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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트랙] 규모 지상주의가 낳은 아쉬운 징계들
류청 | 승인 2016.10.01 15:14

[풋볼리스트] 류청 기자= 위기가 닥치면 한 조직이나 기관이 지닌 철학 혹은 공감대를 엿볼 수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하 연맹)이 정말 지키고 싶은 건 가치가 아니라 규모 아니었을까?

 

지난달 30일, 연맹은 상벌위원회(이하 상벌위)를 열어 심판 매수 혐의(차 모 스카우트가 2013년 심판에게 500만 원 건네)로 기소된 전북현대를 징계했다. 2016시즌 승점을 9점 삭감하고, 제재금 1억 원을 부과했다. 지난해 12월, 이보다 드러난 비리규모가 훨씬 컸던 경남FC(대표이사가 직접 나서 6,400만 원 정도를 써서 조직적으로 심판매수 시도)에는 좀 더 큰 징계를 내렸었다. 승점 10점을 삭감했고, 벌금 7천만 원을 부과했다. 조 상벌위원장은 “2014년 경남 구단 사장 비자금 조성 및 심판 매수 사건 조사 과정을 기준으로 삼았다. 일관성과 형평성을 고려했다”라고 했다.

 

“일관성과 형평성을 고려”한 경남과 전북 징계를 살펴보면 연맹과 연맹 상벌위가 지닌 생각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2015년, 연맹 상벌위가 경남에 내린 징계는 상징적이었다. 경남 대표이사가 직접 나서 큰 돈을 조직적으로 심판에 전달했고, 돈을 준 사람과 돈을 받은 사람 진술도 일치했다. 비리 규모도 사상 최고였고, 처벌을 내릴 수 있는 근거도 명확했다. 연맹 상벌위 이런 경남에 승점 10점 삭감+벌금 7천만 원 징계를 내렸다. 연맹 상벌위는 그렇게 자신들이 내릴 수 있는 징계 최고수위를 사실상 확정했다. 이번 전북 징계도 이 선 아래서 이뤄졌다.

 

“경남 건도 심각하게 고민했다. 당시 경남은 2부리그로 떨어진 상황에서 징계했다. 상당히 열악한 상황을 감안해 그런 결과가 나왔다. 가볍지는 않았다” 

 

조 상벌위원장이 30일 한 발언 중에서 연맹과 상벌위가 지닌 객관이 딛고 선 공감대를 엿볼 수 있었다. 경남 사건이 터졌을 때, 많은 축구인들이 걱정했던 건 다름 아닌 경남 존폐였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팀이 강등당하자 전 직원 사표를 받을 정도로 강경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연맹이 강한 징계를 내리면 경남도가 팀 해체를 선언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한 고위관계자는 “안 그래도 리그 상황이 좋지 않은데 한 팀이 해체하면 다른 팀들도 손 들고 떠날까 걱정된다”라고 했다. 조 상벌위원장이 한 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이 공감대 끝에는 뿌리 깊은 ‘규모 지상주의’가 있다. 대한축구협회와 연맹 그리고 일부 축구인은 리그 규모에 집착했다. 특히 연맹이 팀 숫자를 늘리는 데 앞장섰다. 초기에는 어느 정도 리그 규모를 키울 필요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연맹과 협회는 그 이후에도 내실이나 구조를 다지기보다는 새로운 팀을 만들어내는데 집중했다. 창단이 최고선인 상황에서 가장 두려운 일은 팀 해체다. 리그 문턱과 징계 수준을 같이 낮췄다. J리그가 ‘J리그 라이선스’를 만들어 리그 내실 다지기에 나선 것과는 너무나 다른 풍경이다.

 

2016년 K리그가 처한 환경을 보면 이 규모 지상주의가 가져온 결과를 잘 볼 수 있다. K리그는 23개 팀으로 구성됐다. 다음 시즌에는 24개 팀이 된다. 숫자로 보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리그 구조와 건전성은 규모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월급과 수당을 주지 못한 팀이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K리그는 팬들 신뢰까지 잃고 있다. 2011년, 리그를 존폐 기로로 몰고 갔던 승부조작사건이 불거졌을 때도 구단은 처벌받지 않았다. 이후에도 그 고리는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다. 2015년과 2016년에 두 구단이 심판 매수로 징계 받았다.

 

의식 있는 팬들이 연맹 상벌위에 실망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최근 유행하는 말로 ‘사이다 징계’를 바랐던 게 아니다. 연맹이 K리그 최고 구단인 전북을 징계하며 상징적인 메시지를 보여주길 바랐다. 전북팬들마저 “비리척결! 환골탈태!”라는 걸개를 들고 나왔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상징적인 징계가 전북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모든 걸 털고 다시 일어섰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다. 연맹은 다른 문을 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연맹 상벌위는 객관성과 일관성을 지켰지만, 연맹과 K리그는 다시 한 번 신뢰를 잃었다.

 

수조에 어느 정도 물을 채웠다면, 양이 아닌 수질(水質)을 따져야 한다. 물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도 마시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지점은 여기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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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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