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울산] 한준 기자= 2016년 한국프로축구의 대미를 장식한 인물은 공격수 정조국(33)이었다. 정조국이 속한 광주FC가 K리그클래식에서 하위스플릿에 머물렀음에도 MVP를 수상했다. 역대 시상식에서 MVP에는 우승팀이나 준우승팀에서 나왔다. 리그 8위를 기록한 팀에서 MVP가 나왔는 점은 그만큼 개인적이 활약이 출중했던 것이다. 정조국은 리그 31경기에서 20골을 넣어 득점왕에 올랐고, 이는 12개팀 체제로 리그가 진행된 이후 최다 득점 기록이었다.

정조국 개인적으로는 프로 데뷔 후 한 시즌 최다 득점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2015년 FC서울에서 2군으로 내려가는 ‘굴욕’ 속에 ‘한물 갔다’는 소리를 들었던 정조국의 반전은, 광주의 창단 후 최고 성적이라는 결과와 더불어 K리그에 큰 울림이 됐다. 정조국은 2016년 말, 승격팀 강원FC 이적으로 또 한 번 이슈의 중심이 됐다. 광주로 향할 때 ‘와신상담’ 했다면, 강원으로 향할 때는 ‘금의’를 입고 갔다. 

큰 팀 서울을 나와 작은 팀 광주로 향한 정조국은 오히려 더 큰 선수가 됐다. 그리고 강원이라는 불확실성에 또 한 번 도전한다. 정조국은 서울을 나오면서도, 자신의 부활 기반이 된 광주를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자신이 있었으니 나왔다”고 했다. 탁월한 슈팅 능력이라는 공격수에게 가장 중요한 ‘원천기술’을 가진 정조국에게 ‘부활 비급’을 들었다. 1차 전지훈련을 진행 중인 울산에서 정조국을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정조국과 인터뷰 전문.

-지난해 광주FC에 입단하면서 광양 전지훈련으로 향할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1년이 정조국 선수의 인생에서는 가장 중요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광주로 가면서, 그리고 강원으로 가면서 마음은 어땠나요? 
새로운 마음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한 것 같아요. 시무식 하던 날 강릉에 갔어요. 약간 부담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해와 비교하면 여유가 생겼죠. 그때는 부담감에 더해 두려움도 있었고. 간절한 마음이 있었어요. 지금도 간절하기는 마찬가지지만, 1년 전에는 급한 마음이 있었죠. 내 자신이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1년 전에도 내 개인적인 목표는 없다고 말했지만, 개인적인 성과를 내야한다는 마음이 있던 게 사실이죠. 올해 같은 경우에는 개인적인 부분에서 사랑을 많이 받았으니, 오로지 팀에 대한 생각만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조금은 여유롭게, 또 강원에서는 나 혼자만 온 것이 아니니까요. 그런 부분에선 편하게 내려온 것 같아요.

-부담감의 측면에서, 지난 해에는 본인이 전년도에 활약이 없었고, 광주의 팀 목표치도 높지 않았어요. 강원에서는 지난해 득점왕이라는 기록이 있고, 팀의 목표도 높기 때문에 부담이 더 있지 않은가요?
어느 정도 부담이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 정도 부담은 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무게입니다. 그동안에도 이 정도 부담은 아무 것도 아니었어요. 자신 있습니다. 나 개인적인 것 보다는, K리그 전체를 봤을 때 강원FC가 결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죠. 좋은 행보이고, 신선한 바람 일으키고 있겠지만, 좋게 마무리되려면 결과가 나와야 해요. 팀이 더 잘됐으면 좋겠고, 팀이 원하는 목표를 이뤄서, K리그 발전에 기여하고 싶어요. 강원의 투자 이후 다른 팀도 더 많은 투자가 될 수 있도록,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다는 부담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선 부담도 있지만 기대도 되고 설레기도 합니다. 

