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레프트백 윤석영과 라이트백 오재석은 '2012 런던올림픽'의 룸메이트였다. 청소년 대표 시절부터 좌우 측면 수비를 도맡은 절친 사이다. 2013년 1월, 윤석영은 전남드래곤즈를 떠나 잉글랜드 퀸즈파크레인저스(QPR)로 이적했고, 오재석은 강원FC를 떠나 일본 감바오사카에 입단했다.

4년의 세월이 흘렀고, 윤석영은 덴마크 클럽 브뢴비를 떠나 새로운 목적지로 일본 J리그를 택했다. 오재석은 여전히 감바에 있다. 어느새 J리그 5년 차. 가시와레이솔의 제안을 받았을 때 윤석영은 오재석에게 제일 먼저 연락했다. 비시즌을 맞아 한국에 들어온 둘은 곧바로 뭉쳤다. 

윤석영이 유럽 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향하게 된 이유부터, 일본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오재석의 세심한 조언까지. 두 풀백의 수다 현장에 ‘풋볼리스트’가 함께 했다. 

#. 일본 선수들, 한국 선수에게 텃세를 부리지는 않나?

오재석(이하 오): (처음 J리그에 진출하게 됐을 때) 홍명보 감독님에 연락을 따로 드렸죠. ‘애들이 잘 해주냐?’ 하시길래 뭘 아시는구나 싶었어요. ‘잘해주는 애들은 잘해주는데, 그렇지 않은 애들도 있다’고 하니 ‘그런 애들이 오히려 겁쟁이다. 신경 쓸 필요 없다. 잘 하는 선수들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엔도 선수가 정말 잘해줬어요. 팀에서 어중간한 선수들이 그러는 것 같았죠. 감독님 얘기를 듣고 나니 괜찮았어요. 감독님 본인도 벨마레에 처음 갔을 때 경기를 뛰면 공을 한 10번 잡았나? 그러셨다고 하더라고요.
윤석영(이하 윤): 그러게, 공이 안 왔다고 하더라.
오: 나도 느꼈고. 다 겪는 거라고. 그런 말 한마디에 자신감을 좀 얻은 것 같아요. 그래서 무덤덤해졌죠. 그럴 수 있다. 

풋볼리스트(이하 풋): 덴마크에서는 어땠나요?
윤:
덴마크 애들은 착해요. 볼 막 줘요. (웃음) 영국에 3년 반 있었고, 덴마크에는 반 시즌 있었잖아요. 덴마크 애들이랑 더 친해졌어요. 애들이 순해. 거기가 행복 지수 1위잖아요. 영국에는 친한 애들이 있고, 안 친한 애들도 있었는데, 덴마크 애들이랑은 다 친했어요. 훈련 끝나면 같이 플레이스테이션 하러 가자, 점심 먹으러 가자, 먼저 얘기하고. 

풋: 리그 경기는 결국 한 경기도 못 뛰었는데,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
윤: 감독 스타일이죠. 제가 갔을 때 전문 레프트백 선수가 (다쳐서) 없었어요. 라이트백을 보던 선수가 엄마가 한국인인 하프 코리안이었는데. 걔가 왼쪽을 보고. 정통 왼쪽이 없어서 제가 온 거죠. 근데 알고 보니까 저는 구단주와 에이전트의 이야기를 통해 오게 된 거였어요. 감독 생각은 달랐던 것 같아요. 전 단기로 왔고. 어쩔 수 없죠. 충분히 이해해요. 가서 바로 뛸 줄 알았어요. 덴마크에는 어린 선수들이 많고, 여기서 잘해서 독일이나 영국, 네덜란드, 이런 리그로 나가기 위한 발판으로 삼는 무대. 경기를 보고 충분히 뛸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기회가 오지 않았죠.

