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감히 규정할 수는 없다. 평생을 고민으로 채운 명민한 철학자들은 거의 모두 '인생은 이렇다'라고 규정했지만, 아직 답이 없지 않나. 다만 지금 이 순간, 이 환경에서 드는 생각은 이렇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인생의 길을 결정할 가능성이 있다.

일반 직장인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을 만난다. 최근에는 뭐 취재원이라기보다는 거래처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지만. 이들 중에서 가장 불편한 류는 자신의 독창성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이다. "나는 누구에게도 영향 받지 않았다"라는 말이 따라 나올 때가 많다.

불편할 뿐, 그를 반박할 생각도 능력도 없다. 그런데 이들 중 어떤 이들은 그러한 "절대적인 다름"과 "완벽한 독창성"을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한다. 더 나아가 이런 생각 때문에 주변의 사건에 '심판자'가 되기도 한다. "그건 쟤가 이상한거야"

가지를 쳐서 이런 이들이 연애를 하면 이런 다툼을 벌일 가능성이 커지는 것도 목격했다. 자신의 연인이 전에 만났던 이들의 말투나 행동을 따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갑자기 분노를 표하는 것이다. '그 사람을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라'고.

우연히 요리 혹은 음식에 대한 책을 보다가 빠져들었는데, 이 분 매우 명쾌하다. 음식에 대한 음운학, 역사학 그리고 영양학까지 총 망라한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대목은 페르시아왕이 즐기던 시크바즈(소고기스튜)가 흐르고 흘러 피시앤드칩스가 된 이야기다.

"여러 민족이 문화적 보물이거나 한 것처럼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하는 요리의 유래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우리 모두가 이민자라는 사실이다. 어떤 문화도 고립된 섬이 아니며, 문화와 종교 사이의 혼란스럽고 골치 아픈 경기에서 어떤 훌륭한 특성이 창조된다."

혼자 설 수 없는 인간, 은 당연히 사회적인 동물이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댄 주래프스키가 쓴 "우리 모두가 이민자"라는 말이 된다. 우리는 누구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살 수 없다. 지나치며 보았던 것들이 우리 안에서 어떤 싹을 틔우기도 하는 게 현실이다.

완벽한 단독자는 없다.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로빈손 크루소 이야기가 나왔을 때, 언어 학자들이 가장 큰 의문을 제기한 것은 바로 그의 언어 능력이다. 무인도에서 10년 이상 혼자 살면 언어 능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말은 상대가 있어야 한다.

이 사실을 인정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태도는 달라진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 개인이 아니라 사회를 돌아보는 것이다. 모든 일이 우리가 아닌 '이상한 놈'이 했다는 결론이 나오는 사회는, 건강하기 어렵다.

실비 제르맹이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에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살로 이뤄진 존재"라고 말한 게 같은 맥락이다. 살이 떨어지는 줄 모르고, 박수를 치는 현실이 아프다. 물론 살이 쪄 있기에, 몰래 없어진다면 박수를 쳐주고 싶긴 하다.

글= 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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