#.광주행 이은 강원행, 자신감이 있어서 가능했던 선택

-개인적으로 부담이 없다는 것은 부진했던 것이 잠시였고, 부활을 이룬 다른 베테랑 선수들, 이동국 선수나 염기훈 선수처럼 자신이 가진 능력에 대한 확실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일까요? 
작년에도 말했듯이, 솔직히 자신 있었어요. 작년에 광주로 가면서도, 내가 갖고 있는 기술에 대한 자신이 있었고, 도전할 가치가 있기에 선택했습니다. 내 자신에게 자신이 없었다면, FC서울을 떠나지 않았을 것 같아요. FC서울에 오래 있었고, 어떻게 보면 원클럽맨으로 남아 안정된 선택을 할수도 있었거든요. 대우가 안 좋았던 것도 아니고, 프런트에서는 기회를 주려고 노력해주시기도 했어요. 하지만 축구 선수로 그라운드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축구 선수 정조국으로 나설 기회만 생긴다면, 자신감은 있었어요. 지금도 만약 일본으로 갔다면, 일본 생활에 대한 부담이 나름 있겠지만, 강원에 오는 것 보다는 덜 했을 것 같아요. 강원은 팀도 이슈가 되고 있고, 제가 작년에 기록한 성적이 그대로 비교되겠죠. 그렇기 때문에 올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축구 인생을 더 오래할 수 있는 계기 만들려면. 그런 면에서 부담 있는 선택이지만, 나 자신을 믿고, 자신감도 있었고. 그래서 강원을 선택할 수 있었죠.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서울을 떠났다는 얘기는, 오히려 자신감이 없었다면 서울에 남아서 적당히마무리했을 거라는 이야기인가요? 서울처럼 좋은 선수단의 지원을 받는 팀이 아니라도 충분히 골을 넣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광주로 가도 잘 할 수 있다는, 그런 자신감인가요?
광주가 약하고, (지원이 부족한) 시민구단이라는 부분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전북이든, 제주든, 어떤 팀인가는 중요한 게 아니었죠. 서울을 떠나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했습니다. 약팀이든, 강팀이든, 시민구단이든, 기업구단이든, 어디를 가도 자신이 있었어요. 그만큼 저한테 믿음이 있었고, 마지막으로 축구 선수로 이렇게 무너지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이 있었기 때문에 도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는 게 증명됐죠. 그래서 이런 좋은 자리로 또 한번 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작년을 생각하면 항상 웃음이 나요. 2015년을 생각하면 우울한 기억만 나고, 2016년 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기쁘고 설레죠. 가족들에게도 그랬고. 이 좋은 기운을 2017년에 이어가고 싶어요. MVP, 베스트11, 득점왕 수상. 이런 걸 또 하겠다는 것 보다는, 좀 더 오래 축구를 하고 싶고, 축구 선수로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런 계기 만들기 위해선 올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저 자신의 시험무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프랑스 리그에 도전했을 때, 주로 후반에 나왔지만 경기력 자체는 좋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K리그 우승을 하고, 또 연령별 대표팀에서 꾸준히 활약했고. 계속 승승장구하다가 군 입대로 돌아온 뒤부터 하향세를 그렸습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제가 느끼기에도, 군대 이후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군대에 있을 때도 나름 열심히 훈련했지만, 외부에 잘 노출되지 않았고, 제가 부족했던 것도 있었고요. 제대하고 돌아오니 서울 팀 자체가 많이 변해 있었어요. 최용수 감독의 색깔로 팀이 구성되었는데, 중간에 제가 끼어들어가기 힘들었죠. 중간에 왔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어요. 2015년이 있으니까. 2015년 동계훈련을 돌아보면, 내 축구 인생에서 그렇게 열심히 훈련한 적이 없었을 정도로 혹독하게 했어요. 죽기살기로 했고, 출발을 좋았죠. 베트남 팀과 경기를 하면서, 초반에는 계속 경기를 나갔어요. 서울이 슬로우스타터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때도 그랬죠. 그 과정에서 공격수인 저어게 모든 포커스가 맞춰졌고. 그 이후 어려워졌죠. 2015년은 내겐 최악의 해였고. 가장 쓴 약이 된 것 같아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계기가 됐죠. 그때가 없었다면 내가 이런 도전을 했을까? 이런 생각이 들고.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두 달 동안 2군에 내려가 있었고. 벤치에도 못 앉는 상황이 굉장히 많았고. 그땐 많은 생각을 했고, 얘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그것 또한 내 탓으로 돌리려고 생각했어요. 누구 탓도 아니다. 환경 탓도 아니고 내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했죠. 그라운드에 서야 내가 노력한 것을 보여줄 수 있는데, 그러려면 팀을 옮기는 수 밖에 없었죠. 내년에도 아드리아노가 있고, 주영이 있고, 주태도 있고. 나중에 데얀도 합류했죠. 솔직히 자신이 없었어요. 여기서 버틸 자신이 없었어요. 경쟁력이 있고 자신감이 있다고 해도, 나한테는 기회가 없겠다는 건 흐름을 보면 알잖아요. 그랬기 때문에 무조건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죠. 광주로 가게 됐고, 좋은 선택이었죠. 

