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근 단장과 최강희 감독이 사임해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풋볼리스트=전주] 김정용 기자= 전북현대 서포터는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구단에 실망한 마음을 선수들을 응원하면서 풀겠다는 듯 벤치에 앉은 선수들까지 일일이 호명했다. 전북의 심판 매수 논란이 불거진 다음날의 풍경이었다.

24일 전북 전주의 전주 월드컵경기장에서 ‘2016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16강 2차전에서 전북이 2-1 승리를 거뒀다. 약 80분 동안 경기를 지배한 전북은 전반 29분 레오나르도의 프리킥 골과 후반 26분 속공 상황에서 레오가 받아 넣은 추가골로 승기를 잡았다. 후반 39분 베사르트 베리샤에게 추격골을 내준 뒤 위기에 몰렸지만 추가 실점은 없었다.

앞선 1차전에서 1-1로 비긴 전북은 총 1승 1무로 8강에 진출했다. 8강 1차전은 8월 23~24일에, 2차전은 9월 13~14일에 열린다.

 

#몰려든 취재진, 뜨거운 서포터

ACL 경기는 보통 사전 취재가 없다. 킥오프가 임박해 도착하는 기자가 많은 편이다. 이날 경기는 오후 7시에 시작했지만 4시 경에도 이미 다수의 기자가 기자석과 구단 사무실에 도착해 있었다. 스카우터 C모 씨가 지난 2013년 K리그 심판들에게 5차례에 걸쳐 총 500만 원을 줘 최근 불구속 기소된 사건에 대해 묻기 위해서였다.

사건이 알려진 23일부터 구단 입장을 도맡아 밝히고 있는 김동탁 부단장은 “스카우트 C씨의 개인적 행동”이란 입장을 되풀이했다. 직원 개인이 어떻게 500만 원을 심판에게 건넬 수 있냐는 의혹엔 두 가지 측면에서 대답을 내놓았다. 동기 측면에선 “심판들이 축구계 후배라 생활비를 준 거라고 C씨가 해명했다”고 했다. 액수 측면에선 “C씨는 연봉이 1억 원이 넘는다. 별도로 수당도 있다”며 그럴 형편은 된다고 이야기했다.

경기 전 전북 서포터 단체 연합 매드그린보이스는 페이스북에 낸 공동 성명에서 “서포터 연합은 이번 사태를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구단은 이번 사태를 개인의 일탈로 치부해선 절대로 안 될 것”이라고 전북을 비판했다. 스카우트 개인의 행동이라고만 해명하지 말고 책임 지는 자세를 보이라는 뜻이었다.

전북 응원에 단골로 등장하는 “위대한 전북”, “우리의 자랑”라는 문장이 무색한 상황이었지만 서포터들의 함성은 평소보다 오히려 더 컸다. 레오나르도가 두 번째 골을 넣고 서포터 앞에서 특유의 닌자 세리머니를 하자 거대한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날 전북은 이번 시즌을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경기를 했다. 전반전엔 멜버른 페널티지역 주변에서 원터치 패스와 힐 패스로 계속 공을 점유하며 기계처럼 맞아 들어가는 호흡을 선보였고, 전방 압박을 통해 공을 되찾아오는 투지도 발휘했다. 후반전에도 수비보다 공격에 훨씬 오랜 시간을 보내며 멜버른의 좌, 우, 중앙을 모두 들쑤셨다. 추격골을 내준 뒤 전북이 수세에 몰린 것조차 응원하는 관중들에겐 스릴과 긴장감을 줄 수 있는 전개였다. 12,811명의 관중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이철근과 최강희, 물러날 가능성을 내비치다

최강희 감독 옆으로 이철근 단장이 등장했다. 두 사람은 앞다퉈 자신이 구단의 책임자이고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 구단, 팬, 선수들과의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선수단을 운영해 왔다. 한국 사회는 항상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 논란이 일었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이번 사태는 모든 전적인 책임이 감독에게 있다. 구단도 피해자고 팬들께도 사죄를 드려야 한다. 나는 앞으로 사태 추이를 보고 다시 이 자리에 서서 말씀드리도록 하겠다.” (최강희 감독)

