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2013년 감바오사카에 입단한 오재석(27)은 2017시즌에도 감바오사카의 선수로 뛴다. 어느새 5년 차 J리거. 외국인 선수 신분으로 지금까지 한 팀에서 뛰고 있다 것은 그가 일본에서 얼마나 큰 인정을 받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2016시즌을 끝으로 기존 계약이 만료된 오재석은 지난 해 10월 일찌감치 연장 계약 제안을 받았고, 2년 더 ‘감바맨’으로 활약하게 됐다. 갱신된 계약 기간을 모두 채우면 6시즌을 감바에서 보내게 되는 셈이다. J리그 무대에 단단하게 뿌리 내린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될 성 부른 떡잎으로 주목 받았던 오재석은 U-17 대표팀을 시작으로 연령별 대표팀을 모두 거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2010년에 명문구단 수원삼성에 드래프트 1순위로 입단했고,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올림픽 메달 획득 이후 오재석은 일본 J리그 무대에 도전했다. 악바리 같은 근성을 갖춘 수비형 풀백 오재석은 빌드업을 비롯한 공격 능력을 향상시키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갖고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에서 4시즌을 보내면서 도합 6개의 우승 트로피를 든 오재석은 2016년에 염원하던 성인 국가 대표팀에 발탁되며 또 한 발 전진했다. 대표팀의 무게를 절감한 오재석은 감바 입단 후 첫 무관 시즌을 보냈다. 이를 통해 경기장 안에서는 물론, 밖에서도 더 넓은 시야를 갖춘 사람으로 성장했다.

그 동안 대표팀이라는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온 오재석은 자기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풋볼리스트’가 직접 만나 J리그의 현재, 그리고 오재석의 미래를 들었다. 

 

다음은 오재석과 인터뷰 전문. 

-어느새 일본 생활 5년 차가 됐다. 이정도까지 잘 해낼 줄 알았나?
가기 전에 올림픽 대표팀에서 함께 했던 이케다 세이고 코치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때 세이고 코치가 ‘진짜 고생할 것’이라고 했었다. 올림픽 동메달을 따면서 축구 스타일을 바꾸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다. 고생하더라도 가고 싶었다. 세이고 코치가 감바의 스타일을 설명해주면서 고생할거라고 했다. 처음에는 ‘뭐, 힘들겠지’라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가보고 그 무게를 실감했다. 3개월 뒤에 구단에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얘기까지 했었다. 솔직하게. 세이고 코치와 다시 이야기했는데 가지 말고 2년 만 버텨보라고 하더라. 그러면 다른 인생이 될 거라고. 버티고 나서 3관왕을 했다. 

-2016년에는 입단 이후 처음으로 트로피 없이 시즌을 마쳤다. 2연속 우승한 일왕배도 8강에서 탈락했다
팀이 좀 안 좋았다. 우사미와 패트릭이 나가면서 어수선한 느낌이 있었다. 감바는 우사미를 중심으로 패트릭까지 연결되는 장면이 많았다. 우사미는 유럽 진출 과정에서 마음이 좀 뜬 것 같았다. 패트릭은 부진했다. 두 선수의 부진이 팀 성적과 겹친 것 같다. 부상자도 많았고. 특히 계약이 만료되는 선수가 많아서 막바지로 갈수록 좋지 않았다. 일왕배를 시작했을 때 다른 팀으로 가는 것이 공표된 선수가 8명이어다. 그런 상황에서는 운동하기가 조금 어려웠다. 

-요코하마F마리노스와 8강전에는 추가 시간에 결승골을 내줬다
마지막 5분이 남아서 넣을 수 있는 공격 카드를 다 넣자는 생각에 나를 뺐다. 우리가 동점골을 넣었지만 다시 골을 먹었다. 한편으로 ‘그러게 나를 왜 빼나’라는 생각도 했다(웃음).

-선수단 구성에 변화가 많은 것 같다
구단에서 영입 제안을 했는데 대부분 거절 당해서 비상인 상태다. 주축으로 있던 선수들은 계약조건 면에서 섭섭한 게 많았다. 또 영입하려는 선수는 주전을 보장해주기 보다 백업 선수를 찾는 느낌이라 잘 오지 않으려는 것 같다. 우리 팀의 양쪽 날개가 이번에 다 나간다. 대체 선수가 있긴 하지만 확실한 카드가 나가는 상황이다. 