-국내에서는 서울에서만 뛰었고, 떠나는 결정은 막상 쉽지는 않았을텐데, 오퍼가 와서 가게 된 것인가요?
스스로 나가겠다고 생각하고 팀을 알아봤어요. 정조국이 ‘한물 갔다’고 하는데, 제가 싫어하는 표현이 ‘한물 갔다’는 표현이거든요. 사람들은 쉽게 얘기하잖아요. 내가 해온 것이 있고, 내가 살아온 과정이 있는데, 쉽게 그런 얘기를 하죠. 하지만 잊혀지고 있던 게 사실이고, 더 가슴 아픈 건 내가 변명할 수가 없다는 거에요. 경기를 못 나가니까. 나가서 보여줘야 사람들이 ‘정조국이 아직 있구나’ 생각할테고. 결국 그라운드에서 대답해야 하잖아요. 그걸 못하니까 죽겠는거에요. 자존심 너무 상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싫고. 그라운드에 나가야 한다. 많은 분들이 아시지만, 아들 태하가 얘기를 한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였고, 단순하게. 내가 떠날 때가 됐구나. 생각을 했죠.

#정조국은 ‘그때’를 잊지 않는다

-강원에서 다시 만난 정승용 선수도 정조국 선수가 오자마자 ‘그 때를 잊지 말라’고 말을 해주셨다고 하던데요.
나도, 안 잊어요. 지금까지도. 구리 훈련장에 가면, A팀이 쓰는 운동장이 있고, 2군은 뒤 구장이라고 부르는 곳을 써요. 두 달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잔디도 그렇고, 환경이 열악했죠.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때 그 마음 가짐. 자존심이 굉장히 상했죠. 지금까지 자존심을 갖고 축구를 해왔고 버텨왔는데. (정)승용이도 마찬가지고. 3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고생했어요. 가진 게 많은 친구인데. 승용이를 만나고 나선, 다른 말은 필요 없었어요. 그때를 잊지 마라. 그때의 상처, 그때 그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지금이 행복한 것이고, 경기에 나간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한 것이다.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 내가 나태해졌다고 생각하면, 그때 생각을 많이 해요. 광주로 갔을 때 첫 마음을 생각하고. 광주로 갈 때 (김)민혁이랑 같이 차를 몰고 내려가던 때의 마음 가짐. 앞으로 축구화 벗을 때까지 잊지 않을 것 같아요.

-광주에 가서는 서울에 같이 있었던 김민혁 선수와 함께 갔던 것이, 동지애나, 의기투합이 잘됐을 것 같아요. 개막전부터 도움을 받아서 득점을 합작했고. 그 뒤로도 잘 맞았죠? 
굉장히 컸어요. 민혁이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같이 경기하면서 민혁이의 존재 자체가 너무나 큰 힘이 된 게 사실이었죠. 기술이 있고, 가진 게 있는 선수, 원래 좋은 선수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좋은 선수였구나. 내가 몰라봤구나. 그런걸 많이 느꼈어요. 주위 사람들에게 그랬어요. 광주는 나 없어도 되지만, 민혁이 없으면 안된다. 실제로 나는 빠져도 괜찮지만, 민혁이가 빠지고 내가 있는 상황이라면, 그 경우가 더 힘들다고 생각해요. 좋은 친구이고, 후배죠. 사람 자체가 너무나 순수하고. 축구 밖에 모르는 친구죠. 앞으로 더 잘했으면 좋겠어요. 응원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도 출전 기회는 많지 않았는데요. 유럽을 경험하면서 배운 것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는 2015년 이후의 마음이, 지금의 정신력을 만든 것인가요?
프랑스에서는 굉장히 즐겁게 축구를 했어요. 힘든 게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토록 꿈꿔온 유럽에 진출해서 많은 걸 배웠고. 축구뿐 아니라 사람으로, 인격적으로 많은 걸 느끼고, 큰 추억을 받아 왔죠. 프랑스에서도 즐거웠던 기억 밖에 없어요. 아, 또 가고 싶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나서 에이전트에게 다시 유럽을 갈 수 있다면 보내달라는 얘기도 했었거든요. 조건 보다. 유럽은 아름다웠고, 축구 할 맛이 나고. 관중도 그렇지만, 부딪히면서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꼈어요. K리그에선 그런 느낌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유럽을 경험해보면서, 강해진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정신적으로 강해진 건 2015년 이후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굳이 나누자면, 선수 정조국은 2015년 이전과 이후로 나눠야 할 것 같아요. 

