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무르시아(스페인)] 류청 기자= 골키퍼는 그늘 아래 있다. 

골키퍼는 훈련장에서는 가장 굵은 땀을 흘리지만, 경기장에서는 그 땀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포지션이다. 전지훈련을 취재할 때마다 ‘저러다 죽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유일한 포지션이다. 골키퍼 코치는 훈련 중 가장 냉혈한 역할을 맡는 이다. 골키퍼 코치가 움직일 때마다 골키퍼들은 이리저리 뛰며 온몸으로 지구와 만난다.

 

억울함도 크다. 다른 선수는 기록이 양수지만 골키퍼 기록은 음수다. 골키퍼는 얼마나 잘했느냐를 평가 받지 못한다. 누가 상대적으로 덜 못했느냐를 평가 받는다.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지만, 팬들에게는 가장 지탄 받는 포지션이기도 하다. 베테랑 김용대가 “골키퍼는 잘해야 본전”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골대를 지키는 데 매력을 느끼는 이도 있다. FC서울에 이어 울산현대에서도 함께 뛰게 된 김용대와 조수혁도 마찬가지다. 두 선수는 ‘풋볼리스트’와 스페인 무르시아에서 만나 골키퍼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감정과 이야기 그리고 애환에 대해 이야기했다. 두 선수는 “그래도 특수 포지션에 대한 메리트가 분명히 있다”라고 했다.

 

같은 팀에 있는 골키퍼는 관계도 오묘할 수밖에 없다. 골키퍼는 경쟁하며 공존해야 하는 ‘적대적 공생’ 관계다. 서로 훈련을 도우면서 서로를 넘어야 그라운드에 설 수 있다. 김용대는 데뷔 이후부터 선배를 제치고 주전 자리를 차지했던 선수고, 조수혁은 선배 등을 보며 경쟁했던 이다. 이 두 선수가 함께 풀어낸 이야기는 더 깊고 넓었다.

 

아래는 김용대, 조수혁 인터뷰 전문.

-골키퍼 중에 기인이 많고, 골키퍼끼리는 친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김용대(이하 김): 예전과는 다르다. 세대가 달라졌다. 특수 포지션이니 그런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 요즘에는 필드플레이어들과도 잘 어울리고 있다. 예전에는 골키퍼는 (공을) 막는 것만 잘하면 된다고 했지만, 우리는 이제 필드도 잘해야 한다. 필드 플레이 경향이 바뀌면, 우리도 바뀌어야 한다.

 

-단 1명 밖에 나갈 수 없는 포지션이라 스트레스가 극심해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 아닌가?

김: 그렇다. 필드 플레이어는 많이 뛰어다녀 육체적으로 힘들다면 골키퍼는 정신적으로 힘들다. 우리는 많이 뛰지 않지만 한 경기가 끝나면 체중이 2~3kg 정도 빠진다. 우리가 못하면 골을 먹는다. 공이 오면 상당히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관중들은 (우리가 경기 중에) 논다고 생각하겠지만 노는 게 아니다. 욕도 많이 먹는다. 심지어 초등학생까지(웃음). 경쟁도 그렇다. 그 스트레스가 다른 포지션에 비해 더 클 수밖에 없다. 친한 것은 친한 것이고, 같은 포지션에서 경쟁하는 것은 경쟁이다.

 

-김용대는 데뷔 후 바로 주전이 됐고, 조수혁은 뛰지 못한 시간이 더 길다

김: 그렇다. 부산에 있을 때는 정유석 형과 같이 있었고, 성남에서는 김해운 형과 함께 있었다. 서울에서는 (조)수혁이 (김)호준이와 있었고, 호준이는 제주로 떠났다. 주전으로 뛴 시간이 길었지만, 주전으로 나가도 스트레스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못하면 누구든 (내 자리에) 들어올 수 있다. 우리는 자리를 차지하면 오래 가지만 못 차지하면 완전히 처지가 달라진다. 동전의 양면이라고 본다.

 

조수혁(이하 조):  데뷔 후 8년 만에 뛰었다(웃음). 데뷔 이후 김병지 선배, 김호준 형, 김용대 형, 권정혁 형 그리고 유현 형과 함께 있었다. (질문: 8년 동안 못 뛰다가 뛰면 무슨 느낌 인가?) 눈물 났다. 울컥했다. 뛴 시간이 20초 정도였다. 현이 형이 다쳐서 경기 종료 직전에 들어갔다. 남들은 그 시간을 별게 아니라 생각했겠지만, 내겐 특별했다. 그 경기 끝나고 연락이 많이 왔다. 다른 팀 후보 골키퍼들에게 연락이 많이 왔다. 다 사정을 아니까… 와이프도 울었다.

 

-조수혁은 롤모델이 김용대라고 했다. 서울에 있을 때 관계는 어땠나? 선배가 조언을 많이 해줬나?

김: 특별히 조언하지는 않았다. 지도자 스타일이 다르니까 직접 그 차이를 느끼고 습득하라고 했다. 나도 지도자가 바뀔 때마다 그분들이 지시한 것을 다 해본다. 해본 뒤에 받아들일 부분과 버릴 부분을 결정한다. 그렇게 해야 발전이 있다. 수혁이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진 않았다.

조: 용대형이 말은 안 했지만, 뒤에서 보고 느낀 게 많다. 그 전까지는 왜 저렇게 하는지 몰랐던 동작들도 용대 형을 보며 알게 된 게 많다. 요령이나 그런 것도 많이 배우게 됐다. 서울에서 보낸 마지막 시즌에 뛰지는 못했지만 많이 성장했다.

