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강릉] 한준 기자= 2016시즌, K리그를 대표하는 골키퍼 세 명(정성룡, 김승규, 이범영)이 나란히 일본 J리그 무대로 진출했다. 이미 김진현과 구성윤이 각각 세레소오사카와 콘사도레삿포로에서 뛰고 있던 가운데, 국가대표급 골키퍼가 모두 일본으로 향한 것이다. 

이들 가운데 2017시즌 국내 무대로 돌아온 선수는 이범영(28)이 유일하다. 이범영이 뛴 아비스파후쿠오카는 18개 팀 중 최하위를 기록하며 2부리그로 강등됐다. 강원FC로 이적하며 1년 만에 일본 무대를 떠난 이범영은 실패자처럼 보였다. 5일 강릉 씨마크호텔에서 진행된 강원FC 시무식 현장에서 만난 이범영의 표정은 밝았다. 

“두 시즌 연속 강등의 아픔을 겪었죠. 승격과 강등에 대한 경험은 제가 좋지 않을까요? 선수들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이범영의 말대로 그는 2015시즌 부산아이파크가 K리그챌린지로 강등당하며 일본 무대로 떠났다. 2016시즌에는 일본 J리그에서도 강등을 경험했고, 이제 2017시즌 승격팀 강원FC의 잔류, 그리고 그 이상의 목표를 완수하기 위한 수문장으로 선택됐다. 

이범영은 아쉬움으로 끝난 1년간의 일본 생활이 의미 없지 않았다고 했다. 왜 돌아오게 됐는지, 그리고 어떤 것을 얻어왔는지,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있는 강원의 넘버 원으로 선택된 이범영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다음은 이범영과의 인터뷰 전문.

-부산과 아비스파에서 연속으로 강등을 경험했다. 강등당한 팀들의 공통점이 있을까?
전반기까지는 분위기 싸움에서 어느 정도는 밀리지 않았다. 한 번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 회복 불가능까지 떨어졌다. 부산에서 2014년에는 강등 위기에서 한번 살아남았다. 시즌을 치르다 보면 재기의 기회가 분명히 온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무너질 뻔한 순간 바닥까지 가지 않고 살아났다. 강등이 된 시즌에는 재기할 수 있다는 계기를 잡지 못해서 무너졌다. 아비스파는 후반기 시작과 동시에 무너졌다. 고참 선수와 신인 선수 사이의 분위기를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강등에 대한 불안감, 경기가 잘 안 될 때 분위기를 잘 조성해야 벗어날 수 있다. 재기할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실점이 제일 많은 팀이었다. 개인적인 활약은 어땠나?
일단 강등된 팀인 골키퍼니까. 나한테 굉장히 볼이 많이 온다. 다른 어떤 팀 보다도. J리그는 시즌이 끝나고 나면 선수 관련 통계가 세세하게 나온다. 내가 지난 시즌 18개 팀 골키퍼 중에서 선방률이 6위였다. 뭐, 실점률은 17위. 꼴등에서 두 번째. 기록으로 보면 선방도 많이 했다. 그만큼 볼이 많이 왔고, 골키퍼 입장에서 실점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선방을 했을 때, 공격수가 도와줘야 한다.

-아비스파가 최소 득점팀이더라. 34경기에서 26득점
0-1로 뒤지고 있을 때. 혹은 1-1로 따라 갔을 때. 이 때가 중요하다. 0-1 상황에서 0-2가 되면 무너질 확률이 높아진다. 이때 공격수가 득점해서 따라가느냐, 역전을 하느냐. 부산에서도 그렇지만 뒤에서 많이 잘 막았는데, 공격 기회에서 득점이 안되면 다시 상대 공격이 넘어온다. 막는 건 한계가 있다. 60~70분까지 잘 버틴다. 이때 한 골을 넣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 시점에 득점을 해주면 분위기가 우리 쪽으로 넘어온다. 골키퍼 입장에선 최대한 실점을 하지 않고, 나머지 부분은 미드필더와 공격수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강원에는 훌륭한 공격수들이 많다. 우리는 충분히, 높은 목표를 세울만한 멤버다. 