이번에 지도자 교육에 가서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동국이 형이나, 많은 선배님들과 얘기하면서, (김)재성이 형이, 정말 축구를 알 것 같고, 하고 싶고, 더욱 재미있어 졌는데, 앞으로 할 시간이 없다고. 많지 않다고. 내가 지금까지 해온 날보다 할 수 있는 날이 없는 게 사실이잖아요. 그 말을 듣는데 꽂히더라고요. 아, 나도 그런 마음이 있는데. 2016년에 너무나 재미있고, 즐겁게 축구를 했으니까. 더 오래하고 싶은데, 그 마음이 공감되더라고요. 오래 하고 싶고, 오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하고 싶고. 2017년이 저에겐 그래서 또 다른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2015년에 같이 고생한 김민혁 선수나, 정승용 선수 같은 경우 2016시즌에 맹활약했습니다. 믿음과 기회가 주어지면, 누구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보나요?
감히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지도자를 한다면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2016년을 돌아보면서 나한테 가장 필요한 게 그거였구나. 감독님과 팀의 믿음과 기다림이었구나. 그게 가장 중요하구나. 남기일 감독님의 믿음과 신뢰. 그건 돈을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을 것 같아요. 재미있는게, 최윤겸 감독님이 시무식에서 처음 선수들에게 말씀하신 게, ‘기다리고 믿어주겠다’고 하셨어요. 머리가 땡 했어요. 정말 좋은 감독님을 만났구나. 솔직히 최 감독님은 잘 몰랐어요. 같이 해본 적이 없고, 사석에서도 본 적이 없고. 주위에 물어보다 다들 좋은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작년에 B급 지도자 교육을 했는데,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게 사실 정말 어려워요. 지도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선수 입장에선 왜 못 기다려주나,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지도자 입장에선 많은 생각이 들죠. 이렇게 어려운 걸 하고 계시는구나, 생각하고. 최 감독님은 워낙 경험이 많으시니까요.

-남기일 감독도 그렇고 최윤겸 감독도 부천SK 시절 니폼니시 감독의 영향권에 있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비슷해요. 전술적인 부분도 비슷해요. 남 감독님도 최윤겸 감독님이 좋은 분이라고. 잘해주길거라고 했어요. 앞으로 더 알고 싶고, 더 배우고 싶습니다. 

-남기일 감독이 믿음을 줬다고 하셨는데, 사실 첫 경기부터 득점을 하고 연속골을 넣었으니 기용해주는 게 당연한 상황이었습니다. 기다려준 건 어떤 부분인가요?
믿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건, 남 감독님이 저한테만은 아무 말씀을 안하셨던 거에요. 훈련 할 때도, 어떻게 해라. 기본적인 팀 전술과 전략은 잡아 주시지만, 개인적인 면에서는 뭘 해줘라, 골을 넣어줘라, 그런 지시나 부담을 전혀 안주셨어요. 가끔 농담만 한 마디 하시고. 자연스럽게 신뢰가 쌓인 것 같아요. 최 감독님도 저한테 많은 기대가 있을텐데, 부담도 있고, 그런데 항상 선수들에게 밝고 긍정적인 말씀만 해주세요. 또 하나는 고참이나 어린 선수, 신인 선수 모두 평등하게. 같은 경쟁 의식을 심어주고. 저도 긴장하고 있습니다. 그 점도 남 감독님과 비슷한 것 같아요. 남 감독님은 절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제겐 굉장히 고마운 분이에요. 작년에 나 혼자 잘해서 된 거라고 생각하면, 전 나쁜 사람이겠죠. 그렇게 살면 안 돼죠. (웃음) 