풋: 유럽에서 아시아로 돌아오는 결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윤: 유럽에 더 남아서 하고 싶었는데, 경기를 뛰어보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돌아오는 순간이 되니까 아쉬운 마음은 있었지만, 경기에 뛸 수 있어야 하니까. (풋: 그러면 J리그에 오게 된 것은 제안이 먼저 왔기 때문에?) 덴마크에 가자마자 얼마 안 있다가 가시와 분들이 찾아오셨어요. 처음엔 계약 안 한다고, 오시더라도 얘기만 좀 할 수 있다고 했는데도 덴마크로 오셨어요. 구단의 비전도 얘기하고, J리그에 관해 설명을 들었는데 매력적으로 느꼈죠. 그때 오싹(오재석의 별명)하고 되게 많이 연락했어요. 제일 먼저 전화했죠.

풋: 유럽에 도전하던 때와 비교하면, 부담은 덜한 편인가요?
윤: 부담은 그대로죠.
오: 용병이니까.
윤: 한국으로 들어왔다면 조금은 편안할 수 있었겠죠. 다시 외국에 가는 입장이니까. 용병으로서 보여줘야 한다. 한국의 대표로 간다는 느낌이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죠.  

풋: 윤석영 선수가 일본에 오면서 오재석 선수 입장에서는 반가울 것 같아요.
오: 오는 거 자체만으로 자극이 되고. 나도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재미있어지겠다는 생각 들고. 작년에 (김)승규가 오면서 일본 생활이 재미있어졌거든요. 작년이 4년간 일본 생활 중 제일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고, 늘 절제했는데. 볼거리도 찾아 다니고, 먹거리도 찾아다니고. 

#오재석이 소개하는 J리그와 가시와 레이솔

오: 팀에 관해 설명해줬죠. 가시와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가시와 동네가 어떤지도 얘기해주고. 가시와는 예전에 있던 선수들이 다 빠지고, 세대교체를 하는 중이에요. 2016시즌에 생각보다 좋은 성적을 거뒀어요. 세대교체를 하면서 지금 중앙 수비수가 94년, 95년생이에요.
윤: 잘한다고 하던데?
오: 가시와가 세대교체를 급격하게 해서 무너질거라고 생각했어요. 10위권 정도. 그런데 6위로 시즌을 마친 걸 보면서 저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J리그는 전체적으로 평준화 된 거 같아요. 전체적으로. 강등권 정도는 좀 떨어지는데, 대략 10개팀 정도가 비슷비슷한 것 같아요. 
윤: 누가 우승할지 모르죠

풋: 지난해까지 J리그도 투자가 줄어들고 침체한 느낌도 있었는데?
오: 포를란 실패 이후 살짝 냉기가 흐른 건 사실 같아요. 이번에 중계권 대박이 나면서 숨통이 트인 거죠. 우승 상금도 200억까지 오르고.
윤: 주변에서도 일본의 축구 시스템, 환경에 대해 칭찬을 많이 하고. 유럽 축구와 비슷하다고 하니까. 일본의 세밀한 축구를 배워보고 싶었고. 그러다가 이번에 중계권 대박이 나면서 투자도 많이 하고. 그런 걸 통합적으로 생각해보고, 매력을 많이 느꼈어요. 쉽지만은 않겠죠.

풋: 오재석 선수도 빌드업 능력, 오버래핑 능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J리그에 도전했다고 했었죠? 벌써 5년 차가 됐는데 많이 발전했다고 느끼나요?
오: 하니까 느는 것 같아요. 좋아진 부분도 있지만, 아직 과제가 많아요. 더 세련된 플레이를 할 수 있어야죠. 처음에는 안 맞았어요. 길게 킥도 해야 하는데, 선수들이 공을 받으러 다 나와요. 짧은 거리에서 주고받는 플레이만 하니까. 때로는 직선적인 돌파도 해야 하는데, 일본에서는 일대일 장면이 거의 안 나와요. 사이드에서 공격해도 일단 주고 들어가니까. 

