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이철근 전북현대 단장이 심판 매수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한다. 그러나 책임지겠다고 말한 지 8개월이나 지난 시점은 너무 늦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동안 자체 징계를 미루고 국제 징계에 항소하는 등의 행보도 비판을 키웠다.

이 단장은 이미 여러 인터뷰를 통해 사임 의사를 밝혔다. 6일 전북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팬들에게 고별사를 남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서 패소한지 사흘 만이다. 전북은 아시아축구연맹(AFC)의 2017년 AFC 챔피언스리그 참가권 박탈 징계에 불복하고 CAS에 항소했으나 지난 3일 기각됐다. 이 단장은 CAS에서 패소하기 전에 모기업 현대자동차에 사의를 밝혔다며 판결을 보고 물러나는 건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책임지겠다는 말 지켰으나… 너무 늦어 비판 키웠다

이 단장은 전북의 심판 매수 사건이 불거진 지난 5월 “내가 책임저야 한다”며 “상황에 따라서는(사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말을 지켰지만 여론은 여전히 비판적이다. 너무 늦었다는 시각이다. 사임 가능성을 직접 거론한지 259일, 약 8개월이 지났다.

5월 당시 이 단장은 “구단 책임자는 나다. 내가 책임져야 한다. 한 가정의 자녀가 잘못하면 부모가 책임진다. 검찰 수사를 보고 나도 책임 통감하고 있고 책임질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검찰 조사 결과가 나오고 이를 바탕으로 프로연맹이 징계를 내릴 때까지도 이 단장은 계속 자리를 지켰다.

5월 기자회견 당시 최강희 감독은 “한국 사회는 항상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 논란이 일었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감독 자신의 사임 가능성을 암시한 말이었다. 이 말을 이 단장이 막아서며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직접 사임 가능성을 말하고도 반년 넘게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징계가 억울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전북 관계자의 인터뷰가 종종 나왔다.

올해 1월 ‘항소 사건’을 거치며 ‘전북이 징계에 승복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더 거세졌다. AFC 산하 출전관리기구(ECB)에 의해 AFC 챔피언스리그(ACL) 참가 자격을 박탈당한 뒤 CAS에 항소했다. 당시 전북 관계자는 '이중처벌'이라고 주장했고, ‘심판매수와 승부 조작은 다르다’는 점을 들어 명예회복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국제적 기준에선 받아들여지기 힘든 주장이었다. 축구계의 예상대로 전북은 CAS 판결에서 졌고, 책임을 통감하지 않는다는 이미지만 남았다.

 

ACL 불참, 단장 교체… 전북의 미래는?

전북이 지난 9월 한국프로축구연맹 상벌위에서 받은 징계는 승점 9점 삭감과 제재금 1억 원이었다. 징계 수위가 너무 약하다는 비판이 일었다. 결국 징계의 여파로 전북이 우승을 놓치고 2위로 떨어지긴 했지만, 2부리그나 하위스플릿으로 보내야 한다는 여론에 비해 부족했다. 2015년 경남FC의 더 큰 심판 매수 사건이 적발됐을 때 승점 10점만 감점한 선례에 발목 잡혔다는 비판이 나왔다.

전북은 심판 매수의 대가를 오랜 시간이 걸쳐 천천히 치르고 있다. ACL 참가가 무산됐고, 이 단장이 뒤늦게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똑같이 책임을 지더라도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방식이었다.

이 단장의 사임은 전북에 적잖은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5년 내부 승진을 통해 단장직에 오른 이 단장은 최 감독을 선임하고 전북의 성공시대를 이끌어 왔다. K리그 단장 중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능력을 인정받은 인물이다.

이 단장이 이끄는 전북은 "국제 무대에서 꾸준히 성과를 내라"는 현대차의 요구를 지난 2010년부터 충실히 이행했다. 7회 연속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 참가해 우승 1회, 준우승 1회, 8강 2회 등 좋은 성적을 유지해 왔다.

장기적 비전을 그리는 이 단장과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최 감독은 협력과 견제를 반복하며 이상적인 쌍두마차라는 평을 들어 왔다. 이 단장은 최 감독의 요청에 따라 선수단을 보강하는 한편, 예산 범위 안에서 구단을 운영하고 장기적인 투자를 했다. 지난해 ACL 우승 상금의 경우, 구단 내부에선 선수들에게 더 많이 돌아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이 단장이 유소년 시설 확충에 투자하는 방향으로 밀어붙였다.

전북은 5년 단위로 발전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왔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5년 중 단 1년을 마치고 이 단장이 떠났다. 5년간의 목표 과제 중 하나인 유소년 시설은 첫삽을 떴으나, 앞으로 전북이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 단장은 지난해 인터뷰에서 “전북이 발전 중이지만 아직 만족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했다.

여기에 ACL 참가 무산이 겹쳤다. 전북은 ACL 참가를 통한 현대차 홍보 효과를 구단의 존재 근거로 내세워 왔다. 명맥이 끊겼다. 올해 전반기는 U-20 월드컵의 전주 유치까지 맞물려 풀어야 할 일이 많다. 2009년 이후 가장 큰 위기가 될 수 있다.

현대차 고위층에서 전북에 대한 평가는 자주 엇갈렸다. 정의선 부회장은 구단에 대한 애정과 투자 의지를 갖고 있으나, 일각에선 “모기업 사정이 나쁜데 스포츠단에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주장도 지속적으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차기 단장이 관심사다. 지난해 심판 매수로 나빠진 구단 이미지가 나빠졌기 때문에 쇄신 가능한 인물이 올 거란 관측이 우세하다. 새 단장의 방침에 따라 K리그에서 유일하게 정상급 규모를 유지하며 성장 중이던 전북의 운영 방향이 바뀔 수 있다. 

사진= 전북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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