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축구는 365일, 1주일 내내, 24시간 돌아간다. 축구공이 구르는데 요일이며 계절이 무슨 상관이랴. 그리하여 풋볼리스트는 주말에도 독자들에게 기획기사를 보내기로 했다. Saturday와 Sunday에도축구로 거듭나시기를. 그게 바로 '풋볼리스트S'의 모토다. <편집자 주>

비록 이 팀에서 꽃을 피우지는 못했지만, 이 팀이 점지하고, 주목했던 선수라면 믿고 써볼만하다. 이 팀은 대게 최고의 명문팀이다. 유소년 육성도 잘 하고, 될성 부른 떡잎도 잘 찾는다. 다만 너무 심한 경쟁 속에 모두에게 기회가 돌아가기는 어렵다. 시즌 중 기회가 부족한 선수, 즉시 전력이 필요한 팀들은 겨울 이적 시장이 기회다. 이 팀 출신 선수라면, 믿고 써봐도 좋다.

한국 선수 이강인 때문에 큰 관심을 모으는 발렌시아 유소년 팀. 발렌시아는 유소년 출신도, 어린 나이에 영입해 실질적으로 육성한 선수도 화려하다. 세계적인 스타를 잘 키워내는 팀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왼발 공격형 미드필더와 레프트백은 발렌시아 출신들이 다른 빅 클럽에서 주전 자리를 차지하고 맹활약 중이다. 그 명단을 소개한다. ‘믿고 쓰는’ 발렌시아 출신 선수들에 더해, 오히려 발렌시아를 떠난 뒤 폭삭 망한 선수들도 함께 소개한다. 이 명단엔 없지만 수원FC에서 활약했던 ‘한때 FM 유망주’ 가빌란도 기억해 주시길!

 

비센테 과이타(1987년 1월 10일생, 헤타페)

한때 수준급 골키퍼가 득실대던 발렌시아에서 가장 기대를 모으는 유망주였다. 유스팀부터 성장하기 시작해 2009/2010시즌 세군다리가의 레크레아티보우엘바로 임대, 세군다 최고 골키퍼로 선정됐다. 발렌시아로 복귀한 뒤 두 시즌 동안 준주전급 입지를 갖고 활약했다. 그러나 조금씩 주전에서 밀리더니 2014년엔 헤타페로 이적했고, 지금은 강등당한 헤타페에서 여전히 활약 중이다.

 

라울 알비올(1985년 9월 4일생, 나폴리)

세계 최고 수비수로 불린 적은 없지만, 스페인 대표팀과 레알마드리드에서 많은 영광을 차지한 스타 센터백. 발렌시아 유소년팀 출신으로서 2003년 1군에 데뷔했고, 헤타페 임대를 거쳐 2008/2009시즌까지 활약했다. 2009년 여름, 레알의 ‘갈락티코 2기’ 멤버 중 한 명으로 영입됐다. 다른 스타 수비수들이 속속 합류한 뒤엔 입지가 좁아졌다. 2013년 라파 베니테스 감독을 따라 나폴리로 이적, 감독이 바뀐 뒤에도 팀에 남아 4시즌 째 활약 중이다. 이탈리아 정상급 팀인 나폴리에서 비교적 꾸준하게 입지를 지키고 활약하고 있다.

 

다비드 나바로(1980년 5월 25일생, 알코르콘)

2007년 3월 인테르밀란과 경기하다 상대 선수를 걷어차고 전속력으로 그라운드 위를 질주해 도망간 일명 ‘나잡아바로’ 사건으로 유명하다. 발렌시아 유스팀에서 성장해 1군까지 진입, 주전과 후보를 오가며 한동안 활약했다. 나잡아바로 사건 이후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다. 마요르카에 임대를 다녀왔고, 2011년 발렌시아를 떠났다. 당시 하비에르 아리스멘디, 빅토르 산체스, 호아킨 카파로스 감독과 함께 뜬금없이 스위스 구단 노이샤텔샤막스로 가면서 작은 화제를 모았다. 반 시즌을 보낸 뒤 레반테로 이적, 네 시즌 반 동안 준주전급 멤버로 활약했다. 지난 시즌 레반테가 강등되면서 세군다리가(2부)의 알코르콘으로 이적했다.

 

조르디 알바(1989년 3월 21일생,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DNA’가 있는 ‘라 마시아’ 출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알바에게 라리가 출장 기회를 주고 성인 선수로 키워낸 팀은 엄연히 발렌시아다. 발렌시아 B팀을 거쳐 1군 주전으로 자리 잡아 세 시즌 동안 활약한 뒤 고향팀 바르셀로나로 돌아갔다. 발렌시아 시절부터 스페인 대표팀에 자리 잡으며 세계 정상급 레프트백으로 인정 받았다. 제레미 마티외와 주전 경쟁을 벌이다가 나중에 왼쪽 측면을 함께 책임진 건 퍽 인상적인 대목이었다. 두 선수는 번갈아 윙어로 올라가 왼쪽 측면을 지배했다. 주로 알바가 왼쪽에 머무른 반면, 마티외는 오른쪽 윙어에 센터백까지 종횡무진 활약하며 알바와 호흡을 맞추곤 했다.

