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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소멸
풋볼리스트 | 승인 2014.11.24 18:36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멀쩡한 가정집에 붙일 필요 없는 안내문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등교길에 늘 지나다니던 옆동네에, 아직 사람이 살고 있노라고 선언하는 집이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해가 갔다. 폭삭 주저앉은 집, 지붕을 뜯어간 집, 건축 폐기물로만 남은 유리공장터, 폐비닐이 아무렇게나 널린 밭. 그것은 토지 수용 절차에 들어간 시골 마을의 풍경이었다.

이미 보상을 받고 떠나간 사람이 많았고, 동네엔 그만큼 흉가가 늘었다. 우리 동네를 찾은 사람이 처음 만나는 집, 윗마을로 올라가는 두 골목의 분기점이 되는 집도 주인이 떠났다. 빈 집에서 돈 될만한 걸 뜯어가는 고물상(사람이 살고 있다고 안내문을 붙여야 하는 이유다) 때문에 마을은 자연적인 속도보다 훨씬 빨리 을씨년스러워졌다. 지난 봄엔 사람이 버리고 간 집에 목련이 피었다. 오늘은 집터 위에 낙엽이 앉은 걸 보았다. 사람이 남긴 나무만 태연하게 삶을 지속하고 있었다.

인사말엔 사회상이 반영된다. 요즘 내 고향의 인사말은 “이사하셨어요?”다. 어머니와 함께 겨우 반나절 돌아다니는 동안, 정용이네는 이사 소식을 못 들었는데 어느 아파트로 들어갔냐고 묻는 사람을 두 명 만났다. 사람들은 괴기스러운 동네를 서둘러 벗어나, 보상금을 털어 산 아파트로 입주한다. 혹은 마을 어귀 작은 밭 하나를 메워 새로운 거주 구역을 만들었다. 논 사이에 갑자기 솟아난 멋없는 단독주택들의 무리는, 착륙할 곳과 위장 방식을 잘못 택한 멍청한 UFO인듯 뜬금없어 보였다.

인간의 집단 이주는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다. 고향 마을의 붕괴에 관해 내가 들은 가장 섬뜩한 이야기는, 마을 한가운데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는 집들로 쥐떼가 몰려든다는 것이다. 인간과 공생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쥐들은 인간 활동의 부산물로 나오는 먹거리가 순식간에 줄어들자 당황했을 것이다. 조금 외딴 곳에 있는 우리 집도 서서히 쥐가 늘기 시작했다. 쥐들에겐 미안하지만, 어딜 가도 쥐떼(아마 바퀴도 마찬가지겠지)가 득실거리는 끔찍한 모습은 남은 이들도 하루빨리 떠나라는 자연의 명령처럼 보인다.

내 고향은 이미 반 넘게 사라졌다. 행정구역이 바뀌며 이름도 잃었다. 그나마 ‘봉산1길’이라는 도로명주소에 지명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봉산이 원래 벌뫼 혹은 벌미로 불리는 마을이라는 건 빠르게 잊혀져 갈 것이다. 어쩌면 내 머릿속에서조차.

풋볼리스트  noseart@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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