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삼성에겐 악몽과도 같은 7월이다. 첫날 열린 포항과의 원정 경기에서 충격적인 0-5 패배를 당했을 때만 해도 ‘이상하게 안 풀린’ 경기 정도로 치부했다. 하지만 이어진 경남, 전북과의 홈 경기에서도 잇달아 0-3으로 패배하며 분석이 필요해진 상황이다. 물론 그들은 여전히 리그 선두권에 있고 스플릿 제도 도입으로 인한 강등의 위험과도 무관해 보인다. 그럼에도 3연패의 잔향은 찜찜하다. 득점 없이 세 경기 11실점이라는 참담한 성적은 서포터를 중심으로 한 팬들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외부에선 강한 질책과 의문이 쏟아진다.

수원은 강팀의 조건 중 하나인 ‘연패가 적어야 한다’는 점을 종종 빗나간다. 전임 차범근 감독 때도 그랬다. 지난 시즌에도 두 번의 3연패가 있었다. 하지만 내용 면에서 이번 3연패와는 비교가 안 된다. 당시엔 모두 한골 차의, 납득이 가능한 결과였지만 이번엔 모두 세 골 차 이상의 완패였다.

선두권에서 경쟁 중인 전북(리그 3패)은 올 시즌 단 한번 2연패가 있었다. 서울(3패)은 연패가 없다. 제주(5패) 역시 연패를 피해가며 승점을 쌓고 있다. 울산(5패)은 챔피언스리그에 집중해야 했던 시기에 3연패를 겪었지만 모두 한 골 차 패배였다. 수원의 3연패는 1주일 간격으로 경기가 열려 체력적인 소모도 크지 않던 시점에서 나온 의외의 결과다.

지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스타들이 많기 때문에 패배 후 빠르게 회복하지 못하고 휴유증이 지속된다는 것은 지난 수년간 수원이 노출한 약점이다. 그 약점을 지워야 하지만 그걸 방해하는 요소도 현재 수원에 존재한다. 흔들리는 수원에게 필요한 네 가지를 살펴봤다.

1) 라커룸의 리더
레알 마드리드는 라울을 보냈지만 카시야스를 남겼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베컴과 호날두와 작별했지만 긱스만은 은퇴시키지 않는다. 조직에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팀의 정신을 이해하고 경기장과 관중석 사이의 흐름을 읽고, 라커룸에서 때로는 동료들을 몰아붙이면서까지 정신적 무장을 강조할 대장이 필요하다. 단순히 주장 완장을 찼느냐의 여부가 중요한 건 아니다. 전반전이 끝나고, 혹은 경기가 끝나고 라커룸의 공기를 바꿔 줄 선수의 유형은 다양하다. 홍명보나 로이 킨처럼 말 한마디, 눈빛 하나, 행동 하나로 바꾸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박지성이나 말디니처럼 자신을 희생하고 솔선수범하는 이도 있다.

안타깝게도 수원엔 그런 라커룸의 리더가 없다. 지난해에는 염기훈이 있었다. 그는 팀에 대한 강한 애정과 충성심으로 무장하고 늘 먼저 움직였다. 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선수가 확고한 기준이 되었기에 나머지 선수들도 염기훈을 쫓아야 했다. 그런데 지금 수원에선 3년차 이상의 선수를 보기가 힘들다. 물리적인 시간이 얼마나 퇴적됐느냐가 반드시 팀에 대한 애정과 충성심을 반영하진 않지만 저 상황은 의외다. 2005년과 2008년, 그리고 2011년 대대적인 선수 리빌딩을 하는 사이 팀의 색깔을 온전히 담았던 선수들이 남아나지 않았다. 현재 수원 선수단에서 3년 이상 뛴 주요 선수는 곽희주, 양상민, 이상호, 이현진, 하태균, 홍순학 정도다. 곽희주는 올해 다시 주장 완장을 찼지만 그라운드에서, 그리고 라커룸에서 주장으로서의 영향력을 펼치지 힘든 상황이다. 나머지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과거 서정원, 이운재, 김대의처럼 코칭스태프와 팬들이 이견 없이 기댈만한 절대적 구심점, 팀의 심장이 없다.

전반전에 부진했다면 후반전에는 분명 달라진 분위기를 보여야 했다. 무섭게 달려들어 만회하거나 신중한 플레이로 더 이상 실점하지 않고 버티면서 상황을 바꿔야 한다. 그러나 지난 3연패 과정에서 수원은 포항, 경남과의 경기에서 후반이 시작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패배를 확정 짓는 실점을 허용했다. 선수들을 각성시키고 뒷심을 끌어올려 줄 존재가 라커룸에 없음을 보여준 장면들이었다. 서울전처럼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선수들이 알아서 정신적인 무장을 하는 경기에서 수원은 강한 집중력을 보였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기에서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다면 그건 심각한 문제다.