“감독 입장에서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사실 구단 책임자는 나다. 내가 책임져야 한다. 한 가정의 자녀가 잘못하면 부모가 책임진다. 내가 단장이다. 검찰 수사를 보고 나도 책임 통감하고 있고 책임질 각오가 되어 있다.” (이철근 단장)

책임자가 책임을 지는 가장 흔한 방법은 자리를 내놓는 것이다. 검찰의 발표에 따라 사임할 수도 있냐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냐고 재차 묻자 이 단장은 “상황에 따라서는 (그럴 수 있다)”라고 했다. 최 감독은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두 인물은 지금의 전북 왕조를 직접 일궜다. 이 단장은 2003년 사무국장으로 전북 일을 시작했고, 최 감독은 2005년부터 전북을 K리그 최강으로 성장시켰다. 지금의 전북은 이들의 인생 최대 성과다. 그 성과가 스캔들 앞에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팬은 선수만 응원했다

주장 권순태는 선수들이 각자 기사를 통해 소식을 접했을 뿐, 매수 사건에 대해 서로 아무런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다고 밝혔다. 자체 미팅을 통해 분위기를 다잡으려는 시도도 없었다. 사건에 대해선 함구한 채 경기를 준비했다.

“경기만 생각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건 8강행 준비뿐이었다. 선수단은 그런 건 크게 신경쓰지 않으려 했다. 시즌 초부터 우리의 첫 목표가 8강이었다. 우린 프로다. 선수가 직업이다. 경기장에서 직업의식 갖고, 전북이 K리그 이끄는 팀이라는 걸 보여주게 준비해야 한다. 프로라면 내가 해야 할 일이 먼저다. 결과는 경기장에서 좋기도 나쁘기도 하는데 책임져야 한다.”

평소보다 더 큰 응원에 감동을 받았다. 팬들의 환호가 전북 선수들을 한 발 더 뛰게 했다. “일일이 선수 호명해주실 때 솔직히 울컥했다. 내가 이 팀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셨다. 우리가 경기장에서 보여드릴 건 이것뿐이었다.”

서포터는 왜 구설수에 휩싸인 구단을 그렇게 열렬히 응원했을까. 매드그린보이스의 구성체 중 하나인 울트라크레이지보이의 정석영 회장은 “페이스북의 성명을 보셨는지 모르겠다. 어제 새벽까지 회의하며 쓴 성명이다. 잘못은 구단이 한 거다. 선수들은 아니다. 그래서 일일이 이름을 불러주며 더 힘을 주려고 했다. K리그에서 벌어진 일을 ACL까지 가져오는 것도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전북 선수들의 질주는 서포터를 감동시킬 만했다.

 

#사의 표명이 곧 책임을 지는 건 아니다

선수들이 열심히 뛴다고 허물이 덮어지진 않는다. 팬들은 뜨거운 경기 후 전주성을 떠나지만, 사무실에 남은 프런트들 사이엔 무거운 책임감이 가라앉아 있어야 한다. 서포터들은 다음 K리그 경기부터 구단의 각성을 촉구하는 취지에서 퍼포먼스를 할 계획을 논의 중이다. 앞으로도 뜨거운 응원을 보내진 않을 거란 뜻이다.

‘꼬리 자르기 식 대응’이라고 비판 받았던 전북의 이틀간 행보는 두 리더의 기자회견 이후 달라질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단장의 이야기 중 핵심은 “책임지겠다”가 아니다. 비리의 여지가 남아 있다면 누가 사임하든 의미가 없다. 이 단장은 “구단의 책임자로서 모든 결과에 따라 후속조치를 준비해야 한다. 그건 여러분께 약속드린다. 재발 방지에 대한 구단의 정책을 다시 만들겠다”고 했다. 책임자가 해야 할 일은 전북의 자정, 나아가 K리그의 자정을 위해 밝힐 건 밝히고 바꿀 건 바꾸는 것이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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