-광주를 떠난 것은 서울을 떠날 때와는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잘 활약을 하고 떠나게 됐는데, 좋은 기회를 준 팀에서 1년 만에 나가게 되면서 고민은 없었나요?
기본적으로 남 감독님과 계속 대화를 했어요. 시즌 막판에도 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내가 광주에 더 있을 수 없다는 건 어느정도 인지는 하고 있었어요. 내 경제적인 것도 생각해야 했고, 구단의 입장도 생각해야 했죠. 내가 떠난다는 건 모든 사람들이 알았을 거예요. 잘돼서, 좋게 가니까. 처음엔 제 개인적인 걸 많이 봤죠. 선수 생활을 하면서 앞으로 더 많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팀, 그런 리그. 가족도 생각해야했고. 그렇기 때문에 J리그로 가려고 한 게 사실이었고. 그 전에도 많은 국내 구단 제안이 있었지만 전혀 생각 안했고. 거의 마무리가 되는 시점에, 조태룡 대표님이 만나자고 연락이 왔어요. 사실 전 일본에 갈꺼니까 정중히 거절하자는 의도를 전하려고 만났어요. 조 대표님도 내가 그런 마음으로 나갔는지 모르실거에요. 감사히지만 정중히 거절해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갔는데, 대화를 해보니 묘하게 끌리더라고요. 그렇지만, 속으로는 역시 일본에 가야지. 일본에 가는 게 맞는거야. 조태룡 대표님이 선수를 직접 만나러 온 건 그때가 처음이라고 강조하시더라고요. 그날 결판을 내고 싶어하셨는데, 다음날 가족 여행을 가야했고. 생각해보겠다고 했고, 여행을 가서 많은 생각을 했죠. 

사실 그래도 일본에 가자는 생각이었지만, 내 것만 따지면, 내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남 감독님, 기영옥 단장님이 보여준 믿음에 대해, 배신 아닌 배신을 하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기 단장님과도 대화를 했는데 강원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하셨죠. 내가 단장님이라도, 단돈 백원이라도 더 많이 주는 곳을 택하면 좋겠죠. 근데 이게 굉장히 절 배려해주신 거에요. 제 의사를 물어보고, 내 결정을 존중하겠다. 사실 그렇잖아요. 구단끼리 합의하고서, 개인 협상하라. 이렇게 하는 게 우리 실정이, 그렇게 끝이 잖아요. 그런데 저랑 마무리되기 까지 기다려 주신거죠. 그게 너무나 고마웠어요. 그렇게 절 배려해주셨으니, 나도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조금이나마 더 이적료를 안겨드리자고 생각했죠. 그리도 ACL을 목표한다는 비전, 선수 영입, 조 대표님의 자신감. ACL에 나가 보고 싶었고. 선수로 얼마 남지 않은 인생, 도전해보고 싶었죠. 좋아하는 후배도 많이 왔고. 그런 게 겹쳐져서 강원을 택했어요. 

-광주 훈련에 갈 때는 김민혁 선수와 갔는데, 강릉에 올 때는 누구랑 왔나요?
매니저랑 왔어요. 연말에 너무 바빴잖아요. 지도자 교육도 가고. 자다가 깼는데, 횡성 쯤에서 눈이 오더라고요. 기분 좋았어요. 이사할 때도 눈이나 비가 오면 잘산다고 그러잖아요. 미신이긴 하지만. (웃음) 딱 보니까 느낌이 좋은 거에요. 올해 잘되겠구나. 그래 잘 될거야.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강릉에 혼자 오는 걸로 들었습니다. 가족들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건 힘들 것 같아요.
솔직히 강원행을 꺼린 가장 큰 이유는 가족 때문이었에요. 일본에 가면 다 같이 가려고 했어요. 태하는 외국인 학교에 보내면 되니까. 와이프가 일을 좀 쉬더라도 임신 시간에 같이 지내자. 생각했고. 지금까지 내가 버틸 수 있었던 힘, 내간 큰 힘이 되어준 사람이 가족이고.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어렸을 때, 나 혼자일 땐 경제적인 조건이나 내 꿈, 내 목표만 생각하면 되는 데,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되니까 우선순위는 가족이 되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걸 떠나서 가족과 떨어지는 게 너무 싫고, 힘들었어요. 작년에도 시즌은 즐거웠고, 같이 즐기고 싶은데 경기 끝나면 혼자 와야 하고. 외로웠고. 더 애틋해지는 건 있지만, 이번에는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건 지금도 힘들어요. 태하가 워낙 아빠를 좋아하고, 이젠 초등학교에 가니까. 초딩 태하의 모습이 너무 보고 싶고. 학교도 가보고, 학교 친구들이랑 같이 추억도 쌓아주고 싶은데. 그걸 못하는게 가장 아쉽죠. 아들도 일본에 갔으면 좋겠다고 했고. 설득은 못했지. (웃음) 와이프도 일본을 원했는데, 상의 끝에, 선택했죠. 결국 아내도 지지해줬고, 태하도 지금은 강원이 K리그 최고의 팀이라고 친구들한테 얘기하고. 아들이 또 인정은 빨리해요. (웃음) 가장 좋아하는 색은 오렌지색이 됐고. 결혼하고 진짜 오래 떨어져 살았어요. 프랑스 2년, 군대 2년, 광주에서 1년. 떨어져서 경기 잘했으니, 올해도 잘하겠죠. 잘해야지.