2) 허리의 살림꾼
이용래, 박현범, 오장은, 이상호, 서정진 등. 수원의 미드필더들은 모두 A대표팀을 거친, 소위 말하는 대표급이다. 표면적으로는 이 이상 화려할 수 없는 진용. 하지만 허리에도 문제는 있다. 지나치게 공수밸런스에만 초점이 맞춰진 미드필더들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탈압박을 위한 공격적 색채, 그리고 압박과 1차 저지를 위한 수비적 색채의 선수는 찾기 어렵다. 외국인 선수인 에벨톤C 정도가 전자에 해당하는 유형의 선수다. 다른 대표급 선수들은 공격과 수비 모두 잘하지만, 한편으론 공격과 수비 모두 고만고만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3연패 과정을 보면 수원보다 미드필더들의 개성이 강하고 수준이 높은 것으로 평가 받는 전북과 포항을 상대로 힘겨운 플레이를 했다. 연패의 출발이 된 포항전에선 사실상 유린당했다. 신형민이 뒤에서 확실히 받치고 이명주, 신진호, 황진성, 아사모아가 휘젓자 허리를 내준 채 경기를 해야 했다. 전북전에선 이상호, 오장은, 이용래를 세워 기동력으로 승부를 보려고 했지만 김정우, 루이스, 에닝요의 노련한 경기 운영에 당했다. 전반기 제주 원정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수원은 자신들보다 미드필드 수준이 낮은 팀을 상대로는 밸런스와 템포, 2선의 공격 가담을 극대화해 대량 득점에 성공하지만 수준급 팀에겐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을 반복하고 있다.

특히 수비 1차저 저지선이 되어 줄 헌신적인 수비형 미드필더 확보에 수년째 실패하고 있다. 수비형 미드필더는 현대 축구에서 양 풀백과 더불어 전술적으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다. 우승을 노리는 팀이라면 최소 한 명 이상의 수준급 수비형 미드필더를 보유해야 한다. 경쟁팀을 보면 전북은 정훈과 김상식을, 서울은 최현태와 한태유를, 울산은 에스티벤과 이호가 있다. 반면 수원은 이용래와 박현범을 함께 미드필드 후방에 세우는 선택을 해 왔다. 하지만 둘은 이전 팀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 사이에서 위치했던 선수들이다. 경남 시절 이용래에겐 김태욱이, 제주 시절 박현범에겐 오승범이 있었다. 뒤에서 헌신적으로 받쳐 준 수비형 미드필더가 있었을 때 둘은 자신들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현재 수원에서 수비라인 앞에 서는 두 선수의 조합은 결정적인 순간 약점을 드러낸다. 이용래는 많은 활동량으로 커버하지만 수비 위치 선정이 나쁘다는 지적을 받는다. 장신의 박현범은 순발력 있는 작은 선수들의 움직임을 쫓지 못한다. 두 선수는 상대의 빠른 역습 시 수비 가담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보스나, 곽광선, 곽희주 등 발이 빠르지 않은 센터백들을 보유한 수원으로선 앞에서 미리 차단하고 많은 공간을 커버해주는 존재감 있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없다는 사실이 대량 실점의 보이지 않는 이유가 되고 있다.

3) 벤치멤버의 동기부여
강팀을 만든 감독들은 한결 같이 벤치에 있는 선수들의 동기부여를 강조한다. “팀이 강해지려면 감독은 그라운드에 선 11명이 아니라 벤치에 앉은 선수들을 더 잘 챙겨야 한다”는 것. 팀 분위기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우선적으로 선택 받는 주전 선수들이 아니라 그들의 뒤에 있는 백업 선수들이다. 백업 선수들은 부상과 퇴장처럼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야 하고, 교체카드를 통해 상황을 반전시켜야 한다. 평온한 흐름에서는 중요성이 부각되지 않지만 팀이 풀리지 않는 상황이나 연패에서는 백업 선수들을 얼마나 잘 준비시켰느냐가 승부를 가른다.

지난 전북전에서 수원은 벤치멤버들의 활약에 크게 기대야 했다. 수비라인을 지키던 오범석, 곽희주(이상 경고누적), 양상민(부상), 정성룡(올림픽 대표팀 차출)이 한꺼번에 빠진 상황이었기 때문. 양 측면 수비에는 홍순학과 신세계, 그리고 정성룡을 대신해서는 백업 골키퍼 양동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결국 문제는 그 지점에서 모두 터졌다. 신세계는 수원의 공격 흐름이 살아나며 대등한 플레이가 펼쳐지던 상황에서 에닝요의 드리블 페인팅에 당하며 페널티킥을 내줬다. 경기 흐름에 완벽한 찬물을 끼얹은 장면이었다. 이날이 시즌 네 번째 출장에 불과했던 홍순학은 경기 감각이 완전치 않았고 결국 후반에 무리하게 수비라인을 올렸다가 두번째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전북이 후반에 진경선, 이승현을 투입해 승부에 쐐기를 박는 모습과 대비됐다.