윤: 윙도?
오: J리그에서는 윙의 특징이 사실 없어요. 인상 깊은 윙이 없어요. 우리나라에 있는, 측면 돌파를 잘하는 직선적인 윙은 J리그에 오면 어렵다고 생각해요. J리그에 융화가 되고. 처음에는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쓰임새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느 순간 일본 스타일에 동화되죠.  

윤: 풀백은 오버래핑을 잘 안 나가?
오: 타이밍을 봐서 나가지. 돌아오지 않는 오버래핑을 하는 선수들도 많아. 풀백이 많이 나가는 이유는, 볼란치가 좋기 때문에. 올라 가면 패스가 오고, 점유가 되니까. 높은 위치 선점할 수 있어.

윤: 그렇다고 하더라. 압박은 강해?
오: 아니. 한다고는 하는데, 한국만큼 강하진 않아. 작년에 수원이랑 붙어봤는데 확실히 달라.  

#풀백들의 고민, 염기훈을 막기 어려운 이유

풋: 수원이랑 경기에서 염기훈 선수를 잘 막았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데. 그 경기는 특별했죠?
오: 그 경기는 무조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성장한 모습 보여주고 싶고. 그 전 시즌 수원 경기를 많이 봤죠. 왼쪽 공격이 워낙 좋으니까. 그 당시 홍철은 부상 중이었는데 창훈이, (양)상민이 형, (염)기훈이 형. 특히 기훈이 형이 잘하니까. 하세가와 감독님이 특명을 내렸죠. 크로스를 주지 말라고. 그런데 어떻게 안 줘, 크로스를!

윤: 그건 힘들어. 사이드백이 크로스를 안 주는 건 힘들어요. 왜냐면, 상대방이 공을 잡고 점유하고 있을 때, 포백 라인은 (공이) 사이드로 가면 당기고 당겨서 왼쪽이나 오른쪽 풀백이 중앙 수비를 커버하러 안으로 들어와야 하잖아요. 그런데 또 공을 돌렸어. 윙은 빌드업을 할 때 가만히 (반대편에) 벌려 있단 말이에요. 이 선수들한테 볼이 가면 또 나가야 해요. 다시 패스하고 뒤로 빠진 척을 하면 따라가야 하고. 빌드업을 통해 반대로 가면 또 커버하고. 이러다가 한 번씩 늦을 수가 있어요. 압박하기가 힘들거든요.

바짝 다가가면 윙이 멈추고 안으로 치고 들어가요. 이때 힘이 들면 순발력이 저하돼서 못 따라 갈 수 있고, 그러다 크로스를 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생겨요.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감독들이 크로스 절대로 주지 말라고 했는데 왜 주냐고. (차)두리 형은 풀백 출신이라서 풀백의 마음을 알더라. 크로스를 어떻게 (아예) 안 줄 수 있냐고.

풋: 풀백이 공이 없는 수비 상황에서 그렇게 계속 움직이는 장면은 화면에는 잘 잡히지 않고, 많이 주목되지는 않죠. 그러다가 실수할 때 클로즈업되고.
윤: 그런 움직임은 잘 안보이죠. 이렇게 잘 캐치하지 못하는 부분을 (오)재석이 형이 잘해요. 맨투맨이 워낙 좋으니까
오: 기훈이 형을 막기가 어려운 건, 우선 크로스가 진짜 좋고. 또 하나는 크로스를 하기 전에 퍼스트 터치가 정말 좋아요. 그러니까 바짝 못 다가가요. 다른 쪽으로 칠 수 있으니까. 공을 딱 잡아 놓을 때 터치가 불안해야 그 타이밍에 바짝 붙어야 하는데, 터치가 너무 좋으니까. 10번이면 10번 다 좋으니, 풀백이 서게 되는 거죠. 