-오재석 선수에게는 다른 팀의 제안이 없었나?
나는 사실 대표팀에 다녀오고 나서 10월부터 재계약을 하자고 얘기가 나와서 다른 팀은 생각하지 않고 남았다. 하세가와 감독님과 의리도 있고.

#국가 대표 오재석을 만든 하세가와 감독과 염기훈

-하세가와 감독은 일본에서도 강한 개성을 갖고 성과를 내온 감독이다. 가까이서 본 하세가와 감독은 어떤가? 
늘 한결 같다는 것이 감독님의 장점이다. 분석력이 정말 좋다. 올해는 이상하게 뭔가 잘 안 맞는 느낌이 있었다. 그동안 너무 좋아서 그런지 살짝 안 좋은 게 크게 느껴진 거 같다. 하세가와 감독님은 한국 감독 스타일에 가깝다. 엄격하고, 예의를 중시하고. 일본 감독들은 보통 조용하고 상냥한 스타일인데, 일본에서는 카리스마가 있는 캐릭터다. 야생적인 느낌. 

일본 국가 대표를 지낸 분인데 자주 일본 도하의 비극 이야기를 하신다. 일본 대표 시절 이야기를 자주 이야기 해주시는데 작년에 일본이 도하에서 열린 AFC U-23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한국에 이기자 갚아줬다고 얘기를 하더라. ACL에 나가도 한국 감독님들과 인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최강희 감독님이나 김학범 감독님과 악수할 때는 정중하게 손을 받치고 인사하시고 그랬다. 

외국인 선수들에게 따듯하게 잘 해주신다. 감정적으로 뒤끝이 없는 스타일이다. 경기가 끝나면 그거로 끝. 운동장에서 선수들을 불러서 농담도 하시고, 다음 경기에 빠지게 되면 어떤 이유인지 설명도 잘 해주신다.

-전술적으로는 어떤가?
수비 전술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수비 시 8명의 조직, 백과 볼란치의 조직력을 만드는 거슬 중시한다. 그리고 역습으로 나가는 부분. 김학범 감독님과 비슷하다. 수비 조직을 만들 때는 아틀레티코마드리드를 많이 참고한 것 같다. 선수들도 그렇고 우리 코칭스태프가 경기 해본 팀 중에 조직력이 가장 인상깊었다고 한 팀은 2015년의 성남이다. 하세가와 감독님이 사우나에서 정말 이례적으로 성남은 정말 잘 만들어진 팀이라고, 그 팀은 감독이 정말 제대로 만들어놨다고 표현하시더라.

-올해 팀 성적은 안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처음 국가 대표팀에 선발되는 등 좋았던 점이 많았다
리그 성적은 안 좋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난 용병이다 보니 팀 성적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 잘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른 때보다 개인 성적에 욕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세가와 감독님이 시즌 첫 경기를 마치고 나서 ‘올해는 대표팀에 가야한다’고 따로 불러서 말씀해주셨다. 그 전에도 대표팀 이야기를 하셔서 힘들 것 같다고, 감바에서 열심히 하겠다고 농담 반으로 이야기했다. 올 시즌에는 첫 경기를 하고서 스스로도 대표팀에 가보자고 생각했다. 감독님의 말 때문에 그 목표를 세운 것 같다. 

-2016년 첫 경기는 AFC챔피언스리그 수원삼성과 원정 경기였다. 2015년 K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염기훈을 꽁꽁 묶으면서 화제가 됐다
훈련소를 다녀오면서 합류 시간이 늦었던 때다. 오히려 쉬어서 그런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몸이 좋았다. 수원과 경기는 무조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성장한 모습 보여주고 싶었다. 그 전 시즌의 수원 경기를 많이 봤다. 

왼쪽 공격이 정말 좋았다. 홍철은 부상 중이었지만 (권)창훈이, (양)상민 이형, 특히 (염)기훈이 형이 잘하니까. 감독이 크로스를 주지 말라고 특명을 내렸다. 수원 경기를 6경기 봤다. 야구에는 투수의 습관을 캐치하는 코치가 따로 있다던데, 나도 기훈이 형의 패턴을 잡으려고 했다. 누구나 자기 만의 패턴이 있다. 그걸 잡으려고 2주 동안 비디오를 보며 준비했다. 