-사실 하위권 팀의 골키퍼가 많은 슈팅을 막기 때문에 오히려 발전할 기회가 크지 않나?
그것도 1~2년 정도면 발전한다. 3~4년 정도 하다 보면 솔직히 ‘내가 너무 고생하는데?’ 이런 느낌이 든다. (웃음) 처음 1~2년에는 ‘이게 나한테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4년째 이런 경기를 하다 보니 극한 직업이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고(웃음).

 

-아비스파에서 1년 만에 나오게 됐다. 밖에서는 실패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팀을 나오게 된 이유는?
팀이 2부리그로 강등되면서 예산 상의 문제가 있었다. 나는 갈 때부터 아시아쿼터 선수로 간 것이 아니라 일반 외국인 쿼터로 들어갔다. 아비스파에 이미 한국인 선수가 한 명 있었다. 사실 시즌을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구단과 미팅에서 내년에도 함께 하는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 그런데 한국에 온 뒤에 갑자기 말이 바뀌었다. 임대로 1년 정도만 K리그나 다른 팀에 가서 있다가 오라고 하더라. 그래서 임대로 뛸 팀을 찾고 있었는데, 강원에서 제안이 왔다. 강원에서는 임대는 싫다고 하더라. 완전 이적으로 강원과 하나가 되고 싶다고 했다. 강원이 이적료를 지급하면서 완전 이적이 결정됐다.  

-해외 진출은 쉽지 않은 기회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실패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강원 이적을 결정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이렇게 돌아온 것을 두고 실패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일본에서 보낼 두 번째 시즌에 대한 기대가 컸던 상황이다. 시즌 초반에는 멋모르고 도전했고, 어려움도 겪었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 내가 보기에도 좋은 경기를 많이 했다. 일본 사람들이 내가 말도 빨리 배운다고 해줬다. 나 자신도 적응이 잘 되고 있다고 느꼈고, 가족들도 생활 면에서 만족스러워했다. 2부리그로 내려갔지만, 그와 상관없이 2017시즌을 잘 해보자고 기대하고 있었다. 만약 내가 실패자로 돌아오는 거라면 강원에서 이런 좋은 대우를 받고 오지 못했을 거다. 강등이라는 결과는 물론 실패라고 할 수 있지만, 강원이 그런 내 마음을 다독여줬고, 나를 정말 필요로 한다는 간절함을 보여줬다. 

-J리그는 골키퍼부터 빌드업하는 스타일이 일반적이다. 하위권 팀에 있었는데 경기 스타일은 어땠나?
K리그에 있을 때, 부산 같은 경우도 하위권 팀이다 보니 수비 위주의 축구를 했다. 공격하는 것보다 우리가 당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J리그는 전체적으로 수비 지향적인 팀이 없다. 서로 치고받는 공격 축구를 주로 한다. 일본에서 뛰면서 개인적으로 많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일본 선수들은 골키퍼와 맞닥뜨린 상황,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에서 두 가지 옵션을 더 생각하더라. 미드필더들도 그렇고, 일대일 상황에서 한 번 더 들어간다. 쉽게 때리지 않고 밀어주는, 완벽한 플레이를 추구하기 때문에 나 역시 두세 가지 생각을 더 하지 않으면 선방할 수 없다. 그런 부분에서 스스로 더 연구했다. 

-어떻게 보면 프로 선수로 홀로서기의 과정으로도 보인다
한국처럼 클럽하우스에서 모든 걸 다 챙겨주는 상황이 아니다. 몸 관리부터 식사까지 선수가 알아서 해야 한다. 훈련장과 경기장에서 내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한국에서는 합숙도 많았고. 지금까지는 중고교 축구부에서 운동하다가 이제야 진짜 프로가 된 느낌이다.

