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두바이(UAE)] 김정용 기자= 축구는 비교적 돈이 덜 드는 편이지만, 운동선수를 키운다는 건 넉넉잖은 형편의 가정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권경원은 부모님과 형의 뒷바라지를 받으며 최선을 다해 운동했고, 기적처럼 성공이 따라왔다.

지난 2015년 1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명문팀 알아흘리가 전북현대의 후보 선수였던 권경원을 영입한 건 의외였다. 국가대표 출신들이나 하는 줄 알았던 중동 진출이 무명 선수에게 허락됐다. 주위 사람들은 그만큼 치열한 노력이 있기 때문이었다고 증언했고, 권경원의 노력을 이끌어낸 건 가족과 스승이었다. 이제 권경원은 집안의 빚을 모두 갚고 부모님을 모신다.

가족의 거처는 두바이에서 중국 톈진으로 바뀔 예정이다. 권경원은 몸값 1,100만 달러(약 131억 원)에 톈진췐젠으로 이적한다. 연봉은 30억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풋볼리스트’는 지난해 12월 두바이에서 권경원을 만났고, 5일 전화로 이적을 앞둔 심경을 들었다.

 

집을 팔아서라도 경원이 축구 시켜주자, 무슨 뜻인지 그땐 몰랐죠

가진 것 없이 시작한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며 권경원과 형을 키웠다. 아버지는 택시를 몰았고, 어머니는 유치원과 식당에서 일했다. 형이 초등학교 4학년 때 태권도 선수를 시작하는 동시에 2학년이던 권경원이 축구부에 들어갔다. 시간이 흐르며 뒷바라지가 어려워지자 부모님은 한 명의 아들을 선택해야 했다. 동생의 재능이 더 큰 것 같으니 형이 양보하라는 말을 어렵게 꺼냈을 때, 형은 동생을 위해 선뜻 받아들였다.

“부모님이 ‘미안하다, 한 명만 서포트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을 때 형이 이렇게 말했대요. ‘우리 컨테이너 박스에서 살아도 되니까 집을 팔더라도 경원이 축구 시켜주자’고. 엄마가 저에게 형의 말을 전해주면서 ‘책임감 갖고 열심히 하라’고 말해 줬어요. 그땐 너무 어려서 형이 어떤 선택을 한 건지 느끼지 못했죠. 지금은…, 형이 얼마나 큰 희생을 했는지 이젠 알 것 같아요.“

권경원이 중학교에 올라갈 때, 어머니는 전지훈련비를 입금하러 은행에 다녀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목을 다쳤다. 몸 일부의 감각을 잃고 목을 가누기 힘들어졌다. 집안은 더 어려워졌고, 권경원은 “저 때문에 다치신 거였죠”라며 지금도 자책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어렸고, 생각만큼 실력이 빨리 늘지 않았다. 권경원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브라질 유학을 다녀오며 체격도 실력도 키운 뒤 전북 유소년팀인 영생고에 들어가며 축구 인생의 전기를 맞았다. 축구는 잘 모르지만 영생고를 가야 한다고 강하게 권한 어머니의 선택이 정확했다. 철이 든 게 영생고 시절이었다.

“조성환(제주) 샘이 그때 영생고에서 제 감독님이셨거든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애들을 열심히 하라고 독려해주시는 분이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망나니였던 제가 샘한테 혼나면서 많이 달라졌죠. 그때부턴 정말 열심히 했어요. 지금도 휴가 때 한국에 들어가면 제주도를 찾아 인사 드려요. 샘이 늘 말씀하셨어요. ‘성실하게 운동하면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고.”

외삼촌은 아들 졸업식도 안 가면서 권경원 경기는 꼬박꼬박 따라다닌 후원자였다. 동아대 2학년 시절 외삼촌이 권경원을 불렀다. 그때 권경원은 전북 우선지명 신분으로 해외 구단 입단 테스트를 봤다가 금기시되는 행위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전북에 밉보인 건 아닐까 두려워하던 때였다.

“외삼촌이 절 불러 앉히더니 ‘경원아, 마지막 대회가 한 달 남았는데 무조건 새벽에 산을 뛰고 저녁에 운동장 10바퀴를 돈다고 나와 약속해 다오. 그리고 너 자신을 속이지 마라’라고 하셨어요. 뭘 알고 그렇게 말씀하신 건지 지금도 궁금해요. 저도 왜 외삼촌의 말을 따랐는지 잘 모르겠어요 실제로 그렇게 한 덕분에 대회에서 활약상이 좋았고, 전북이 절 불렀죠. 만약 외삼촌 말을 안 들었으면 그 정도로 준비를 안 했을 것 같아요.”

최강희 전북 감독은 “엔트리에서 제외된 날에도 가장 애절하게 운동하는 선수”라고 권경원을 기억하고 있다. 후보 신세로 1년을 보낸 뒤 2015년 동계훈련이 UAE에서 시작됐다. 권경원은 불안감 속에서 적극적으로 훈련에 임했고, 최 감독은 그런 권경원을 붙잡아 유독 오래 개인 교습을 했다. 고참 선수들이 “감독님 아들 한 명 탄생했네”라고 농담을 하는 상황이었다. 연습경기에서도 유독 실전 같은 태도로 경기하는 권경원이 알아흘리의 눈을 사로잡았다. 갑자기 이적이 성사된 배경이었다.

 

제가 아는 건, 혼자 이룬 게 없다는 것

권경원이 두바이에서 활약한 2년 동안 가족의 인생도 달라졌다. 알아흘리와 계약서를 쓰자마자 가장 먼저 전화한 사람은 형이었다. 어렸을 땐 “웬수 같은 형”이었지만 타지생활을 하게 된 뒤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도 형이었다. 형은 권경원의 전화를 받자마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3일 뒤 두바이에 도착했다. 그때부터 권경원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됐다. “전 이제 형 없으면 안 돼요.”

부모님은 권경원이 어떻게 사는지 보러 두바이를 찾았다가 자연스레 함께 살기 시작했다. 부모님에겐 오랜만에 맞는 긴 휴가였다. 최근 톈진췐젠 이적이 성사되면서 한국과 더 가까운 톈진으로 거처를 옮기게 됐다. 권경원은 부모님이 너무 무료해하시지만 않는다면 앞으로도 모시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가난에서 벗어나는 건 많은 서민의 꿈이지만 그걸 이룰 수 있는 사람은 흔치않다.

“어렸을 땐 제가 집안 사정을 다 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모르는 빚도 있었고, 모르는 사연도 많더라고요. 지금도 우리 집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다 아는 건 아니에요. 부모님께 잘해드리고 싶을 뿐이죠. 제가 아는 건 혼자 이룬 게 없다는 거예요. 전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조성환 감독님, 부모님, 외삼촌 말씀을 따랐어요. 지금 돌아보면 틀린 적이 없어요.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어요.”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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