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수원] 한준 기자= 삶은 늘 반전의 연속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우려가 기우로 판명 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수원블루윙즈의 AFC챔피언스리그 홈 첫 경기도 그랬다. 센트럴코스트 매리너스와 시즌 첫 공식 경기를 실망스럽게 치렀고, 강원FC와 K리그 클래식 홈 개막전에는 우려를 불식시키는 매력적인 축구를 보여줬다. 플랜B를 가동한 귀저우전에도 빛과 그림자가 엇갈렸다. 기대 이상의 결과도, 기대 이하의 모습도 있었다.

빛 하나, 물 오른 정성룡
수원은 정성룡 덕분에 두 골 정도는 ‘막고’ 들어간다. 수비 보다 공격에 무게중심을 둔 서정원 감독의 수원은 뒷문이 헐겁다는 위험을 안고 경기에 임했지만 지난 4경기에서 실점은 한 골뿐이었다. 이게 다 정성룡 덕분이다. “뒤는 생각하지 말고 공격하라고 말해준다.” 어느덧 베테랑이 된 정성룡의 한 마디는 믿음직스럽다. “개인이 잘했다기 보단 팀을 위해 희생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며 애써 겸손을 표한다. “광선이가 나한테 밥을 사야 되는데 아직 밥을 안 사고 있어요.” 털털하게 웃는 그도 사실은 자기가 잘한다는 걸 아는 것 같다.

그림자 하나, 정대세 공백을 절감한 공격진
“정대세를 기용하지 않겠다. 우리 팀에 있는 다른 공격수들의 능력도 뛰어나다.” 서정원 감독은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호기롭게 귀저우에 자신의 패를 꺼내 보였다. 중국 언론은 “연막이 아니냐”며 되물었다. 수원 관계자는 불쾌감을 표했다. “우리는 아시아 챔피언을 두 번이나 한 팀이다. 귀저우는 이번에 처음 나오는 팀이다. 정대세 출전 유무 같은 일로 연막을 쓰겠나.” 옳았다. 정대세는 선발명단은 물론이고 대기명단에도 없었다.
반은 실현됐지만 반은 실현되지 않았다. 정대세가 빠진 수원 공격진은 무득점에 그쳤다. 스테보와 라돈치치의 컨디션은 좋지 않았다. 귀저우의 밀집 수비를 공략하기 충분치 않았다. 정대세의 헌신적인 움직임이 매분 매초 그리웠다. 정대세와 좋은 호흡을 보이며 앞선 두 경기에서 연속 공격 포인트를 올린 조동건도 덩달아 헤맸다. 수원 데뷔전을 치른 브라질 공격수 핑팡도 자신의 장기를 선보이지 못했다.
수원 공격의 플랜B는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 15번의 슈팅을 시도했지만 5분 마다 한 번씩 함성이 터져 나왔던 강원전과 달리 5분에 한 번씩 한 숨이 나왔다. 스페인 출신 나노, 호주 출신 샐리를 비롯해 잉글랜드를 경험한 베테랑 순지하이 등이 포진한 귀저우의 자물통 수비는 서정원 감독은 “교훈을 얻었다”고 말할 정도로 골문을 잘 잠궜다. 덕분에 체감온도가 영하에 이르렀던 꽃샘추위 속 빅버드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빛 둘, 안정을 찾은 중앙 수비
공격은 불합격이었지만, 수비진은 처음으로 합격점을 받았다. 올 시즌 총 네 차례 공식 경기를 치른 수원은 3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했다. 수비 라인이 단단했기 때문이 아니다. 정성룡이 기적 같은 선방을 연이어 펼쳤기 때문이다. 이 3경기 중 수비진이 칭찬받을 수 있는 경기를 꼽자면 이번 귀저우 전이다. 부상을 털고 돌아온 ‘베테랑’ 곽희주는 특유의 투쟁심을 바탕으로 수원 수비진의 정신을 다잡았다. 저돌적으로 전진하며 공중볼 경합에서 승리했고,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가 없는 수원의 중원 저지선 역할도 수행했다.
젊은 수비수 곽광선은 보스나와 나란히 섰을 때 안정감 부족을 보였으나 곽희주와 활발한 의사소통을 통해 90분 동안 안정적인 경기를 펼칠 수 있었다.
패스 플레이가 강점인 미드필더 조지훈은 영리한 움직임으로 포백 보호 역할을 하며 후방 빌드업의 기점이 됐고, 188센티미터의 장신을 이용해 수비 라인 최후방까지 가담하며 귀저우의 전방에선 보스니아 공격 콤비를 봉쇄했다. 곧 중앙 미드필더 포지션에 박현범과 이용래도 부상에서 돌아올 예정이다.