그런데 패턴이 사실 없더라. 기훈이 형은 크로스가 좋지만 퍼스트터치가 워낙 좋다.  일대일 할 때 하나 둘 멈칫하고 치는데, 그 플레이만 일대일 할 때 계속 생각했다. 그게 경기중에 한번 나와서 뺏었다. 그때 성취감이 있었다. 서로 경기 할 때 웃으면서 농담도 했다. 내 인생에 가장 재미있었던 경기였다.

-그리고 나서 대표팀에 뽑혔는데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했다
3월에 뽑혔을 때 하세가와 감독님이 손을 잡으시면서 축하한다고, 기쁘다고 하셨다. 그런데 뽑혔다가 다쳐서 못 가게 됐다. 라커룸에 혼자 앉아 있는데 이게 끝이 아니라고, 일어서라고 하시더라. 두 번째로 선발됐을 때, 합류 2주 전이었다. 2경기가 남아 있었는데 ‘다칠까 불안감이 있다면 경기에서 빼주겠다”고 까지 해주셨다. 난 이겨내 보고 싶다고 했다.   

-하세가와 감독에 대한 의리라는 게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 같다
감독님 가족들과도 같이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사모님께서 연예 기획사를 운영하시는 데, 유명한 사람은 아니지만 한국 사람이 많다. 따님도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하시고, 사모님도 잘하신다. 감독님은 물론 전혀 안하신다. 통역을 해주는 형을 통해 내가 비판의 중심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는 또 ‘괜찮다’고 좋은 얘기를 해주셨다. 대표팀은 원래 그런 곳이라고. 일본에서 느끼기에 한국 미디어의 공격이 다른 수준이라는 것을 통역에게 들으신 것 같다. 보통은 대표팀에 다녀오면 성장해서 오는데, 내가 오히려 떨어져서 오니까 우려를 하신 것 같다. 

-좌우 풀백을 두루 보지만 본래는 오른쪽이 주 포지션이다. 2016시즌에는 어땠나?
다른 때보다는 이동이 적었다. 오른쪽으로 많이 나갔다. 리우 올림픽에 우리팀 레프트백이 차출되면서 그 선수가 없는 두 달 동안 레프트백을 봤다. 내가 왼쪽에서 뛸 때 슈틸리케 감독님이 오사카에 경기를 보러 오셨다. 그때 팀이 좋았다. 5연승을 하던 때다.

-2012 런던 올림픽 멤버 중에는 성인 대표팀에 가장 늦게 뽑힌 축에 속한다
런던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 3년을 목표로 했다. 2015년에 한번 가보고 싶다. 감바 입단 1년 차에는 거의 대학생 같은 생활을 했다. 그래서 1년 더 미뤄서 2016년에 가고 싶다는 생각했는데, 뽑히고 나니 나이를 좀 먹었지만 좋더라. 어린 애처럼 설레고. 그런데 불과 이틀 만에 다쳐서 깨졌다. 두 번째 뽑혔을 땐 오히려 덤덤했다. 그런데 최종예선 경기로 A매치 데뷔를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나도 반신반의했다. 할 수 있을까? 중국전에 편하게 안착했으면 좋았을 텐데, 경기는 이겼지만 실수 때문에 아쉬웠다. 저번 소집에 다치지 않고, 친선 경기라도 한번 뛰어봤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꿈에 그리던 A매치는 어땠나?
다 편한데 나만 지나치게 집중했던 것 같다. A매치는 확실히 프로리그와 다르다. 다들 여유가 있는 데 나는 집중력이 떨어진 게 아니라 오히려 과했다. 헤딩도 멀리 걷어내려고 온 힘을 다해서 자세를 취했는데 그게 앞에 떨어졌다. 이게 경험의 한계인가 생각을 했다.

-대표팀에 가기 위해 노력했던 것, 그리고 가서 자리를 지키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힘든가?
둘 다 힘든 것 같다. 가는 것도 너무 힘들었는데, 그걸 지키는 건 또 다르다. 그 위엔 올라가면 다른 세계가 있으니까. 많은걸 느낀 거 같다. 대표팀 선수들은 더 잘하더라. 감바에서 나도 4년간 성장해서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것만 가지고 안되는구나. 잘 하는 선수들이 많으니, 훈련을 하면서부터 느낀 것 같다. 

