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털풋볼의 상징, 라 마시아 창안까지

사진= 풋볼리스트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토털풋볼은 축구계에서 가장 급진적인 사상으로서 축구사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토털푸볼을 선수로서 구현하고 감독으로서 정교화했으며 철학자로서 전파했던 요한 크라위프가 향년 68세로 별세했다. 지난해 10월 폐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진지 약 5개월 만이다.

크라위프는 말년에 고집불통 독설가라는 이미지가 강해졌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옳은 축구’에 대한 확신이 그만큼 강했고 그 철학이 실제로 훌륭하다는 건 아무도 부인할 수 없었다. 토털풋볼이 전파되기 전까지 대인마크 위주로 경직돼 있던 축구 전술은 크라위프의 시대를 거치며 더 유기적이고 자유로워졌고, 그만큼 보는 이들에게 큰 즐거움을 제공했다. 크라위프가 남긴 업적을 간략히 정리했다.

 

선수로서

크라위프는 아약스를 이끌고 1971년부터 유러피언컵(현 UEFA 챔피언스리그) 3연패를 달성하며 유럽 최고 스타로 자리매김했고, 1974 서독월드컵에서는 네덜란드를 준우승으로 이끌어 세계 축구계에 충격을 안겼다. 리누스 미헬스 감독과 크라위프가 아약스에서 먼저 시작한 토털 풋볼이 TV 중계를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된 첫 시기였다.

결승전에서는 컨디션 난조로 서독을 넘지 못했으나 경기 시작 직후 후방으로 내려가 공을 받은 뒤 최전방까지 직접 운반해 페널티킥을 얻어내며 포지션 파괴의 좋은 예를 보여줬다. 우승 트로피는 서독의 프란츠 베켄바워가 가져갔지만 서독월드컵이 역사에 남은 건 크라위프와 네덜란드가 보여준 새로운 축구 때문이었다. 대회 최우수선수도 크라위프가 수상했다.

크라위프는 아약스에서 정규리그 8회, 유러피언컵 3회 우승을 달성했다. 바르셀로나에서도 우승했고, 은퇴 직전이었던 1983/1984시즌엔 아약스와 싸우고 페예노르트로 이적한 뒤 역시 우승을 차지하며 아약스를 왕좌에서 직접 끌어내렸다. 1971, 1973, 1974년 세 차례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감독으로서

은퇴 1년 후 1985년부터 3시즌 동안 아약스를 지휘한 크라위프는 또다른 친정팀 바르셀로나로 직장을 옮겨 8시즌 동안 이끌었다. 이때 크라위프의 급진적인 전술이 바르셀로나에 녹아들었다. 바르셀로나가 ‘드림 팀’이라 불리며 유럽 최강팀 반열에 오른 시기다. 스페인프리메라리가를 1990/1991시즌부터 4회 연속 우승하는 등 국내에선 적수가 없었다. 유러피언컵에서 1회 우승, 1회 준우승을 달성했다.

크라위프의 축구가 바르셀로나에 남긴 족적은 트로피의 개수로 설명되지 않는다. 당시 크라위프가 정착시킨 네덜란드식 축구는 근근이 명맥을 잇다 2000년대 후반 부활했다. 4-3-3과 3-3-1-3 포메이션 자체가 크라위프의 유산이다. 프랑크 라이카르트, 주젭 과르디올라 감독 등을 거쳐 현재의 루이스 엔리케 감독에 이르기까지 바르셀로나가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아름다운 팀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이들이 크라위프식 축구를 하기 때문이다.

 

라 마시아의 창안자로서

바르셀로나가 세계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는 유소년 시스템 ‘라 마시아’로 성공을 거두는 것도 크라위프가 뿌린 씨앗에서 시작됐다. 크라위프는 한 발 앞서 최고 유소년 시스템을 갖고 있던 아약스의 방식을 바르셀로나에 도입하라고 권했다. 아직 크라위프가 선수로서 은퇴하기도 전의 일이었다. 크라위프 본인이 12세부터 아약스 유소년 팀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기에 유년기가 선수의 기량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기술을 중시하는 라 마시아의 성향도 크라위프의 축구관에 영향 받은 건 물론이다. 차비 에르난데스, 리오넬 메시, 어쩌면 이승우까지 크라위프의 덕을 본 선수들이다.

 

축구 사상가로서

크라위프의 축구는 직계 후손에 해당하는 아약스, 바르셀로나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의 축구에 영감을 얻은 여러 감독이 등장했다. AC밀란에서 4-4-2에 기반을 둔 압박 축구로 ‘현대 축구의 시조’라 불린 아리고 사키 감독은 바르셀로나의 라이벌처럼 묘사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네덜란드식 축구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크라위프는 잦은 인터뷰를 통해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팀들을 옹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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