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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산레모의 태양을 피하는 방법은 없다
풋볼리스트 | 승인 2015.07.20 15:15

[풋볼리스트] 배경은 곧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이 인물들이 펼치는 사건에 집중하지만, 결국 사건도 배경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니까요. 몇 해 전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일본 영화는 배경 자체가 주제와 같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밀라노라는 차가운 도시에 사는 여인과 피렌체라는 뜨거운 도시에서 일하는 청년의 ‘밀고 당기기’라고 할 수 있죠. 단순한 이야기에 힘을 불어넣은 건 멋진 배경, 밀라노와 피렌체였습니다.

2009년 개봉한 이탈리아 영화 ‘아이 엠 러브’에도 밀라노가 나옵니다. 영화 시작과 함께 눈 내리는 밀라노 풍경이 펼쳐지죠. 안 그래도 회색 일색인 밀라노에 눈까지 내렸으니 유채색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주인공 엠마는 저명한 기업가인 남편과 사랑스러운 세 자녀와 단란하고도 고급스러운 행복을 누리는 그야말로 사모님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무엇 하나 더하거나 뺄 것이 없다고 할까요?

그런데 엠마는 변화의 씨앗을 지니고 있습니다. 무채색의 도시에 살면서도 항상 붉은 계통의 밝은 옷을 걸칩니다. 물론 이것은 변화의 필요충족조건이 되지 못합니다. 무언가, 이를테면 촉매제가 필요했습니다. 갑자기 단조로운 밀라노가 아닌 뜨거운 도시 산레모를 품은 아들 에도의 친구, 안토니오가 등장하면서 엠마의 변화 속도가 빨라집니다. 안토니오의 화려하고 멋진 요리를 먹게 된 엠마는 심적인 변화를 일으키며 극적 반전을 예고합니다.

급기야 엠마는 에도와 안토니오가 식당을 열기로 한 산레모를 찾아가기에 이릅니다. 딸 베타가 공부하고 있는 니스를 간다는 명목으로 산레모에 들르죠. 산레모는 니스 가는 길에 있는 조그마한 도시, 햇살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지중해의 휴양지입니다. 엠마는 산레모에서 안토니오를 만나기 위해 배회합니다. 결국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해후를 하죠. 안토니오는 담담하게 엠마를 아직 개업전인 식당으로 이끕니다.

무채색 밀라노와 대척점에 있는 산레모. 산레모의 모든 것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선명한 색깔을 뽐냅니다. 인공적인 소리도 자연을 침범하지 못합니다. 결국 두 사람은 신분과 나이를 넘어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죠. 아들 친구와의 사랑이라, 보면서 조금 놀라고 가슴 졸이긴 했지만,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선정적이기보다는 아름답습니다. 음악도 아름답지만, 산레모의 햇살이 어둠과 회색지대를 용납하지 않은 게 더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엠마는 안토니오와 사랑을 나눈 뒤 머리를 잘라내고, 소변을 봅니다. 마치 밀라노에서의 삶에 단절을 고하듯. 그리고 비밀을 하나 털어놓죠. 사실 자신의 이름이 엠마가 아니라는 것. 엠마는 러시아 출신인 그녀에게 남편이 지어준 이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주어진 상황을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엠마가 산레모의 햇살 아래 운명을 개척하기로 마음먹은 거죠. 엠마는 안토니오와의 밀애를 알게 된 에도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슬퍼하지만, 결국 밀라노를 떠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가슴 한편으로는 괴로움이 밀려왔습니다. 사랑에 대한 의문과 함께 영원이라는 단어에 대한 회의도 들었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산레모의 햇살이 그려졌습니다. 저는 지난 2009년 5월 취재차 산레모 지척에 있는 모나코를 방문했었는데요. 당시 반짝이던 햇살이 떠올랐습니다. 취재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상심해 딱딱해진 가슴도 따사로운 햇살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골목골목을 누볐던 기억이 납니다.

밀라노 같은 단조로운 서울 생활, 도시 생활이 지겹다면 한번 산레모를 찾아가 보는 게 어떨까요? 마음속에 품은 꿈, 사랑은 있지만 현실적인 벽 때문에 고민에 빠진 이들에게도 산레모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거로 생각합니다. 산레모의 햇살은 모든 게 극명한 색상 차이를 보이게 만드는 능력이 있으니까요. 의심스러운 것들이나 마음의 그늘에 있는 것들도 확연히 드러나게 될 겁니다. 산레모의 태양을 피하는 방법은 없을 겁니다.

덧) 산레모에서는 1951년부터 ‘산레모 가요제’가 열립니다. 이 가요제는 매년 겨울 찾아옵니다. 산레모는 큰 꽃 시장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장미와 제라늄을 사기 위한 행렬이 이어진다고 하네요. 산레모는 프랑스에서도 갈 수 있고, 이탈리아에서도 갈 수 있습니다. 프랑스 니스에서 기차를 타면 한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밀라노에서도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닙니다. 이탈리아는 기차 요금도 저렴하니 한 번 들러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글/사진= 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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