풋: 그 경기에서는 어떻게 염기훈 선수에게 공격 포인트를 안 줄 수 있었나요?
오: 야구를 보면 투수의 습관을 캐치하는 코치 따로 있다던데, 기훈이 형의 패턴을 잡으려고, 누구나 (습관이) 있잖아요. 그걸 잡으려고 수원 경기를 6경기 봤나? 2주 동안 준비 했어. 

윤: 기훈이 형이 조금 느리지 않아?
오: 느린 걸 커버하는 손 동작이나, 등지고 하는 플레이가 워낙 좋아서.
윤: 하긴 워낙 영리하게 공을 차니까.
오: 붙어보니 패턴이 사실 없더라고요. 다만 일대일 할 때 하나, 둘 멈칫하고 치는데, 일대일 상황이 되면 그것만 계속 생각하고 했죠. 그게 경기 중에 한 번 나와서 뺏었거든요. 그때 ‘됐다!’ 성취감이 있어요. 
윤: 형 수원에 있을 때 같이 있었지?
오: 맞아. 그 형은 반칙이야. 축구를 그렇게 잘하는 데 성격까지 착해. 

#풀백의 진화 그리고 생존법

풋: 감바에서는 수비할 때 조직적으로 어떻게 준비하나요?
오: 약간 내려서서 카운터 어택을 준비해요. 상대가 주고 받는 플레이는 신경 쓰지 않고. 감독님이 ACL에서 힌트를 얻었는지 모르겠는데, 우리가 점유를 하다가 역습을 당해서 지는 경우가 많아서. 보통 뒤에 내려서서 블록을 만들고 끊어서 카운터를 노리는 방식으로. 앞 선에 빠른 선수가 많으니까. 그 선수를 기점으로 소유하고, 역습을 하더라도 일본에서는 다시 만들어 공격을 해요. 

풋: 현대 축구에선 풀백도 점유 능력과 패싱력이 점점 중시되고. 과르디올라 감독은 풀백을 중앙으로 좁혀 세우거나 아예 중앙 미드필더로 세우기도 하는데. 빌드업 능력이 발전되면 이런 플레이도 가능해지는 건가요?
오: 그건 축구를 정말 잘해야 할 수 있어요. 풀백이 미드필더를 보는 경우는 사실 흔치 않죠. 과르디올라 감독이 그걸 깼는데. 우사미가 바이에른에 가서 보고, 제일 잘하는 선수로 람을 꼽더라고요. 공격형 미드필더를 시켜도 분명 잘 할거라고 했는데, 그 말이 현실이 됐죠. 근데 그건 특별한 경우에요. 맨시티는 지금 풀백을 좁혀서 세우는데, 과르디올라가 혁명가니까. (풋: 이런 전술이 대중화 될 수 있을까요?) 한계는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풋: 일본에 가면서 빌드업 능력이 좋아졌는데, 본래 갖고 있던 악바리 같은 수비력이 퇴화하거나 떨어지진 않았나요?
오: 그거는 어디 안 가는 거 같아요. 제가 그 점 때문에 감바에 있는 거 같아요. 일본에는 저 같은 유형의 풀백은 거의 없어요.
윤: 빡세게 수비하는?
오: 응. 수비적인 풀백이 없고. 볼 예쁘게 차고 세련된 스타일.
윤: 나도 가면 부숴야겠네. 
오: 내가 이걸 못하면 이도 저도 아닐 것 같아서.

