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입성을 함께 못한 레전드 박종찬

수원FC의 클래식 첫 홈 경기에서 박종찬의 은퇴식이 열렸다

[풋볼리스트=수원] 한준 기자= 수원FC의 K리그클래식 승격 후 홈 첫 경기. 이 역사적 경기의 이슈는 수원FC와 성남FC의 구단주인 염태영 수원 시장과 이재명 성남 시장이 주도한 ‘깃발 전쟁’이었다. 하지만, 이날 본래 수원FC가 경기 전 준비한 중요한 이벤트는 ‘레전드’ 박종찬(35)의 은퇴식이다.

 

박종찬은 수원FC의 역사와 함께 한 선수다. 2005년 인천유나이티드에서 데뷔한 공격수 박종찬은 리그컵에만 1경기 나선 채 팀을 떠난다. 이후 실업축구 INGNEX FC를 거쳐 2007년 수원시청 축구단에 입단했다. 2013년 팀이 프로화 되자 K리그챌린지 무대에 입성하며 8년 만에 프로 무대로 돌아왔다.

 

2013시즌 박종찬은 만 33세의 나이로 프로 첫 득점을 기록했고, 총 11골을 몰아치며 득점 6위에 올랐다. 당시 득점 상위권에 오른 선수들이 상주상무와 안산경찰청 소속의 클래식 출신 선수들이었다는 점에서 박종찬의 활약은 이슈가 됐다. ‘챌린지판 팔카오’라는 별명도 생겼다.

 

#수원FC가 잊지 않은 한 남자, 박종찬

 

2014시즌에도 리그 20경기에 나서 3득점 1도움을 기록한 박종찬은 2015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결정했다. 7경기에 나서 1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격에 힘을 보탰다.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6시즌 홈 개막전. 박종찬은 꽉 들어찬 1만 2천 850명의 관중에 가장 감개무량을 느꼈을 인물이다.

 

수원FC가 클래식까지 온 여정은 여러모로 드라마틱하다. 수원FC는 클래식 입성이라는 역사적 순간에, 역사를 잊지 않았다. 수원FC는 박종찬이 역사적 클래식 홈 개막전 경기를 함께 하길 바랐다. “작년에 계약이 끝나고 나서부터 꾸준히 얘기해왔다. 구단에서 홈 개막전에 은퇴식을 열어주겠다고 해서 전부터 시간을 비워 놨다. 팀에서 많이 노력해 주셨다.”

 

킥오프 전 은퇴식을 갖고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본 박종찬은 “이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을 줄은 진짜 몰랐다”며 만원관중에 놀란 모습이었다. 아내와 아들과 함께 경기를 지켜보는 박종찬에게 이날 경기 엔트리에 들지 못한 수원FC의 후배 선수들이 몰려 들었다. 훈련복을 입지 않고 있었지만, 경기에 열중하며 상황 상황에서 탄성을 지르는 박종찬은 여전히 선수 같았다.

 

수원FC는 수원시청 축구단으로 2003년 창단했다. 박종찬은 입단 첫 시즌인 2007년 11골을 몰아치며 내셔널축구선수권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챔피언결정전 패배로 준우승에 그쳤으나 박종찬 효과는 분명했다. 이후 수원시청 축구단은 줄곧 내셔널리그 최강자의 입지를 유지했다.

 

2012년 조덕제 감독 부임 후 수원시청은 내셔널리그를 제패해고, 2013시즌 프로가 됐다. 박종찬은 수원FC가 프로 첫 시즌에 플레이오프에 나서는 돌풍을 이루는 데 가장 결정적인 골을 넣은 선수다. 함께 클래식 무대를 밟지 못한 것은 아쉽지 않을 수 없다.

 

경기를 지켜본 박종찬은 “재미있게 봤다”면서도 솔직히 자신도 뛰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클래식에서 뛰기는 버겁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막상 와서 보니까 내가 충분히 뛰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도 들고. 같이 더 뛰고 싶다. 이렇게 관중이 많은 곳에서 뛰어보고 싶은 것이 은퇴하기 전의 꿈이었다.”

은퇴 후 직장인의 길을 택한 박종찬. 선수들에게 안정된 진로가 필요하다.

 

#꿈보다 중요한 선수들의 현실

 

한국 나이로 서른 여섯. 박종찬이 무리해서라도 2016시즌을 함께 하지 않은 이유는 경기력이나 컨디션 때문이 아니었다. “몸 상태야 좋았다 안좋았다 하는 거죠.” 그보다 큰 이유는 축구 선수로 살기에는 불안정한 미래다. 박종찬은 은퇴 후 지도자가 아닌 일반 직장인의 삶을 택했다.