 

-골키퍼 세계는 급변하더라. 주전이 한 순간에 후보로 떨어지고, 클래식 주전이 챌린지로 이적하기도 한다

조: (김)민식이 형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 골키퍼는 항상 준비를 잘하고 있어야 한다. 지금은 후보지만 언제 나갈지 정말 모른다. 용대 형이 주전이지만, 갑자기 몸이 안 좋거나 해서 내가 나갈 수도 있다. 그게 언제인지 모른다. (내) 컨디션이 안 좋을 때 나가게 되면 그게 또 내게는 마이너스가 된다.

 

-결과적으로 훈련도 중요하지만 스트레스 해소하는 것도 매우 중요할 것 같다

김: 나는 생각을 많이 한다. 경기를 다시 보면서 잘된 점을 확인한다.

조: 잘 했던 경기를 다시 본다. 외적으로는 계속 먹는다. 나도 모르게 계속 먹는다. 다르게 풀 방법이 없으니 그냥 먹는다.

 

-김호준(제주)과 인터뷰할 때 들었는데 시즌이 끝나면 내준 골을 다 세어본다고 하더라

김: 당연히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내준 골은 그냥 보내지만, 아쉽게 내준 골은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다. 잊으려 해도 팬들이 부각시켜준다. 나는 댓글을 안 보려고 한다. 그런데 와이프가 보고 흥분한다. 내가 위로 받아야 하는데, 내가 되려 와이프를 위로한다(웃음). 뭐 나는 이제 통산 실점이 400골을 훌쩍 넘었다(웃음). 

조: 맞다. 분명 어쩔 수 없이 골을 내줬는데, 집에 돌아와서 (기사나 댓글을 보면) ‘쟤 때문에 먹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웃음).

 

-기록적도 다른 포지션에 비해 불리한 게 분명히 있다. 공격수는 골을 남기고, 골키퍼는 실점을 남긴다

김: 우리는 잘해야 본전. 못하면 우리 탓이다. 결과적으로 기록에 남는다. 기록만 보고 판단하는 이들도 있다. 몇 경기 몇 골을 내줬다는 것만 본다. 전문가 아닌 사람들도 아주 쉽게 평가한다. 론 운동선수도 일종의 공인이니 이겨내야 할 부분이지만, 막말하는 사람도 많다.

골키퍼도 빛을 발하려면 좋은 팀에 가야 한다. 부산에서 성남으로 이적한 뒤에 분명히 느꼈다. 부산에서는 막아도 계속 슈팅이 날아왔는데 성남은 1~2개 막으면 골 넣고 이겼다.

 

조: (오늘) 연습경기 45분 뛰면서 확 느꼈다. 나도 이렇게 바로 느낄지 몰랐다. 전 소속팀에는 미안하지만 레벨 차이를 느끼긴 했다.

 

-가시와 골키퍼가 홍명보 감독이 앞에 서 있으면 정말 편안하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선수 생활하며 든든하게 느낀 동료가 있었나?

김: 분명히 그런 게 있다. (질문: 이름을 말해달라) 음…많이 있다. 골키퍼가 살기 위해서는 중앙 수비와 중앙 미드필더를 잘 지휘해야 한다. 공격은 필요 없다(웃음). 성남에서 김영철 형, (조)병국이가 잘해줬다. (질문: 지휘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골키퍼는 목소리 큰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중요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확실히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 상황별로 선수들에게 제대로 지시해야 한다.

 

-선배가 중앙 수비로 뛰면 지시하기 불편한 부분도 있나?

조: 인천에서는 중앙 수비가 거의 다 후배였다. 요니치도 후배다(웃음). 후배가 뛰니 편한 게 있다. 프로 생활 처음 할 때는 수비가 다 형들이어서 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경기 중에 존댓말은 안 하지만, 선배가 수비를 하면 마음대로 표현하기 어렵다. 물론 그걸 이겨내야 하는데 성격이 살짝 소심해서 잘 못했다. 사실 골키퍼는 직접 막는 것보다 수비를 움직여서 공이 안 오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골키퍼는 일종의 ‘경쟁적 공생’ 관계라고 생각한다

김: 경쟁은 경쟁이고 생활은 생활이다. 경쟁은 프로 생활 끝날 때까지 할 수밖에 없다. 내가 못하면 수혁이가 나간다. (장)대희라는 어린 친구도 나갈 수 있다. 우리는 열심히 하면 된다. 판단은 감독이 한다.

조: 용대 형은 내가 우러러 봤던 형이다. 솔직히 말하면 골키퍼는 주전이라는 게 없는 것이다. 누구라도 나갈 수 있다. 지금도 계속 배운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경쟁하지만, 용대 형을 보면서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다.

 

-훈련을 보면 골키퍼 만큼 힘든 포지션도 없다. 하지만 경기장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남들이 모르는 쾌감도 있나

김: 골키퍼도 운동량은 많다. 동계훈련에서 운동을 많이 한 후에 주전으로 선택 받아 경기장에 들어가기 직전이 가장 짜릿하다. 입장 전에 음악이 나오고, 관중들 함성이 들리면 뭔가 감정이 벅차 오른다. 내가 운동을 많이 한 결과물을 얻었기 때문이랄까. 이런 기분에 계속 운동하게 된다. 골키퍼는 분명히 메리트가 있는 포지션이다. 외롭지만, 그만큼 매력적이다.

조: 내가 슈팅을 몇 번 막아서 팀이 이겼을 때 좋다. 소름이 돋는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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