윤: 저한테 조언 좀!
오: 발목을 차야 돼. 복숭아뼈 약간 밑 쪽으로
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풋: 그건 파울이잖아요.
오: 넘어지면 손 내밀어 주고. 거칠게 해야 해요. 우리 팀에서 훈련할 때는 안 하지만, 그렇게 해야 상대 공격수가 위축되고. 처음 가서 페드로랑 붙었는데. 그때 J리그에서 페드로가 제일 뜨거웠던 때에요. 내가 레프트백 보고, 걔가 오른쪽 윙이었는데, 제가 지웠죠. 걔가 신경전에 말려서 경기 내내 신경질 내고. 경고받고 교체되고.
윤: 수비수는 이런 점이 필요해요.
오: 축구가 점점 과학적으로 발전하고, 데이터가 중요해졌잖아요. 그런데 변하지 않는 건 사람이 하니까. 감정이나 감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좋았던 경기가 한순간의 실수로 망가지는 경우가 있고. 저도 컨트롤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경기 하면서, 순간순간 심적으로 변화가 있으니까. 결국, 정신력이 강한 선수가. 거친 선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잘 컨트롤 하는 선수, 실수해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선수.
윤: 그걸 잘하는 선수가 축구 잘해요. (풋: 어떤 선수가 잘하나요?) 제가 보기엔 (김)보경이 형. 
오: (박)주영이형이나 보경이.
윤: 키(기성용)도 좋고.

#정반대의 성격, 런던의 룸메이트

오: 저 같은 경우 표정에 드러나요. 중국전에 헤딩 실수하고 카메라에 잡혔는데 얼굴이 허옇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난 ‘괜찮다, 괜찮다’ 주문 외우고 있었는데. 
윤: 그날 잘했는데.
풋: 리우올림픽에서 펜싱 선수도 ‘할 수 있다’고 주문 걸던 장면이 유명했는데.
오: 책에서 공부했는데 ‘자기 암시’라고 하더라고요. 혼잣말 하는게 좋다고. 그래서 혼잣말로 중얼중얼해요.
윤: 전 무덤덤하게 넘어가요. 그냥 빨리 잊고. 옛날에 홍명보 감독님이, 축구 얘기는 아니고. 인간관계에 대한 얘기를 하던 중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어떤 힘든 일이나 있으면 무덤덤하게 넘어가라. 덤덤히 받아들여라. 그걸 전 축구 경기를 할 때 접목했죠. 누구나 실수할 수 있잖아요. 한동안 발목이 아파서 크로스 성공률이 되게 낮은 때가 있었어요. 팬들이 뭐라고 해도 오히려 더 강하게 올리고. 빗나가면 어떡하지. 그렇게 조마조마하기 보단 ‘실수 할 수도 있지’. 이런 생각으로. 원래 성격이 스트레스를 잘 안 받아요. 발목이 안 좋은 것도 있지만, 영국에선 수비 뒷공간으로 강하게 올리라고 주문해요. 잘 했고, 잘 됐어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여러 번 실수가 있었죠. 

풋: 오재석 선수는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오: 이케다 세이고 코치 때문에 하고 싶었어요. 피지컬 코치지만 역할이 광범위해요. 런던 올림픽브라질전에 네이마르한테 영혼까지 다 털리고, 멘붕된 상태였죠. 한일전이 이틀 남았는데 밥 먹을 때 표정이 너무 안좋으니까 세이고 코치가 방으로 불렀어요. 보통 그런 상황에서 방에 부르면 두 가지. 한 경기 남았으니 힘내자고 다독이거나,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정신 차려! 세게 말하거나. 앉자 마자 딱 이 얘기를 해줬어요. 

재석이도 자철이도 주영이도, 홍명보 감독님도 운명을 바꿀 수는 없다고.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 재석이 너, 내가 이 팀에 와서 첫 번째로 치른 경기를 기억하냐고. 수원컵 일본전이었어요. 세이고 코치가 합류하기 전에 올림픽 메달이라는 프로젝트가 인상 깊어서 수락했는데, 첫 경기가 공교롭게 일본전이었고, 3년이 지나 마지막 경기가 일본전이다. 한일전은 자기 운명이라고. 그렇게 표현하시더라고요. 원래 만나게 될 운명이라고. 