 

“내가 아이들을 가르칠 정도가 되는 가 생각도 했고, 지도자를 하게 되면 가정에 소홀해지는 부분도 있었다. 가정에 충실하고 싶었다. 아내와 여러가지로 상의를 했다. 아이도 있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축구 선수의 삶, 그리고 축구 지도자의 삶은 가족의 희생을 담보로 한다. 헌신의 결과가 언제나 성공인 것도 아니다. 기회는 한정적이고, 땀의 결실이 달콤할 때보다는 쓸 때가 더 많다. 어제의 성공은 금세 사라지고, 내일은 새로운 경쟁이 시작된다. 박종찬은 “이제 축구도 경쟁보다는 즐기고 싶다”고 했다. “생활 체육으로 직장을 다니면서 축구를 할 수 있는 곳에 들어갈 생각”이라며 장래 계획을 밝혔다.

 

무명으로 선수 생활을 마친 수 많은 선수들의 또 다른 진로는 직장 취업이다. 직장 내 축구 팀이 활성화 된 회사는 선수 출신 직원을 뽑는 경우가 많다. 박종찬은 은퇴 시점이 다가오면서 차후 진로에 대해 준비해왔다. 후배들에게 “축구를 그만두더라도 길은 있다. 운동 하면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수원FC의 클래식 입성기는 ‘꿈 같은 이야기’지만, 선수들은 ‘현실’을 살아야 한다. 경기를 지켜보는 박종찬의 뒷모습이 못내 쓸쓸해 보였던 이유다. 꿈이 현실이 된 순간은 화려하지만, 90분 경기 외에 현실과 싸워야 하는 더 많은 시간들은 냉정하다.

 

클래식 홈 개막전을 앞두고 후배들에게 어떤 부분을 조언했느냐는 질문에 박종찬은 먼저 “워낙 선수가 많이 바뀌었다”는 말을 했다. 선발로 나선 선수 상당수가 새로 영입된 선수들이다. 클래식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적과 군입대 등으로 떠난 선수도 있지만, 클래식을 경험한 선수들과 외국인 선수들이 대거 보강되며 수원FC의 기존 멤버들은 설 자리가 좁아졌다. 수원FC는 꿈을 이뤘지만, 선수들 모두가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2004년 수원시청에 입단한 김한원은 성남전에 선발 출전한 기존 멤버 중 한 명이다. 수원에서 활약을 바탕으로 인천과 전북을 거쳤으나 큰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 2009년 다시 수원FC로 돌아왔다. 그 뒤로 쭉 수원FC의 역사와 함께 한 레전드다.

올 시즌에도 수원FC의 등번호 10번을 달고 있는 김한원은 만 34세. 공격수에서 풀백으로 전업해 여전히 투혼을 불태우고 있다. 조덕제 감독은 성남과 경기전 김한원을 선발로 세우고 "젊은 선수들이 계속 치고 올라 온다"며 살아남기 위해선 그라운드 위에서 실력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여전히 팀을 지키고 있는 선수들에게 박종찬은 해준 말은 여전히 '도전'이다. “그래도 지금이 기회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경기를 뛸 수 있는 기회를 잡아야 한다.”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지만, 수원FC는 박종찬에게 ‘내 팀’이다. “이제 제2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매주 오기는 힘들지만 중요한 경기가 있을 때는 경기장에 찾아와서 응원할 것이다.” 경기가 끝나고, 관중들이 빠져나간 뒤 박종찬이 구단에서 선물한,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올 시즌 수원FC 유니폼을 입고 내려가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수원FC의 클래식 첫 골을 넣은 김병오

#꿈 뒤의 현실을 말한 ‘역사 골’ 김병오

 

수원FC의 홈 개막전에서 ‘깃발 전쟁’만큼 주목 받아야 했던 인물은 수원FC의 클래식 첫 골을 만든 공격수 김병오다. 근사한 콧수염을 기른 ‘멋쟁이’ 김병오도 사연이 많은 선수다.  안동고와 성균관대를 거친 김병오는 2011년 유럽 진출을 위해 떠났다. 2012년 루마니아 명문클럽 클루지와 계약했으나 1군 데뷔전을 치르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클루지에서 데뷔하지는 못했지만 2군 경기는 많이 뛰었다. 경기도 그렇고 문화적으로도 힘든 부분을 많이 겪었다. 한국 보다 훨씬 거친 스타일의 축구를 한다. 그래서 난 두려움이 없다. 그런 것들이 엄청 도움이 된다.”