그림자 둘, AFC챔피언스리스 첫 승 실패
호주 원정 무승부는 부진한 경기 내용에도 값졌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지만, 안방에서 귀저우와 비긴 것은 그리 칭찬할 만한 결과가 아니다. 초반 두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이어질 가시와 레이솔과의 3차전에 대한 부담감이 커졌다. 가시와는 이미 2승을 챙겼다. 수원에게 가시와 2연전은 자칫 조기탈락이라는 치명타를 안겨줄 수도 있게 됐다. 심리적으로 열세인 상황이다. 홈에서 먼저 가시와를 상대하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다.
마음 먹고 수비에 나선 귀저우는 경기를 마친 뒤 “첫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다. 한 마음이 되어 승점 1점을 딴 것이 소중한 경험이고 이 경기를 통해 큰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가시와와 1차전에서 패한 귀저우는 다음 번에 수원을 홈에서 상대하게 되며, 수원은 이 경기에서 안방 무승부를 되갚아야 하는 더 어려운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귀저우전은 내용과 상관없이 승점 3점이 중요했던 경기다. 서정원 감독 역시 그 점을 달성하지 못한 것에 대한 말로 경기 후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빛 셋, 기대 이상의 신인 김대경과 마침내 살아난 홍철의 왼쪽 조합
수원은 이날 선발명단에 변화를 많이 줬다. 이날 처음 선발 명단에 나선 것은 공격수 스테보, 미드필더 김대경, 수비수 이종민 등 세 명이다. 먼저 빛부터 꼽아보자. 올 시즌 번외지명으로 발탁된 숭실대학교 출신 미드필더 김대경은 ‘흙 속의 진주’로 평가 받고 있다. 빠른 스피드와 탁월한 기술을 선보이며 센트럴 코스트전과 성남전에 교체 요원으로 눈에 띄는 활약을 했다.
이날 경기에는 전반 23분 답답하던 경기 중 유일하게 가슴을 시원하게 만든 드리블 돌파를 선보였다. 김대경의 크로스로 만든 공격 기회에 김두현의 마무리 슈팅을 시도했으나 수비 육탄 방어에 걸린 것이 아쉬웠다.
그뿐만 아니다. 김대경은 레프트백 홍철과 매끄러운 연계 플레이, 스위칭 플레이를 펼쳤다. 최재수의 부재를 잠시나마 잊게 했다. 개인 능력 면에서는 최재수에 미치지 못했지만, 김대경 덕분에 앞선 3경기에서 기대에 충족하지 못했던 홍철도 공격 본능을 뽐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반 35분 홍철이 시도한 중거리슈팅은 골키퍼의 선방으로 아쉽게 무산됐다.

그림자 셋, 돌아온 이종민, 우측 라인 플랜B는 시간이 더 필요
오른쪽 측면은 침묵했다. 라이트백으로 나선 이종민은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이종민은수원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지만 울산과 서울을 거쳐 돌도 돌아 친정으로 왔다. 이적생인만큼 호흡을 맞출 시간이 더 필요하다. 서정원 감독이 골고루 선수를 기용하겠다는 의도는 그래서다. 지금 해두지 않으면 나중에도 할 수 없다.
그런 점을 감안해도 오른쪽 공격은 이날의 그림자 중 하나였다. 홍순학과 찰떡궁합을 자랑하던 서정진은 새로운 파트너와 연계 플레이를 많이 시도하지 못했다. 서정진은 몇몇 장면에서 번뜩이는 모습을 보였으나 개인 기술을 이용한 공격 작업이었다. 오른쪽 측면의 무게감이 지난 세 경기보다 현저히 떨어졌다. 조동건과 서정진이 지난 경기와 같은 슈팅 기회를 잡지 못한 것은 그들의 좋은 조력자였던 노련한 홍순학이 없었기 때문이다. 둘의 공격 시도는 고립과 차단으로 끝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픽=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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