세이고 코치가 혹시 몰라서 일본이 첫 경기 스페인전을 이기고 나서 일본 대표팀 자료, 선수 선발 과정 등 기록을 다 받아뒀어요. 우리 자료는 한글이니 일본에서는 읽을 수가 없고. 세이고 코치가 일본팀에 대해 다 얘기해줬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우리가 이기는 것도 내 운명 안에 들어와 있다고. 우리가 내일모레 무조건 이길 거라고. 웃으면서도 비장하게 얘기하시니까. 그 방에서 나오는데 해방된 느낌이 있었어요. 그때 같은 방을 쓰던 석영이가 괜찮다고 이겨낼 수 있다고 했을 때는 귓등으로도 안 들렸는데, 세이고 코치 얘기를 듣고 나니 치유된 느낌이었어요.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인상 깊었어요.

풋: 윤석영 선수는 그때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나요?
윤: 저는 그 당시 브라질전이 끝나고 홍명보 감독님이 불렀어요. 전 성격이 약간 덤덤한 편이잖아요. 브라질전 끝나고도 덤덤하게 준비하고 있었죠. 그때 불러서 말씀하신 것이 첫골 장면. 제가 너무 중앙 수비 쪽으로 커버를 들어갔다가 사이드를 내줬고, 그래서 슈팅을 줬어요. 그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런 장면이 U-20 월드컵부터 광저우아시안게임, 올림픽까지 한 번씩 계속 있었어요. 홍 감독님 ‘왜 그렇게 안쪽으로 들어와 있냐. 대회 마다 계속 위치에 실수가 있었다. 신경 써라’ 그렇게 얘기해주시고 훈련을 했죠. 덤덤하게 준비하다가 엄청 신경 써서 준비하게 된거죠. 

오: 만약 저는 그때 홍 감독님이 방으로 불러서 뭐라고 했다면 경기를 잘 못했을 거 같은데. 감독님도 아무렇지 않게 해주시니까. 제가 일본 대표팀 감독이었어도, 저를 얼마나 노리고 있겠습니까? 실제로 그렇게 분석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제가 7번 오츠유키를 지웠죠. 그래서 선수별 코칭 유형이 중요하구나. 세이고 코치가 심리학을 전공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도 코치가 된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저 같은 유형의 선수도 있고, 덤덤한 유형도 있고, 강한 자극을 원하는 선수가 있고. 스타 기질의 선수가 있고. 이런 선수 유형에 맞춰서 끌어올려 주고 싶어요. 그때부터 심리에 관심이 생긴 것 같아요. 지금은 그냥 책을 보는 정도인데, 나중엔 본격적으로 공부해보고 싶어요. 

풋: 둘이 성격이 완전 반대인데 같이 방을 쓰면서 잘 맞았어요?
오: 잘 맞는 것 같아요.
윤: 풀어주고, 조여주고. 그런 게 맞아요. 게다가 같이 풀백이니 고민거리가 같잖아요. 준비하는 스타일은 달라도. 그러니 매일 전화하는게 오싹이에요.

#오재석이 윤석영에게 전하는 일본생활 노하우

오: 일단 바닥에 온돌이 없기 때문에 집 공기가 되게 차요.
윤: 여자를 빨리 만나라고 하던대요. (웃음) 

오: 지갑도 장지갑 쓰거든요. 일본은 동전을 많이 쓰니까, 장지갑이 필요해.
윤: 그래서 그랬구나. 난 오싹이 일본 가서 허세 부리나 했지. 매번 장지갑 꺼내놓고.

오: 나도 처음엔 반지갑이랑 두 개로 쓰다가. 그거 들고 다니려면 파우치도 필요하고. 일본은 반지갑 쓰는 사람이 거의 없어. 장지갑도 지퍼 있는 거. 언제 한국 돌아갈지 모르고 안 사고 2년 동안 반지갑 썼는데, 도저히 안되겠더라고요. 
윤: 하나 사야겠네.

