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발전을 보여주는 세리에A 나폴리

[풋볼리스트] 축구는 365일, 1주일 내내, 24시간 돌아간다. 축구공이 구르는데 요일이며 계절이 무슨 상관이랴. 그리하여 풋볼리스트는 주말에도 독자들에게 기획기사를 보내기로 했다. Saturday와 Sunday에도 축구로 거듭나시기를. 그게 바로 '풋볼리스트S'의 모토다. <편집자 주>

유벤투스와 바이에른뮌헨이 당연하다는 듯 우승을 자축할 때, 레스터시티가 기적은 실재한다는 걸 보여줄 때, 바르셀로나와 레알마드리드가 여전히 아웅다웅하고 있을 때, 그 옆엔 명품 조연이 있어야 한다. 이번 시즌 유럽 빅리그의 2인자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이고 또 강했다. 아틀레티코마드리드, 보루시아도르트문트, 토트넘홋스퍼, 나폴리의 시즌을 특별히 돌아보는 건 그래서다. 2인자라 부르기 아까운 그들을 쩜오라 불러보려 한다. 이 표현을 만들어주신 박명수 님께 리스펙. 

“나폴리는 축구의 발전 방향을 잘 보여주는 팀이다.”

한때 이탈리아세리에A의 뛰어난 지도자였고, 최근 이탈리아축구지도자협회(AIAC) 회장을 맡고 있는 렌초 울리비에리의 말이다. 나폴리는 지난 수년간 변증법적인 과정을 통해 성장해 왔다. 2009년부터 왈테르 마차리 감독이 이탈리아 전술가다운 수비 위주 축구로 나폴리를 상위권에 올려 놓았고, 2013년부터 2년간 지휘한 라파 베니테스 감독은 극단적인 전방 압박을 도입했다. 이번 시즌 처음 빅 클럽을 맡은 마우리치오 사리 감독은 두 지도자를 조금씩 섞은 듯 한층 오묘하고 지능적인 축구를 선보였다.

#나폴리의 경쟁력 : 실수를 빠르게 인정하자 최고의 팀이 탄생했다

자기 길을 스스로 개척해 온 사리 감독은 2012년 엠폴리에 부임하자마자 2부리그 4위에 올려 놓았고, 다음 시즌엔 준우승을 통해 승격까지 이끌었다. 2014/2015시즌, 승격하자마자 강등될 거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뚫고 15위로 잔류에 성공했다. 실패한 유망주로 분류됐던 리카르도 사포나라는 사리 감독의 인도에 따라 리그 7골을 득점하는 수준급 선수로 진화했다. 노장 공격수 마시모 마카로네는 5년 만에 1부 리그 두 자리 득점을 기록했다. 그의 역량을 본 나폴리가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프로 선수 경력조차 없는 감독이지만 전술적 역량은 확실해 보였다.

시작은 시행착오였다. 사리 감독은 엠폴리에서 성공적으로 작동했던 4-3-1-2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여름을 보냈고, 초반 세 경기를 이 포진으로 시작했다. 사포나라의 자리엔 로렌초 인시녜가 투입됐다. 그러나 이식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4라운드에서 라치오를 5-0으로 대파한 경기부터 기본 전략이 변했다. 인시녜가 왼쪽 윙으로 이동하며 공격 조합은 스리톱으로 바뀌었다. 엠폴리에서 데려온 수비형 미드필더 미르코 발디피오리를 과감하게 후보로 돌리고, 기존 멤버인 조르지뉴를 투입한 것도 중요한 변화였다. 이때부터 11경기 동안 9승 2무를 거둔 나폴리는 단숨에 1위로 올라서며 이번 시즌 이탈리아에서 가장 문제적인 팀이 됐다.

나폴리는 탄탄한 수비, 적절한 압박, 빠른 역습, 미드필드 장악력을 고루 갖춰 마차리 시절과 베니테스 시절의 장점을 적절하게 배합한 팀이 됐다. 이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한 선수는 단연 곤살로 이과인이었다. 빠른 역습, 정확하게 넘어오는 전진 패스는 이과인의 속도와 지능적인 공간 활용을 살리기 가장 좋은 환경이었다. 그러면서도 지나친 부담은 주지 않았다. 지난 두 시즌 동안 17골, 18골을 넣었던 이과인은 37라운드까지 33골을 몰아치며 세리에A 역사에 남을 공격수로 올라섰다.

왼쪽 날개로 이동한 인시녜는 작은 체구가 단점으로 부각되지 않도록 영리하게 공간을 찾아 다니고 재빨리 공을 처리하며 가장 위협적인 찬스 메이커로 활약했다. 오른발로 찍어 차 수비 머리를 넘기는 스루 패스는 인시녜가 세계 최고 중 하나다. 인시녜는 프리킥과 중거리 슛을 가리지 않고 12골을 득점하기도 했다. 세리에A에서 가장 많은 슛을 시도한 선수가 이과인, 두 번째가 인시녜일 정도로 슛에 자신감이 넘치는 콤비였다. 오른쪽에서 공수를 활발하게 오가는 호세 카예혼은 2015년이 지나기까지 겨우 1도움에 그치며 우려를 받았지만, 해가 바뀐 뒤 7골 6도움을 쏟아냈다.