수원도 벤치에 좋은 자원들이 있다. 조용태, 박종진, 이현진, 홍순학 등은 흐름을 바꿔 줄만한 능력을 지녔다. 문제는 역시 동기부여를 통한 경기 감각 유지다. 최전방 공격자원(하태균, 조동건) 외에는 백업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않는 편이다. 출전 시간을 꾸준히 확보하고 있어야 주전들의 결장 시 대체 투입이 돼도 큰 공백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야 궁극적으로 로테이션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올 시즌 수원의 벤치에 앉은 선수들은 출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런 상황에서 큰 경기에 신세계, 조지훈, 민상기 등을 투입해야 했고 긍정적인 효과는 발생하지 않았다. 수원은 벤치에 앉은 백업 선수들의 연봉도 웬만한 팀의 주전급이다. 경기를 뛰지 않는 것이 자신의 가치 손상이라고 느끼는 선수들의 정도가 덜하다. 벤치에 앉은 선수들에게 확실한 동기부여와 긴장감, 분발의 의지를 심어주지 못한다면 주전들과의 거리는 점점 벌어질 수 밖에 없다.

4) 팬心과의 교감
윤성효 감독은 부임 당시 수원의 창단 멤버이자 첫 영구결번이라는 레전드의 이미지가 강조됐다. 그러나 실제 부임 후 지난 시간 동안 팬들이 레전드라는 이미지에 맞는 친화적인 느낌은 받지 못했다. 윤성효 감독의 캐릭터 상 세련된 언변이나 이미지를 구축하긴 쉽지 않다. 이는 전임인 김호, 차범근 감독이 팬들에게 누렸던 대중적인 인기가 발생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최근 K리그에는 감독인 동시에 팬들과 직간접적으로 교감하는 엔터테이너의 기질을 지닌 지도자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는 대표팀으로 간 최강희 감독의 전북 시절이 대표적이다. 성남의 신태용, 제주의 박경훈, 서울의 최용수 감독 등도 그런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그들은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섬세하고 세련되게 전달하는 데 능하다. 필요하다면 팬들의 청문회도 거부 않고 수용한다. 팬들이 궁금해하는, 성적 부진이나 선수 영입 등에 대한 다양한 변수에 직면했을 때 나오는 감독의 의견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때 감독과 팬은 직접적으로 대면하지 않아도 교감을 하게 된다.

그러나 윤성효 감독은 경기 전이나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나온 말들이 표면적이고 상투적이다. 미디어 채널을 통해 필터링 돼도 썩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세련되고 감각적인 언변이 어렵다 해도 미디어를 통해 성의와 진정성을 보여줘야 하지만 지난 3연패 동안 윤성효 감독은 “내 잘못이다. 내 탓이다”라는 단답형의 말 외에는 특별한 설명이 없었다. 팬들이 궁금해하는 내부 사정과 상황에 대한 솔직하고 명쾌한 설명이 없다면 부진의 이유 역시 해소되지 않는다. 그럴수록 바깥에서 흔드는 분위기는 거세진다.

경기장 안에서, 또 SNS 등을 통해 팬들이 쏟아내는 비판과 야유가 직접적으로 선수들 피부에 와 닿는 시대다. 감독이 선수단의 입장을 명확히 대변하고 설득력 있는 말로 팬심을 잡지 않고서는 선수단의 일체화는 힘들다. 축구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팬들은 단편적이거나 감정적이지 않고, 그들이 훨씬 넓고 깊은 것을 볼 줄 아는 시대인 만큼 팬심과의 교감은 절대적이다.

수원의 코칭스태프는 17일 모두의 예상을 깨는 선택을 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이 수원 인근의 유명 워터파크로 단합대회를 떠난 것. 무너진 팀 분위기와 선수들의 무거운 마음가짐을 풀기 위한 회복의 시간이었다. 과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패배 후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맥주를 마시고, 무리뉴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가 흔들릴 때 훈련 대신 바비큐 파티를 한 것과 닮은 발상의 전환이다. 팬들은 갑론을박했다. 현 시점에 저런 여유 있는 유희가 말이 되느냐는 불만 섞인 반응과 선수들이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반응이 뒤섞였다. 어쨌든 수원의 코칭스태프가 현재 팀 내부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고 무언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부진 탈출을 위한 첫 걸음이다. 하지만 프로는 과정의 의도가 얼마나 좋았는지가 아닌 결과의 성패로 평가 받는다. 질책과 압박이 아닌 치유와 단합에 포커스를 둔 수원의 선택이 옳았는지는 이번 주말 대구전에서의 결과로 판가름 날 것이다.

글=서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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