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리가 한 수 위였다.

메이저 대회(월드컵, 유로) 4강에서 패한 적이 없는 독일, 독일에게 패한 적이 없는 이탈리아. 둘의 만남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한 것은 두 팀 간의 징크스였다. 이탈리아가 독일을 2-0으로 누르고 결승에 올랐다.

경기의 시작은 독일의 페이스였다. 기존 주전 멤버 중에서 토마스 뮬러 대신 토니 크로스를 선발로 기용한 독일은, 피를로를 견제하기 위한 크로스의 움직임에 맞춰 외질이 우측을 수시로 넘나들면서 경기를 리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독일의 상승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전반 20분, 왼쪽 측면에서 독일 수비수들을 절묘하게 제친 카사노가 올린 크로스를, 마리오 발로텔리가 머리로 받아 넣은 것이다. 이탈리아에 선제골을 내준 독일은 경기 초반의 에너지를 잃어버린 채 흔들리기 시작했다. 독일은 몇 차례 찬스에서 날린 슛팅이 번번이 상대팀 골키퍼 부폰의 선방에 막혔고 이어진 이탈리아의 속공에 고전하며 어려운 경기를 펼쳤다.

결정적인 장면은 금세 찾아왔다. 전반 36분, 몬톨리보의 스루패스를 이어받은 발로텔리가 오른발로 추가골을 터뜨린 것이다. 2-0. 많은 사람들의 예상치 못했던 스코어가 비교적 이른 시간에 만들어졌다.

예상과 다른 스코어였지만, 경기 내용은 확연한 이탈리아의 페이스였다. 독일은 이탈리아 수비진을 뚫고 몇 차례 좋은 슛팅 찬스를 만들었지만 모든 시도는 부폰의 손에 걸리거나, 골문 바깥으로 빗나가 버렸다. 선발로 기용된 독일의 포워드 고메스는 이탈리아 수비진들의 방어에 막혀 제대로 된 슛팅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후반 시작과 함께 독일은 교체 카드를 꺼내 들었다. 부진했던 고메스를 빼고 클로제를, 공격 기여도가 떨어졌던 포돌스키를 빼고 로이스를, 각각 투입한 것이다. 그러나 과감한 교체도 독일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키엘리니-바르잘리-보누치-발자레티로 구성된 이탈리아 포백은 공중을 완벽히 장악하며 견고한 수비를 펼쳤고, 오히려 역습 상황에서 독일 골문을 위협하며 굳건한 모습을 보였다. 독일은 후반 26분 수비수 보아텡을 빼고 공격수 뮬러를 투입한 뒤 슈바인슈타이거를 최종 수비로 내리며 스리백으로 전환, 적극 공세를 펼쳤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경기 막판에 터진 외질의 PK 만회골은 너무 뒤늦게 찾아왔고, 경기는 결국 이탈리아의 2-1 승리로 끝났다. 이탈리아는 이미 결승에 오른 스페인과 7월 2일 월요일 새벽 3시 45분에 대망의 결승전을 치를 예정이다.

평점 및 촌평

독일

GK 마누엘 노이어 6 – 상대팀 부폰의 초인적인 활약 앞에서는 노이어도 그저 평범한 수문장일 뿐이었다. 두 차례의 실점 과정에서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다.

RB 제롬 보아텡 5.5 – 이번 대회 독일의 위기는 대부분 보아텡의 영역에서 빚어졌다. 경기 초반을 제외하면 공격 가담 능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CB 마츠 훔멜스 5 – 유로2012에서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였던 그에게 이탈리아전 90분은 악몽으로 기억될 것 같다.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해 위기 상황을 연출했고 몇 차례 위험천만한 실수도 있었다.

CB 홀거 바트슈투버 5.5 – 큰 실수는 없었지만 카사노와 발로텔리에 휘둘리며 팀을 지켜내지 못했다.

LB 필립 람 5.5 – 늘 그렇듯 공수에 걸쳐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포백에 균열이 생기면서 미리 막는 수비보다 뒤늦게 따라붙어야 할 장면이 많았다. 후반 중반 오픈 찬스에서 빗나간 슛팅도 아쉬운 대목.

MC 사미 케디라 6.5 – 독일 대표팀에서 가장 성공적인 유로2012를 보낸 선수 중의 하나. 종적으로 많은 움직임으로 공수에 기여했다. 데 로시와 피를로를 견제하는 데에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포백과의 거리감은 아쉬웠다.

MC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5.5 – 활발하게 뛰었지만, 이전 경기에 비해 상대 패스를 많이 놓쳤고, 전진 패스의 정확도 역시 좋지 못했다.