마렉 함식의 공격적 역량과 조르지뉴의 정확한 패스는 나폴리가 이미 갖고 있던 무기였다. 함식은 키 패스가 세리에A에서 가장 많았고, 조르지뉴는 다른 리그를 통틀어 최고 수준인 경기당 101.3회의 패스를 돌리며 부지런히 경기에 관여하는 동시에 패스 성공률 90.8%를 기록했다. 조르지뉴는 13라운드 헬라스베로나 원정 경기에서 무려 218회나 공을 만졌는데, 스포츠 통계업체 Opta가 집계할 수 있는 한 유럽 축구 사상 최고 기록이다. 사비 알론소, 세르지오 부스케츠, 티아구 알칸타라 등의 기록을 넘어섰다. 조르지뉴의 뒤를 이어 함식, 칼리두 쿨리발리, 라울 알비올이 최다 패스 순위 2~4위에 이름을 올렸다. 나폴리는 세리에A에서 압도적으로 패스를 잘 돌리는 팀이었다.

여기에 우디네세에서 영입된 알랑이 더해지며 미드필드 조합은 정답에 도달했다. 알랑은 넘치는 에너지로 비교적 얌전한 함식과 조르지뉴의 부족한 점을 보완했다. 나폴리가 극단적으로 수비 라인을 올리지 않고서도 자주 상대 공을 빼앗아 역습을 감행할 수 있었던 건 상당 부분 알랑 덕분이었다. 알랑은 경기당 3.1회의 태클을 성공시켜 이 부문 5위에 올랐다.

측면 수비의 세대교체에 성공한 것도 이번 시즌의 중요한 성과다. 파우치 굴람이 레프트백 주전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지난 시즌까지 오른쪽 측면 수비를 맡았던 크리스티안 마조는 34세가 된 올해 마침내 후보로 물러났고, 엠폴리에서 온 유망주 엘세이드 히사이는 바이에른뮌헨 등 빅클럽이 노릴 정도로 성장했다.

#나폴리의 문제 : 선수를 사 왔는데 왜 쓰지를 못하니

나폴리는 점진적으로 발전해 온 팀이고, 그동안 선수단의 양도 충실하게 불려 왔다. 지금은 더블 스쿼드에 가까운 선수단이 형성돼 있다. 그러나 사리 감독은 주전 선수 11명 모두를 30경기 이상 선발 출장시켰다. 12번째로 선발 출장 횟수가 많은 드리스 메르텐스가 겨우 6경기에 선발로 나오고 26경기나 교체로 뛰었다는 건 문제가 있다. 주전 선수들의 체력 고갈로 시즌 막판 경기력이 조금씩 떨어졌고, 여기에 곤살로 이과인의 퇴장 공백이 겹쳤던 31~35라운드 동안 나폴리는 2승 3패에 그쳤다.

인시녜와 카예혼의 역할을 모두 준수하게 대체할 수 있는 메르텐스는 워낙 교체 투입 횟수가 많아 5골 4도움이나 기록하긴 했지만 선발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 지난 시즌 15골을 넣으며 엄청난 기대를 받았던 공격수 마놀로 가비아디니를 선발로 겨우 네 번 내보낸 건 문제가 있었다. 가비아디니는 한정된 기회 속에서 5골을 넣어 약 108분 당 한 골 수준의 훌륭한 득점 추이를 보였다. 더 많이 뛸 자격이 충분한 선수였다. 미드필드엔 다비드 로페스와 발디피오리, 수비진엔 블라드 키리케스 등이 기대에 비해 푸대접 받은 선수들이었다.

이는 교체 전술이 단조로웠고, 플랜 B가 빈약했다는 뜻도 된다. 사리 감독은 현재까지 6번 패배하는 동안 계속 비슷한 교체 카드를 썼다. 윙어 중 한 명을 메르텐스로 교체하고, 미드필더 한 명 정도를 더 갈아끼우다가, 경기 막판이 되어서야 미드필더를 줄이고 가비아디니나 오마르 엘카두리를 투입해 공격 숫자를 한 명 늘리는 것이다. 포메이션 변화를 꺼리는 편이었다.

#나폴리가 우승하려면 : 지키고 가다듬기

나폴리가 선전할수록 선수들은 큰 주목을 받았다. 이적 시장이 열리면, 이과인과 히사이 등 주전 선수들을 둘러싸고 영입전이 벌어질 수 있다. 현재 멤버들의 조화가 훌륭한 나폴리는 주전급 선수를 굳이 영입할 필요가 없다.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후보 선수들 역시 출장 기회를 잡기 위해 다른 팀으로 옮길 수 있다. 가비아디니를 비롯해 다른 팀으로 보내기 아까운 선수들이 잔뜩 모여 있는 팀이다. 만약 이탈자가 여럿 발생한다면 사리 감독도 어느 정도 책임을 통감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들을 활용한 새로운 전술과 새로운 조합도 궁리할 필요가 있다.

이과인은 디에고 마라도나에 이어 나폴리를 찾은 아르헨티나 출신 영웅이다. 아직 마라도나와 이과인 사이엔 우승 경력이라는 거대한 격차가 있다. 이과인이 다음 시즌 세리에A 정상까지 나폴리를 인도한다면, 그땐 나폴리 시민들에게 마라도나와 이과인이 동등한 존재로 기억될 것이다.

글=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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