 

후안 베르나트(1993년 3월 1일생, 바이에른뮌헨)

위에 쓴 알바, 알바와 팀을 옮겨가며 호흡을 맞추는 제레미 마티외, 현재 발렌시아에서 뛰고 있는 호세 가야까지, 최근 발렌시아는 레프트백 전문 학교 같은 느낌이다. 베르나트는 발렌시아산 레프트백은 눈 감고 영입해도 된다는 좋은 증거다. 발렌시아에서 2011년 프로 데뷔해 세 번째 시즌에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좋은 활약에 주목한 주젭 과르디올라 당시 바이에른 감독이 날름 영입했다. 바이에른에서 주전과 후보를 오가며 세 시즌 째 활약 중이다.

다비드 실바(1986년 1월 8일생, 맨체스터시티)

스페인 본토에서 1,100km 넘게 떨어진 카나리 제도에서 발렌시아 유스팀이 발견해 14세 때 영입한 천재 미드필더. 2군을 거쳐 2004년 1군에 진입했고, 2010년까지 발렌시아에서 활약했다. 스페인 대표로 발돋움한 것이 발렌시아 시절부터다. 발렌시아의 재정난과 더 큰 무대로 나가려는 선수의 야망이 겹친 2010년, 다비드 비야와 함께 팀을 떠났다. 실바의 행선지는 맨체스터시티였다. 이적 직후 EPL 최고 미드필더로 인정 받았다. 잉글랜드 정상을 갈망해 온 맨시티를 EPL 우승 2회, FA컵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2회로 이끌었다.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이 부임한 뒤에도 핵심 선수로서 활약 중이다.

 

후안 마타(1988년 4월 28일생, 맨체스터유나이티드)

'레알편'에도 이름이 올라 있는 마타. 그런데 이 정도 경력이면 레알산이 아니고 발렌시아산이라고 인정해줘야 하는 것 아닌지? ‘믿고 쓰는 레알산’ 중 한 명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마타는 레알 1군에 올라가지 못하고 일찌감치 내쳐진 뒤 발렌시아에서 만개한 선수다. 2007년 카스티야(레알마드리드 B팀)를 떠나 발렌시아에 합류한 뒤 곧장 1군으로 뛰기 시작했고, 2008/2009시즌엔 라리가 11골을 넣었다. 당시엔 왼발 슛과 기민한 침투가 돋보이는 해결사형 선수였다. 2011년 발렌시아의 선수 유출 흐름의 일환으로 2,350만 파운드(약 340억 원)에 첼시 유니폼을 입었다. EPL로 진출한 뒤 플레이메이커 역할까지 맡으며 더 존재감이 큰 선수로 발전했다. 2014년 1월 맨체스터유나이티드로 이적한 뒤 4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다.

 

이스코(1992년 4월 21일생, 레알마드리드)

여전히 성장 중인, 발렌시아 유소년팀의 최신작. 발렌시아 B팀의 승격을 이끌며 2011년 주목을 받았는데, 당시 야심에 차 있던 말라가가 이스코의 바이아웃 액수가 600만 유로(약 75억 원)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날름 영입했다. 말라가에서 만개한 이스코는 2012/2013시즌 라리가 9골, UEFA 챔피언스리그 3골을 넣으며 맹활약했고 최고 유망주에게 수여되는 골든보이 상까지 탔다. 2013년 레알마드리드가 이스코를 영입했다. 이후 명확한 포지션 없이 맹활약과 침체기를 번갈아 겪고 있지만 공을 다루는 능력만큼은 누구에게나 인정받는다.

 

파코 알카세르(1993년 8월 30일, 바르셀로나)

발렌시아가 가장 최근에 만들어낸 작품이자, 금방이라도 망할 위기의 직품이다. 발렌시아 유소년팀 출신으로 스페인 청소년대표팀에서 엄청난 활약을 했다. 최전방 공격수와 윙어를 모두 소화할 수 있고, 발렌시아 1군에서도 2014/2015시즌과 2015/2016시즌 연속으로 10골을 넘기며 가능성을 보인 뒤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에선 기대 이하의 결정력으로 근심걱정만 모으고 있다. 지난 12월 코파델레이에서 간신히 데뷔골을 넣긴 했지만 여전히 인정받진 못한다. 아직 어리니까 망했다고 단정하진 말자. 이래뵈도 스페인 대표 공격수다.

