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원 환송 행사에서 올리 감독(왼쪽)과 팀 매니저(오른쪽 두 번째), 친한 선수 이스마엘 알하마디(오른쪽)과 함께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권경원이 무명에서 화제의 인물이 되기까지 2년 걸렸다. 그사이 권경원은 전북현대의 벤치 멤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명문팀 알아흘리의 주전 멤버,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준우승, 역대 한국 선수 2위 이적료로 중국 톈진췐젠 이적을 경험했다.

5일 ‘풋볼리스트’와 통화한 권경원은 톈진 이적을 앞두고 한국을 들를지, 두바이에서 바로 톈진으로 갈지 고민중이라고 했다. 이 말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알아흘리를 떠나기 아쉽다는 것이다. 중동으로 가는 한국 선수는 차가운 계약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지만 권경원은 알아흘리가 키운 선수라는 점에서 특이하다. 두 번째는 중국행이 그만큼 기대되고, 그만큼 긴장된다는 것이다. 국가대표 선배들과 달리 아무것도 이룬 것 없는 상태에서 중국에 간다면 그만큼 긴장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권경원은 물었다.

 

- 중국행 보도 후 사실상 확정되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처음 오퍼가 온 건 두세 달 전이었던 것 같아요. 톈진에선 빨리 합의서를 쓰자고 했는데 알아흘리는 계속 협상을 했고, 톈진이 밀어붙이다가 결국 합의점을 찾았는데 그 과정이 길었어요. 제겐 편한 시간이 아니었죠. 알아흘리에 남아도 좋고 중국으로 가도 좋지만 어느 쪽이든 결정이 나야 편할 테니까요. 팀에 남으면 이렇게 좋은 동료, 코칭 스태프와 함께 또 ACL에 도전할 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중국은 새로운 도전이고 새로운 시험대에 오르게 되는 거였죠.

 

- 거액의 이적료와 연봉이 화제를 모으고 있어요. 처음부터 스타였던 선수가 아닌데, 얼떨떨할 것 같네요.

그렇죠. 이런 상황을 상상해 본 적이 없어서. 톈진이 절 그만큼 원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고,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알아흘리가 금액을 올린 것도 절 보내기 싫다는 뜻이었다고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고요. 저는 금액과 조건보다 저를 원하는 팀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기분이 좋았죠.

톈진은 칸나바로 코치님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어요. 꼭 한 번 만나고 싶은 사람이었거든요. 알아흘리에서 선수와 코치를 다 하셨잖아요. 제가 왔을 땐 이미 떠난 뒤였지만, 제 동료들이 칸나바로 코치님 칭찬을 그렇게 많이 했어요. 그래서 알아흘리로 다시 오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거꾸로 제가 칸나바로 코치님, 아니 이제 감독님에게 가게 됐네요. 신기해요.

- 알아흘리 동료들에게 칸나바로 감독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요?

네. 여기선 코치였는데 수비 지도를 맡았대요. 단순히 지시사항을 말하는 게 아니라 상황별로 어떻게 움직여야 더 안전한 수비를 할 수 있는지 되게 디테일하게 이야기해준대요. 그 분이 수비 코치를 맡고 나서 실점률이 확 줄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발롱도르도 받아 본 분이니까 콧대도 높고 어깨도 올라갔을 것 같지만 실제 만나보면 선수 눈높이에 맞춰서 가르쳐 주신대요. 애들이 아주 입에 마르도록 칭찬을 해요. 이적이 확정된 뒤 전화 통화만 했는데, 대단한 이야기는 없고 “잘 쉬고 올해 잘 해 보자”라는 인사를 해 주셨어요.

 

- 알아흘리 팬과 동료가 환송을 잘 해줬던데요.

마지막 경기에서 21분에 1분 동안 제 이름을 부르면서 박수를 쳤대요. 제 등번호가 21번이라서. 그런데 발음이 좀 달라서 못 알아들었어요. 나중에야 알았죠. 동료들이 축하해주는 게 고맙고, 제가 행복한 선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들 ‘네가 성실히 축구했기 때문에 알라가 너를 중국으로 보내주시는 거다’라고 하더군요. 제가 무슬림은 아니지만 중동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젠 익숙해요. 올리 감독님을 따로 찾아가 마지막 인사를 할 때는 눈물이 좀 나더라고요. 울지 말자고 계속 다짐했는데. 그래서 고개 푹 숙이고 얘기했어요.

 

- 누구나 가족은 각별하지만, 권경원 선수는 두바이에서도 가족들과 함께 지냈는데요. 형과 부모님은 어떤 이야기를 해 줬나요?

부모님은 걱정부터 하시죠. 이적이 좋은 일인 동시에 위험한 일이니까. 중국에 가서 해이해질까봐 걱정하시는 거죠.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뛰다가 부상을 입진 않을까 걱정하시기도 하고. 두 분 말씀이 좀 달랐어요. 아버지는 어디든 제가 좋아하는 축구를 할 수 있다면 상관없다고 하시고, 어머니는 어릴 때 도전해보라고 하시고.

형은 제가 의사결정을 할 때 가장 믿고 조언을 구하는 사람이에요. 형이 마침 절 도와주기 전에 중국어를 배워서 중국 관련된 일을 했거든요.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절 도와주겠다고, 함께 열심히 해 보자고 했어요.

아아, 그리고 김경중, 최성근, 김선민, 그리고 영생고 단톡방에 있는 친구들이 인터뷰 하면 이름 거론해달라고 했거든요. 거론 좀… 요즘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은 연락을 받은 것 같아요.

 

권경원 환송 행사에 쓰인 케익. 2015 AFC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권경원이 결승골을 넣은 시간과 장면이 담겼다.

- 요즘 화제가 많이 되다보니까 국가대표 발탁 가능성이 거론되기 시작하는데요.

제가 그럴 만한 선수라면 이미 뽑혔겠죠. 아직 부족한 걸 잘 알아요. 국가대표 형들은 제게 엄청난 선배들이고요. 이제까지 못 뽑힌 것에 대해선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고요. 다만 앞으로 더 노출될 수 있고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건 알아요. 대표는 모든 선수의 꿈이죠. 매 경기 열심히 하겠습니다.

 

- 톈진에 악셀 비첼이 합류하기로 되어 있고요, 니콜라 칼리니치가 협상 중이라고…

그런가요? 그 선수들 걱정할 때가 아니라서 잘 몰라요. 중국은 아무리 몸값 비싼 선수라도 마음에 안 들면 2군으로 보내거나 바로 방출할 수 있는 환경이잖아요. 지금부터 긴장의 끈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그 생각만 하고 있어요.

 

- 그럼 상대팀으로 올 선수들은요? 카를로스 테베스, 오스카 등을 막아야 하는데.

걱정은 돼요. 한편 기대도 되고요. 세계 최고인 칸나바로에게 지도를 받으면 앞으로 얼마나 수비가 늘까 하는 기대요. 같은 리그에서 뛴다는 게 엄청난 행운이잖아요. UAE에도 세계적인 공격수들이 많았는데 그땐 협력수비를 통해 어느 정도 막으면 된다는 노하우를 익혔어요. 그런데 전 아직 직접 나가서 빼앗는 능력이 부족해요. 칸나바로에게 열심히 배워서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사진= 권경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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