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서울월드컵경기장] 한준 기자= 아무리 우겨도, 침대는 과학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침대축구는 전술이 아니다. 중동 축구팀과의 경기를 전후로 항상 ‘침대축구’ 논란이 벌어진다. 카타르는 클럽 대항전과 국가 대항전 모두 만날 때마다 이 같은 논란이 자주 뒤따른 상대다.

26일 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FIFA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경기 시작 3분 만에 카타르 골키퍼 카심이 드러누웠다. 경기 종료 직전까지 ‘도발’과 ‘시간지연’ 등 비스포츠적인 행위가 이어졌다. 후반 추가 시간 종료 직전에 터진 손흥민의 결승골이 아니었다면 한국은 또 한번 침대축구의 악몽에 무릎을 꿇을 뻔 했다.

하지만, 경기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 임한 파하드 타니 카타르 대표팀 감독은 경기력에 대해 큰 만족감을 표했다. “수비진에게 주문한 것은 타이트한 방어와 지역 봉쇄다. 수비수들이 굉장히 잘해줬기 때문에 한국이 많은 공격을 시도하고도 전반전에 득점하지 못했다. 우리 수비가 좋았기 때문에 한국은 크로스 시도에 집중했다. 좋은 기상과 정신력, 투지를 보인 것에 만족한다. 카타르가 월드컵 예선을 통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것을 보여준 밤이다.”

그렇다면 침대축구의 진실은 무엇일까? 카타르는 경기 내내 얼마나 드러누웠을까?

카타르의 플레이에서 침대축구로 의심 받을 만한 경우는 90분 동안 총 8회였다. 전반 3분과 전반 10분 이근호와 지동원의 문전 침투에 부딪힌 카심 골키퍼가 한동안 누워있었다. 전반 34분에는 공격수 소리아가 하프라인 부근에서 쓰러진 뒤 수십여 초 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전반추가 시간에는 왼쪽 공격수 압둘카림이 페널티 박스 안에서 다이빙을 시도했다.

카타르가 선전했던 것은 드러눕기 아닌 철전한 준비 덕분

압둘카림의 경우를 제외하면 카타르 선수들이 드러누운 장면은 모두 한국의 공격 흐름이 좋던 시기에 나왔다. 한국 선수들의 유기적인 패스 플레이가 살아나거나, 이청용의 기술적인 돌파가 성공해 사기가 오르던 순간에 몸싸움으로 인한 충돌 뒤에 넘어져 시간을 지연했다. 긴 시간을 소모한 것은 아니지만 골과 승리가 절실한 한국 선수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교묘한 기술이다.

후반전에도 기운차게 한국이 경기를 시작하던 후반 4분 하미드가 하프라인 부근에서 공을 쿠션처럼 깔고 누웠다. 한국이 후반 14분 이근호의 헤딩골로 앞서가자 카타르의 플레이도 빨라졌다. 그러나 동점골을 넣은 이후 카타르는 6명의 수비를 문전 주위에 배치하며 잠그기에 들어갔다. 카타르에겐 한국 원정에서 승점 1점이면 충분히 만족스런 결과였다.

카타르 선수들은 자기 진영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았고, 종료 시점이 다가오면서 두 번 더 그라운드 위에 누웠다. 추가시간에만 두 명의 선수를 교체하며 시간을 끌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보였다.

최강희 감독이 “한 골 차 승리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듯, 카타르가 한국을 상대로 보인 선전은 침대축구를 구사했기 때문이 아니라 조직력과 투쟁심, 집중력을 기반으로 한 준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 내내 안정적인 경기를 한 것은 오히려 한국 보다 카타르 쪽이었다 침대에 누워있듯 안정된 축구를 구사했다. 무리가 되지 않는 수준에서 적절히 침대 축구를 시도하며 한국을 초조하게 만들었고, 중앙 수비를 견고하게 지켰으며, 역습 공격으로 골까지 뽑아내 자신들의 계획대로 경기를 풀어갔다.

침대축구는 한국이 아닌 카타르 자신의 적이다

만약 경기가 무승부로 끝났다면 침대축구가 승리했다는 오해가 남을 뻔 했다. 손흥민의 골이 들어간 것은 한국 축구뿐 아니라 카타르 축구에도 좋은 일이다. 축구 발전을 위해선 ‘침대축구’라는 단어는 사라져야 한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한국 취재진을 만난 이동국은 “계속 그렇게 하면 카타르 축구는 발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침대축구’는 상대가 아닌 자신의 축구가 발전하는 데 더 큰 악영향을 준다. ‘침대축구’는 명백한 ‘안티풋볼’이다.

‘침대축구’를 박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비난’이 아니라 더 좋은 축구로 귀감을 보이며 상대를 무너트리는 것이다. 한국은 카타르전 추가 시간 결승골 득점으로 ‘긴 추가 시간’을 야기하고, 경기 도중 쓸데없이 허비한 시간으로 본인들도 득점할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린 카타르에게 교훈을 줬다. 오히려 카타르가 정상적인 플레이로 승점을 얻을 기회를 놓친 것이다.

카타르는 한국 원정을 잘 준비했지만 여전히 버리지 못한 침대축구의 습관 때문에 승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타니 감독의 말 대로 카타르 축구는 칭찬 받을만한 부분이 있었지만, 쓸데없는 침대축구 시도로 스스로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 카타르 축구가 한국 원정에서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스스로 그 교훈을 깨닫고 더 발전된 축구, 좋은 축구를 펼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진=한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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