오: 그리고 또 하나는 음식.
윤: 맛있다고 하던데?
오: 안 맞을수도 있으니까
윤: 난 집에서 해먹으려고
오: 석영이가 요리 잘한다고 하더라고요. 영국 가서 한번 얻어먹었어요.
윤: 맛없었다며.
오: 그냥 그랬지.
윤: ㅋㅋㅋㅋㅋㅋㅋ. 쉬운 거에요. 그냥 오븐에 굽는 거. 

오: 또 영어를 잘 못하니까. 다 손으로 얘기해야 하고.
윤: 덴마크에 있을 때 히라가나 조금 외우다가, 지금은 까먹었어요. 한국에 와서 안 해서.
오: 해야 할텐데. 한 마디라도 더 해야 일본 선수들이 귀엽게 봐주고. 일단 친해지려면. 나도 일본어를 아예 모를 때는 선수들과 거리가 있었고. 운동 끝나면 혼자니까. 클럽하우스에 40~50명 있는데 나만 한국사람이고. 말이 안 통하니까. (윤: 통역 없었어?) 있었는데 재일교포 출신이고. 구단 사람이니까 의지하고 그럴 순 없었지.

풋: 가시와레이솔은 홍명보 감독이 뛰었던 팀인데, 입단 과정에 그 영향도 있었나요?
윤: 홍 감독님이 거기서 주장하시고 나왔잖아요. 지금 가시와 감독님이 홍 감독님이 주장일 때 선수였어요. 3년 후배. 홍 감독님을 잘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이번에 가시와에 가서 식사 한번 했거든요. 저한테도 그런 리더십을 바라세요. 지금 가시와 선수들이 다 어려요. 세대교체를 하면서. 그래서 리더십을 바라시고. 가시와 감독님을 만나고 오니까, 좀 더 무게감 있게. 행동 하나 하나를 어린 선수들이 보니까. 한국 선수는 나 혼자고. 기대감도 있을텐데. 그동안 나이를 별로 신경 안썼는데, 이젠 생각해서 행동하려고 해요. 

#2018 러시아 월드컵, 대표팀에 대한 생각

풋: 아시아로 돌아오는 과정에 대표팀에 대한 생각도 있었나요?
윤: 욕심을 많이 내려놨어요. 제가 결정하는 과정에 대표팀에 들기 위해 일본에 가서 경기를 뛰어야겠다? 이런 생각은 안해봤어요. 욕심 많이 줄더라고요. 대표팀은 양날의 검이에요. 어릴 땐 꿈이었는데, 최근에 오면서. 어쩌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 것 같아요. 끈을 계속 잡고 있으면 스트레스 받고. 가서 못하면 욕먹고. 그러니 놔 버리면 마음이 편안해지잖아요.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 이렇게 생각을 바꾸니 편해지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마인드로. 2014년에는 뽑혔다는 이유로 그냥 욕을 먹었으니까. 

오: 대표팀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잖아요. 대표팀에 대한 이미지. 꿈의 위치고. 모두 사명감에 똘똘 뭉치고. 가보니 합류 자체로 욕먹는 선수도 많고. 첫 경기를 해보고 갑작스러운 반응이 오고. 예전에는 선수들과 얘기할 때 대표팀에 가면 어떠냐고 매번 물어봤어요. 그러면 내려놨다고 많이들 얘기하더라고요. 그 얘기가 사실 무슨 얘기인지 몰랐어요. 공감이 안 되니까. 대표팀에 대한 마음이 그렇게 없나? 생각했는데. 근데 경험해보니, 지금까지 15년 넘게 운동하면서, 대표팀에 한번 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해왔는데, 막상 그 위치에 갔더니 꿈꾸던 상황이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삶의 목표로 삼고 왔는데, 이게 가장 중요한 건 아니었구나. 대표팀은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윤: 가는 것도 못 가는 것도 운명이니,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가기 싫다는 얘기가 아니라, 불러주면 가서 100% 열심히 하죠. 뽑히면 열심히 하지만,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걸 이제 아니까. 

사진=풋볼리스트,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가시와레이솔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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