-강원은 기존 멤버 중 골키퍼 송유걸도 재계약했다. 강원에서 주전 경쟁도 해야 한다
대표팀에서도 그랬고, 어느 팀에 가든 경쟁은 해야 한다. 그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경기에 나설 수 있다. 내가 영입된 선수라고 우선순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감독님도, 골키퍼 코치님도 나를 처음 보는 것이다. 제로베이스에서 한다는 생각이다. 최선을 다하면, 감독님이 선택하시는 것이다. 일본에 가서도 용병이라는 점에서 이점은 있겠지만, 내가 당연히 뛴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다면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강원에 영입 선수가 워낙 많다. 기존 선수와 새로 온 선수 사이의 관계가 중요할 것 같다. 골키퍼 같은 경우 심리적으로 그런 면이 더 클 것 같다.
(송)유걸이 형은 원래부터 친했던 선배다. 나도 그렇지만, 유걸이 형도 누가 경기장에 나가든 뒤에 있는 선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대표팀에 가서 배운 것은, 주전 선수도 중요하지만 그 뒤에서 희생하는 선수들이 더 중요하다. 유걸이 형에 경기에 나가면 내가 지원해주고, 내가 경기에 나서면 도움을 받고. 서로 도우면서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 골문이 단단해야 AFC챔피언스리그 진출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 두 선수가 싸운다면 골문이 단단해질 수 없다. 서로 함께 발전해서 팀이 실점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골키퍼는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콜 플레이로 수비수나 필드 선수들의 위치를 잡는 소통 능력도 중요하다
사실 일본에 가서 처음 3~4개월 동안 어려웠던 부분이 소통이다. 한국에서는 간결한 소통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많은 말을 하기보다 간단하게 말하고 내가 막는 것 위주로 준비했다. 일본에 가서는 한국에서도 안 하던 말까지 해야 했다. 

예를 들면 간단하게 ‘안쪽 막아!’ 이렇게 하는 상황을 일본에서는 ‘왼쪽으로 막고 오른쪽으로 유도해!’ 식으로 세밀하게 얘기해야 한다. ‘걷어!’ 라고 할 부분도 구체적으로 ‘OO아 걷어!’라고 지칭해서 해줘야 한다. ‘좁혀!’ 같은 경우도 ‘OO이 좁히고 ㅁㅁ이 커버해!’ 이렇게 해야 한다. 골키퍼 코치님이 이렇게 하라고 지시하셨다. 

-헷갈렸을 것 같다. 효과는 있던가?
가뜩이나 말이 잘 안 나오는데 어려운 말을 시키니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었다. 그런데 점점 하다 보니 실제로 선수들의 조직력이 좋아지는 게 보이더라. 이렇게 해주는 것만으로 내게 볼이 오는 횟수도 줄었다. 세 마디 하던 걸 열 마디 해야 해서 의아했는데, 겪어보니 팀에 도움이 된다고 느꼈다.

일본에서도 결국엔 수비수들과 99%까지 소통이 가능해졌다. 이제 한국말로 한다면 더 편하고 재미있을 것 같다. 이제 익숙해진 방식이니 한국에서도 그렇게 할 생각이다. 한국 선수들과 한다면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다 할 수 있다. 편하게 말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행복하고, 기대하고 있다. 고구마를 먹어서 답답하던 마음이 이제 고구마와 물을 같이 먹을 수 있다는 행복감처럼느껴진다. 

-강원이 주목받으면서 개인적으로도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됐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 대한 생각도 있을 것 같다
2015년에 우한에서 치른 동아시안컵 이후 대표팀의 부름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대표팀에 관심이 있고, 다시 가고 싶다. 한참 동안 대표팀에 들어가지 못하면서 느낀 것은, 팀이 잘되어야 개인이 있다는 것. 그걸 다시 한번 절실하게 느꼈다. 아비스파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 강원은 팀 자체의 목표가 높다. 그곳까지 간다면 내게도 개인적인 영광이 따라올 것이다. 팀의 목표를 따라가는 게 우선이다. 

-가족들도 강릉에서 생활하나?
집을 구했다. 이사는 동계훈련 끝나고 할 계획이다. 아기가 이제 막 돌을 지났다. 아빠를 많이 찾는다. 강릉 생활이 기대된다. 후쿠오카도 좋은 곳이었지만 그래도 외국이다. 한국만큼 익숙하고 편한 곳 없다. 가족과 함께할 강릉 생활이 기대된다. 

사진=풋볼리스트, 아비스파후쿠오카,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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