 

김병오는 수원FC가 치른 두 경기에 모두 조커로 투입되었다. 왼쪽 측면에서 저돌적인 돌파로 ‘막공’을 이끌었다. 전반전을 차분하게 지킨 뒤 후반전에 공격의 고삐를 당기는 수원FC의 최근 전략에서 김병오는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김병오는 첫 골 득점과 함께 자신에 쏠린 스포트라이트에 “내가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팀이 잘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뻔한 인사치레는 아니다. 그는 “주어진 기회에 좋은 경기를 하지 못하면 선수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는 말로, 무뚝뚝한 표정 속의 진심을 드러냈다.

 

“우리 팀은 스타 플레이어 없이 동등하다고 생각한다. 선수들 사이의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작은 차이로 선택 받지 못한 선수들이 많다. 다른 선수들이 갈구하고 원하는 자리다.” 클루지에서의 설움, 그리고 국내로 돌아와 실업 무대를 거쳐 2013년 FC안양, 2015년 충주험멜을 거쳐 2016년 수원FC 입단으로 클래식 입성의 꿈을 이룬 김병오는 간절함의 의미를 아는 선수다. 후반 20분 그가 넣은, 꽤 침착했던 골은 그 간절함을 지배한 결과였다.

 

김병오는 2015시즌 챌린지 무대에서 9득점 3도움을 기록하며 프로 데뷔 후 최고의 활약을 했다. 그러나 충주는 여론과 팬들의 주목을 받기 어려운 팀이었다. 김병오가 자신의 이름을 한국 축구계에 제대로 알린 것은 이번 성남전이다. 아마 프로 데뷔 후 가장 많은 관중 앞에서 치른 경기였을 것이다. 김병오는 뜨거웠던 홈 개막전보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경기를 할 수 있는 것이 행복하다. 힘이 나서 한 발 더 뛰게 되고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 후반전에는 가변석을 바라보며 경기했다. 많은 관중들이 우리와 소통한다고 느껴져서 더 힘이 났다. 홈 개막전이라 많은 관중이 왔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상황이 되기 위해선 공격수가 골을 많이 넣어야 한다. 골이 많아야 관중들도 기뻐한다. 많이 온 관중들을 팬으로 만들어야 한다. 관중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공연도 의미가 없다. 많은 분들이 계속 와주셨으면 좋겠다.”

"지금 모인 관중들을 팬으로 만들어야 한다"

#팬들의 마음 속에 깃발을 꽂아라

 

수원FC의 꿈을 함께 한 것은 선수들 만이 아니다. 이런 큰 주목을 받기 전부터 응원을 보내던 팬들이 있다. 골대 뒤의 리얼 크루 만이 아니다. 두 아이와 함께 경기장을 찾은 부부는 “작년에는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만 왔는데 정말 많이 왔다”며 뿌듯해 했다.

 

챌린지 입성 당시부터 남편과 함께 수원FC를 응원하고 있는 김현아(34)씨에게 왜 수원FC를 응원하느냐고 물었다. 심오한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호감과 애정은 불현듯 다가와 어느 새 깊어진다.

 

“승격하는 과정도 다 봤다. 가족들이 다 축구를 좋아한다. 원래 전남을 응원했는데 수원에 살다 보니 수원FC를 관심있게 보게 됐다. 수원삼성도 있지만 시민구단이라는 점에서 응원하게 됐다. 승격하게 되니 더 응원하게 되더라.”

 

오랜 축구 팬인 김현아씨는 홈 개막전의 열기에 크게 흥분하지는 않았다. “개막전이니 이런 것이다. 다음 경기가 더 궁금하다. 그래도 정말 분위기가 좋은 것 같다.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다.” 수원FC의 홈 첫 경기는 이슈를 많이 만들었지만, 무엇보다 볼 맛 나는 경기, 응원할 맛 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었다.

 

골대 뒤에서만 이뤄지는 조직적인 서포팅은 경기장 이곳 저곳에서 산발적으로 터져 나온 아저씨들과 아이들, 그리고 여성 팬들의 다양한 목소리와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형성했다. 이날 하루의 특별한 축제가 아니라, 주말 마다 찾아오는 일상이 되어야 한다. 팬들의 마음 속에 깃발을 꼽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수원FC는 꿈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야 한다.

 

이날 수원FC의 첫 클래식 경기 뒤에는 부족한 모습도 남았다. 김학범 성남 감독은 "락커룸도 좁고, 경기 전에 선수들이 준비 운동을 할 만한 공간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경기 전에 취재진과 인터뷰를 갖는 장소는 일반인 출입도 확실히 통제되지 않았다.

 

연맹은 경기 전 실내 웜업 시설에 대해서는 권고 사항으로 삼고 있다. 웜업 시설이 없어도 경기 개최는 할 수 있다. 그러나 클래식급 경기를 위해선 시설 등 모든 면에서 보다 확실한 준비가 필요하다. 성대한 첫 경기 이후, 현실적 숙제는 적지 않다.

 

사진=풋볼리스트,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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