-아무래도 아들에 대한 마음이 큰 것 같아요. 아빠가 되면서 달라진 게 큰 것 같은데, 실제로 선수 생활에도 그런 부분에서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있나요?
무조건이라고 생각해요. 결혼하고 나선 솔직히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살게 된 것 외에는, 연애하는 기분이었죠.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니 모든 게 바뀌었어요. 뭘 봐도 아이를 먼저 생각하고,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가 생각하게 되고. 모든 부모님들이 그렇지 않을까요? 태하가 태어난 이후로 제 인생의 모든 게 바뀌었고, 지금도 가장 큰 힘이 되는 게 태하이고, 가족이고. 저한테 가장 큰 자극을 준 사람이 태하였고. 저의 자존심을 가장 크게 긁었죠. (웃음) 그 누구도 나한테 아무 말 못했는데. 솔직히 대 놓고 그런 말 못하잖아요. 주위사람들이나 아내가 ‘자기 왜 경기 못나가?’ 어떻게 얘기해요. 부모님도 친구도, 그런 얘기를 누가 할 수 있겠어요. 근데 우리 아들은 나한테 ‘아빠 왜 경기 못뛰어?’라고. (웃음) 상처를 많이 받았죠.

아들에게 떳떳하고 싶었죠. 말로만 아들을 좋아한다고 하지 말고, 떳떳한 아빠가 되야겠다. 아들이 축구 선수 정조국을 너무 좋아해요. 아빠 정조국보다. (웃음) 태하는 아빠와 엄마 중에 누가 좋냐고 하면 항상 아빠가 좋다고 해요. 무조건. 왜냐면 축구선수여서. (웃음) 그래서 난 축구를 잘해야 돼. 축구 선수 정조국을 좋아하는 거니까. 그게 가장 큰 힘이에요. 아내가 섭섭할 수 있어도, 아내도 잘 알아요. (Q.보통은 그 질문에 엄마를 택하는데 다르네요?) 태하는 그래요. 애기 때부터, 떨어져 있었는데도. 

-선수 생활을 오래하고 싶다는 목표를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둘째 때문에 오래하고 싶어요. 강원과 3년 계약했는데, 그래도 태어나면 3살이에요. 그 나이때는 잘 모르잖아요. 아빠가 축구 선수였다는 걸 어느 정도 인지할 때까지 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에요. 그래서 오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태하는 이미 컸고, 좋아하지만, 둘째가 태어나면 아빠가 훌륭한 축구 선수였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요즘 축구 선수들의 활동 기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요. 몸 상태를 과거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전 개인적으로 아직 자신 있어요. 물론 내가 느끼는 것 보다 밖에서 보는 게 정확하다고 봐요. 내가 아무리 ‘난 몸이 좋아. 나이 먹어도 작년과 피지컬이 똑같아’ 이렇게 말해도 주관적인 생각이죠. 객관적으로는 스피드나 피지컬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봐요. 다만 그 못지않게 더 큰 무기가 있죠. 경험이 있으니 충분히 커버할 수 있어요. 피지컬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자신이 없어진다면 그만둘 것 같아요. 누가 더 하라고 해도. 내가 자신감이 없다고 생각하면. 속이는 거잖아요. 지금은 작년과 다름 없이 자신있습니다.

#정조국의 원천기술, 패트리어트 슈팅은 어떻게 생겨났나?

