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바르셀로나(스페인)] 류청 기자= FC바르셀로나의 홈 경기장인 깜 노우는 밤을 잊었고,어두움이 들어올 틈을 주지 않았다. 12일(이하 현지시간), AC밀란과의 ‘2012/2013 UEFA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경기에서 4-0으로 승리하며 극적으로 8강에 오른 날의 일이다.

경기 당일 바르셀로나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시내 곳곳에서 바르셀로나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AC밀란의 팬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분위기는 대조적이었다. 바르셀로나 팬들은 차분했고, 1차전에서 2-0 승리를 거둔 AC밀란의 팬들은 의기양양했다. 시내 중심지에서 만난 한 AC밀란 팬은 갑자기 큰 소리로 “비바 AC밀란”을 외쳤다.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경기 시간이 가까워오자 깜 노우로 가는 길이 점점 두 가지 색상으로 채워졌다. 바르셀로나의 붉은색과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이들이 깜 노우로 흘러 드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온도도 다른 곳들보다 높았다. 누군가 “바르사”로 시작하는 노래를 부르면 여기저기서 다른 목소리들이 합세하는 식이었다. 거의 10만이 되는 팬들이 경기장을 둘러쌓다가, 조금씩 사라졌다.

경기장 안은 또 달랐다. 축제를 기다린다기보다는 성스러운 의식을 기다리는 듯 했다. 세 골을 넣어도 한 골만 허용하면 8강 진출이 좌절되는 상황 때문이었다. 팬들의 응원은 마치 기도 혹은 고해성사 같았다. 간절하게 선수들에게 자신들의 염원을 담아 보냈다. 선수들이 입장하자 팬들은 함성을 밤하늘로 쏘아 올렸다.

골은 밤의 꽃이었고, 엄숙한 분위기는 점점 축제로 옮아갔다. 리오넬 메시가 전반 5분만에 선제골을 터뜨렸던 순간, 깜 노우에는 희망이 넘실댔다. 바르셀로나가 좋은 경기를 하면서도 다시 AC밀란의 단단한 수비에 막히자 팬들의 응원은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전반 38분 AC밀란의 음바예 니앙의 단독 찬스에서 골대를 맞추자 깊은 안도의 한숨이 경기장을 달렸다.

긴장도 잠시, 메시가 경기를 완벽하게 원점으로 돌리는 골을 터뜨리자 팬들은 마음속의 자물쇠를 완전히 풀어버렸다. 바르셀로나의 ‘쿨레(바르셀로나 팬들의 애칭)’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를 얼싸 안으면서 ‘기쁨을 표현했다. 경기장에서는 계속해서 응원가가 돌림노래로 돌아다녔다. 옆 사람의 이야기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깜 노우는 후반 10분 완벽하게 날아올랐다. 메시와 불화설에 시달리고, 예전의 날카로움을 잊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다비드 비야가 수비를 살짝 피한 뒤 날린 왼발 슈팅이 골대에 꽂히자 팬들은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깜 노우에 있는 AC밀란 팬들과 선수들을 제외하곤 모두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꿈꾸던 결말을 본 드라마의 시청자들처럼 즐거워했다.


그래도 묘한 분위기는 완벽하게 사라지지 않았다. 한 골만 허용해도 8강 진출이 좌절되기 때문이었다.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말할 수 없었다. 팬들의 열렬한 응원 속에 ‘한 골만 더’라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경기장에는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흘렀다. 한 골이 더 필요했다.

조르디 알바가 모두의 죄를 사했다. 알바는 후반 추가시간에 왼발로 AC밀란의 골망을 갈랐다. 알바가 골을 터뜨리자 팬들은 경기장 안에는 거대한 파도가 쳤다. 팬들은 경기자 안으로 쏟아져 들어갈 듯 했고, 그때까지 침착함을 유지했던 바르셀로나의 벤치도 마음속의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축제를 즐겼다.

경기가 끝나도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팬들은 깜 노우의 빛나는 기억을 도시 전체에 퍼뜨렸다. 차와 오토바이들은 경적으로 바르셀로나의 역사적인 승리를 알렸고, 팬들은 경기장 가까운 펍에서 하이라이트를 보면서 다시 감격에 젖었다. 누군가 노래를 부르면 그 주위를 지나가던 팬들이 받아서 부르는 일들이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노래가 이곳저곳에서 피어났다.

낮에 AC밀란팬들이 자신감을 드러냈었던 람 블라 거리는 바르셀로나의 팬들로 메워졌다. 바르셀로나와 까딸루냐의 깃발을 흔들면서 어둠을 걷어냈다. 간절한 기도로 시작했던 이날 경기는 화려한 축제로 끝났다. 깜 노우의 밤은 빛났고, 바르셀로나는 화려했다. 가우디의 건물보다도, 사람이 풍경이 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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