#J리그가 아시아에서 고전하는 이유

-최근 중국축구가 빠르게 발전하는 가운데 일본 축구는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성적이 좋지 않다. J리그는 정체되지 않았는가라는 시선도 있다. 안에서 봤을 때는 어떤가?
2015년에 우리가 ACL 준결승까지 갔을 때 K리그의 3팀을 다 이겼다. 그래서 J리그가 발전했다고 느꼈는데 올해는 다 졌다. J리그에서 스케줄도 배려를 해줬다. 토요일 대신 금요일에 경기를 해서 4일 가까이 쉴 수 있도록 했다. 나도 스스로 궁금하다. 이렇게 환경도 좋고 배려를 받았는 데 왜 성적이 나오지 않을까. 나는 스타일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모든 팀의 공격 스타일이 비슷하다. 빌드업 과정을 거친다. 한국이나 중국은 한방에 후방에서 전방으로 공이 들어온다. 일본 선수들이 몸으로 기억하는 리듬과 상대의 공격 방식 다르니까 당황하는 것 같다. 파워도 그렇다. J리그에는 큰 체격 가진 선수도 없고, 아주 빠른 선수도 없다. 선수들이 그 부분에서 당황한다. 기 싸움에서 한번 눌리면 한도 끝도 없으니까.

사간도스가 J리그에 정말 독특한 스타일로, K리그 스타일로 하면서 한때 리그 1위도 하고 그랬다. 알고도 못 당하는 것 같더라. 근성인지, 고집인지 모르겠는데, 일본에서는 그런 축구를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한일전에서 이겼을 때 일본 공격수 나가이가 ‘뻥뻥 차기만 하는 축구에 졌다’고 표현하더라. 사실 답답한 부분도 있다.

-일본에서는 중국축구의 최근 돌풍은 어떻게 보나?
일본 선수들은 중국 축구를 잘 인정 하지 않는 것 같다. 외국인 선수 없이 붙으면 무조건 이긴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K리그 팀과 붙고 나면 잘한다, 좋다, 이런 반응이었다. 수원과 붙었을 때도 그랬다. 상하이상강에게 졌을 땐 외국인 선수만 없으면 이길 수 있었다고 얘기했다. 그래도 중국의 외국인 선수들인 공을 잡으면 무조건 위협적이니까. J리그는 거의 주고 들어가는 움직임이 많고, 그쪽으로 패스가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선수들은 일대일로 해결해버린다. 그에 대한 대응 방식이 부족한 거 같다.

-직접 부딪혀본 J리그의 외국인 선수 수준은 어떤가?
중국이 제일 좋은 거 같고, 한국과 일본은 내가 보기엔 비슷하다. 다만 일본에는 K리그의 레오나 로페스 같은 스타일이 없다. 그나마 한국에 있던 페드로가 일본에서 잘했다. 지금 광저우푸리에 있는 레나토도 잘했고. 공격수 보다 측면이나 중앙 포지션에 공을 잘 차는 선수가 많다. 

2016년에는 고베의 레안드로가 괜찮았다. 전에 감바에 있던 선수다. 기술만 따지면 K리그 선수들에 뒤지지 않는데 J리그 스타일에 어느 순간 동화된 것 같다. 페드로도 한국에선 더 직선적이었다. 페드로가 고베에 들어올 때 나도 같은 시기에 들어왔다. 그때만해도 저돌적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겉도는 느낌이 있다. 

-지나치게 빌드업에 치중한 단점이 있는 것인가?
거의 다 기본적으로 같은 철학 공유하니까, 공격수가 서 있는 시간이 많다. 뒤에서 공을 돌려서 나오니까. 역습을 한방에 주는게 아니라. 잘라서 패스, 패스, 패스 이렇게 나오니 공격수가 기다리는 시간이 많다. 수비수 입장에서 ‘역습이다’하는 시점에도 만들어서 나오니까. 사실은 그래서 내려올 때 여유가 생긴다. 상대도 만들어서 오니까.

-일본에서는 롱볼로 역습을 전개하는 플레이는 거의 없나?
거의 없는 거 같다. 하긴 하는데, 반대 전환 패스도 물론 하지만, 기본적으로 점유를 해서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어려서부터 그런 플레이만 해왔으니까. 할릴호지치 감독이 일본 대표팀에서 수비를 내리고 역습을 하니 선수들이 재미없다고 하는 반응이다. 대표 선수들의 반응이 좋지 않다. 일본 축구의 특징을 다 버리고 있다고 한다.  

