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유럽 리그 랭킹 1위를 자랑하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가 2012/2013시즌에는 종이 호랑이가 됐다. 8강전에 단 한 팀도 진출시키지 못하고 전멸했다. 2000년대 중반에는 8강전에 4개 출전팀 전부가 오를 정도로 막강함을 자랑했지만, 어느새 옛날 일이 됐다. 어느 때보다 치열해진 유럽축구의 왕중왕전, 올 시즌 EPL이 실패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 | 킬러가 없었다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기는 스포츠다. 멋진 경기를 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골망을 흔들지 못하면 승리로 이어갈 수 없다. 단판전으로 탈락이 가려지는 토너먼트 대회에선 해결사의 존재가 더 빛을 발한다. 득점 순위 상위 10걸을 살펴보면 프리미어리그 소속 선수는 눈에 띄지 않는다. 갈라타사라이의 버락 일마즈와 레알 마드리드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8골로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 뒤를 FC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7골)가 따른다. PSG의 에세키엘 라베치와 발렌시아의 조나스, 도르트문트의 레반도프스키, 스포르팅 브라가의 알란, 유벤투스의 콸리아렐라 등이 5골로 뒤를 잇는다.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첼시의 오스카도 5골로 동률을 이뤄 유일하게 EPL 공격수의 체면치레를 했다.

둘 | 볼을 소유하지 못했다
FC바르셀로나의 성공시대가 열린 이후 볼 점유율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FC바르셀로나의 이상은 단순하다. 더 많이 공을 가지고 있으면 공격 시간이 많고, 수비 시간이 적어진다. 그래서 유리하다. 경기당 평균 볼 점유율 순위에서도 EPL 클럽은 고전했다. 1위는 예상이 쉽다. FC바르셀로나(69%)다. 바이에른(58%)과 포르투(55%), 레알 마드리드(54%)가 뒤를 잇는다. 맨유는 53%를 기록해 맨시티와 함께 공동 6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결정적 경기에서 둘은 라이벌보다 많이 볼을 소유하지 못했다. 맨유는 레알 마드리드와 16강 1차전에서 39.3%, 2차전에서 37%의 볼 점유율을 기록했다. EPL에서 가장 패스를 잘하는 팀으로 알려진 아스널은 16강 두 경기에서 바이에른을 상대로 한 두 경기에서 모두 볼 점유율에서 앞섰지만 유효 슈팅 숫자가 16강 진출 팀 중 15위(43회)로 적었다.

셋 | 대진운이 나빴다
변명이나 핑계로 들릴 수 도 있겠지만 올 시즌 EPL 팀들의 대진표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디펜딩 챔피언’ 첼시와 ‘EPL 챔피언’ 맨체스터시티는 조별리그에서 조기탈락했다. 맨체스터시티는 각국 챔피언이 모인 죽음의 D조에 속했다. 레알 마드리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아약스 등 우승경험이 있는 팀과 경합했다. 물론 이 대진에서 1승도 챙기지 못하며 4위로 추락한 것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경험을 무시할 수 없다. 맨시티는 이들 중 유일하게 우승 경험이 없는 팀이었다. 첼시는 유벤투스, 샤흐타르 도네츠크, 노르셸란과 E조에 속했다. 노르셸란이라는 명확한 약체가 있었다. 그러나 유벤투스, 샤흐타르와 물고 물리는 관계였다. 최근 몇 년간 유럽 무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우크라이나의 샤흐타르가 발목을 잡았다. 16강 대진표도 우울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널은 16강에서 강력한 우승후보 레알 마드리드와 바이에른 뮌헨을 만났다. 8강이나 4강, 혹은 결승에서 만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대다. 하늘도 EPL을 도와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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