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서호정] 김형범이 돌아왔다. 그거도 아주 확실히. 올 시즌 대전 시티즌에서 부활을 알린 김형범은 3년여 만에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A매치에 섰다. 광복절에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잠비아와의 친선전에 오른쪽 날개로 선발 출전한 김형범은 예리한 크로스로 측면 공격을 이끌었다.

전반 17분, 페널티박스 오른쪽에서 얻은 프리킥. 김형범은 날카롭게 감아 올렸고 문전의 수비 숲 사이로 날아간 공은 이근호의 머리를 맞고 골로 연결됐다. 이 장면은 A매치라는,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경기에서 김형범이 K리그에서 만들어 온 부활드라마의 확실한 방점을 찍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많은 축구 팬들이 알다시피 김형범은 사연 많은 선수다. 양 무릎을 덮친 세 번의 심각한 부상으로 수술대 위에 올라야 했다. 자신의 커리어 최고 시즌이었던 2009년 이후 2010년과 2011년은 사실상 통째로 날렸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부상과 재활, 복귀, 그리고 다시 부상으로 이어지는 힘든 시간이었다. 김형범은 “계속 그런 식으로 다치니까 팬들이 큰 활약도 바라지 않으니까 제발 그라운드에 선 모습이라도 보고 싶다고 하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2011년 김형범은 축구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될 선택을 했다. 바로 대전으로의 임대였다. 존경하는 축구계의 선배이자 친형처럼 지내던 유상철 감독의 제안을 받은 뒤 김형범은 직접 원소속팀인 전북에 임대를 요청했다. 최강희 전 감독, 이흥실 현 감독대행, 이철근 단장은 김형범의 그런 요청을 용감하게 받아들였고 1년 간 대전으로 임대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대전 유니폼을 입은 김형범은 자신의 몸 상태를 늘 고려해주는 유상철 감독의 배려 속에 천천히 실전 감각을 끌어올렸고 5월 이후부터 한창 때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며 2009년 이상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결국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에까지 선발됐고 인상 깊은 활약으로 자신의 존재를 만천하에 알렸다.

김형범의 부활에서 가장 중요한 계기는 임대다. 만일 전북이 김형범을 임대 보내는 것을 중요한 전력 손실이나, 잠재적 경쟁자인 대전에 이득을 주는 결정이라 생각하고 거부했다면 부상으로 몸과 마음 모두 엉망이 된 한 선수의 극적인 귀환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K리그는 여전히 임대에 인색한 분위기다. 상위권 팀들은 선수층이 두텁다. 잠재력 넘치는 유망주들은 경기에 나설 기회가 거의 없다. 부상으로 인해 경기력이 떨어진 이름 값 있는 선수들도 좀처럼 출전 시간을 확보하지 못해 결국 고꾸라지고 만다. 감독이나 구단과의 갈등으로 관계가 험악해진 선수들은 2군에서 머물며 시간을 허비한다.(임의탈퇴라는 악법까지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임대다. 재정이 적게는 2배에서 4배 가까이 차이 나는 하위권의 시도민구단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김형범 같은 케이스의 선수다. 당장은 승점 3점을 걸고 다투는 경쟁자지만 선수 자원이 풍족한 상위권 팀은 장기적으로 키우지만 당장 쓸 수 없는 선수를 여전히 보유하면서 경기력 상승을 이끌 수 있다. 하위권 팀은 완전이적이라는 재정적 부담을 피하면서 선수를 보강해 당장 직면한 경기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것이 임대가 주는 윈-윈효과다.

임대에 대한 인식은 서서히 변하고 있다. 전남의 이현승은 지난해 임대 기간 동안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서울에서 완전히 이적했다. 올림픽대표팀의 공격수였던 김현성은 대구에서 보낸 2년 간의 임대 기간 동안 자신의 가능성을 폭발시키며 현재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다. 올 여름 포항은 큰 돈 들여 영입한 지쿠를 강원에 임대 보냈다. 기대가 컸지만 막상 직접 데려와 확인한 지쿠의 경기 스타일이 현재 포항의 플레이 스타일과 맞지 않아 겉돌았기 때문이다. 과거였다면 별 생각 없이 그냥 보유했겠지만 강원에 보내면서 연봉으로 지출되는 비용을 줄이고 리그 적응력을 높일 수 있는 선택이었다.

김형범은 잠비아전이 끝난 뒤 "임대는 축구인생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그 결정이 없었다면 이렇게 다시 A대표팀 경기에 출전하진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임대로 인한 성공 사례가 더 늘어나야 팀 간의 선수 순환은 활발해진다. 지도자들의 인식이 바뀌고 구단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선수는 계약기간까지 마냥 소유하는 게 아닌 기량을 극대화시켜 구단이 활용해야 하는 대상이다. 활용하지 않으면 선수의 가치는 손상되고 기량은 마모되기 마련이다. 감가상각이 아닌 가치극대화가 필요하고 임대는 그 해답이다. 김형범의 부활이 말해준다. K리그여, 임대에 더 용감해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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