-작년 첫 경기에는 두 골을 넣기도 했지만, 적극적으로 뛰면서 압박하고, 또 플레이를 보면 밑으로 내려와서 빠른 전환 패스나 간결한 플레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득점하 것만 강조되지만 다른 플레이면에서도 좋았던 시즌이었는데요?
저는 항상 후배들에게 ‘네가 잘하는 걸 하라’고 얘기해요. 전 제가 가장 잘하는 걸 보여주려고 노력해요. 전 부족한게 많아요. 개인기술도 그렇고. 제가 선수를 개인기로 제치고 나가고 그런 건 거의 못보셨을거에요. 스피드가 빠른 것도 아니고. 제공권도 엄청 좋은 편은 아니죠. 그래서 제가 못하는 부분은 잘 안하려고 해요. 빨리 주고 들어가려고 하고, 미드필드 지역에서는 심플하게 플레이하고. 내가 잘하는 건 골대 앞에서, 자신 있고 해야할 일은 골을 넣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한 경기에 한 번이라도 더 슈팅을 하려고 노력하고. 또 많이 느낀 건, 현대 축구 흐름은 따라가야 한다. 공격수들이 수비 안하면 안되잖아요. 그럼 경기를 못나가죠. 그건 기술적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해야할 때 안해야 할 때를 잘 인지하고 있으니까, 잘할 자신이 있어요. 내가 지금 더 훈련한다고 기술이 늘진 않을 거에요. 내가 잘하는 걸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노력하고 있어요.

-슈팅이라는 원천기술이 확실히 있는게 결국 정조국 선수가 가진 자신감의 가장 큰 배경인 것 같은데요. 양발도 잘 쓰고, 지난해에 프리킥으로도 득점했습니다. 슈팅 기술을 무기로 만들 수 있었던 과정은?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하는 것 같아요. 훈련을 해서 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는 것 같고. 감각이나 센스는 타고 났다고 봐요. 동국이 형을 봐도, 그 나이에 연습을 만날 한다고 그만큼 발리슛을 잘할 수는 없다고 봐요. 내가 볼 때는 더 노력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럼 동국이형보다 잘해야하는 데 그렇지는 않거든요. 저는 어려서부터 굉장히 잘 넣었어요. 공을 많이 가지고 놀아서 양발도 잘썼고. 왼발도 자신이 있고, 왼발 오른발 가리지 않고 타이밍만 되면 할 수 있는게 제 장점이죠. 

훈련도 굉장히 중요하죠. 따로 훈련도 해요. 많이는 안해요. 열 개를 하더라도, 정말 내가 원하는 위치에서, 경기장에서 나올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서 해요. 그냥 주고 빵 때리기 보다, 항상 뒤에 수비가 있으니까 그런 상황 만들어서.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게 터닝슛이고. 그런 상황을 많이 만들고, 이미지를 만들고 훈련해요. 동료들과 후배들, 골키퍼를 두고. 작년에 제가 페널티킥을 많이 넣었는데, 그게 사실 쉽지 않거든요. 작년에 훈련 끝날 때마다 후배들, 골키퍼들이랑 페널티킥 내기를 한 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드리아노처럼 보고 차 스타일은 아니고. 감 잡으면, 코스를 정하면 그대로 차요. 슈팅에는 자신이 있으니까. 막을테면 막아봐라. 그런 마인드로. (Q.지난 시즌에 한번 가운데로 찬 적도 있었는데?) 그건 미리 의도를 갖고 찼어요. 그전에 몇번 찼으니까. 요새 워낙 분석을 많이 하잖아요. 제가 어디로 차는지 많이 봤을거니까. 이번에는 가운데로 차야겠다. 

-처음 축구를 시작한 건 언제인가요?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차범근축구교실에 갔어요. 그때 일주일 한번씩 취미로. 3학년때 갈현초등학교가 축구부를 창단하면서 전학을 갔죠.