-피지컬적인 측면도 J리그의 숙제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더 하면 좋겠는데, 왜 안 하냐고 물어보면 선수들의 불만이 있고, 반발이 일어난다고 한다. 감바가 J리그에서도 훈련량이 제일 없는 편에 속한다. 훈련 시간에 늦는 부분이나, 이런 면에서는 엄격한데 생활면에서는 자유가 있다. 운동도 부담을 느끼거나, 운동하기 두렵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 경기 위주, 패스 훈련이나 미니 게임으로 몸을 올리는 느낌이다. 부상 방지나, 컨디션 관리 위주로 가는 것 같다. 우리 팀 코치의 말로는 겨울에 아무리 운동을 많이 해도 시즌 들어가면 똑같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하루에 훈련을 두 번 할 때가 있는데 한국에서 한 번 할 것을 나눠서 하는 느낌이다. 그래도 체력에는 문제가 없다. 어차피 선수들은 경기로 컨디션을 올린다. 경기에 못 나가는 선수만 추가 훈련을 하고, 나가는 선수는 컨디션 유지만 한다. 사실 내가 느끼기에도 겨울에 아무리 많이 뛰어도 시즌 들어가면 체력이 똑같아지는 것 같다. 이건 약간 정신적인 부분이다. 운동을 많이 하면 한계로 몰아붙여서,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피로가 익숙하게 하는 것이다. 피로를 정신적으로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측면이라고 본다.

정답은 없는 것 같다. 훈련량이 적은 일본 선수들이 30대 이후 부상으로 인해 수술하는 선수가 통계적으로 적고, 선수 생활도 길게 하더라. 다만 내겐 지금 훈련량은 부족한 것 같아서 개인 훈련을 더 하고 있다. 여기선 구단이 정해준 훈련 프로그램 이외에는 금지한다. 내가 다치면 결국 팀의 손해라는 얘기다. 그 문제 때문에 코칭스태프와 부딪혔다. 지금도 수요일 마다 코치와 두 시간 씩 부족한 근력 운동은 하고 있다. 

-일본에서 5년 째인데 스스로 가장 많이 달라진 건 어떤 부분인가?
인생관이 바뀐 거 같다. 일본에 나오면서 (시야가) 트인 거 같다. 한국에선 아예 그런 걸 몰랐는데, 축구 선수 인생이 앞으로 길어야 6~7년이다. 그 뒤의 인생 중요하다는 걸 느끼게 된 것 같다. 한국에서는 경주마처럼 앞으로 가는 정해진 시스템 안에서 뛰었다. 여기서는 개인 시간이 많다 보니 어떤 사람이 되야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축구 선수로도 중요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야 한다는 게 중요하다. 

-축구 선수 이후의 삶에 대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나?
시련이 왔을 때 누군가의 말과 조언을 통해 이겨낸 경우가 많다. 이케다 세이고 코치를 만나 특별한 조언을 받은 경우가 많다. 나 같은 선수가 많으니 심리학을 전공해서 선수의 유형에 따라 다른 조언으로 선수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 지, 그런 연구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가능하다면 심리학 교수가 되고 싶다.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용병들이나 후배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아직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서서히 하게 되는 거 같다. 

-가깝게 축구선수로 올해 목표는?
감바에서 ACL 우승을 하고 싶다. 2015년에 준결승까지 갔다가 문턱에서 좌절됐다. 지금 감독님도 많이 배려 해주셨고 지금 감독님 덕분에 대표팀도 갔다. 이 팀에 보답하고 싶은 느낌이 있다. 지난 연말에 오사카에서도 클럽월드컵 경기가 열려서 가봤다. 나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해진 시간이었다. 올해는 클럽월드컵이 일본에서 열리지 않아 아쉽지만, ACL에서 우승해 클럽월드컵에 나가 보고 싶다. 

사진=풋볼리스트,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풋볼리스트 주요 기사

분노의 무리뉴, 22세 수비수에 560억 베팅...누구?
EPL+라리가+K리그+글로벌 브랜드 마케팅, 오프라인 강의
'포항 출신' 황선홍, "제자들아! 모여라! 서울로! 결정적 결과
'공간 창출 귀재' 손흥민, 토트넘의 '핵심 연결고리' 인증 
'음악에 취한' 맨유, 음원 플랫폼 파트너십까지 '확대'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