MC 토니 크로스 6 – 피를로와 데 로시를 견제하며 중원에서 활발히 뛰었다. 몇 차례 좋은 패스가 있었지만 동료들이 미처 잡지 못해 아쉬운 장면이 있었다. 뢰브 감독의 크로스 기용 노림수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결과를 뒤집을 투입은 아니었다.

RW 메수트 외질 6.5 – 중앙과 우측을 오가며 많은 찬스를 노렸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탈리아 수비수들에 에워싸인 공격진은 외질의 패스를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고 결국 독일은 필드골을 넣지 못했다.

LW 루카스 포돌스키 5 – 오른쪽 공격을 어느 정도 희생시킨 독일의 선발 라인업은, 왼쪽 측면에서 포돌스키가 공격의 물꼬를 터주어야 효과가 커질 수 있었다. 극히 부진했고, 하프타임에 아웃됐다.
(마르코 로이스 6.5 – 후반 시작과 함께 교체 투입되어 활력을 불어 넣었다. 부폰에 막힌 위력적 프리킥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ST 마리오 고메스 5 – 이탈리아 수비수들 사이에서 아무런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 제공권 다툼도, 동료의 패스를 보관해주는 역할도, 과감한 슛팅도, 그 어느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하프타임에 아웃됐다.

감독 요하임 뢰브 5.5 – 선발 라인업 기용 자체의 잘못을 논하기보다 상대의 전술에 대한 대응 부재를 거론하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빠른 실점 이후 폭 좁게 운영되는 이탈리아의 포맷을 제대로 상대하지 못했다. 특히 제공권 다툼에서 심하게 열세에 놓여 있으면서도 마땅한 대응책 없이 꾸준히 문전으로 공을 올리도록 내버려둔 것은 좋은 운영 방식이 아니었다.

이탈리아

GK 지안루이지 부폰 8 – 한 골도 넣지 못한 선수지만, 그 이상의 득점을 해낸 경기였다. 독일의 초반 공세를 확실히 끊어내 팀의 리드를 유도했고 후반전에도 몇 차례 선방으로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RB 페데리코 발자레티 6.5 – 오른쪽으로 건너와 뛰었음에도 견고했고, 특히 포돌스키를 꽁꽁 묶어 이른 시간에 교체아웃되게 만들었다.

CB 안드레아 바르잘리 6.5 – 중원으로 쇄도하는 독일 선수들에게 고전하기는 했지만 스트라이커방어에 크게 성공했고 무엇보다 제공권 다툼에서 선전했다.

CB 레오나르도 보누치 7 – 공중전에서도 기여했지만, 상대가 빠르게 밀고 올라오는 과정에서 기막힌 일품 태클로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LB 죠르지오 키엘리니 7 – 왼쪽 풀백으로 기용되어 좋은 수비를 보였고, 후반전에는 상대가 끊임없이 쏘아 올리는 크로스를 매번 효과적으로 걷어냈다.

CM 안드레아 피를로 6.5 – 상대 선수들의 적극적인 방어에 막혀 뒤로 처져 플레이했다. 예의 그 날카로운 패스는 여전했다.

CM 다니엘레 데 로시 6.5 – 수시로 이동하며 연결 고리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했다.

CM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 6.5 – 몇 차례 슛팅 찬스를 놓치긴 했지만 중원에서 매우 뛰어난 플레이를 펼쳤다. 공격과 수비의 밸런스를 잘 유지해주었다.

CM 리카르도 몬톨리보 7.5 – 피를로가 막힌 순간에도 몬톨리보는 건재했다. 다이아몬드 중앙 미드필더 가운데 하나로도 모자람이 없었고 둘째 골을 만들어낸 롱패스는 예술 그 자체였다.

ST 안토니오 카사노 7.5 – 팀이 열세에 놓인 상황에서 기막힌 무브먼트로 상대 수비를 벗겨냈고 연이어 발로텔리에게 완벽한 크로스까지 배달해주었다. 이후에도 여유있는 플레이로 자칫 조급할 수 있는 이탈리이의 공격에 중심을 잡아줬다.

ST 마리오 발로텔리 8.5 ★ – 홀로 2골을 뽑아냈다. 감독의 오랜 기대에 부응하며 팀의 결승행을 이끌어낸 것이다. “골 넣는 게 내 일이기 때문에 골을 넣고 세리머니 따위는 하지 않는다. 집배원이 편지 하나 배달했다고 세리머니를 하던가”라더니 골 넣고 웃통을 벗어 던졌다. 그럴 자격 충분한 시합이었다. 승리의 일등공신.

감독 체자레 프란델리 7.5 – 어떤 상대를 만나느냐에 따라 최대치의 효과를 끌어낼 수 있는 포맷을 구상한다. ‘전술 명가’ 이탈리아의 진가를 보여주는 전술가적인 측면이나 선수들에게서 열정을 끌어내는 능력 모두 이번 경기를 통해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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