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의 경우, 뒤로 물러 앉은 팀을 상대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기 마련. 약팀이 강팀을 꺾은 축구사 속 많은 사례들은, 대부분 전원 수비 뒤 역습 속공을 통해 골을 만들어내어 완성됐다. 스페인을 상대하는 팀들의 전략도 대부분 그러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스페인에게는 충분한 학습이 된 것 같다. 물러선 팀들을 오히려 맘껏 유린하던 스페인에게 까다로운 상대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새로운 대응법을 택한 팀들이 스페인을 상대로 선전하고 있다. 수비 라인을 끌어 올리며 중원에서 적극적으로 맞대응하는 팀들에게 스페인이 힘든 경기를 펼친 것이. 조별 리그의 이탈리아와 크로아티아가 그랬고, 바로 오늘 4강전의 포르투갈도 마찬가지였다. 스페인을 상대하는 팀들이 수비 라인을 끌어올릴 수 있었던 데에는 풀백들의 움직임이 이전 대회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오버래핑의 위력이 떨어지고, 보다 소극적으로 움직이면서 상대를 좀 더 끌어내리는 데에 실패했다.

포르투갈의 선전은 스페인과의 중원 싸움에서 자신감을 가질만한 멤버들(무티뉴 벨로주 메이렐레스)의 존재, 그리고 무엇보다 투지로 똘똘 뭉친 적극적인 마인드에서 비롯됐다. 한 발씩 더 뛰고, 아낌없이 몸을 던지는 모습에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스페인이 네그레도 선발 카드를 내민 것은 이에 대한 나름의 예상된 대응으로 보이지만, 막상 선발로 나온 네그레도는 별다른 활약이 없었고 포르투갈은 중원에서의 선전을 바탕으로 문전에 적극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전후반과 연장전까지 모두 120분이 무득점으로 끝난 것은 두 팀 모두에게 아쉬운 결과였다. 후반 막판 상대 셋피스가 종료된 상황에서 발빠른 속공으로 숫적 우위를 점한 포르투갈의 공격은 호날두의 부정확한 슛이 천추의 한으로 남을 것이다. 반면, 스페인 역시 연장 전반 이니에스타가 박스 안쪽에서 잡은 절호의 기회를 상대 골키퍼 선방에 날려 버린 것이 무엇보다 아쉬울 것이다.

경기는 결국 승부차기로 접어들었고 스페인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최고의 경기력이 아닐 때에도 승리하는 팀이 결국 최고가 될 자격을 얻는 것이다. 아무튼 우승후보 스페인은 예상대로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많은 숙제를 떠안은 셈이 됐고, 선전한 포르투갈은 아쉬움을 삼키며 돈바스 아레나를 빠져 나가야 했다. 포르투갈은 메이저대회 승부차기에서 처음으로 패배를 당했다.

평점 및 촌평

포르투갈 (4-3-3)
GK 파트리시우 7 – 연장전 전반의 결정적인 선방을 비롯해 내내 안정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RB 페레이라 6.5 – 적극적인 수비와 적절한 오버래핑으로 좋은 경기를 펼쳤으나 막판 체력 저하가 뚜렷했다.
CB 알베스 6.5 – 공중전에서 기대만큼의 활약을 펼치지 못했지만, 네그레도와의 경쟁에서 쉽게 기회를 허용하진 않았다.
CB 페페 7 – 이번 대회 최고 센터백 중의 하나. 패스 길목을 차단하고 일대일 상황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데에 탁월했다. 무실점으로 탈락한 4강전 결과가 가장 아쉬울 선수.
LB 코엔트랑 7 – 견고한 수비와 파괴력 갖춘 오버래핑으로 포르투갈 공수에 힘을 불어 넣었다.
DM 벨로주 7 – 포백 앞에 위치해 전술적 키를 쥐고 움직이며 스페인 공격의 길목을 교묘히 차단해냈다.
(DM 쿠스토디오 -)
CM 무티뉴 6.5 – 공격 전환 과정에서 좋은 연결자의 역할을 해줬지만 치명적일 수 있는 패스 미스는 옥의 티였다.
CM 메이렐레스 6 – 중원 싸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으나 패스나 돌파 등 공격적인 지원이 아쉬웠다. 대체로 볼 처리가 좋지 않았던 하루.
(CM 바레라 -
RW 나니 6 – 볼을 갖고 있을 때 매우 위력적인 테크니션이지만 볼 소유 시간이 너무 길어 템포를 놓치는 때가 종종 있었다.
LW 호날두 6 – 부담이 너무 컸을까. 집중 견제 속에 제 몫을 해내지 못했다. 제한적으로 주어진 찬스에서도 부정확한 슛을 남발했다.
ST 알메이다 5.5 – 포르투갈 최대의 문제인 수준급 포워드 부재의 아픔을 다시 느끼게 해준 경기.
(ST 올리베이라 -)

스페인 (4-3-3)
GK 카시야스 7 – 언제나처럼 든든히 골문을 지켰고, 특히 승부차기에서 결정적인 선방으로 팀을 구해냈다.
RB 아르벨로아 6 – 적극적으로 움직였지만 견고하지 못했다. 오버래핑 빈도에 비하면 기여도가 높지 못한 것도 아쉬운 대목.
CB 라모스 6.5 – 풀백들의 빈 자리를 메우려 측면으로 여러 차례 이동해 상대 돌파를 차단하는 등 활발히 움직였다.
CB 피케 6.5 – 박스 안쪽에 좋은 위치를 잡고 서서 골문을 지켰다. 상대 유효 슛팅의 수가 많지 않았던 이유 중의 하나.
LB 알바 6.5 – 경기 막판 오버래핑을 통해 공격에 기여했다.
DM 부스케츠 6.5 – 포백을 보호하고 전진의 1차 기지 역할을 하는 임무를 무리 없이 잘 해냈다.
CM 챠비 6 – 패스 성공률은 여전히 매우 높지만 이른바 ‘키 패스’라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연결 장면은 이전 경기에 비해 많지 않았다. 상대 미드필더들과의 경쟁에서 견제를 많이 받았다.
(LW 페드로 -)
CM 알론소 6.5 – 적절한 몸싸움과 적재적소에 꽂아주는 패스로 여전한 아우라를 뽐냈다.
RW 실바 5.5 – 이름값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경기. 기회도 많지 않았고, 기회를 만들려는 움직임도 부족했다.
(RW 나바스 6 – 측면에 교체 투입되어 몇 차례 좋은 돌파를 펼쳤다. 스코어링 포지션에 있는 선수들에게 연결이 잘 되지 않은 것은 아쉽다.)
LW 이니에스타 6.5 – 이번 대회 스페인 축구의 핵심 브레인. 전반에는 측면을 돌아 들어가는 움직임에서 좋은 찬스를 만들어냈고 연장전에는 중앙에서 볼을 잘 뿌려줬다.
ST 네그레도 5 – 델 보스케 감독의 모험적인 카드. 하지만 성공보다 실패에 가까운 성과를 남긴 채 쓸쓸히 이른 시간 교체아웃됐다. 타켓맨도, ‘가짜 9번’도 아닌 애매한 지점에서 섬처럼 고립됐다.
(ST 세스크 6 – 교체 투입된 뒤 활발한 움직임과 과감한 슛으로 상대 골문을 위협했다.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서 팀에 승리를 안겼다.)

승부차기 스코어보드

 스페인
       포르투갈
알론소X(선방)  1 무티뉴X(선방)
이니에스타O  2 페페O
피케O     3 나니O
라모스O    4 알베스X(골대)
세스크O    5 (호날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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