와이프(당시 여자친구)가 만류해서 은퇴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나오며 그만두려 했다. 다른 좋은 팀도 갈 수 있었다. 그 팀에서는 고맙게도 이적료도 준다고 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나오면서 좌절감? 그런 게 좀 있었다. 딴 팀 가기 싫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도 서울에 있을 때 주장도 하고 그래서 정이 있었나 보다. 그만두겠다고 팀도 안 찾고 있으니 와이프가 보기 안타까웠던 것 같다. ‘돈을 얼마를 받던 오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낫지 않겠나’라고 하더라. 와이프는 나보다 7살이나 어린 친구다. 뒤통수 맞은 느낌이었다. 1월 중순부터 팀을 알아봤고 파타야로 이적했다.

 

-파타야와 오카야마에서 뛰었다. 두 팀 모두 괜찮았나?

오카야마는 좋았다. 파타야는 여자친구 때문에 급하게 옮긴 팀이다. 나는 시즌 중에는 생활패턴이 정해져 있다. 아침부터 좌~악 있다. 그 패턴이 어긋나면 불안해 하는 유형이다. 파타야에서는 그게 없었다. 선수들도 프로 마인드가 조금 떨어졌다. 운동시간도 어기는 경우가 많았다. 와이프도 경기보고 하면서 ‘여기에 있으면 안될 것 같다’고 하더라. 운동한 친구는 아니지만 밖에서 3년 이상 축구를 보니까 잘 아는 부분도 있다. 환경이 워낙 좋지 않으니 축구할 수 있는 환경을 찾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러다 오카야마로 이적했다. 오카야마는 정말 잘 갔던 것 같다. 틀이 잡힌 팀에 갔다. 당시 감독님에게 축구를 잘 배웠다. 기본적인 부분을 다시 배우면서 많은 걸 느꼈다. 나는 수비할 때 존을 쓰는 스타일인데 맨투맨도 확실히 배웠다. 선수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차도 마시고 골프도 같이 쳤다. 정말 재미있었다.

 

-K리그에서는 부담이 커서 그런 즐거움이 더 커 보였던 게 아닐까?

서울은 성적에 모든 게 맞춰져 있었다. 서울에서는 한 경기 지면 연패 한 듯한 분위기가 됐다. 그리고 다는 말할 수 없지만, 축구 말고도 (주장으로서) 생각할 게 많았다.

 

-서울을 떠나 파타야와 오카야마를 거쳐 다시 대전에 왔다. 부담감은 많이 줄었나?

아직도 좀 있다. 그 때만큼은 없어도 지금은 팀이 성적을 내야 한다. 팀에 경험 많은 선수도 많지 않다. 고참들이 뭉쳐서 선수들을 데려가야 한다. 챌린지 경기를 보니 수비안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라. 공격은 어떻게든 골을 넣을 수 있다. 수비만 안정시키면 승산이 있을 것 같다.

-K리그 복귀하자마자 주장 완장을 다시 찼다

그렇게 됐다(웃음). 그런데 감독님이 스트테스를 주지 않는 분이다. 큰 틀만 잡아주고 ‘너희가 해봐라. 같이 풀어봐라’ 그렇게 말하는 분이다. 프로 15년차인데 이런 감독님은 처음이다. 감독 1년차인데 여유가 있다. 어떤 감독도 1년차 때는 이렇게 못한다. 성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그걸 선수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당신이 안고 가려고 한다. ‘선수는 경기만 해야 한다. 훈련만 해야 한다’는 철학이 강하다.

 

-그래서 신나게 축구하고 있나?

재미있다. 감독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훈련 자체가 재미있다. 훈련할 때만 바짝 한다. 다른 부분에서는 프로 대접을 해준다. 선수 몸은 선수가 가장 잘 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도 그렇다.

 

대답을 마친 김진규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야야 황인범 이리 와바라.” 다음 인터뷰를 위해 호텔 로비를 서성이던 황인범을 불러 옆에 앉혔다. 김진규는 “황인범이 너무 축구를 잘한다. 인범이 기사를 많이 써달라”며 웃었다. 선배 앞에서 긴장한 황인범이 조금 안쓰러워 “너무 군기 잡는 것 아니냐?”고 묻자 김진규는 대번에 “절대 긴장하는 애가 아니다. 어제도 커피 산다고 카드 달라고 하더라”라고 답했다. 황인범은 수줍게 “네 잔 샀다”라고 말했다. 김진규는 대전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고, 기존 선수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김진규는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황인범과 대전 이야기로 인터뷰를 마쳤다.

 

“인범이 있으니까. 올해 무조건 승격해야 한다. 다른 챌린지 팀들도 영입을 정말 많이 했다. 주변사람들에게 FA컵 4강에 챌린지 팀이 두 팀 정도 갈 수 있다고 말한다. 클래식과 붙어도 안 떨어질 팀이 많다. 하필 내가 들어오니까(웃음). 성남FC에 좋은 선수들이 많지만, 나는 우승하는 법을 안다. 우리는 그 뒤를 따라가다가 그런 팀들이 한번씩 넘어질 때 추월하면 된다. 서울에서 승점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창피할 정도로 수비도 해봤다. 처음에는 참 적응이 안됐는데 시즌 막바지에는 그 승점 1점이 힘이 되더라. 나는 그런 경험을 해봤으니 경기장 안에서 선수들과 함께 잘 만들어보겠다. ‘인범아 이렇게 해봐라’라고 아무리 밖에서 소리 질러도 선수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범이가 나보다 축구를 더 잘하는 데 내 말을 듣겠나(웃음). 안에서 같이 해야 한다. 그런데 인범이 축구 정말 잘한다. 뒤에서 보며 감동했다. 휴가가서 인범이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나만 모르고 다 알더라.”

 

사진=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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