 

가이즈카 멘디에타(1974년 3월 27일생, 은퇴)

여기부턴 ‘믿으면 안 되는 발렌시아산’의 명단이 시작된다. 멘디에타는 발렌시아를 떠난 뒤 심각하게 망가졌다가 가까스로 재기한 경우다. 18세 때 발렌시아 팀에 입단했고, 1년 뒤부터 1군 경기를 소화하기 시작해 발렌시아에서 전성기를 보냈다. 왕성한 활동량과 뛰어난 득점력을 겸비해 발렌시아의 2연속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1999~2001) 당시 핵심 멤버로 활약했다. 돈을 흥청망청 쓰던 이탈리아세리에A가 멘디에타를 주목했고, 2001년 4,800만 유로(약 602억 원)라는 엄청난 이적료를 기록하며 라치오에 합류했다. 그러나 이 이적은 축구 역사에 ‘스타 영입의 나쁜 예’로 남았다. 라치오를 한 시즌 만에 떠나 바르셀로나, 미들즈브러 임대를 전전하던 멘디에타는 미들즈브러에 정착해 마지막 노련미를 발휘한 뒤 2008년 은퇴했다. 라치오에서 영 좋지 않은 시절을 보내던 2002년 월드컵 멤버로 차출돼 8강에서 한국을 상대로 교체 출장한 바 있다.

 

로베르토 솔다도(1985년 5월 27일생, 비야레알)

마타와 마찬가지로 레알 유소년팀에서 자랐지만 발렌시아 출신이라고 소개하고 싶은 선수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속설의 산 증인. 유소년팀 시절 레알마드리드 입성에 성공, 1군까지 진입했으나 자리를 잡지 못하고 오사수나, 헤타페를 거쳐 발렌시아까지 갔다. 헤타페부터 가능성을 보인 솔다도에게 고향팀 발렌시아는 완벽한 보금자리였다. 특히 2011/2012시즌엔 라리가 최다 득점 스페인 선수에게 수여되는 사라 상을 받았고, 2012/2013시즌엔 커리어 하이인 리그 24골을 기록했다. 2013년 여름 토트넘홋스퍼로 이적한 것이 큰 실수였다. 두 시즌 동안 리그 7골에 그친 뒤, 2015/2016시즌 비야레알로 다시 이적해 겨우 부활의 기미를 모이기 시작했다.

 

히카르두 올리베이라(1980년 5월 6일생, 산투스)

AC밀란 팬들의 악몽으로 남아 있는 공격수. 그러나 재능 있는 공격수였다는 건 분명하다. 그 재능을 처음 알아본 유럽 구단이 발렌시아였다. 발렌시아는 산투스 소속이던 올리베이라를 영입했고, 이 명단에 있는 선수들이 흔히 그렇듯 제대로 써먹지 못한 채 1년 만에 레알베티스로 보냈다. 베티스로 간 올리베이라는 첫 시즌에 무려 22골을 몰아치는 엄청난 활약을 했고, 이를 바탕으로 2006/2007시즌 무려 안드리 셰브첸코의 대체자가 되기 위해 밀란으로 이적했으나 또 망했다. 2007년 여름 레알사라고사로 이적해 18골을 넣으며 부활했다. 오락가락하던 올리베이라의 경력은 베티스, 알자지라(UAE), 상파울루, 알와슬을 거쳐 친정침 산투스로 돌아간 뒤 다시 안정을 찾았다. 2015년부터 뛰어난 득점력을 발휘하며 브라질 리그 최고 선수로 군림, 브라질 대표팀에 복귀했다.

 

-겨울에 노릴 수 있는 발렌시아산: 모하메드 시소코(1985년 1월 22일생, 소속팀 없음)

공개 구직 중인 왕년의 스타 미드필더. 시소코가 성장한 팀은 모국 프랑스의 오세르지만, 유럽의 주목을 받는 선수로 성장한 건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발렌시아에서 활약하던 기간의 일이다. 라파 베니테스 감독이 리버풀로 가며 시소코를 데려갔고, 이후 유벤투스, 파리생제르맹, 피오렌티나 등 유럽 명문팀을 두루 거쳤다. 딱히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서도 좋은 팀만 골라 다닌 마성의 남자였다. 2015년 상하이선화, 2016년부터는 인도의 푸네시티에서 활약하며 아시아 축구계로 넘어왔다. 지난해 9월 유럽 복귀를 타진하며 웨스트브로미치 입단 테스트를 받았는데, 떨어졌다. 이번 겨울 이적시장에서 다시 한 번 잉글랜드 구단 입단을 노린다고 알려져 있다. 아직 겨우 32세다. 공짜 선수로 복권 긁어보고 싶은 팀이라면 시소코에 투자하세요!

글= 김정용 기자

사진=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제공

풋볼리스트 주요 기사

[단독] 김주영, 상하이상강서 허베이로 이적
EPL+라리가+K리그+글로벌 브랜드 마케팅, 오프라인 강의
[人사이드] ‘광주의 기적’ 남기일 리더십의 비밀
벤틀리공장서 '해고' 당한 7부리그 선수, 아스널 입단
'음악에 취한' 맨유, 음원 플랫폼 파트너십까지 '확대'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