-처음부터 공격수였나요?
아니에요. 플레이메이커였어요. 10번 미드필더. 중학교때 키가 커지면서. 초등학교 때는 평균 키였어요. 중학교 올라가면서 1년에 15센티미터씩 크고, 갑자기 큰 거에요. 그땐 키 크면 스트라이커를 보라고 했으니까. 기술이나 기초는 어느 정도 있었는데, 생각보다 골을 잘 넣는거에요. 나한테 이런 게 있었구나. 그때부터 스트라이커만 봤죠. 본능적으로 나왔는데, 가장 많이 느끼고, 배우고 연습한 시기는 고등학교 때 임근재 감독님 만나고 나서죠. 그분이 골 넣는 기술은, 내가 본 선수 중에 최고였어요. 골대 앞에서 한 박자 빠른 슈팅. 골을 찾아 들어가는 움직이나. 그분은 슈팅을 세게 하지 않아요. 툭 차고, 타이밍 빼앗고. 그때 코치님이었는데, 그 노하우를 많이 배웠어요. 슈팅 내기도 많이 하고. 그때 골 넣는 재미를 많이 알았죠. 

-한국축구에 정통 9번형 공격수의 부재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문제가 뭐라고 보나요?
저 또한 반성 해야 하는 게 사실이에요. 전 지금도 K리그 최고의 공격수는 이동국이라고 생각해요. 동국이 형이 그만큼 결과를 냈고. 동국이 형이 지금까지 K리그 최고 공격수라는 건 후배들이반성할 일이죠. 후배들은 뭐하고 있나.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반성의 계기가 되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국이형을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수고, 사람으로도 좋아지만, 뛰어 넘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물론 저뿐 아니라 후배 공격수들도 좋은 선수가 많아요. 의조도 그렇고, 정협이, 석현준. 그렇지만 다들 더 노력해서 동국이 형을 뛰어 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서 이동국 선수나 염기훈이 선수가 제2의 전성기를 열면서 지금 나이에도, 다시 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갖는 데 도움이 됐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동국이 형이 한만큼 하고 싶어요. 동국이형처럼 오래하고 싶고, 잘하고 싶고. 걸어간 길을 그대로 걸어가고 싶어요. 동국이형한테 고맙죠. 험한 길을 먼저 가서 길을 만들어 주셨잖아요. 산전수전 다 겪은 동국이형을 존경해요. 그 길을 제가 걸어가서, 후배들에게 저도 그런 본보기가 되고 싶어요. 제 롤 모델이죠. 동국이 형이랑 5살 차이가 나는데, 아직 뛰고 있으니 저도 5년은 더 해야 될 거라고. 생각해요.

-훈련할 때 보니 연습 중인데도 골을 넣으면 세리머니를 하고, 기회를 놓치고 나서 나뒹굴면서 아쉬워하던데, 여전히 축구에 대해 순수하게 즐기는 마음 때문인가요? 아니면 골에 대한 집착이 그정도로 강한 건가요? 
데얀도 그래요. 나도 골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훈련 때부터 어떻게든 골을 넣으려고, 그런 습관이 있어요. 정말 쉬운 거라도, 다른 사람들은 그냥 툭 차고 그러는 경우도 있는데, 저는 어떻게든 골망에 넣고 나오려고 생각하고, 그게 맞다고 봐요. 그런 습관을 계속 들이고, 항상 작은 경기라도 이기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후배들에게 얘기해요. 여기서 진다고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게 쌓이고 커지면 경기에서 지는 습관이 돼요. 그래서 어떤 순간에도 골 넣으려고 하고 있어요. 그게 내가 해야할 일이고, 팀이 나한테 원하는 게 골이고. 득점 기회가 나면 오프사이드라도 넣으려고 하는 습관이 있어요. 

-강원에 와서 이제 훈련 2주차를 맞았습니다. 밖에서 기대도 크지만 우려도 큰데요. 직접 해보니 어떤가요?
다른 걸 다 떠나서, 너무나 분위기가 좋고, 어색하지 않아요. 첫인상부터 다들 좋은 기억만 있어요. 당연히 조직적 부분은 안 맞고 부족한 부분이 있어요. 지금 새롭게 팀을 준비하는 기간이니까, 그건 어느 팀이나 마찬가지라고 봐요. 물론 우리 팀은 새로운 선수가 조금 더 많으니 조직적으로 할게 더 많겠죠. 그런 부분은 감독님을 중심으로 잘 따라가면 될 것 같아요. 베테랑 선수들이 많고 개성 강한 선수들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우려하시는 부분도 많고, 저도 사실 어떻게 접근할지 생각이 많았는데, 해보니 다들 착하고 팀을 위한 분위기로 가고 있어요. 모든 선수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강원이 잘해서 K리그를 위한 좋은 결과를 내자는 마음을 다 갖고 있어요. 

사진=풋볼리스트,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정조국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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